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1-28

매체로서의 책, 현시적 소비의 대상으로서의 책

지난번에 작성한 포스트 "다른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에 달린 많은 수의 리플에 답변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강유원 홈페이지의 게시판에서 링크를 타고 넘어오신 분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한 분들과 강유원 본인의 반응을 종합하여 보면 내 글에 대한 반박 논지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강유원은 출판사의 양해 하에 홈페이지에 원고를 게재하고 있으므로 내 글이 전제로 하고 있는 팩트는 잘못되었다. 둘째, 인터넷에 원고를 공개하는 행위가 반드시 책의 판매를 저해한다고 볼 수는 없으므로 그러한 이유로 강유원을 비판하는 것은 부당하다. 셋째, 설령 그러한 행위를 통해 책이 잘 팔리지 않게 된다고 해도 출판 노동자들의 수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할 수는 없으므로 강유원에 대한 윤리적 비난은 옳지 않다.

첫째 반론에 대한 답변을 해보자. 나는 이론과실천을 포함한 여러 인문서 출판사에서 강유원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원고를 올려놓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리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달인》의 원고가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출판사에서 올리지 말라고 요청을 했거나, 올렸더라도 곧 내렸음을 시사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출판 관계자들이 그 게시판을 검토하지 않을 리가 없다. 내가 "과연 '한국의 주어캄프'라는 칭송을 듣고 있는 이론과실천에서는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 것은, 그 사실 자체가 궁금해서가 아니라 그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 위해서였다. 그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두 번째 반론과 세 번째 반론에 대한 답변을 검토해야 한다.

'출판사의 양해를 구했다'라는 말이, 너무도 손쉽게 '그러므로 인터넷에 원고를 공개하는 것은 책의 판매에 영향을 주지 않거나, 주더라도 미비할 것이다'라는 식으로 비약하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인터넷에 원고를 공개하는 것은 책의 판매에 당연히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내 블로그에서 답변을 달아 주신 분들, 혹은 강유원 홈페이지에서 자신의 사례를 예시로 드신 분들과는 달리, 나는 파일로 텍스트를 가지고 있는 글을 굳이 책의 형태로 구입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평범한 독자군의 일원이다. 내가 문제의 글을 쓰게 된 이유도, 원래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을 사려고 알라딘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홈페이지에 원고가 올라와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삭제하는 과정에서, 이건 정말 아니다 싶었기 때문이다. 한 달에 도서구입비로 적어도 십만 원은 쓰지만, PDF 파일을 가지고 있는 책 값으로 7천 원을 지불하는 것은 적어도 내 입장에서 볼 때 합리적인 소비가 아니다.

문제는 나와 같은 입장에 서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다는 데 있다. 물론 텍스트 파일을 구해도 책을 사는 사람이 있고, MP3를 실컷 다운받은 다음 CD를 사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무분별한 '카피레프트'로 인해 장르를 불문하고 컨텐츠 시장이 초토화된 현실을 놓고 볼 때, '물건으로서의 책이 갖는 매력'만을 놓고 '그러므로 책을 살 사람은 파일이 있어도 산다'는 말로 원고 공개를 옹호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은 입장이다. 책은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서 구입하는 조제약이 아니다. 원고가 인터넷에 떠돌건 말건 반드시 사 보는 사람들만이 간신히 남아 있기 때문에 한국의 출판계가 매년 단군 이후 최후의 불황을 겪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가? 원고 공개를 옹호하는 입장에 서면, 책을 구입하는 것은 책이라는 물건에 대한 자신의 각별한 애정과 그 책의 저자들에 대한 충성심을 과시하는 일을 대체로 수반하며, 결과적으로 '책'이라는 매체를 일종의 기념품으로 전락시키는 효과를 초래하게 된다.

물론 원고를 공개하고 있음에도 《책과 세계》라던가 《강유원의 고전강의 공산당 선언》은 알라딘 기준으로 볼 때 비교적 잘 팔린 것 같다. 그것은 저자의 이름이 강유원이기 때문이다. 원고를 인터넷에 공개하겠다는 터무니없는 조건에 출판사들이 수긍할 수밖에 없는 것도, 바로 그렇듯 강유원이 어느 정도의 판매량은 보증할 수 있으며 잘 될 경우 그 이상도 할 수 있는 저자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분들이 리플에서 지적하신 정민 교수나 신영복 교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출판사는 그들의 그러한 행동이 자신들에게 긍정적이어서가 아니라, 그러한 행동을 용납하지 않아 저자와의 관계가 틀어질 경우 발생할 불이익을 회피하기 위해 저자들의 원고 공개를 승낙한다. 한마디로 그러한 경우 저자가 갑이고 출판사가 을인 것이다.

