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4

송영길 대표님, 내 표가 무시당한 순간 쿠데타 일어납니다


송영길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의 후폭풍 속에서 매일 정신없고 힘드실 테지만, 잠시 시간을 내어 제가 드리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요즘 너무 많이 하는 이야기지만, 혹시 '오징어 게임' 보셨습니까? 안 보셨더라도 어떤 내용인지는 잘 아시겠죠. 빚에 쫓기며 사는 한 남자가 어떤 '게임'에 참여합니다. 무인도에서 치러지는 그 '게임'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뽑기(달고나), 줄다리기 같은 어린 시절 하던 놀이를 다 큰 어른들에게 시키는 것입니다. 단, 몇 번이건 실패해도 괜찮았던 어린 시절과 달리 이번에는 한 번 탈락하면 두 번의 기회가 용납되지 않습니다. 주최 측이 총으로 쏴서 죽여버리니까요.

이런 잔혹 동화 내지 동심파괴 스토리가 전 세계적인 호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니 참 신비롭고 놀랍습니다. 그 이유를 분석하는 건 문화평론가들의 몫이니 전 좀 다른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본론으로 들어가 보죠. 우리는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게임'을 보며 불합리하고 부조리하다고 느낍니다. 왜일까요? 돈이 많이 걸려서? 아닙니다. 탈락하는 사람을 죽여버리는 그 자체가 문제적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두 번째 시도를 할 수 없습니다. 자기 생각을 바꿀 수도 없고, 나와 생각이 100%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함께할 수 있는 다른 누군가와 평화롭게 공존해나갈 수도 없습니다. 탈락은 죽음이다, 이런 게임은 정상적인 문명사회에서는 어떤 식으로건 용납될 수 없습니다.

제가 왜 '오징어 게임' 이야기를 꺼내는지 짐작이 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사퇴 후보에 대한 투표의 무효 처리 여부 때문입니다. 민주당 선관위가 만들고 송영길 대표님이 추인하신 현재의 해석은 제가 보기 옳지 않습니다. 마치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게임이 그렇듯이 말이죠.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캠프 홍영표 공동선대위원장 등 소속 의원들이 11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 선거관리위원회와 지도부의 경선 결과 발표는 명백히 당헌당규에 위배된다”며 “지도부는 즉시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해 당헌당규 위반을 바로잡는 절차를 하루빨리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캠프 홍영표 공동선대위원장 등 소속 의원들이 11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 선거관리위원회와 지도부의 경선 결과 발표는 명백히 당헌당규에 위배된다”며 “지도부는 즉시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해 당헌당규 위반을 바로잡는 절차를 하루빨리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뉴스1

당규를 상식적으로 해석하면 

문제의 특별당규, 그러니까 '제20대 대통령선거후보선출규정'에서 현재 쟁점이 되는 제59조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논란을 보도하는 언론은 많지만 전문을 그대로 인용하는 곳은 찾기 어렵더군요. 해당 특별당규 PDF 파일 속 내용은 이렇습니다.

제59조(후보자의 사퇴)  ①경선 과정에서 후보자가 사퇴하는 때에는 해당 후보자에 대한 투표는 무효로 처리한다.

②후보자가 투표 시작 전에 사퇴하는 때에는 투표시스템에서 투표가 불가능하도록 조치하되, 시간적‧기술적 문제 등으로 사퇴한 후보자를 제외하는 것이 불가능한 때에는 선거관리위원회가 조치 방법을 정한다.
민주당 선관위는 제59조 1항을 이런 뜻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사퇴한 후보자에 대한 투표는 소급하여 무효가 된다.' 하지만 이 조항은 그런 식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후보자가 경선 도중 사퇴했다면, 그 후 그 후보자를 찍은 표는 무효'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마땅합니다.

민주당 선관위의 해석론을 '소급무효론', 저를 비롯해 통상적으로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입장을 '추후무효론'으로 이름을 붙이고 논의를 계속해 나가봅시다. 소급무효론의 가장 큰 문제는 결선투표제의 도입 취지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데 있습니다.
결선투표란 무엇입니까? 유력 후보가 아닌 군소 후보 지지자의 표심도 온전히 반영하는 것이 결선투표제입니다. 결선투표 이전까지의 과정을 모두 이겨낸 후보뿐 아니라, 여력이 부족해 중간에 사퇴한 후보자를 지지한 표심 또한, 존중받아 마땅한 표심입니다. 그걸 하루아침에 무효표로 처리해버리는 건 투표라는 제도를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마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움직이는 모습이 술래에게 걸렸다고 해서, 술래에게 총 맞아 죽는 것과 같은 부조리극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제59조 2항과 함께 놓고 보면 1항의 취지는 더욱 분명해집니다. 2항은 투표의 무효 처리 방법을 정하고 있습니다. 사퇴한 후보자에 대한 투표를 막아 무효표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기술적으로 투표를 불가능하게 처리하고, 그게 안 된다면 선관위가 책임지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미 찍은 표를 무효로 만들라는 뜻이 아니죠.

무효표 소급 불가 명확한데 

특별당규 제60조를 보면, 제59조에서 말하는 '무효'가 소급될 수 없다는 것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제60조(당선인의 결정)  ①선거관리위원회는 경선 투표에서 공표된 개표결과를 단순합산하여 유효투표수의 과반수를 득표한 후보자를 당선인으로 결정한다.

