2022-01-14
왜 한국인들은 군인을 싫어할까
2022-01-08
YTN '나이트포커스' 1월 7일 출연했습니다.
제가 한 말 중 몇몇 중요 대목을 적어둡니다.
1. 윤석열의 음주운전 공약
벨기에와 네덜란드가 딱 붙어 있잖아요. 그리고 말도 똑같은 말을, 거의 비슷한 말을 쓰고 그런데. 굉장히 큰 차이가 있습니다. 교통사고에서 사망자 발생률이 벨기에가 네덜란드의 2배예요, 교통사고 사망률이.
그런데 공교롭게도 국제투명성기구의 반부패지수 CPI를 보면 네덜란드는 2006년 현재 세계 9위 청렴한 나라인데 벨기에는 세계 20위란 말이죠. 이게 뭐냐. 교통사고에 너그러운 나라일수록 사람들이 교통질서를 안 지키고 교통사고에 너그럽고. 음주운전 해도 되지, 이런 나라일수록 부패한 나라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인과관계라고 얘기하기에는 좀 어려워요. 하지만 명백한 통계상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음주운전, 사소하다면 사소하게 느끼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에 관용을 베풀지 않는 나라가 되어야 좋은 나라가 되는 거죠.
2. 이재명의 모(毛)퓰리즘
저는 약간 동의하기 어려운 게 모퓰리즘. 포퓰리즘과 머리 모 자를 합쳐서 모퓰리즘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척수성근위축증이라는, 하나의 예를 들어볼게요. 척수성근위축증이라는 불치병이 있습니다. 난치병이 있는데 신생아가 태어났을 때 바로 확인을 해서 스크리닝을 해서 우리가 모더나, 화이자 백신같이 mRNA, 치료제를 맞으면 낫습니다. 한 번 맞으면 되는데 그 한 번의 약값이 25억 원이에요.
그런데 척수성근위축증은 통계적으로 1만 명에 1명씩 생깁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신생아가 현재 20만 명 정도 태어나니까 우리나라에서 매년 20명 정도의 환자가 생기는 거고 그 환자들한테 그 약을 투여한다고 하면 500억 정도를 잡을 수 있겠죠.
이재명 후보가 1000억이면 되는데 뭘 그러냐, 우리 재정, 돈 많다 이러는데 일단 돈을 그렇게 함부로 있다고 펑펑 쓰는 건 현명하지 못할뿐더러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이냐. 그러니까 소확행. 아이들, 그 아이들을 낳은 부모의 가장 작지만 가장 큰 행복 아니겠습니까? 아이의 건강이라는 건. 그걸 해결해 주는 게 국가의 소확행이지.
물론 탈모인들의 고통과 이런 건 다 이해를 합니다마는 우리가 국가적 차원에서의 소확행을 생각해 볼 때가 아닌가. 대선이 아니면 우리가 언제 이런 얘기를 하겠으며 사회적 의제를 언제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까?
3. 윤석열의 '여성가족부 폐지' 페이스북 게시물에 대하여
헌법 32조에 보면 32조 4항, 여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고용 임금 및 근로조건에 있어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써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 헌법은 처음부터, 그러니까 87년에 제정됐을 때부터 여성 인권을 보호해야겠다, 보호한다라는 취지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그런 헌법입니다.
그 헌법 정신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여성정책 관련한 논의들이 이루어져야 되는데 지금 선거 분위기가 과열되면서 마치 윤석열 후보가 여성부를 다 폐지하고 모든 여성정책을 없애버리는 것 같은 기대를 품게 하려고 지금 일곱 글자만 올린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 이번 대선이 전반적으로 다 일단은 여성가족부를 없애고 이재명 후보 같은 경우는 평등가족부 내지는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겠다. 그리고 안철수 후보는 타 부서에 통합하겠다. 그리고 심상정 후보는 성평등부로 바꾸겠다고 하는데 어쨌건 중요한 건 여성이라는 단어가 빠지는 방향으로 전개가 되고 있단 말이죠.