반대로 저자가 무명이거나 이름값이 미약한 경우, 그가 원고의 아주 일부분만을 요약·발췌해서 공개하더라도 대부분의 출판사에서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 포스트를 작성한 후 주변 지인들에게 수소문해본 결과, 자신이 옮긴 원고에서 몇 단락을 발췌해서 블로그에 올렸을 뿐임에도 포스트를 삭제하라는 요청을 받은 번역자의 사례를 들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출판사가 그렇다. 자신들이 저자를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인터넷에 원고를 공개하는 행위를 허락하지 않는다. 반면 강유원, 신영복, 정민 등 이름난 저자들은 그들의 원고가 인터넷에 떠돌건 말건 책을 사보는 일종의 '사수대', 혹은 고정 판매량이 있기 때문에, 딱 그만큼의 판매량만이라도 확보하고자 하는 마음에 그들의 행동을 용납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언급된 이들 중 두 번째와 세 번째는 그 이상의 판매를 거의 보증하는 저자들이다. 출판사에서는 이들이 달라고 한다면 간이라도 빼 주어야 할지에 대해 기획회의를 하게 된다.

'인터넷에 원고를 공개한다고 해서 책의 판매량이 반드시 떨어진다고 볼 수 없다'는 두번째 반론에 대한 답변으로 돌아가보자. 나는 나 자신과 내 주변 사람들의 사례, 또한 전반적인 컨텐츠 시장의 황폐화를 근거로 하여, 원고를 공개하는 것은 어떤 식으로건 책의 판매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고 있다. 내 견해에 반대하시는 분들은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산다'는 것을 근거로 삼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강유원 등 이름난 저자들의 경우 이미 원고를 인터넷에 공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균보다 많은 판매량을 기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것은, 내 블로그에 와서 리플을 달아주시는 분들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사는 열혈 독자들이 그러한 저자들의 곁에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한 일부 유명 독자들이 출판사의 이익과 상반되는 행위를 하면서도 어렵지 않게 승낙을 얻어낼 수 있는 것은, 특히 인문서적의 출판시장 자체가 그러한 열혈 독자층에 기대지 않고서는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도 없을 만큼 척박해져 있기 때문이다. 원고 공개를 허락하는 출판사는 울며 겨자 먹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출판사에서 허락했으니 문제 없다'는 첫 번째 반론과, '출판사에서 허락하는 것으로 미루어보건대 원고 공개는 판매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라는 두 번째 반론은 모두 논거 빈약한 것으로 보인다. 원고 공개는 그 원고를 공개하는 저자의 명성을 유지하는 일에 기여할 수 있다. 동시에 인터넷에 원고를 무료로 공개하거나 다른 사람의 창작물을 스캔 혹은 타자로 옮겨 퍼뜨리는 행위는 출판 시장을 포함한 컨텐츠 업계를 휘청거리게 만든 주범이기도 하다. 나는 이 사회에 후자의 분위기가 너무도 만연해있는 것을 비판하며, 강유원이 자신의 입지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그러한 잘못된 분위기에 편승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물론 그 덕에 강유원의 팬덤은 유지되고 있고, 그리하여 그를 섭외한 출판사는 최소한의 판매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낙엽 줍기'에 출판사가 의존해야 하는 상황 그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인터넷에서 원고를 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사는 강유원 홈페이지의 방문객들께는 다소 미안한 말이지만, '책의 물건으로서의 성격'을 강조하며 책을 사는 자신을 특별한 누군가로 생각하는 그러한 소비자들의 속성이야말로, 현재 출판 시장을 이 모양 이 꼴로 몰아가는 주범 중 하나임을 강조하고 싶다. '젊은 여자들이 지적인 척 하려고 핸드백에 넣고 다니는' 책으로 유명했던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같은 작품들을 떠올려보자. 단 한 권을 사도 뽀대나는 하드커버가 아니면 지갑을 열지 않고, 사 온 다음에는 굳이 사진을 찍어서 올리는 그러한 모습을 한 번 상상해보자는 말이다. 그리고 '나는 강유원 선생님의 책이라면 원고를 파일로 가지고 있어도 삽니다. 이 종이의 향기, 하악~'하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자. 책을 정보를 담는 매체가 아닌 그 무언가로 소비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종류의 소비자가 가지고 있는 간극은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다. 나는 그러한 두 종류의 경향이 지니고 있는 유사성을 지적하고 싶다. 이 부분에 대한 문제 의식 없이는 출판시장의 불황을 이해할 수도 없고, 내가 굳이 강유원의 '카피레프트'를 문제 삼는 이유를 짐작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정리하는 차원에서, 내 블로그에 달린 리플 중 손병권 님이 달아주신 것에 대해 차근차근 검토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자. 이 리플에 다른 리플들에 제기된 논점들이 모두 담겨있다.