②제1항의 과반수 득표자가 없을 경우 결선투표를 실시한다.
제60조 1항의 의미를 곱씹어봅시다. 어떤 투표가 유효투표인지 아닌지는 투표가 치러진 후, 개표하여, 그 결과를 공표할 때 정해진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정세균 후보와 김두관 후보가 사퇴 전 득표했고, 개표하여, 공표된 2만3731표와 4411표는 유효합니다. 단 사퇴 후에 어떤 식으로건 그들에게 투표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건 무효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선투표제 도입의 취지에 따라 상식적으로 바라보면, 정답은 정해져 있지 않을까요.
저는 평소 더불어민주당에 비판적인 입장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영길 대표님께 이런 고언을 드리는 이유는 민주당뿐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해서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이건 국민의힘이건 정의당이건 이 나라 정당들 모두 우리 민주주의의 버팀목이기 때문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집권 여당입니다. 개헌선에 육박하는 의석을 단독으로 지니고 있는, 제6공화국 출범 이후 가장 힘이 센 슈퍼 여당입니다. 이런 거대한 정치적 결사체에서 지지하는 후보자가 사퇴했다는 이유로 내 표가 탈락하는 경험을 국민에게 안겨줘서는 안 됩니다. 경선 규칙이 다소 애매하게 만들어져 있었다면 그 과오를 인정하고 더 많은 의견이 공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룰을 해석해야 마땅합니다. 그것이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민주'의 모습, 아닐까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경선후보 선거캠프의 조정식 우원식 안민석 변재일 의원 등이 12일 캠프 해단식 기자회견을 위해 국회 소통관에 들어오고 있다. 2021.10.12 임현동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경선후보 선거캠프의 조정식 우원식 안민석 변재일 의원 등이 12일 캠프 해단식 기자회견을 위해 국회 소통관에 들어오고 있다. 2021.10.12 임현동 기자

불행히도 이 글이 세상에 나오기 직전, 더불어민주당 당무위원회는 이재명 지사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민주적 원칙이나 다양한 의견의 조화로운 공존을 택하지 않았죠. 대신 '민주주의란 더 많은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라는 잘못된 개념의 편에 섰습니다. 이건 정말이지 옳지 않은 일입니다.

민주주의는 오징어 게임 아니다

민주주의는, 투표는, '오징어 게임'처럼 목숨을 걸어야 하는 서바이벌 게임이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바라보는 순간 선거는 전쟁이 되고 맙니다. 내 표가 무시당했다는 좌절과 모멸감, 내 투표는 의미가 없다는 박탈감을 느끼는 국민이 많으면 많을수록 송영길 대표님이 이야기하신 "군사 쿠데타" 가능성은 오히려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징어게임. 넷플릭스 유튜브 캡쳐

오징어게임. 넷플릭스 유튜브 캡쳐

예를 들어볼까요? 1956년 5월 5일, 제3대 대선 직전 야당 후보였던 독립운동가 신익희 선생은 기차를 타고 가던 중 뇌일혈(혹은 심장마비)로 급사했습니다. 너무도 황망한 죽음이었기에 많은 이들은 그가 병사한 것이 아니라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암살당했을 거라는 의혹을 제기할 정도였습니다. 그런 국민은 이미 죽은 신익희에게 기꺼이 표를 던졌습니다. 무려 185만 표가 나왔죠.

신익희가 얻은 185만 표. 그것은 무효표였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민심은 무효가 아니었죠. 이승만 정권의 지속을 더는 원치 않는다는 대중적 열망이 한껏 끓어오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이를 무시했고, 4·19 혁명으로 축출되었습니다. 그 후 박정희 소장이 이끄는 군부가 권력을 잡습니다.

무효표 무시하지 마십시오. 내 표를 무효로 만들지 말라는 유권자의 함성을 함부로 짓밟지도 마십시오. 정치권에서 그런 오만한 태도를 보일 때 국민 마음은 차갑게 식어갑니다. 결국 군사 쿠데타, 아니 그보다 더 심한 일이 벌어지는 토양이 됩니다. 더불어민주당이 국민과 더불어 우리의 민주주의를 더욱 아름답게 가꿔나가는 정당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고언을 드립니다.

2021-10-08

내부고발로 얻은 의원 뱃지...이탄희는 이미 죽었다

재판 거래 의혹을 폭로했던 이탄희 전 판사는 이후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됐다.

재판 거래 의혹을 폭로했던 이탄희 전 판사는 이후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됐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내부고발자다. 천관율 전 '시사IN' 기자의 표현에 따르면 "아마도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가장 성공한 내부고발자"다. 얼핏 보면 틀린 말 같지 않다. 판사 이탄희는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 농단'을 고발한 후 변호사로 아주 잠시 일하다가 민주당 공천을 받아 국회에 입성했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이재명 캠프가 출범한 미래정치기획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하다. 대선 결과에 따라 그의 관운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평가에 동의하기 어렵다. 이탄희의 성공 자체를 부정하려는 게 아니다. 그는 현재 정치권에 입성한 법조인 출신 젊은 의원 중, 역시 이재명계로 분류되는 박주민 의원과 더불어 가장 전도유망한 길을 걷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탄희의 성공은 어디까지나 그 자신의 개인적 영달에 그친다.

내부고발로 얻은 국회의원 뱃지

조국 법무부 장관(오른쪽) 시절 이탄희를 제2기 법무·검찰 개혁위위원회 위원으로 위촉했다. [중앙포토]

조국 법무부 장관(오른쪽) 시절 이탄희를 제2기 법무·검찰 개혁위위원회 위원으로 위촉했다. [중앙포토]

내부고발자는 자신이 몸담아온 조직에서 순식간에 인사이더가 아닌 아웃사이더로 전락한다. 우리 편에서 배신자로 굴러떨어지고 만다. 이걸 알면서도 기꺼이 내부고발자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 웹툰 '송곳'의 명대사마냥 가만히 있어도 되는데 굳이 아닌 건 아니라고 한마디 하고야 마는, 주머니에서 삐져나오는 송곳 같은 사람들이 있다. 대체 왜일까.
내부고발은 조직에 속한 이가 감행하는 실존적 결단이다. 조직의 논리보다 사회적 상식을, 윗사람의 심기보다 나 자신의 양심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부고발의 성공과 실패는 내부고발자가 이후 출세를 했냐 못 했냐 같은 기준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 내부고발자라는 험한 길을 택하면서 스스로 제시했던 기준과 가치에 부합하는 삶을 살고 있을 때, 그 누가 보더라도 떳떳한 양심적 주체가 될 때 비로소 내부고발자의 인생은 성공으로 기록될 수 있다.

