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04

[별별시선]‘서프러제트’와 ‘비밀은 없다’

2012년 연말로 돌아가보자. 벌써 4년 전이니,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영화 <레미제라블>은 그다지 훌륭한 작품이 아니었다. 소설이 가지고 있었던 모순과 복잡성은 평평해졌고, 뮤지컬이 가지고 있었던 본연의 에너지는 스크린을 찢고 튀어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관객들, 특히 정치적으로 ‘진보’라 분류되는 관객들은 열광했다. 작품 속에 묘사되는 실패한 혁명의 이야기를 보며 18대 대선 패배의 아픔을 달래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극장에서는 여성 참정권 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 <서프러제트>가 상영 중이다. 놀랍게도 이 작품은 서프러제트 운동을 다룬 최초의 장편 상업 영화인데, 그래서인지 해당 운동이 지니고 있었던 사회적 맥락을 최소화하고, 강경파와 온건파가 다양한 각도에서 대립하던 모습도 깊게 조명하지 않는다. 대신 감독은 그 작품을 철저한 ‘운동권 영화’로 만들어냈다.

주인공인 모드 와츠(캐리 멀리건 분)는 우연히 서프러제트의 시위 현장에서 그들의 존재를 알게 되고, 어쩌다가 운동권에 휘말려, 결국 투사로 거듭난다. 동료가 이탈하고, 배신의 유혹을 받고, 어떤 이는 목숨을 잃기까지 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캐리 멀리건의 선한 눈망울을 잊을 수가 없다. 그저 착하고 순수했던 그가 한 사람의 ‘운동권’으로 재탄생하는, 꽤나 고전적인 서사가 2016년 극장가에서 상영 중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레미제라블>을 보며 눈물을 흘리던 ‘왕년의 운동권’들은 왜 극장으로 몰려가지 않을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레미제라블>을 ‘운동권 영화’로 소비하는 데에는 일종의 비평적 곡예가 필요했다. 반면 <서프러제트>는 그럴 필요가 없다. 대놓고 ‘운동권 영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때 ‘짱돌’ 좀 던져봤다고 으스대다가 ‘문화운동’ 한다고 방향을 돌렸던 수많은 남성 비평가들은 <서프러제트>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매년 극장가에는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다룬 대체로 뻔한 영화들이 절찬 상영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내부자들>을 꼽아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경상도 방언을 쓰는 ‘꼴통 검사’가 전라도 방언을 쓰는 ‘착한 건달’과 손을 잡고, 한국 사회를 쥐락펴락하는 ‘내부자들’에게 한 방 먹인다는 줄거리이다.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고 ‘치부’를 보여준다는 그런 작품들은 한 해에도 몇 편씩 나온다. 대체로 여성들은 피해자의 위치에서 폭언을 듣고, 두들겨 맞고, 강간당하고, 시신으로 발견되기 일쑤다. 그러면 남자인 주인공이 절규하면서 정의 구현을 위해 힘쓴다. 그리고 관객들은 폭력의 무신경한 재현 앞에 ‘날것’이라며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그 맥락에서 이경미 감독의 신작 <비밀은 없다>를 생각해보자. 자신이 태어난 경북의 한 도시에서 처음 출마한 정치 신인이 해당 지역에서 잔뼈가 굵은 탈당파 현역 국회의원과 맞붙는데, 그의 아내가 호남 출신이라는 것이 ‘추문’으로 취급되며, 하나뿐인 딸은 실종됐다. 전라도 여자는 경상도 한복판에서 잃어버린 딸을 찾기 위해 광기 어린 추적을 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호남차별, 여성차별, 학교폭력, 동성애, 불륜 등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뜨거운 감자를 한꺼번에 씹어삼킨다.

그럼에도 <서프러제트>와 마찬가지로, <비밀은 없다>는 저평가 혹은 무(無)평가 당하고 있다. 나는 그 이유가 매우 명백하다고 생각한다. 여성이 단지 희생자에 머무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주인공들은 어떤 일을 겪고, 위협을 당하고, 폭력에 노출된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판단하고, 책임을 진다.

그러자 관객뿐 아니라 비평가들 역시 형식적인 코멘트만을 남겨놓고 침묵을 지키는 중이다. 그 침묵은 열렬한 예찬보다 우리 사회에 대해 더욱 많은 것을 말해준다. 한국 사회는 피해자가 아닌 주체로서의 여성을 순순히 용납하려 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여성의 주체-되기. 2016년 우리 사회에서 가장 뜨겁게 논의되어야 할 ‘정치적’ 주제다.