이게 사회가 좋아져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나빠져서 그러는 건지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마는 우리의 헌법정신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정치권의 논의가 진행되어야 마땅하다라고 이렇게 강조를 드리겠고요.
전체 스크립트는 여기(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대선 정국. 누구 편을 드네 마네 하는 차원을 넘어, 진지한 고민을 제대로 전달하는 글쓰기와 말하기를 실천하며 살아가기 위해 노력중입니다.
[아무튼, 주말] “돈 룩 핵?” 날아오는 핵을 보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몰살당한다
[노정태의 시사哲] 트럼프 풍자영화 ‘돈 룩 업’과 확증 편향 부추기는 대선판
일러스트=유현호
미시간 주립대 천문학과 박사과정생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런스)는 인생 최고의 날을 맞이했다. 태양계를
감싸고 있는 오르트 구름에서 새로운 혜성을 발견한 것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지도교수 랜들 민디 박사(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계산해본 결과, 혜성은 지구로 향하고 있다. 에베레스트산 크기의 돌덩이가 정확히 6개월 14일 후에 지구에 충돌한다. 모든 생명체를 멸종시킬 것이다.
민디
박사와 디비아스키는 백악관으로 찾아갔다. 방문 당일에는 기다리다가 허탕을 치고, 이튿날 드디어 대통령과의 면담을 갖게 됐다.
그런데 돌아가는 꼴이 영 이상하다. 리얼리티 쇼 스타 출신의 올린 대통령(메릴 스트리프)과 그 아들인 비서실장 제이슨(조나 힐)은
사태를 전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3주 후로 다가온 중간선거에 불리할 수 있으니 ‘기다리면서 상황을 보자’는 소리나
한다.
분노한 민디와 디비아스키는 방송에 출연한다. 문제는 그 방송이 진지함과 거리가 먼 잡담 위주의 토크쇼라는 것.
혜성이 다가오고 있다고 해도 농담 따먹기로 일관하는 진행자에게 디비아스키는 정색을 하며 소리를 지른다. “죄송한데 저희 말이
어렵나요? 저희가 하려는 말은 지구 전체가 파괴될 거라는 얘기예요. 지구 전체가 파괴된다는 소식은 재밌으면 안 되는 거예요.
무섭고 불편해야 할 소식이라고요.”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의
한 장면이다. 미국 정치, 특히 공화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을 풍자하는 작품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혜성’은 현실화되고 있는 기후
위기를 상징한다고 감독 스스로가 밝힌 바 있기도 하다. 하지만 작품의 메시지를 그렇게만 한정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에 사로잡혀 현실을 부정하며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는 패턴은 국가와 문화를 넘어서는 보편적인 것이니 말이다.
확증
편향이란 자신의 원래 신념을 유지하는 쪽으로 작동하는 심리적 경향성을 일컫는 용어다. 본래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증거가 나와도,
어떻게든 논리를 끼워 맞추고 때로는 증거를 무시하거나 아예 왜곡·날조하는 행태가 바로 확증 편향이다.
확증 편향은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실험을 통해 심리학적으로 입증됐다. 그중 하나. 스탠퍼드대 학생들에게 사형제도에 대한 자료를 나눠주었다.
그랬더니 사형제에 찬성하는 이들도 반대하는 이들도 모두 그 자료가 자신의 입장을 지지한다고 해석했다. 문제는 두 그룹의 학생들이
모두 같은 자료를 제공받았다는 것. 선입견에 따라 데이터를 자신의 입맛에 맞는 방향으로 읽은 셈이다.