 이탄희는 박근혜 정부의 사법거래를 내부고발하고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받았다. 사법농단을 고발하겠다며 뉴스에 출연한 당시 이탄희 판사. [방송 캡처]

이탄희는 박근혜 정부의 사법거래를 내부고발하고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받았다. 사법농단을 고발하겠다며 뉴스에 출연한 당시 이탄희 판사. [방송 캡처]

이런 관점에서 다시 이탄희를 보자. 그는 이른바 '사법 농단'의 내부고발자였다. 2017년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그러니까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문재인 정부가 막 들어설 무렵 판사 이탄희는 과거 청와대에서 내려오는 지시에 따라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가 재판 결과에 영향을 주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사표를 냈다. 첫 번째 사표는 반려되었지만 이미 그는 법원 가족의 일원으로 남아 있기 어려운 처지가 되었다. 두 번째 사표는 받아들여졌는데, 그때는 새로 임명된 김명수 대법원장이 요청한 검찰 수사가 한창이었다. 판사를 검사가 수사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전개되었다.
이때 밝혀진 사실을 간략하게 정리해보자. 양승태 대법원장은 박근혜 대통령 재임 중 상고법원 설치를 얻어내기 위해 청와대를 상대로 치열하게 로비를 했다. 법원행정처 내부 문건에는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사건 판결, 통상임금 판결, KTX 여승무원 판결, 전교조 시국선언 사건 등을 언급하고 있다. 대법원이 이런 사례를 들어 청와대와 코드가 맞다고 강조한 후 청와대의 마음을 얻어 상고법원 설치를 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게 알려진 재판거래의 전부다.

사법농단 실체는 무엇인가
그런데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다. 양승태 대법원이 정말 법원행정처의 힘을 이용해 판사들을 회유·협박하여 개별적 재판 결과를 만들어낸 것일까? 혹시 정치적 의도는 없었지만, 상고법원 설치 로비를 위해 대법원이 마치 청와대를 위해 그런 판결을 일부러 내린 양 부풀린 건 아일까?
전자라면 삼권분립을 위협하는 심각한 헌정 질서 파괴다. 하지만 후자라면 재판거래는 법으로 처벌할 수 없는, 대법원과 법원행정처의 '오버 액션'일 뿐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기소하기 전까지만 해도 문재인 정권의 믿음직한 칼이었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되어 처리한 첫 사건이 바로 이 재판거래 사건이었다. 그런 윤석열이 총괄한 수사였지만 대법원이 재판 결과를 조작했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 대법원은 청와대와의 협상 카드를 위해 일찍부터 박근혜 정부와 코드가 맞는 판결을 내렸던 걸까. 검찰 수사라는 극약처방에도 그런 사실을 밝혀내지는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내부고발자로서 목청을 높이던 이탄희의 어조는 2020년 국회의원이 된 후 크게 달라졌다. 자신이 고발한 것은 '범죄'가 아니라 '직업윤리'의 문제였다고 말이다.
지금 대장동 게이트로 온 나라가 들썩거린다. 워낙 큰 사건이고 다양한 논점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나는 문득 이탄희를 떠올렸다. 권순일 전 대법관이 대장동 게이트 중심에 있는 화천대유에 취직해 월급을 받았다는 사실이 보도되었던 그 시점이었다. 정치권에 떠도는 이른바 '50억 리스트'에 권순일의 이름이 또 등장한다는 뉴스를 접하고는 내부고발자 이탄희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벼랑 끝에 몰려 있던 이재명 경기지사의 정치적 생명을 건져낸 장본인이 권순일 아닌가.

권순일 전 대법관은 무리하게 이재명 경기지사의 정치생명을 살리는 판결을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중앙선거관리위원장으로 재직하며 여당 편향의 여러 잡음을 일으켰다. 뉴스1

권순일 전 대법관은 무리하게 이재명 경기지사의 정치생명을 살리는 판결을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중앙선거관리위원장으로 재직하며 여당 편향의 여러 잡음을 일으켰다. 뉴스1

이 사안에 '이재명-권순일 재판거래', 아니 논의의 편의상 '이권 거래'라고 이름 붙여보자. 권순일은 캐스팅보트를 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허위사실을 알리려는 의도에서 적극 표명한 것이란 사정이 없는 한 후보자 (거짓) 토론회 발언을 처벌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며, 그 시점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법리를 새로 만들어서 이재명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무죄로 판결했다.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발 벗고 나서 이재명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린 후, 이재명이 설계한 대장동 개발 사업에서 금전적 이득을 얻었다. 이런 명백한 이권 거래를 보며 이탄희가 말한 재판거래를 떠올리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

