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6-30
블루
키리코 나나난의 만화는, '괜히 봤다'라는 말이 입에서 절로 나오게 할만큼 강한 정서적 호소력을 지닌다. 과다한 노출로 인해 번져버린 사진같은 필체는, 원래 예쁜 그림을 그려놓고는 그저 평범할 뿐이라고 우기는, 그래서 결국 위화감을 조성하는 여성만화의 관습적 문법을 거부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타다 유미의 작품들이 아무리 '쎄도',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패션 모델 말고는 그 어떤 직업에도 적합하지 않은 몸매를 지니고 있는 탓에 몰입을 해치는 것과 정 반대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호박과 마요네즈'와 '블루'를 보면, 이 작가의 세계에 특별하고 거대한 사건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평범한 이들이 연애하고 살아가는 이야기일 뿐인데, 다만 그 속에서 움직이는 감정의 묘사가, 마치 물 위에 여러 마리의 종이학을 띄워두고 서로 부딛치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위태롭고 안타까울 뿐. 정말 괜히 봤다. 원고 쓸 게 많은데.
2007-06-22
계통 없이
어딘가와의 최근 인터뷰에서 김훈은 자신이 다양한 책들을 '계통 없이' 읽고 있다며, 항해술과 선박에 관한 것들을 그 예로 들었다. 읽고 있노라면 선원들의 땀과 근육이 보이는 것 같고, 그래서 그 어떤 소설보다도 더 흥미진진하고 드라마틱하다는 식의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뜨끈하고 비릿한 것들에 탐닉하는 그의 취향을 나는 좋아하지 않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저기서 그가 사용한 '계통 없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한 마디 덧붙일 필요가 있다. 그 어구는 "그러한 나의 반역성을 조소하는 듯이 스무살도 넘을까말까한 노는 계집애와 머리가 고슴도치처럼 부수수하게 일어난 쓰메에리의 학생복을 입은 청년이 들어와서 커피니 오트밀이니 사과니 어수선하게 벌여놓고 계통없이 처먹고 있다"(시골 선물)는 김수영의 싯귀를 연상시킨다. 바로 저 느낌이다. 김훈을 진정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2007-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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