입력 : 2016.07.04 20:53:03 수정 : 2016.07.05 11:25:00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7042053035&code=990100&s_code=ao122#csidx8a9de7b24f74d368a77c68193f19f35

2016-06-23

[북리뷰] 엠마 보바리는 왜 죽어야 했는가

마담 보바리
귀스타브 플로베르, 민음사, 1만1천원.


보바리 부인은 자살한다. 요즘은 이런 고전의 결론을 말하는 것도 '스포일러'라고 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고 한다. 루오 영감의 딸 엠마는 많은 책을 읽고, 특히 낭만주의 문학에 푹 빠진 예쁘고 똑똑한 처녀다. 의사인 샤를르 보바리에게 시집을 가 보바리 부인이 되고, 애정 없는 결혼 생활에 염증을 느껴 불륜을 저지르다가, 사치와 방탕으로 인해 생긴 빚을 갚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소설 <마담 보바리>의 줄거리이다.

이 작품은 세상에 공개된 후 지금까지 '여성의 낭만적 환상, 현실에 대한 불만족, 사치, 방탕, 불륜' 등을 꼬집는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는 듯하다. 책의 말미에 붙은 번역자의 해제를 읽어도 그런 논조로 써 있다. 심지어 '보바리즘'이라는 신조어가 당대에 만들어졌고 지금까지도 더러 쓰인다고 한다. 그런 정보까지 알고 나면 독자들은 플로베르가 얼마나 섬세하게 '사실주의적'으로 등장인물들의 시선이 닿는 모든 것을 묘사해냈는지에 대해, 남들의 평가를 참고하여, 호들갑스러운 찬사를 내뱉고 책장을 덮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져보자. 엠마 보바리는 왜 죽어야 했을까? 단지 '보다 나은 삶', '여기에 없는 그 무언가'를 꿈꾸었다는 이유로? 애정 없는 결혼을 하고 불륜을 저질렀기 때문에? 자신의 삶의 초라함, 혹은 평범함을 참지 못해, 자신을 꾸미고 연인을 치장하기 위한 온갖 사치품을 구입하며 진 빚 때문에?

<마담 보바리>를 직접 읽기 전까지는 나도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2016년 오늘날에 와서야 이 책을 읽어보니 알겠다. 엠마 보바리는 달콤한 환상 때문이 아니라, 그 환상을 스스로 이루는 것을 꿈도 꿀 수 없었던 당시의 사회적 억압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여자는 끊임없이 금지와 마주친다. 무기력한 동시에 유순한 여자는 육체적으로 약하고 법률의 속박에 묶여 있다. 여자의 의지는 모자에 달린 베일 같아서 끈에 매여 있으면서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펄럭거린다. 여자는 언제나 어떤 욕망에 이끌리지만 어떤 체면에 발목이 잡혀 있다.(132쪽)

프루스트가 '사실주의적'으로 고스란히 반복하는 당대의 편견어린 서술을 젖혀두고 엠마 보바리와 그의 주변 인물들을 살펴보자. 엠마는 '여기가 아닌 그 어딘가'의 아름다운 삶을 꿈꾼다. 하지만 그것은 시골 마을 오종의 약제사 오메 역시 마찬가지이다. 엠마가 소설의 세계를 꿈꾼다면 오메는 신문 위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삶을 지향한다.

하지만 소설의 말미에 이르러 엠마는 파국에 이르는 반면, 오메는 그 모든 위기와 추문을 이겨내고 결국 자신의 목표를 이룬다. 한 여자가 파멸하는 이야기인데, 소설은 한 남자가 "이제 막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503쪽)는 장면에서 끝난다. 모든 환상, 헛된 욕망, 탐욕과 거짓말과 교활함이 아닌, 오직 엠마의 그것들만이 단죄당한 것이다.

"엠마는 여러 가지 책들에서 볼 때는 그렇게도 아름다워 보였던 희열이니 정열이니 도취니 하는 말들이 실제로 인생에서는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었다."(55쪽) 그렇다. 엠마는 알고 싶었다. 엠마는 경험하고 싶었고, 자신의 살고 있는 인생이 자신이 알고 있는 멋진 삶의 모습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혹은 부합할 수 있는지 시험하고 싶었다. 다만 그에게 주어진 기회와 가능성이 너무도 제한되어 있었기에, 마치 발사에 실패한 로켓처럼 허공에서 폭발해버렸을 따름이다.