철학은 오늘날
인간의 마음에 대한 이해와 연구의 상당 부분을 심리학에 넘겨주었다. 그러나 확증 편향은 철학자들에게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던
골칫거리였다. 르네상스 시대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대표적이다. 중세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경험주의의 포문을 열었던 그는,
대표작인 <신기관(Novum Organum)>에서 확증 편향의 작동 방식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인간의
지성은 어떤 입장을 택하고 나면 그것을 지지하고 확신하는 방향으로 모든 것을 끌어들인다. 설령 기존의 입장을 반박하는 훌륭한
사례가 넘쳐난다 해도, 최초의 결론을 희생하는 대신 반대되는 증거를 거들떠보지 않고 무시하며, 때로는 폭력과 부당한 편견을
동원해가며 거부하고야 마는 것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그 유명한 ‘4대 우상’ 때문에 확증 편향 같은 오류에
빠진다고 보았다. 심리학자들은 어떨까? ‘확증 편향’이 아니라 ‘우리 편 편향’이라고 보는 게 맞는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인류는 협동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진화했다. 구석기 시대의 원시인이라면 객관적 증거를 시시콜콜하게 따지고
논쟁하느니 가족과 동료의 견해를 따라 움직이는 게 생존 확률이 높았을 것이다.
하지만 복잡한 현대사회 속에서 확증 편향은 득이 아니라 독이 될 때가 많다. <돈 룩 업>으로 돌아가 보자. 올린 대통령은 날아오는 혜성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이들을 무시하며, ‘위를 보지 말라(Don’t look up)’는 구호를 내걸고 선거전에 몰두했다. 부족주의적 확증 편향을 부추기는 효과적인 선거운동이다. 문제는 그게 나쁜 판단이라는 데 있다. 결국 인류는 혜성이 날아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SNS로 잡담이나 하다가 파멸을 맞이한다. 웃기지만 웃을 수만은 없는 희비극이다.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혜성이 날아오고 있지는 않다. 기후변화는 심각한 문제지만 두 달 안에 결판날 사안은 아니다. 하지만 마냥
평화롭고 행복한 시절은 아니다. 철책을 뛰어넘어 귀순했던 탈북자가 같은 경로로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미국과 중국은 대만을 사이에 두고 일촉즉발의 힘겨루기를 이어나간다. 국제 정세가 요동치는 가운데 대북 안보 이슈가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올린, 아니 문재인 대통령은 요지부동이다. 신년사를 통해 “정부는 기회가 된다면
마지막까지 남북 관계 정상화와 되돌릴 수 없는 평화의 길을 모색할 것”이라며 종전선언을 밀어붙이겠다고 선포했다. 주한미군을 내쫓기
위한 포석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여론은 잠잠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전시작전권을 신속히 환수하자고 기름을
끼얹는다. 좌충우돌 자중지란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야당은 제대로 반발조차 하지 않는다.
북핵의 위험이
현실화하면 대한민국의 평화와 번영은 끝장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에이, 북한이 핵을 왜 쏴, 그럼 다 죽는 건데’ 같은 소리나
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당 지지자뿐 아니라 야당 지지자 중에서도 드물지 않다. 북핵 문제가 별거 아니라는 확증 편향에 사로잡힌
것이다. 우리의 현실 감각은 대체 얼마나 망가진 걸까. 문득 민디 박사처럼 소리 지르고 싶어진다. “제발 즐거운 척 XX 좀 그만해요. 어떨 땐 할 말을 제대로 전해야 하고 듣기도 해야 해요.”
<돈 룩 핵(核)>. 2022년
1월 현재 대한민국에서 절찬 상영 중인 블랙 코미디의 제목이다. 물론 실화다. 확증 편향의 대가는 혹독하다. 날아오는 혜성을,
날아올지 모르는 핵을 못 본 척하면, 몰살당한다. 하지만 미리 좌절하지는 말자. 우리에게는 아직 선택의 기회가 남아 있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윤석열과 보수여, ‘이대남 다 걸기’ 초강수 아닌 惡手
[노정태의 뷰파인더] 페미니즘에 투자하라!
● 20·30 세대에 백기 투항 尹
● 페미니즘은 진보 전유물 아냐
● 전통과 법치, 보수주의 두 축
● 간통죄가 여성 인권 지킨 까닭
1월 5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선거대책위원회 해산이라는 초강수를 두며 발표한 내용의 일부다. 그의 지지율은 지난해 12월 말부터 올해 1월 초까지 지속해 떨어졌다. 이중에서도 20대의 지지율 하락세가 도드라졌다.