이재명-권순일의 수상한 행보

하지만 이번 이권 거래는 이탄희가 내부고발했던 양승태 대법원의 박근혜 재판거래처럼, 실제로 그런 사실이 있었는지 입증하기가 매우 어렵다. 권순일은 우연히 이재명의 정치적 생명을 구해내는 판결을 했을 뿐이고, 퇴임 후 변호사 등록도 안 한 채 화천대유에 취직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시간차 뇌물 수수라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거래를 계약서 써가며 하지는 않을 테니 범죄 사실을 포착해 유죄 판결을 받아내는 건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권순일 전 대법관(오른쪽)에게 청조근정훈장을 수여한 후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권순일 전 대법관(오른쪽)에게 청조근정훈장을 수여한 후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이재명-권순일의 이권 거래가 실제 존재했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설령 그런 거래가 있었다 한들 사실을 밝혀내고 법으로 처벌하는 건 매우 어렵다는 말을 하고 있을 뿐이다. 2017년 윤석열 중앙지검장이 칼을 빼 들었지만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그렇다고 이탄희가 대법원과 법원행정처 문제를 내부고발한 게 전적으로 무의미한 일은 아니다.
이권 거래도 같은 방향에서 바라봐야 한다. 사실 여부나 법적 처벌 가능성 유무와 무관하게 이 사안은 이미 드러난 것만으로도 우리 국민의 법에 대한 존경심을 짓밟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에 분노한 사람이라면 권순일 대법관의 이권거래 의혹에 대해서도 당연히 같은 잣대를 들이대고 분노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지금 법원의 내부고발자 이탄희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의혹의 당사자인 이재명 캠프에서 미래정책기획위원장으로 젊은 지지자와 전문가를 규합하는 중책을 맡고 있다. 지난 정권의 재판거래를 고발하며 정치에 입문한 사람이 현 정권 들어 가장 심각한 재판거래 의혹이 있는 누군가의 밑에서, 재판거래의 수혜자일 수도 있는 누군가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헌법 제103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그 한 문장을 지키기 위해 공황장애에 시달리며 판사로서의 경력을 내던졌던 내부고발자는 이미 이 세상에 없다. 대신 같은 육체를 지닌, 유력 정치인에 줄 대는 어떤 흔해빠진 정치 초년생이 있을 뿐이다. 굳이 '나는 저격한다'에서 저격할만한 인물조차 못 된다. 다만 법관의 직업윤리가 정치 논리와 개인적 출세욕 등으로 얼룩지는 것을 참지 못했던 한 젊은 법조인이 출세욕을 좇아 사라졌다는 점은 애석하게 여긴다. 나는 정치인 이탄희를 저격하지 않는다. 다만 이미 죽어버린 내부고발자 이탄희를 애도한다.

2021-10-03

'오징어 게임'보다 잔인한 이재명 '두꺼비 게임'

[노정태의 뷰파인더-53] 공영개발 탈 쓴 민영개발의 민낯

● 공영개발, 과도하고 부당한 협상력
● 리스크 낮고 낮은 비용 개발 가능
● 자본주의 윤리 따르는 민영개발
● 갈등에 따른 리스크 감수해야
● 알쏭달쏭 이재명式 ‘환수’의 의미
● 강제수용 ‘치트키’ 쓴 기괴한 民개발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한국 정치가 '화천대유 사건', 혹은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으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매일 새로운 의혹과 해명이 나온다. 지금 쓴 글이 내일, 아니 반나절 뒤에도 유효할지 장담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러므로 사안의 본질에 집중해 보도록 하자. 아무리 새로운 사실관계가 불거져 나온다 해도 움직일 수 없는 요소가 있다. 어떤 정당의 정치인이 연루됐건, 어떤 대선후보에게 이익이 되거나 손해가 되건, 바뀔 수 없는 사실이 존재한다.

만약 이 사안을 사전 지식이 많지 않은 누군가에게 설명한다고 해보자. 어떻게 해야 할까? 마치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처럼, 독자 여러분이 모두 알만한 그 노래,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화천대유자산관리 등을 둘러싸고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는 가운데, 9월 23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개발사업 현장에서 건설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가운데 터널을 중심으로 왼편이 A1, A2, A6 구역, 오른편이 A10 구역이다. 위로는 빌딩이 밀집한 판교 테크노밸리가 위치해 있다. [박영대 동아일보 기자]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모래로 두꺼비집을 만들며 놀 때, 늘 의아했다. 남들도 다 부르는 노래여서 나도 따라 불렀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늘 찝찝한 기분이 남아 있었다. 대체 두꺼비가 뭘 잘못했다고 나는 두꺼비에게 헌 집을 내어주고 두꺼비는 내게 새 집을 줘야 한단 말인가? '한국세시풍속사전'에 따르면 '헌 집'은 알을 몸속에 품다가 낳고 죽는 옴두꺼비 어미를 뜻하고 '새 집'은 그렇게 태어난 자식을 뜻한다는데, 선뜻 납득하기는 어려운 설명 같다.

아무튼 룰(rule)은 분명하다. 내가 헌 집을 주면 두꺼비는 새 집을 준다. 두꺼비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한 일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두꺼비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한다. 어린 시절의 우리는 그런 믿음을 품고 놀이터의 모래밭에서 한쪽 손을 파묻고 다른 손으로 모래를 쌓아 토닥거리며 노래를 불렀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대한민국 공영개발이 원론적으로 표방하는 바가 바로 저 '두꺼비 놀이'와 같다. 공공개발은 원칙적으로 국가나 지자체가 나서서 두꺼비처럼 헌 집을 받아 새 집으로 돌려주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원론적'이라는 단어에 방점을 찍을 필요가 있다. 예상 가능하다시피 현실은 그렇게 이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 그 어그러진 현실의 구조를 이해해야, 이재명 경기지사가 성남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의 핵심을 놓치지 않는다.

두꺼비는 왜 헌 집을 받고 새 집을 돌려줄까. 이유는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첫째, 두꺼비가 이타적이다. 내가 헌 집에 사는 걸 원치 않고, 대신 새 집을 주고 싶어 헌 집을 가져간다. 이런 경우 두꺼비는 내게 집을 공짜로 주거나, 저렴하게 팔거나, 낮은 가격으로 빌려줄 것이다. 내가 새 집에 살게 하는 것이 헌 집을 가져가는 두꺼비의 목적인 게 분명하다면 말이다.