남자가 이런 생각을 품으면 세상은 그것을 야망이라고 부른다. 여자가 이런 생각을 품으면 세상은 그것을 '보바리즘'이라고 부른다. '세상'과 '여자'에 대한 이야기로서 <마담 보바리>는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 있다.


2016.07.05ㅣ주간경향 1183호에 수록된 서평 원고. 교열 전 원고로 링크된 것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2016-06-09

[북리뷰] 페미니즘, 남자의 역할을 묻는다

여성주의, 남자를 살리다
권혁범, 또 하나의 문화, 9000원


추모의 포스트잇이 강남역 10번 출구를 뒤덮고, 공포와 분노를 거침없이 표현하는 여성들이 거리를 점령했다. 그러자 불과 1, 2년 전까지만 해도 페미니즘을 외치는 새로운 목소리에 시큰둥하던 이들의 태도가 변하고 있다. 특히 남자 지식인들의 입장 변화가 눈에 띈다. 성정치의 이론적 복잡성에 기대어, 혹은 '보다 큰 대의'를 위하여, 여성주의에 대한 전폭적 지지를 한없이 보류하던 이들이 한 마디씩 말을 보태고 있다. 바람직한 일이다.

돌이켜보면 2000년대 한국의 지성계는 페미니즘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혹은, '그 페미니즘'과 '착한 페미니즘'을 가르고 손가락질하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여겨졌다. 90년대 대학가를 중심으로 페미니즘은 그저 약간 움텄을 뿐인데, 남자들은 호들갑을 떨며 '부잣집 딸내미들을 위한 운동을 할 수는 없다'는 식으로 손사레를 치고 마녀사냥에 동참했다.

그러나 그 시절에도 '남자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공론장을 과점하는 남자 지식인들과는 기꺼이 다른 입장을 택했던 사람이 있다. 권혁범의 <여성주의, 남자를 살리다>가 바로 그런 책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글들은 여성주의자에게는 너무도 단순하고 당연한 글"이라고 겸양의 태도를 취한다. 하지만 2007년에 나온 이 책은 당시 진보진영이 가지고 있던 남성주의적 합의에 대해, 그들 중 일부인 한 남자가 반기를 들었던 기록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도 왜 한국의 남성-진보들은 틈만 나면 '부르주아'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인권 침해를 선동하고 있을까? 혹 그들은 '부르주아'가 싫어서가 아니라 가부장적 질서를 마음껏 위반하고 유린하는 똑똑하고 '잘난' 여성 지식인을 싫어하는 게 아닐까? 그걸 정당화하기 위해 괜히 양념으로 '가부장 좌파'에 대한 비판을 끼워넣은 게 아닐까? 그들의 페미니즘 비판에는 똑똑한 여성에 대한 근본적 혐오감이 깊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178쪽)

여성이 '잘난' 모습을 보이면, 피해자가 되어 엉엉 울지 않으면, 상당수의 남성 지식인들은 지지하지도 연대하지도 않는다. 권혁범의 시각은 다르다. 그는 '똑똑하고' '잘난' 여성들을 타자화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부당하게 묘사되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여성주의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2001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아줌마'에 대한 그의 단상을 살펴보자. 장진구와 이혼을 택한 주인공에 대해 박수를 보내면서도, 그는 "여전히 거슬리는 부분이 많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심혜진 씨가 분한 역이 "여전히 한국 사회에 유포되어 있는 여성 지식인에 대한 전형적 편견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똑똑한 고학력 여성은 예민하고 잘난 체하고 히스테릭하고 이기적이며 철모르고 자라난 부잣집 외동딸이라는 통념 말이다."(59쪽)

이 책이 중요한 것은 여성혐오의 심리를 한 남자가 거침없이 폭로한다는 데 있다. "그러한 편견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이유는 대부분의 남성들에게 지적인 수준이 높은 여성은 부담스럽고 또한 쉽게 지배하기 어려운 존재이기 때문이다."(60쪽) 그렇다. 여성혐오는 여성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한, 혹은 자신이 차별의 수혜자라는 사실을 견딜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일종의 당의(糖衣)라고 할 수 있다.