윤석열이 말하는 "20·30 세대에 실망을 주었던 행보"란 무엇일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신지예 전 새시대준비위원회 수석부위원장 영입이 그에 포함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신지예는 젊은 페미니스트 여성 정치인이다. 그런 신지예를 보수야당 대선후보인 윤석열이 영입했다. '이래도 될까?' 싶은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파격적 행보였다. 신지예 때문이건 다른 요인 때문이건 그 후 윤석열의 지지율은 쭉 떨어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에게 추월당했다. 결국 윤석열은 선대위 해산이라는 카드를 꺼냈고, 20·30 세대를 향해서는 '반성'이라는 단어를 쓸 만큼 공개적으로 백기를 들어 올렸다.
정치인의 말은 일단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해석해야 한다. 윤석열은 '이대남'(20대 남성) 여론을 추종하겠다고 공언했다. 문제는 그 이대남 여론의 중심에 페미니즘에 대한 반대, 즉 '안티 페미'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종합해보면 윤석열의 '20·30 세대에 사과' 발언은 앞으로 안티 페미 여론을 염두에 두겠다는 뜻으로도 해석 가능하다.
이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여러 요인에 의해 벌어진 지지율 하락의 책임을 신지예라는 한 사람에게 덮어씌우는 것은 희생양 찾기에 다름 아니다. 지지율 하락의 원인을 잘못 파악하면 엉뚱한 곳에서 해법을 찾으려 들고, 결국 대선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보수, 페미니즘 관계가 뒤틀리다
더 크고 중요한 문제가 있다. 보수 정치와 페미니즘의 관계가 뒤틀렸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진보의 전유물이 아니다. 외려 역사적으로 보면 그 반대가 사실에 더 가깝다. 법치주의에 터를 잡은 근대 정치가 출발한 후로 한정지어 보자면 분명히 그렇다. 페미니즘은 보수와 진보를 오가며 여성의 권리를 증진해왔다.보수의 핵심 가치는 무엇인가. 여러 해석이 가능하지만 보수주의 정치철학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에드먼드 버크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버크는 프랑스 대혁명이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라고 예견한 사람이다. 그의 논리는 간명했다. 진보주의자들은 이성과 논리를 기반으로 세상을 단번에 뒤엎으려 하지만 세상은 복잡한 곳이다. 혁명을 꿈꾸는 진보주의자들이 마음먹은 대로 고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책상에서 고민해 내놓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해법은 현실에서 늘 한계에 부딪힌다. 많은 경우 역효과를 불러오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하는가. 버크는 따스한 마음을 지닌 개혁가였다. 세상의 악을 못 본 척 하자는 태도는 버크의 보수주의와 무관했다. 버크는 위에서 아래로 지시하고 뒤집는 이상주의적인 개혁 대신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는 경험주의적이고 사례 중심적인 해법을 강조했다.
그 과정에서 '전통'의 가치가 새롭게 발견됐다. 전통이란 무엇인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전해지는 행동 양식 혹은 문제 해결 방법론의 집합이다. 전통은 고리타분해 보인다. 당장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는 장애물로 여겨질 뿐이다. 하지만 전통을 그렇게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된다. 전통이 전통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은 오랜 세월에 걸쳐 그 효과 내지는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같은 원리를 법에 대해서도 적용해볼 수 있다. 법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설령 다소 잘못된 부분이 있더라도 하루아침에 졸속으로 뜯어고쳐서는 안 된다. 모든 국민이 법의 존재를 인식하고, 이해하면서, 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떤 법을 악법이라 손가락질하며 함부로 뜯어고치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문재인 정권은 집주인들을 혼쭐내주겠다며 임대차 3법(계약갱신청구권제·전월세상한제·전월세신고제)을 밀어붙였다. 그 뒤 전세가가 폭등했고 울며 겨자 먹기로 월세를 택하는 사람이 늘었다. 법은 보수적으로 만들고 보수적으로 시행하며 보수적으로 개정해야 하는, 보수의 보루와도 같다.