두 번째 가능성도 있다. 두꺼비가 이기적인 경우. '이기적'이라는 말을 나쁘게만 생각하지 말고 경우의 수를 따져보자. 두꺼비는 나의 헌 집을 사서 새 집을 지은 다음 나 혹은 다른 사람에게 팔아 이익을 보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두꺼비에게 헌 집을 순순히 내놓지 않을 것이다. 두꺼비가 새 집을 지어서 얼마나 이익을 볼지 따져본 후, 두꺼비가 제대로 된 값을 쳐주지 않는다면 나의 헌 집을 팔지 않고 버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이타적 두꺼비와 이기적 두꺼비

경기 성남시 서판교에 있는 화천대유 사무실. [장승윤 동아일보 기자]
이 비유를 택지개발에 대입해보자. '이타적인 두꺼비'는 공영개발이고, '이기적인 두꺼비'는 민영개발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영개발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또는 정부투자기관 등의 공공부문에서 직접 개발하여 민간에 분양하는 택지공급방식"이라고 정의한다. 공영개발은 공공부문에서 직접 하는 것이다. 이윤을 남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대신 더 많은 국민에게 더 좋은 주거 환경을 제공하는 게 목적이다. '이타적인 두꺼비' 모델이다.

물론 거기에는 함정이 있다. 공영개발이 결정되고 추진되면 해당 부지의 땅 주인과 원주민은 맞서기 어렵다. 더 많은 이에게 좋은 주거 환경을 제공한다는 대의명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공영개발 두꺼비는 '새 집 줄게'의 약속을 내밀고 '헌 집 다오'에서 과도하거나 부당한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 토지소유자와의 매각 협상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을 경우, 공영개발의 주체는 공익사업 용지를 강제로 취득할 수 있도록 토지수용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갖추고 있는 제도적 장치다.

‘이타적인 두꺼비'는 착한 두꺼비, '이기적인 두꺼비'는 나쁜 두꺼비, 이렇게 단칼에 나눠서 이야기하기 곤란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기적인 두꺼비는 헌 집을 사서 새 집을 지어 팔아 돈을 벌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이타적인 두꺼비와 달리 강제수용 같은 수단을 동원할 수 없다. 이기적인 두꺼비는 자본주의 윤리에 충실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해당 토지의 적절한 시장 가격을 파악하고, 개발했을 때 얼마나 이익이 날지 스스로 계산하여, 땅 주인과 제대로 협상을 해서 매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

토지개발 대상지의 땅 주인 처지에서 보자. 제대로 협상이 진행된다고 가정했을 때, '이타적인 두꺼비'보다는 '이기적인 두꺼비'를 만나 땅을 파는 것이 좋다. 상호 이익을 추구하는 윈-윈(Win-Win) 게임의 여지가 있는 셈이다.

문제는 기존의 땅 주인 내지는 주택 소유주와 '이기적인 두꺼비'의 협상이 잘 진행되지 않을 때 발생한다. 이기적인 두꺼비가 너무 이기적인 가격을 불러서일 수도 있고, 땅 주인이 소위 '알박기'를 하며 버틸 수도 있다. 집과 땅 등 부동산은 대략적인 시세만 있지 '정가'가 존재하지 않는다. 소수의, 혹은 단 한 명의 땅 주인이 버티고 들어서 전체 개발 일정이 지연되면 그 손해가 한도 끝도 없이 커질 수 있다. 개발 사업에서 '리스크'라 할 수 있는 것 중 큰 부분이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5500억 원 환수? 이중인격 두꺼비!

서울중앙지검 대장동 개발 의혹 사건 전담수사팀이 9월 29일 경기 성남시 성남도시개발공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마치고 압수물품을 버스에 싣고 있다.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정리해보자. 토지개발은 크게 공영개발과 민영개발로 나뉜다. 공영개발은 공공부문에서 직접 개발하기에 강제수용 등의 방법을 동원할 수 있고, 그래서 리스크가 낮으며, 따라서 낮은 비용으로 개발이 가능하다. 대신 공공부문은 그 이익을 자신들이 취할 수 없다. 저렴하게 새로운 주택을 분양하고, 기존에 해당 지역에 살던 원주민 세입자를 위한 임대주택 등도 충실하게 마련해야 한다.

반면 민영개발은 민간이 추진하는 개발 사업이다. 모든 토지 소유주와 협상해야 하며 세입자를 내보낼 때도 갈등이 생길 여지가 상대적으로 크다. 토지 매입 단계부터 리스크가 발생할 가능성이 공영개발에 비해 큰 것이다. 따라서 리스크가 크고, 큰 리스크는 곧 높은 사업비로 이어진다. 대신 민영개발의 주체는 공영개발보다 높은 가격으로 주택을 분양하는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이득을 볼 수 있다.

이제 화천대유 사건으로 돌아와 보자. 여러 정치인의 이름과 다양한 의혹과 논란이 오가지만, 본질은 간단하다. 대장동 개발은 공영개발의 탈을 쓴 민영개발이었다. 원주민을 내쫓고 토지 소유주의 땅을 가져갈 때는 공영개발이었는데, 막상 토목공사를 하고 건물을 짓고 분양을 할 때가 되자 민영개발이 되고 말았다. '이타적인 두꺼비'인 척 하면서 내 헌 집을 값싸게 가져가더니, '이기적인 두꺼비'가 돼 나에게 새 집을 비싸게 팔았다는 뜻이다.

앞서 말했듯 토지개발에서 가장 큰 리스크는 토지 매입 단계에서 발생한다. 공영개발의 경우 강제수용이라는 '치트키'를 통해 그 리스크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다. 대신 공영개발은 이익을 목표로 하지 않거나, 이익이 남더라도 법에 규정된 상한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