"책은 프린트물이나 파일과는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에는 내용과 상관없이 '책이 예뻐서, 또는 종이 냄새가 너무 좋아서' 책을 사기도 하니까요. 또 프린트물로 읽었어도 책의 내용이 맘에 들면 나중에 들춰보기 위해서나 아님 '가오'를 잡기 위해서 책을 사기도 하는 것이죠."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앞서 길게 설명하며 충분한 대답을 했다고 본다. 물론 책은 물건으로서 아름다운 것이고 소유할만한 가치를 지니지만, 매체로서의 성격을 도외시하면서까지 '소장'하게 되는 사치재는 아니라고 본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점점 그러한 성격으로 책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고, 그래서 터무니없는 가격의 서적들이 속속 출현하고 있지만, 나는 그러한 시장의 변화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운로드 받고 그것으로 만족할 독자라면 그는 이미 인문학 시장과는 상관없는 소비자입니다. 관심은 가지되 돈을 쓸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니, 그들은 다운로드 서비스가 없다면 도서관이나 옆집 친구에게 빌려 있는 것으로 만족할 사람들이니 출판 노동자의 밥벌이와는 크게 상관 없는 경우라고 봐야겠지요."

이 반론에 대해서도 이미 충분한 대답을 했다고 본다. 멀리 갈 것 없이 내 경우를 살펴보면, 나는 한 달에 인문서적 구입비로 근 십만 원을 쓰고, 그래서 그 예산 중 일부를 문제의 그 책에 할애할 생각이었지만, 인터넷에 원고가 공개되어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을 접었다. 그럼 나는 "인문학 시장과는 상관없는 소비자"인가? 공개된 원고를 굳이 구입하는 이들만을 '인문학의 소비자'로 이해하는 바로 그러한 사고방식이 인문학의 시장적 저변을 축소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는 없는 것일까? 강유원의 팬이어서가 아니라, 엥겔스가 쓴 그 책의 내용이 궁금해서 책을 사려고 했던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인터넷에 공개된 원고만으로 만족할 것이다. 강유원의 원고 공개가 그러한 결과를 낳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왜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 않을까?

"저는 인문학 시장이 커지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본질적인 가치'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80년대식 출판운동의 방식일 수도 있겠고, 아님 강유원님과 같이 자기 방식으로 '참호'를 굳건히 지키려는 노력으로 나타날 수도 있으리라 봅니다. '먹고 사는 것'이 전부인 세상에서 500~1500부 정도의 책을 팔아 서로 나눠 가질 몫이 얼마나 될까요? 물론 이렇게 말하는 것이 우리가 흔히 듣던 '성장론'의 재탕인 듯 해서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인문학 출판 시장과 관련해서는 이러한 인식이 유효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내 말이 그 말이다. 우리는 책이 갖는 '본질적인 가치'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정보를 안정적이고 완성된 형태로 전달하는, 유구한 역사를 지니는 매체로서의 책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기껏 몇 백 명의 팬을 믿고 마케팅을 해야 하는 비굴한 출판업이 아닌, 책의 내용으로 놓고 보건대 어느 정도의 판매량이 떨어지겠다는 계산을 하는, 미디어로서의 출판업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여건이 조성되어야 한다. 그래야 강유원도 1만 부 2만 부씩 팔아치워서 책만 써서 먹고 살 수 있고, 그와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도 도전적인 저작을 낸 후 최소한의 용돈 벌이를 하며 다음 책을 준비할 수 있는 것이다.

강유원의 원고 공개에 대한 문제 제기로 시작된 일련의 소동이, 책이 매체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성격을 인지하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되는가, 혹은 자신들이 책을 '현시적 소비'의 대상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문제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얼마나 되며 어디에 포진하고 있는가를 되짚어보는 것으로 마무리지어짐으로써, 한국의 출판 시장과 인문학적 기반에 대한 재고찰을 요구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강유원의 지지자 분들께 말씀드리자면, 강유원은 당신들의 '선생님'이 아니어도 책의 판매 수익만으로도 생활이 가능해야 할 사람이다. 강유원도 그렇다. '철학공부 하려면 무슨 책 봐야 하나여 ㅋㅋㅋ' 따위 질문에 일일이 대답해야 하는 것이 지겹다면, 인터넷을 통한 정보 공개를 무조건 옹호하는 입장에서 벗어나 매체 시장이 올바르게 형성되어야 할 필요성에 눈을 떠야 한다.