법의 보수성은 대한민국 같은 법치주의 후발국에서 묘한 맥락을 지니게 된다. 선진국에서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만들어낸 법과 제도를 이식받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진보적 의제를 앞세우는 법률가는 해외 사례를 참고하거나 외국의 법을 이식해오는 것 자체에 불만을 품곤 한다. 허나 법은 온 국민에게 동시에 평등하게 적용되는 것이며, 한번 만들면 쉽게 되돌릴 수 없다. 다른 나라의 법을 참고해 우리의 법을 만드는 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전통과 법치. 보수주의를 지탱하는 두 개의 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통은 보수주의 중에서도 문화적 보수의 영역에 가깝다. 반면 법치는 경제적 보수가 선호하는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영국처럼 자국의 문화와 법치주의의 역사가 단절 없이 지속된 경우라면 양자의 차이가 크게 도드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처럼 식민지 시대를 겪고 외부로부터의 충격에 의해 근대화가 시작된 나라는 사정이 다르다. 보수주의를 지탱하는 두 축이 서로 충돌하고 대립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만다.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
한 템포 쉬어가는 차원에서 소설의 한 대목을 읽어보도록 하자. 소설가 박완서가 쓴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라는 제목의 단편이다.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의 6권, '그 여자네 집'의 136쪽에서 인용한 대목이다."아버지도 어머니에 대한 조강지처 대접 하나만은 깍듯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일제시대부터 다니던 경전(京電)을 해방 후 한전이 된 후에도 눌러서 다녔는데, 당시로서는 안정되고 대우도 괜찮고 가욋돈도 생기는 꽤 좋은 직장이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직장 근처에 딴살림을 차리고도 월급봉투 하나만은 한 푼도 안 건드리고 큰집으로 들여왔다고 한다. 어머니는 소실하고 아버지가 무슨 돈으로 살림을 꾸리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그 월급봉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고 하는데 그나마 오래 누리진 못했다. 박정희 정권 초기에 사회를 정화한답시고 관청이나 국영기업체에서 축첩한 자는 자진해서 사표를 쓰라고 엄포를 놓은 적이 있었다. 상습적인 바람둥이들도 서로 눈치를 봐가며 그럭저럭 그 시기를 무사히 넘겼는데 아버지는 그러지를 못했다. 아버지가 소실을 두고 있다는 건 사내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엄포가 내린 이상 실적을 올려야 하는 건 피할 수 없었고, 아버지는 당연히 최초의 희생양이 되었다."
전후 맥락이 없어도 어떤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집 살림을 하던 아버지, 자신이 본처라는 사실을 자부심의 근원으로 삼던 어머니. 남편은 월급통장을 고스란히 가져다 바치고 아내는 남편이 밖에서 무슨 짓을 하건 군말 없이 살림을 하는 유교적 가부장제 모델을 구현하며 살던 부부의 모습이다. 그런데 그 균형이 일순간 뒤흔들리고 만다. 왜? 근대적·서구적 법치주의에 기반 한 일부일처제를 강요하는 권력자, 박정희가 출현했기 때문이다.
처첩제는 1948년 해방과 함께 폐지된 상태였다. 법이라는 것은 그저 만들었다고 해서 완성되는 게 아니다. 그 법을 집행하겠다는 행정부의 의지, 법에 따라 판결하겠다는 사법부의 단호한 태도가 뒷받침돼야 제 기능을 수행한다. 특히 한국전쟁이 끝난 후 남자가 여자보다 부족한 여초현상이 벌어지면서 경제력을 지닌 남자들은 아무렇지 않게 첩을 거느리는 풍조가 일반화됐다.
위에서 인용한 박완서 소설의 한 장면은 바로 그런 세태를 그려내고 있다. 이미 해방된 조국, 현대 국가인 대한민국에 살고 있지만, 국민의 의식 수준은 전근대적 조선시대를 벗어나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요컨대 보수주의의 두 축 중 하나인 전통의 측면에서 대한민국은 시대에 뒤떨어져 있었다.