여성주의에 대해 남자는, 특히 지식인은, 무슨 말을 해야 하는가? 지금이라도 빨리 여성주의를 '공부'해서 다른 남자들을 가르쳐야 하나? 그도 그렇지만,  '그 페미니즘'과 '저 페미니즘'을 구분하고 손가락질해왔던 과오를 반성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여성주의, 남자를 살리다>는 그런 면에서 좋은 귀감이 되는 책이다.


2016.06.21ㅣ주간경향 1181호에 수록된 서평 원고. 교열 전 원고로 링크된 것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2016-06-05

[별별시선]‘서프라제트’에서 배운다

20세기 초 영국. 그나마 개혁적이고 온건하며 사회변화를 추구한다는 자유당이 여당이었고, 자유당의 가장 큰 맞상대는 보수당이었다. 노동당과 아일랜드 자치파 등은 그 틈바구니 속에서 자신들의 지분을 최대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그와 비슷한 사회적 신분 및 교양 수준을 가진 이들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자유당을 지지했다. 수많은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처럼 말이다.

자유당은 그러한 기대를 저버리고 여성들의 권리를 한없이 유보시켰다. 그럼에도 자유당은 자신들이 ‘차악’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에멀린 팽크허스트의 자서전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를 인용해보자. “자유당은 여성이 투표권을 혹시 얻게 된다 해도 자유당을 통해야만 하는데, 자유당을 공공연히 적으로 돌리는 여성들에게 투표권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냐며 비난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른바 ‘잠재적 아군’들의 논리다. 너희들이 지금 뭘 요구하는지 모르지 않지만, 당장 그것보다 시급한 일이 산적해 있다. 그러니 일단 너희들의 요구사항을 접어두고 ‘대의’에 복무하라. 우리 ‘잠재적 아군’들을 적으로 돌리지 말고 ‘조곤조곤’, ‘사근사근’하게 설득하는 태도를 보여라.

이런 주장에 혹하는 사람들 역시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여성 자유당원이나 합법적 참정권론자들 역시 이런 현명한 체하는 논의를 펼쳤다. 그들은 정당을 위해 일하는 것만이 제대로 된 방식이라고 충고했다.” 서프라제트(선거권을 쟁취하려는 여성들)는 콧방귀를 뀌며 자유당을 상대로 한 낙선 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를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이렇게 회고한다. “우리가 진지하게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자유당 후보를 낙선시키는 데 처음으로 성공한 후라고 생각된다.”

여기서 잠시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보자. 한반도 역사상 단 한 번도 여성들은 인간으로서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사회적 차별은 말할 것도 없다. 인터넷이 전국 방방곡곡에 깔리면서 상스러운 여성혐오적 표현이 전국을 누볐다.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의 뒷모습, 약물에 정신을 잃고 나체가 된 사진, 원치 않게 촬영된 성관계 장면 등을 남자들은 돌려보고 시시덕거리며 자기들끼리 품평회를 즐겨왔다.

이 도저한 차별과 폭력과 혐오와 멸시의 역사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몇몇 용감한 여성들이 바로 그 공격적인 언어를 되돌려주는, 이른바 ‘미러링’을 시작하면서부터다. ‘김치녀’라고 10년 넘게 멸시당해오던 여성들은 이제 더 이상 ‘하지 마세요’라고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남자들을 향해 ‘김치남’이라고 맞받아친다. 놀랍게도, 그러자 비로소 남자들이 ‘온라인 언어폭력’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자기들도 맞아보고 이제서야 아프다는 걸 깨닫는 중이다.

“나는 이 시위를 지휘할 것이고, 돌멩이야말로 내가 사용하려는 논쟁 방식입니다. 돌멩이야말로 가장 쉽고 직접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서프라제트는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고, 우체통에 불을 지르면서 여성 투표권을 외쳤다. 우리가 오늘날 당연하게 여기는 여성의 투표권은 바로 그렇게 쟁취된 것이다.

‘미러링’이 불편한가? ‘증오의 총량’이 늘어날까 우려되는가? 20세기 초의 서프라제트와 달리, 21세기 초 대한민국에서 여성혐오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유리창 하나도 깬 적 없다. 한없이 온건하게 포스트잇을 붙이고, 슬픔을 나누고, 지금까지 너무도 속 편하게 기득권으로 살아온 ‘한국 남자’들의 행태를 거울에 비춘 듯 되돌려 보여줬을 뿐이다. 혹자는 여성혐오를 둘러싼 현재의 논란이 ‘남녀 대결 구도’로 향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아니다. ‘남녀 대결 구도’가 맞다. 그리고 여자들이 이겨야 옳다. 여성혐오와 맞서는 여성들을 한 사람의 남성으로서 전적으로 지지한다.


