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08

[아무튼, 주말] “돈 룩 핵?” 날아오는 핵을 보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몰살당한다

 [노정태의 시사哲] 트럼프 풍자영화 ‘돈 룩 업’과 확증 편향 부추기는 대선판
일러스트=유현호
미시간 주립대 천문학과 박사과정생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런스)는 인생 최고의 날을 맞이했다. 태양계를 감싸고 있는 오르트 구름에서 새로운 혜성을 발견한 것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지도교수 랜들 민디 박사(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계산해본 결과, 혜성은 지구로 향하고 있다. 에베레스트산 크기의 돌덩이가 정확히 6개월 14일 후에 지구에 충돌한다. 모든 생명체를 멸종시킬 것이다.

민디 박사와 디비아스키는 백악관으로 찾아갔다. 방문 당일에는 기다리다가 허탕을 치고, 이튿날 드디어 대통령과의 면담을 갖게 됐다. 그런데 돌아가는 꼴이 영 이상하다. 리얼리티 쇼 스타 출신의 올린 대통령(메릴 스트리프)과 그 아들인 비서실장 제이슨(조나 힐)은 사태를 전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3주 후로 다가온 중간선거에 불리할 수 있으니 ‘기다리면서 상황을 보자’는 소리나 한다.

분노한 민디와 디비아스키는 방송에 출연한다. 문제는 그 방송이 진지함과 거리가 먼 잡담 위주의 토크쇼라는 것. 혜성이 다가오고 있다고 해도 농담 따먹기로 일관하는 진행자에게 디비아스키는 정색을 하며 소리를 지른다. “죄송한데 저희 말이 어렵나요? 저희가 하려는 말은 지구 전체가 파괴될 거라는 얘기예요. 지구 전체가 파괴된다는 소식은 재밌으면 안 되는 거예요. 무섭고 불편해야 할 소식이라고요.”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의 한 장면이다. 미국 정치, 특히 공화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을 풍자하는 작품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혜성’은 현실화되고 있는 기후 위기를 상징한다고 감독 스스로가 밝힌 바 있기도 하다. 하지만 작품의 메시지를 그렇게만 한정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에 사로잡혀 현실을 부정하며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는 패턴은 국가와 문화를 넘어서는 보편적인 것이니 말이다.

확증 편향이란 자신의 원래 신념을 유지하는 쪽으로 작동하는 심리적 경향성을 일컫는 용어다. 본래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증거가 나와도, 어떻게든 논리를 끼워 맞추고 때로는 증거를 무시하거나 아예 왜곡·날조하는 행태가 바로 확증 편향이다.

확증 편향은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실험을 통해 심리학적으로 입증됐다. 그중 하나. 스탠퍼드대 학생들에게 사형제도에 대한 자료를 나눠주었다. 그랬더니 사형제에 찬성하는 이들도 반대하는 이들도 모두 그 자료가 자신의 입장을 지지한다고 해석했다. 문제는 두 그룹의 학생들이 모두 같은 자료를 제공받았다는 것. 선입견에 따라 데이터를 자신의 입맛에 맞는 방향으로 읽은 셈이다.

철학은 오늘날 인간의 마음에 대한 이해와 연구의 상당 부분을 심리학에 넘겨주었다. 그러나 확증 편향은 철학자들에게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던 골칫거리였다. 르네상스 시대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대표적이다. 중세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경험주의의 포문을 열었던 그는, 대표작인 <신기관(Novum Organum)>에서 확증 편향의 작동 방식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인간의 지성은 어떤 입장을 택하고 나면 그것을 지지하고 확신하는 방향으로 모든 것을 끌어들인다. 설령 기존의 입장을 반박하는 훌륭한 사례가 넘쳐난다 해도, 최초의 결론을 희생하는 대신 반대되는 증거를 거들떠보지 않고 무시하며, 때로는 폭력과 부당한 편견을 동원해가며 거부하고야 마는 것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그 유명한 ‘4대 우상’ 때문에 확증 편향 같은 오류에 빠진다고 보았다. 심리학자들은 어떨까? ‘확증 편향’이 아니라 ‘우리 편 편향’이라고 보는 게 맞는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인류는 협동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진화했다. 구석기 시대의 원시인이라면 객관적 증거를 시시콜콜하게 따지고 논쟁하느니 가족과 동료의 견해를 따라 움직이는 게 생존 확률이 높았을 것이다.