공영개발의 탈을 쓰고 강제수용을 동원해 토지를 매입한 후 민영개발의 형식으로 개발하는 것은 그런 면에서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다. 국가나 지자체 등을 앞세워 '공공선'의 이름으로 누군가의 땅을 헐값에 매입한 후, 그것을 통상적인 시장가에 판다면, 당연히 턱없이 높은 이익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재명 지사가 이런 비상식적인 사업 모델을 자신의 치적인 양 포장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는 대장동 개발이 천문학적 이익을 냈으며, 그 중 5500억 원을 '환수'했다고 주장한다. 일단 그것을 '환수'라 부르는 것 자체가 옳지 않다. 민영개발의 경우에도 당연히 진행되는 온갖 기부채납 등을 마치 자신이 추진해 이루어진 '환수'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 식이라면 대한민국에서 진행된 모든 민영개발에서 막대한 '환수'가 이루어져 왔다고 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애초에 '환수'할 만큼 큰 이익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다. 지금까지 거론된 이익만 해도 수천억 원이 넘는다. 공영개발의 명목 하에 싸게 매입한 땅을 민영개발의 형식으로 비싸게 팔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민중의 소리'는 그것을 "민간업자들은 성남시에 5500억 원을 환수 당하고도 8000억 원에 가까운 순익 로또를 맞았다"고 정리한다. 현실을 호도하는 해석이다. 5500억 원은 '환수' 당한 것도 아니고, 8000억 원에 가까운 막대한 순익은 애초에 발생하지도 말았어야 한다. 비상식적이고도 천문학적인 이익을 낳은 '민관 공동개발 모델' 그 자체가 문제다. 이타적인 탈을 쓰고 이기적으로 돈을 번 이중인격 두꺼비, 그것이 바로 대장동 개발의 실체다.

기괴하고도 잔인한 '설계'

이재명 지사 스스로가 인정했다시피 그는 이런 기형적인 개발 모델을 '설계'한 사람이다. 성남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본인이 직접 서명한 문서까지 남아 있다. 화천대유나 개발 시행사 성남의뜰로부터 이 지사에게 직접 흘러간 자금이 없다고 해도, 우회적인 방식으로 어떤 대가를 지불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하다.

이 사건에는 이 지사 뿐 아니라 최근 국민의힘에서 탈당한 곽상도 무소속 의원, 이 지사의 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와 관련해 대법원에서 무죄 의견을 냈던 권순일 전 대법관 등이 연루돼 있다. 9월 29일에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친 소유 주택과 관련한 논란도 제기됐다. 여야를 막론하고 특검에 찬성해 최대한 빨리 수사를 진행해야 옳다.

공영개발은 공영개발의 요건을 준수하며 진행돼야 한다. 민영개발은 개발 대상지 소유주와 원주민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전제해야 한다. 이 지사가 '설계'한 민관 공동개발은 강제수용을 통해 토지를 값싸게 수용하여 민영 사업자를 통해 비싸게 판다. '오징어 게임'보다 기괴하고 잔인한 '두꺼비 게임'이다. 특검을 통한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 그 내막이 낱낱이 밝혀져야 마땅하다.

#이재명 #대장동 #화천대유 #오징어게임 #신동아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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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2

자영업자 학살극 주범은 숫자놀음에 정신 팔린 'K방역'

 

[아무튼, 주말] [노정태의 시사哲]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과 죽음 선택한 22명의 자영업자

1958년, 서독 노이슈탄트. 15세의 소년 미하엘은 사랑에 빠졌다. 36세의 한나와 묘한 관계가 되어버린 것이다. 처음에는 육체 관계로 시작했지만 한나는 책을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연상의 여인으로부터 사랑을 배우며 <오디세이아>, <에밀리아 갈로티>, <전쟁과 평화> 등 온갖 문학의 고전을 소리 내어 읽어나가던 뜨거운 여름. 그러던 중 한나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첫사랑은 끝났다.

몇 번의 계절이 바뀐 후 미하엘은 대학에 진학하여 법대생이 되었다. 그는 재판 견학을 갔다가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첫사랑 한나를 다시 만난 것이다. 한나는 강제수용소에서 간수로 일한 나치 전범이었다. 한나는 수감자가 죽을 걸 알면서도 매달 60명씩 선별해 아우슈비츠로 보냈다. ‘이 수용소에는 매달 새로운 수감자가 들어오니 어쩔 수 없었다’. ‘다른 간수들도 그렇게 했다’. 한나의 항변이 법정에 울려퍼졌다. 독일의 소설가 베른하르트 슐링크가 쓴 <책 읽어주는 남자>의 내용이다.

이 작품은 영화 <더 리더>의 원작으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져 있다. 할리우드에서 영화화하면서 주인공의 이름이 ‘미하엘’에서 ‘마이클’로 바뀌었지만 주제 의식은 동일하다. 판사가 한나에게 질문한다.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을 곳으로 보냅니까?’ 한나는 수긍하지 않는다. ‘판사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던진 바로 그 질문, ‘악의 평범성’을 묻고 있는 것이다.

일러스트=유현호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한나 아렌트는 1963년 <뉴요커>의 의뢰를 받았다. 이스라엘 비밀경찰의 끈질긴 추적 끝에 체포된 아우슈비츠 수용소장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취재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 내용은 1963년 2월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전반적인 보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제목하에 연재되었고, 훗날 책으로 묶여 나왔다.

아렌트는 일단 재판의 광경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전달하는 일에 집중했다. 교수대에 선 아이히만은 붉은 포도주 한 병을 요구하고 그 절반을 마셨다. 성경을 읽어주겠다는 목사의 제안을 거절하고, 검은색 두건도 쓰지 않겠다고 했다. 재판받고 처형당하는 입장이면서도 마치 남의 장례식에서 애도 연설을 하는 양 행세한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에 도달했다.

아이히만은 괴물 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너무도 평범하고 정상적이었다. 아렌트가 볼 때 문제의 핵심은 바로 그 ‘평범성’, 혹은 ‘진부함’이나 ‘일상성’에 있었다. 아이히만은 명령에 복종하는 교양 있는 고급 장교로서 한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태도로 유대인에 대한 체계적 학살을 진행했다. 자신이 따르는 명령이 도덕적으로 옳은지 그른지, 어떤 사람들에게 무슨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저 명령이라서, 시키는 대로 충직하게 수행했을 뿐이었다. 아렌트에 따르면, 아이히만은 “단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한 것이다.”

