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포스트를 통해 나는, 이미 존재하는 명작과 주제의식이 중복된다는 이유로 창작을 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주장을 편 바 있다. 도스토예프스키 이후에도 인간의 죄의식에 대한 탐구는 계속되어야 하며, 제인 오스틴의 명작들이 아무리 영상물로 재생산되고 있다 한들 누군가는 꾸준히 로맨스 소설을 쓰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창작물은, 성의 있게 만들어졌을 경우, 아무리 진부한 소재와 주제를 반복하고 있더라도 창작자가 속해 있는 세계의 모습을 충실하게 반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저 마지막 결론 속에 한윤형에게 했던 이야기에 대한 내용도 이미 포함되어 있다. 외국에서 장르 문학을 포함한 창작의 영역이 어느 정도로 발전하고 있는지,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들이 이러저러한 것을 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 는 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외국에서 이러저러한 창작품이 나오고 있는 그것 자체가 바로 우리가 속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외국의 맥락을 적어도 대강이라도 알고 따라가고 있지 못하는 한, 우리는 한국 문화의 현재성에 충실할 수조차 없다.
가령 한국의 영화지망생 갑돌이가 '나는 삐까번쩍한 사립 고등학교에 다니는 부유층 여식들을 주인공으로 삼아서, 제인 오스틴의 엠마를 각색한 영화를 찍을 거야'라고 말한다면 그는 당장 '클루리스나 보고 말하자'는 답변을 들을 것이다. 소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중세 유럽풍의, 마법을 최소화 한 세계관을 전제로 한 대규모의 정치 로망을 쓰겠다고 하는 청년의 용기를 북돋워줄 필요는 없다. 우선 마틴의 얼음과 불의 노래를 손에 쥐어주고 나서 이야기를 해보던가 말던가 할 일이니 말이다. 이런 굵직한 작품들의 예를 드는 것이 반칙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진지하게 창작을 시도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시피, 자신이 쓰려고 하는 무언가가 남들이 이미 해놓은 것과 겹치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그렇지 않고서야 헐리우드에서 시나리오의 중복 여부를 검사하기 위해 그렇게 많은 돈을 퍼붓고 있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나는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써, 일단 그게 먼저고 다른 것은 염두에 두지 않았어'라고 한국의 작가들, 특히 소설가들이 이런 소리를 많이 한다. 그것을 전적으로 믿어주는 것만큼 순진한 일이 또 있을까 싶다. 작가들은 어디까지나 독창적이고 또 독창적인 존재이고 싶어하기 때문에, 자신이 누군가에게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혼쾌히 인정할만한 대인배를 찾아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어느 정도 입지를 확보한 거장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작가들은 그만큼의 자의식을 구축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많은 경우 '난 나야, 리바이스' 같은 광고 카피를 입에 달고 살 수밖에 없다. 그런 맥락에 휩쓸려 '외국의 맥락을 검토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도 성급한 일인 것으로 여겨진다.
한윤형이 다소 맥락을 잘못 전달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외국의 시시콜콜한 작품까지 죄다 검토한 다음에야 창작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지도 않고, 또 어느 정도 무지를 전제하고 들어간 작품들이 좋은 성과를 낼 가능성이 없다는 말을 하고 있지도 않다. 그가 인용하고 내가 인정하는 바와 같이, 인류 보편적인 주제의식은 다양한 각도에서 꾸준한 탐색을 요한다. 하지만 그것을 탐구하는 과정은 결국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에 대한 천착이 될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 '자신이 접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은 책을 읽음으로써 외국의 맥락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간파한다'는 것이 빠지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는 '작가'들이 매우 많다. 판타스틱 편집부에 매일 같이 날아오는 독자 투고만 보더라도, 그러한 '작가'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들 중 90% 이상은 '난 내 이야기를 하고 있어'라는 자의식에 함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그러한 마인드를, 부정적인 뉘앙스를 한껏 담아 '지망생 마인드'라고 부르는데, 이는 그들이 지망생으로 살고 있는 자신에 대한 자기연민에 함몰된 나머지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을, 또한 자신이 창작하려 하는 장르의 발전을, 전혀 연구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한윤형이 말하는 작가라는 것이, 이러한 '지망생'중 운이 좋고 재주가 좋은 일부를 칭하는 것이라면, 나는 차라리 대한민국에 작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버리고 싶다.
(한윤형의 블로그에 달린 수동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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