입력 : 2016.06.05 20:35:01 수정 : 2016.06.05 20:38:25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6052035015&code=990100&s_code=ao122#csidx61e949ec133181684245e6a55eeafc2

2016-05-26

[북리뷰] 생의 말년에 돌아보는 근현대사

손정목이 쓴 한국 근대화 100년
손정목, 한울, 2만3천원


지난 5월 9일, 이 책의 저자인 손정목 명예교수가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1928년생, 만 88년의 세월을 거치며 살아왔던 그는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이승만 정권과 4.19 혁명, 군사독재와 민주화를 모두 겪었다. 저자 스스로가 이렇게 말한다. "나는 1928년생이다. 일제 강점기를 살았고 미군정기를 관통한 삶이었다."(5쪽) 이 책은 그 역사의 증인이 생의 말년에서 한국 근대사의 다양한 국면과 자신의 삶을 반추한 것이다.

손정목의 인생은 한국의 근현대사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1928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영남대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법학과에 편입하였는데, 직후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피난했다. 전란이 끝난 후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하여 공직 생활을 시작하고 군수가 되기도 하였으나 그것이 독이 되고 말았다. 자유당 정권의 3.15 부정선거에 협력하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한 3년간의 휴직을 겪은 후 행정서기관으로 복직하고, 1970년부터는 서울특별시의 기획관리관, 도시계획국장, 내무국장 등을 역임했다. 그 후 1977년부터 1994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서울시립대에 교수로서 몸을 담았다. 일제강점기와 미군정기를 지나 대한민국의 정치적 격동을 모두 겪어내면서, 동시에 정치, 행정, 도시계획 및 개발, 학문적 연구라는 다양한 분야를 두루 경유해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이 책을 쓴 이유는 나의 집사람 때문이다. 54년간 삶을 같이해온 사람과 사별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내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주는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5쪽) 부인과 사별한 후 그는 서울시립대에서 도서관 한켠에 마련해준 전용 연구실에 매일 출근하며 자기 자신을 추스르기 위한 원고를 써내려갔다. 그렇게 나온 첫 번째 원고가 정비석의 <자유부인>에 대한 당시 사회의 반응을 다룬 "불륜 앞에 자유로운 자, 돌을 던져라"이고, 두 번째 원고가 "나는 어떻게 부정선거를 치렀나: 3·15 부정선거 이야기"라고 한다. 선거 직후부터 쓰고 싶었던 부정선거 체험기를,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써냈다.

어떤 경우라도 그날의 부정선거를 정당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단 한 번도 그때 자신이 한 일을 정당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다만, 이 점을 밝혀두고 싶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선거는 제1대 국회의원 선거인 1948년 5·10 선거부터 이미 부정선거였다. 정말 슬픈 유산을 물려받았고 나 역시 그 유산을 이어 원흉의 자리에 있어야만 했다. 위에서 내려진 명령에 충실했다고 말하기에는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다.(178쪽)

저자는 그 부끄러운 역사를, 철저한 자료 조사와 비상한 기억력을 통해 복원해냈다. 본인이 직접 개입한 바 있는 3.15 부정선거 뿐만이 아니다. 미군정시대에 대해 이전에 썼던 글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핵심 인물 이묘묵의 존재를 알아내고 그를 중심으로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3년간의 역사를 그려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담배를 피웠던 자신의 경험과 일제강점기 막바지의 사회적 분위기의 접점을 찾아내기도 한다.

"1944년 당시 나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나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같은 반 학생 거의 모두가 담배를 피웠다. 왜 그랬을까? 이는 일본의 징병제 실시에 대한 항거이고 거부였다."(28쪽) 이 책은 개인적 회고이면서 동시에 역사적 고찰이지만 둘 중 어느 영역에도 완전히 포섭되지 않는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표현을 빌자면 '말년의 양식'이 책 전체를 감싼다.

그가 남긴 저서들의 목록을 훑어보며,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덕분에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지금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된 것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2016.06.07ㅣ주간경향 1179호에 수록된 서평 원고. 교열 전 원고로 링크된 것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