하지만 복잡한 현대사회 속에서 확증 편향은 득이 아니라 독이 될 때가 많다. <돈 룩 업>으로 돌아가 보자. 올린 대통령은 날아오는 혜성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이들을 무시하며, ‘위를 보지 말라(Don’t look up)’는 구호를 내걸고 선거전에 몰두했다. 부족주의적 확증 편향을 부추기는 효과적인 선거운동이다. 문제는 그게 나쁜 판단이라는 데 있다. 결국 인류는 혜성이 날아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SNS로 잡담이나 하다가 파멸을 맞이한다. 웃기지만 웃을 수만은 없는 희비극이다.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혜성이 날아오고 있지는 않다. 기후변화는 심각한 문제지만 두 달 안에 결판날 사안은 아니다. 하지만 마냥 평화롭고 행복한 시절은 아니다. 철책을 뛰어넘어 귀순했던 탈북자가 같은 경로로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미국과 중국은 대만을 사이에 두고 일촉즉발의 힘겨루기를 이어나간다. 국제 정세가 요동치는 가운데 대북 안보 이슈가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올린, 아니 문재인 대통령은 요지부동이다. 신년사를 통해 “정부는 기회가 된다면 마지막까지 남북 관계 정상화와 되돌릴 수 없는 평화의 길을 모색할 것”이라며 종전선언을 밀어붙이겠다고 선포했다. 주한미군을 내쫓기 위한 포석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여론은 잠잠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전시작전권을 신속히 환수하자고 기름을 끼얹는다. 좌충우돌 자중지란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야당은 제대로 반발조차 하지 않는다.

북핵의 위험이 현실화하면 대한민국의 평화와 번영은 끝장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에이, 북한이 핵을 왜 쏴, 그럼 다 죽는 건데’ 같은 소리나 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당 지지자뿐 아니라 야당 지지자 중에서도 드물지 않다. 북핵 문제가 별거 아니라는 확증 편향에 사로잡힌 것이다. 우리의 현실 감각은 대체 얼마나 망가진 걸까. 문득 민디 박사처럼 소리 지르고 싶어진다. “제발 즐거운 척 XX 좀 그만해요. 어떨 땐 할 말을 제대로 전해야 하고 듣기도 해야 해요.”

<돈 룩 핵(核)>. 2022년 1월 현재 대한민국에서 절찬 상영 중인 블랙 코미디의 제목이다. 물론 실화다. 확증 편향의 대가는 혹독하다. 날아오는 혜성을, 날아올지 모르는 핵을 못 본 척하면, 몰살당한다. 하지만 미리 좌절하지는 말자. 우리에게는 아직 선택의 기회가 남아 있다.

댓글 9개:

  1. 날아오는 혜성을 못 본 척하면 몰살당한다는 전제로부터, 날아올지 모르는 핵을 못 본 척하면 몰살당한다는 결론이 나올 수는 없는 거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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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글은 삼단논법에 의해 쓰여져 있지 않습니다. 삼단논법에 의해 쓰여있다고 생각한다면 먼저 본인이 그 분석을 제시해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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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날아오는'과 '날아올 지 모르는'은 의미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것을 지적하는 말인데, 뜬금없이 삼단논법이 왜 나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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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날아오는 혜성을 못 본 척하면 몰살당한다는 전제로부터, 날아올지 모르는 핵을 못 본 척하면 몰살당한다는 결론이 나올 수는 없는 거 같은데요?"

      A라는 전제에서 B라는 결론이 어떻게 나오는지 묻는 질문입니다. 삼단논법이 아니면 다른 식의 논리적 전개 방식을 전제하고 있어야 하는데, 질문하시는 투를 보니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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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님의 말씀대로, A라는 전제로부터 어떻게 B라는 결론이 나오는지가 제 질문인데요.. 그럼 타당한 논증으로 요약하여 대답을 하시면 되죠. 물론 님이 언급하신 삼단논법도 괜찮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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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한국말을 잘 못 하시는 분이군요. "A라는 전제에서 B라는 결론이 어떻게 나오는지 묻는 질문입니다"라는 말은, 댁이 어떤 논리적 구조를 따라 질문하고 있고, 그러니 그 논리적 구조도 스스로 밝혀야 한다는 뜻입니다.

      질문하는 사람 스스로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일단 틱틱거리고 시비나 걸고 있을 때, 그걸 내가 왜 힘들여서 '네 생각은 이런 거야, 맞지? 그러니까 이렇게저렇게 잘못됐어'라고 설명해줘야 할까요? 댁이 제게 수업료를 낸 학생도 아닌데. 학생이어도 혼쭐을 내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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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솔직히 님의 글을 제대로 읽진 않았지만. 마지막 단락에 핵심이 나와있잖아요?

      "날아오는 혜성을, 날아올지 모르는 핵을 못 본 척하면, 몰살당한다."

      즉.. 날아오는 혜성을 못 본 척하면 몰상당하는 것처럼, 날아올지 모르는 핵을 못 본 척하면 몰살당한다.

      제가 지적하는 것은.. 혜성은 날아오는 것이고, 핵은 날아오는 것이 아니라 날아올지 모르는(날아올 수 있는) 것으로..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날아오는 혜성을 못 본 척하면 몰살당한다.'가 참이라 하더라도, '날아올지 모르는 핵을 못 본 척하면 몰살당한다.'는 거짓일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타당하지 못하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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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솔직히 님의 글을 제대로 읽진 않았지만"

      대화 끝. 이 밑으로 주절거리면 지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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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블로그 관리자가 댓글을 삭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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