<더 리더>의 한나 역시 마찬가지다. 직접 사람을 죽인 게 아니다. 단지 수용소에 사람이 너무 많으니 간수 한 사람당 열 명씩 제소자를 골라내어 아우슈비츠로 보냈을 뿐이다. ‘합리적’인 행위다. 미군의 폭격으로 수용소에 불이 났을 때 한나는 잠긴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당연한 것 아니에요? 간수는 질서를 유지할 책임이 있습니다.’ 악의 평범성에 갇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한나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그 모습을 보며 미하엘은 한나의 중요한 비밀을 깨닫게 된다.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 보자. 지난달 25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브리핑에서 2주가량 사적 모임을 미루거나 취소해 달라고 요청했다. “현재는 2500명 내외의 (확진자) 발생에 대해서는 대응할 수 있지만, 확진자가 증가하게 되면 (중증 환자 규모도) 뒤따라서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방역 당국에 따르면 현재 우리는 하루 신규 확진자 3000명 이하에 대해 1~2주가량 대응할 수 있다.

여기서 문득 의문이 든다. 지금까지 해왔던 방역 4단계는 대체 무슨 의미가 있었나? 이미 4단계를 몇 주째 연장하고 있지 않은가? 확진자 수 관리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국민에게 모임 자제를 ‘요청’할 게 아니라, 자영업자에게 영업 정지를 ‘명령’하고 그에 따른 손해를 공식적으로 보상해야 하는 건 아닐까?

정부는 국민, 특히 자영업자에게 방역의 짐을 떠넘기고 있다. 최저임금 폭등으로 한계에 치달은 자영업자들은 코로나 이후 생사의 기로에 섰다. 코로나19 대응 전국 자영업자 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 최소 22명의 자영업자가 죽음으로 내몰렸다. 이 ‘자영업자 학살극’이 과연 방역의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악의 평범성’은 아우슈비츠 같은 극악한 반인륜 범죄에만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자영업자들이 굶건 죽건 확진자 숫자 놀음에 정신이 팔린 무신경하고 잔인한 K방역 또한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영업자 분향소에 조문은커녕 근조 화환조차 보내지 않았다. 경찰은 분향소 설치를 방해하다가 마지못해 허락해놓고도 시민들을 감시했다. 나는 하던 대로 했을 뿐이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더 리더>의 한나가 내놓는 변명이 떠오른다. 현실 속의 아이히만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은 지루하고 상투적인 ‘악의 평범성’에 갇혀 있는 것이다.

10월 말부터 시행할 수 있다는 ‘위드 코로나’는 방역 단계를 낮춘다는 말과 같다. 단기적으로나마 확진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은경 청장의 노고를 보면서도 의문을 표하게 되는 것은 그래서다. 확진자가 5000명, 1만 명으로 늘어나면 어떻게 할 계획인가. ‘위드 코로나’ 하면서 동시에 방역 4단계를 연장할 셈인가. 청와대의 방침에 따라 끝없이 희망고문만 하고 있는 건 아닌가.

<더 리더>는 배움과 참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미하엘은 감옥에 갇힌 한나에게 책을 녹음하여 테이프를 보내준다. 한나는 반성하고 생각하는 주체로 거듭난다. <더 리더>와 달리 우리의 이야기가 꼭 비극으로 끝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자영업자를 비롯한 국민 모두에게 정직한 태도로 인격적 예우를 드러내는, 그런 방역과 정치를 요구한다.

2021-09-28

홍남기 부총리님, 자영업자 죽음 앞에서 자화자찬하다니요

홍남기 경제부총리

홍남기 경제부총리

문재인 정부 들어 정부 지출이 경제 성장률을 크게 앞지르면서 나랏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습니다. 중앙일보는 합리적 예산 조정 없이 무차별적인 선심성 지출 증가로 이어진 현 정부의 확장 재정 기조에 비판적입니다. 부동산값 폭등으로 가뜩이나 청년들의 내 집 마련이 어려운 상황에서 "일단 쓰고 보자"며 미래 세대에 빚을 떠넘기는 건 무책임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코로나 19라는 미증유의 위기를 맞아 재정을 더 과감히 풀어야 한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박가분 작가가 그렇습니다. 마침 노정태 작가는 도움이 꼭 필요한 자영업자는 외면하고 전 국민 돈 잔치에 불과한 재난지원금에 장단을 맞춘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저격하는 칼럼을 보내왔습니다. 전혀 다른 시각을 담은 두 칼럼을 27일과 28일 연속으로 내보냅니다. 안혜리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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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와중인 지난 19일 전남 순천의 한 야산 중턱에서 시신이 발견됐다. 사망자 신원은 석 달가량 실종 상태였던 48세 A씨였다. 산 아래에서 발견된 그의 승용차와 신분증을 통해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농자재 배달 사업을 하던 A씨는 빚에 쫓기다 파산 신고를 했고, 지난 6월 가족에게 "떠나고 싶다"고 말한 후 집을 나섰다가 석 달 만에 시신으로 발견된 것이다. 코로나 19 대응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자대위)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에 설치했던 합동분향소가 문을 닫은 다음 날 일이었다.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는 생활고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난 자영업자들을 추모하며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에 따른 영업제한조치 철폐를 촉구하는 분향소가 설치됐다. 연합뉴스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는 생활고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난 자영업자들을 추모하며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에 따른 영업제한조치 철폐를 촉구하는 분향소가 설치됐다. 연합뉴스