반면 또 다른 축인 법치는 달랐다. 많은 경우 우리의 법은 선진국의 법을 베껴온 형태였다. 그 덕분에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했고 여성 인권이라는 대의에도 잘 맞았다. 그리하여 박정희가 '있는 법을 지킬 것'을 요구하자 이전까지 아무렇지 않게 첩을 거느리고 살던 남자들의 머리 위로 별안간 불호령이 떨어지게 된 것이다.
박정희는 왜 그런 짓 감행했을까
앞서 말했듯 당시에는 남자가 여유가 되면 첩을 두는 게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었다. 50·60대는 노인으로 간주되던 시절이기도 했다. 축첩을 단속하는 것은 그런 남자들에게 환영받을 일이 전혀 아니었다. '20·30대 민심'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심지어 일부 여성들도 반발했다. 소설을 다시 읽어보자.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딨다냐? 할아버지 할머니는 그로 인해 돌아가시는 날까지 박정희를 미워하였다."대체 박정희는 왜 그런 짓을 감행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축첩을 금지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이득이 됐기 때문이다. 첩을 거느리는 소수의 남자들, 그리고 졸지에 실업자의 아내가 된 소설 속 '어머니' 같은 일부 여성은 반발했을 것이지만 대다수의 남녀에게 축첩제는 옳지 않은 일이었다. 남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결혼의 커트라인이 더 높아지는 일이요, 여자들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첩이 되는 것은 법적으로 불안정한 지위에 묶인다는 말과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전통과 법치는 때로 갈등한다. 전통은 여성의 권리를 억압하고 법치는 여성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작동하는 경우가 흔하다. 한국처럼 선진국의 법과 제도를 도입한 후발주자 국가의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시대에 뒤떨어진 법 때문에 여성이 고통 받는 일도 흔하지만, 시대가 법을 따라오지 못하는 문화 지체 현상 역시 흔히 발견된다. 그럴 때, 보수의 핵심인 법치는 페미니즘의 중요한 보루가 된다. 여성들은 사회를 통째로 들어 엎고 바꾸자고 요구하는 대신, '있는 법이나 잘 지켜라'라고 외치는 것만으로도 여성 인권 향상을 도모할 수 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1905년 대한제국 시절 제정된 정조법(貞操法)을 대체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조법은 간통을 저지른 유부녀와 상간남을 처벌할 뿐이었다. 아내가 있는 남자가 미혼 여성과 불륜을 저지를 경우 처벌할 수 없었다는 소리다. 여성의 성은 가정의 울타리에 묶어놓고 남성의 성은 처벌하지 않는, 사실상 '축첩보장법'이나 다를 바 없었다. 전통만 앞세웠지 법치의 합리성과 균형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격론 끝에 국회는 단 한 표 차이로 쌍방처벌을 전제로 한 간통죄를 통과시켰다.
1953년 간통죄 제정은 그런 면에서 여성주의의 승리이자 보수주의의 승리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이다. 전통이 여성을 억압하는 퇴행적 기능에 머물고 있을 때, 법치가 앞장서 '가족'이라는 가치를 보호하는 쪽으로 무게 중심을 옮겼다고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그 후로도 간통죄는 꾸준히 논란이 됐고, 결국 20세기 중반부터 페미니스트들이 앞장서 비판하고 폐지했다.
가장 보수적인 법학자들이 앞장서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 제정에 나선 사례를 우리는 이것 말고도 숱하게 찾아볼 수 있다.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한 권리를 지닌다는 것, 그 자명한 법치주의의 원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는 가장 강력하고 든든한 보루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성 인권과 페미니즘은 진보의 전유물이 아니다. 오히려, 보수주의가 제 기능을 해야 여성주의 역시 공허한 담론이 아닌 현실을 바꾸는 법과 정책으로 진화할 수 있다.
"둘이 우결 찍느냐"
윤석열의 메머드급 선대위가 해산되면서 신지예뿐 아니라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경기대 교수 역시 자동적으로 공동선대위원장 직에서 물러났다. 두 영입 인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안 좋은 모습으로 쫓겨나게 된 점은 실로 애석한 일이다. 보수주의와 보수 정당이 페미니즘과의 관계를 건설적으로 재구축할 드문 기회를 소진한 셈이기 때문이다.이수정은 범죄 피해자를 보호하고 여성 인권을 지키기 위해 경찰과 공권력의 치안 유지 기능이 강화돼야 한다는 보수적 입장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온 범죄 전문가다. 여성을 범죄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보수 진영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수정의 영입을 통해 보수는 여성주의의 일부 의제를 자신의 것으로 가져갈 수 있었다는 뜻이다. 물론 현실은 전혀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다.
