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리코 나나난의 만화는, '괜히 봤다'라는 말이 입에서 절로 나오게 할만큼 강한 정서적 호소력을 지닌다. 과다한 노출로 인해 번져버린 사진같은 필체는, 원래 예쁜 그림을 그려놓고는 그저 평범할 뿐이라고 우기는, 그래서 결국 위화감을 조성하는 여성만화의 관습적 문법을 거부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타다 유미의 작품들이 아무리 '쎄도',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패션 모델 말고는 그 어떤 직업에도 적합하지 않은 몸매를 지니고 있는 탓에 몰입을 해치는 것과 정 반대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호박과 마요네즈'와 '블루'를 보면, 이 작가의 세계에 특별하고 거대한 사건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평범한 이들이 연애하고 살아가는 이야기일 뿐인데, 다만 그 속에서 움직이는 감정의 묘사가, 마치 물 위에 여러 마리의 종이학을 띄워두고 서로 부딛치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위태롭고 안타까울 뿐. 정말 괜히 봤다. 원고 쓸 게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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