그리고 사흘 후인 지난 22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중간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대한민국의 올해 성장률을 4.0%로 점쳤다. 지난 5월 전망치 3.8%보다 0.2%포인트 상향 조정한 것이다. 한국 경제의 회복세가 빠르다는 이유였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당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을 읽고 그만 평정을 잃었다. 홍 부총리는 "수출 호조세, 2차 추경 등의 정책효과가 반영되며 우리나라 성장률이 상향조정된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전망을 통해 우리나라가 다른 주요국들에 비해 코로나 위기에 성공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고 자화자찬을 늘어놓고 있었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홍 부총리에게, 자영업과 자영업자란 과연 무엇인가? 문재인 정부는 자영업자를 국민으로 생각하고 있긴 한 걸까?
모두가 아는 사실부터 짚어 보자. 홍 부총리는 문 정부의 핵심 관료 중 한 사람이다. 정권 출범 후 초대 국무조정실장이었고, 2018년 12월부터 지금까지 부총리로 재직하며 최장수 장관 기록까지 세웠다. 한평생 직업 공무원으로 살아온 이른바 '늘공'(원래 공무원)이라는 점에서 이 기록은 더욱 놀랍다.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 동지들이 한 자리씩 차지한 이른바 '어공'(어쩌다 공무원)보다 청와대의 더 큰 신임을 받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어서다.
내가 볼 때 그가 신뢰를 받는 이유는 청와대의 지시에 순응하기 때문이다. 상식적이지 않은 정책 방향의 지시가 청와대에서 내려온다고 해보자. 일반적으로 '어공' 출신 장관들은 무리해서라도 밀어붙이려 든다. 반면 '늘공'들은 현실의 제약을 고려해 무리한 요구를 거절하거나, 절충점을 찾아 설득하고자 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은 '늘공'들의 이러한 행동 방식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이들이 자주 쓰는 '관피아'(관과 마피아를 합친 용어)라는 말엔 국민의 뜻을 받아 당선된 정치인이 내리는 지시를 공무원들이 무시한다는 불만이 담겨 있다.
바로 여기에 홍남기의 롱런 비결이 숨어 있다. 그는 여느 '늘공' 출신들과 다르다. 청와대의 지시와 요구를 거스르지 않는다. 반발하는 시늉은 한다. 최저임금 인상, 전 국민 재난지원금, 선심성 돈 풀기를 위한 추경 편성 등 청와대와 민주당이 밀어붙이는 사안에 대해 처음에는 반대하다 결국 정치권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패턴을 반복한다. 오죽하면 '홍백기'(홍이 항복했다)나 '홍두사미'(용두사미를 빗댄 말) 같은 말이 오가겠는가.
'늘공'답지 않은 홍남기의 권력 순응주의는 자영업자들에게 재앙의 서곡과도 같았다. 코로나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이 정부 들어 최저임금을 무리하게 인상할 때 이미 자영업자들은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2018년에 16.4%, 2019년에 10.9%씩 껑충 뛰어오르면서 한계에 몰린 자영업자들은 아르바이트생을 내보내거나 본인과 가족의 노동을 착취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무인 아이스크림 판매점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패스트푸드 매장마다 키오스크가 줄줄이 들어선 것도 그 무렵 일이다. 2020년 한국경제연구원의 '2018년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최저임금 적용 대상자의 취업률은 4.1~4.6%포인트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학자 아니라 장삼이사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 현실화한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질 때 홍 부총리는 무엇을 했을까?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그리고 그 이론적 배경이 되는 소득주도성장(소주성)에 대해 반론을 펴기는커녕 오히려 소주성이 향후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며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다.
그 부작용이 계속 드러나고 있는 소주성이 정말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면 애초에 그 자리에 걸맞은 역량이 없는 것 아닐까. 혹은 소주성이 엉터리인 줄 알면서도 '윗선'의 요구라 입 다물고 적극적인 동조를 했다면, 그는 장관이 아니라 말석의 9급 공무원 자격조차 없는 게 아닐까. 정치가 엉터리 요구를 할 때 "아니오"라고 하는 것이 공무원의 가장 기본적인 직업윤리고, 그러라고 법으로 신분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하여간 이렇게 자영업의 기초체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코로나가 터졌다. 뱃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한다는 삼각 파도처럼, 양쪽에서 동시에 자영업자들을 강타한 것이다. 자영업자 보호는커녕 비합리적인 사회적 거리 두기로 자영업자 죽이기에 나선 청와대와 민주당은 정작 돈이 가야 할 곳은 외면하고 '온 국민 재난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국민들에게 푼돈을 뿌리며 매표에 혈안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부총리가 할 일은 소득 상위 몇 %에게 재난지원금을 주냐는 식의 소모적 논쟁에 빨려 들어가는 게 아니었다. 단순한 소득 배분이 아니라 실제 자영업자가 겪는 피해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어야 한다. 물론 현실은 달랐다. 청와대는 보다 많이 주자는 입장이 완강했고, 심지어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88%라는 여야 합의를 무시하고 온 국민(경기도민)에게 돈을 뿌리겠다고 나섰다. 홍 부총리는 늘 그렇듯 미약한 반발의 목소리를 내다 이내 '홍백기'를 들어 올렸다.

흔히 공무원을 두고 '영혼이 없다'고 비아냥거린다. 공무원들 스스로도 이런 자조 섞인 농담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원래 공직이란 그 자체가 희생이며 헌신이다. 안정된 일자리와 연금 욕심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가 금세 그만두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다. 국가와 국민에 봉사하겠다는 마음 없이는 공직을 오래 수행하기 어렵다.

국가공무원 취임 선서는 이렇다. "나는 대한민국 공무원으로서 헌법과 법령을 준수하고, 국가를 수호하며,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이 문장 어디에도 정권이나 청와대를 향한 충성 서약은 없다. 공무원이 지켜야 하는 것은 국가와 국민과 국익이지, 특정 정권과 권력 집단의 이해관계가 아니다.
묻고 싶다. 최장수 '늘공' 장관 홍 부총리의 충성심은 어디를 향하고 있나. 그가 지키는 건 국가인가, 아니면 정권인가. 그도 아니면 그저 일신의 영달일 뿐인가. "아니요"라고 해야 할 때 그 말을 못하는 장관이 오래 자리를 차지하는 동안, 오늘도 대한민국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말 그대로 생사를 건 투쟁을 해나가고 있다. 방조자도 때론 공범과 다를 바 없는 무거운 처벌을 받는다. 이 정부 자영업 대학살극의 책임을 물을 때 홍남기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