신지예의 경우는 더욱 큰 아쉬움을 남긴다. 그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여러 차례 방송에 함께 출연한 사이다. 이준석이 먼저 나섰다면 어땠을까. 끝없이 치닫고 있는 남녀 간의 갈등을 중화할 수 있는 문화적 반전의 계기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신지예의 새시대위원회 합류가 결정된 후 일부 인터넷 사용자들은 "둘이 우결(예능 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 찍느냐"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농담이 어떤 식으로건 현실화했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여러모로 상황이 나았을지 모른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정반대로 향했다.
‘이대남의 마음을 잡아라!' 이런 지상 과제에만 몰두하는 것은 당장의 선거 전략으로 현명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한국 보수 정치의 장기적인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의 절반은 여자다. 여성주의를 이해하고 현명하게 끌어안는 건강한 보수 정치의 출현을 기대한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2022-01-04
설강화 관련 코멘트 모음
신동아에 보낸 칼럼(링크). 1, 2화 보고 씀.
3화까지 감상 소감
설강화 3화 틀었는데, 2021년 드라마에서 보기 힘든 '아씨-식모' 구도의 갈등이 전면화. 요즘 한국 드라마에서 잘 안 다루는 지점.
하긴 유현미 작가는 <스카이 캐슬>때도 굉장히 노골적으로 계급 이야기를 했음. 문제는 그랬다가 혜나를 구렁텅이 빠뜨리고 죽였다는 것인데... 진보적 성향은 없지만 계급 문제를 인지하는 작가들이 곧잘 택하는 코스. 당시에도 논란이 있었다. 작게나마.
아무튼, 무슨 말도 안 되는 역사왜곡 논란으로 이 드라마 조지는 사람들이 더더욱 싫어할 수밖에 없겠다. 작품 내에 결백한 사람이 없으니까. 여러모로 90년대 순정만화 같음. 좋은 의미에서.
5화까지 감상 소감
설강화 5화까지 본 소감. 작가는 '남북관계를 배경으로 한 로미오와 줄리엣'을 썼음. 신동아 원고 쓸 때도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단정지어 말할 수가 없었는데, 이제 분명하네...
7화까지 감상 소감
<설강화>는 영화로 갔어야 할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든 게 가장 큰 패착 같다.
감정선이 아주 높고 깊게 오가며 빠르게 변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인데, 영화는 그걸 연출과 몇몇 장면에서 드러나는 연기로 커버 가능함.
반면 드라마라는 장르는 워낙 러닝타임이 길다. 남주 여주 사이의 멜로가 붙느냐 마느냐, 이거를 시청자들은 아주 긴 시간에 걸쳐 보고 촉각적으로 판단함.
<로미오와 줄리엣>, 거기서 파생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같은 극단적 러브스토리들, 모두 청춘들의 짧게 불타오르는 사랑 이야기인데 거의 대부분 이야기 자체를 길게 끌지 않는다. 그게 다 이유가 있었구나 싶음.
관객이 단번에 보고 단번에 흥분한 후 단번에 절망하게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이야기가 그냥 '하나의 덩어리'로 전개되고 끝나지 않으면 안 됨. 생사를 오가는 총성 속의 사랑 이야기인데 이번주에 보고 쉬었다가 다음주에 또 보고... 그게 필이 잘 안 받겠죠.
영화로 찍었다면 좋은 뭔가가 뽑히고 충분히 유익한 사회적 논의도 뽑아낼 수 있었지 않았을까 싶은데, 여러모로 아쉽다. 이제는 실검에서 총공도 안 당함...
정리해보는 차원에서 올려봅니다. 여러모로 아까운 기획이 왜곡되고 묻혔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