출판 노동자의 수익과 관련된 반론에 대해 답변하며 이 글을 마무리짓도록 하자. 단 하나의 출판사만을 놓고 본다면, 또한 지금과 같은 문란한 출판 시장을 움직이지 않는 전제로 놓고 본다면, 강유원은 계속 원고를 공개하면서 명성을 유지하고, 그리하여 출판사에 최소한의 판매고라도 안겨주는 편이 그나마 그 회사의 출판 노동자들에게는 이익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지난 글에서 말한 바와 같이 문어가 제 발 끊어먹는 근시안적인 처방일 뿐이다. 출판 노동자라는 계급을 옹호하기 위해서라면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원고를 공개하고 있는 강유원의 홈페이지 운영 방침은, 저자의 이름값에 의존하여 계약을 맺고 책을 내야 하는 작금의 경향에 편승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그러한 움직임이 책을 매체가 아닌 '현시적 소비'의 대상으로 파악하는 부정적인 시선을 고착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본다. 인터넷의 등장 이후 세상이 아무리 바뀌었다 한들, 그것은 옳지 않다.

댓글 21개:

  1. 명쾌하군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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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그렇죠. 책은 '책답게' 좀 편하게, 힘빼고 존중받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저자와 독자(?)사이의 관계도 이를테면 우선생님 같아야하지 강선생님처럼은 아닌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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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한 가지 사견을 밝혀도 좋을지요.

    책을 '과시적 소비 대상이 아니라 정보 전달 매체로 우선 봐야 한다'는 주인장님의 주장은 정당합니다. 하지만 '합리적인 (빠듯한) 소비자는 기왕 파일이 있으면 책을 사지 않는다'는 전제, 그리고 '파일이 있어도 책을 사는 자들은 현시적 소비자'라는 결론은 좀 성급하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 여러 가지 속사정이 있겠습니다만, 책이란 매체는 음악이나 영상과는 다른 관점에서 보아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컴퓨터나 노트북으로 보던 문서는 이부자리로 가져가서 이리저리 뒹굴면서 볼 수 없고, 모니터를 오랫동안 쳐다보고 있으면 시력 등에 해악을 끼치며, 독자의 연령과 체력 상태, 컴퓨터 기기에 대한 접근성 등에 따라 얻을 수 있는 효용이 크게 달라집니다. 아무래도 젊은 분들은 오랫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일에 익숙하실 테니까... 하지만 일단 30만 넘어가더라도(ㅠ_ㅠ) 조금만 더 편한 자세로 읽는 수는 없을까, 화장실에서 읽을 수 없을까, 부팅이 귀찮다, 줄을 찍찍 쳐가며 읽고 싶다 등등 잔머리를 굴리게 되죠. 파일의 유무와 무관하게 책을 사는 사람들을 두고 '과시용' 딱지를 붙여 하나로 뭉뚱그릴 수는 없다는 이야깁니다. 고작 1000부 내외로 팔리는 인문과학서를 사보는 독자들은 대부분이 저와 비슷한 처지일 거라고 생각되어,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두서없이 적어 봤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파일이 있으면 책을 안 산다'가 아니라 '책을 읽었으면 파일도 구한다'가 정답입니다. 한글이나 워드의 강력한 검색 기능은 도저히 물질적 책에서는 이용할 수 없는 환상적인 서비스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장편소설을 두고 논문을 쓴다거나, 문헌들을 이용해서 자기만의 사전을 만든다거나, 어떤 저자가 어떤 단어를 어떤 경우에 쓰는지 빈도수는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을 때는 컴퓨터를 이용하면 간단하지요. 그렇게 보면 고전학이나 문헌학계는 컴퓨터가 나타나기 수백년 동안 거의 뻘짓에 가까운 삽질을 해왔다고 할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독자들에게 파일이 줄 수 있는 효용이 책의 효용과 겹치는 부분은 아직 비교적 적다고 할 수 있고 검증도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주인장님이 저와 같은 보수적인 독자들을 대상으로 원글을 쓰신 것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책도 계속 나와주고 또 어떤 형태로든 전산화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적절한 대가를 받은 뒤에라도) 효용을 가져다주길 바랍니다. 이 두 매체 가운데 어떤 쪽도 사라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럼 건승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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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뭐 길게 쓸 필요있을까요? 강유원이 카피레프트를 실천하는 의도만 알면 끝날일입니다. 1.인터넷으로보고 좋으면 사라. 2.굳이 살 필요 없다. 지식은 공유하자. 3.사지마라. 4.내 책 졸라 좋으니까 한번 스윽 보고 사줘잉.

    1,2,3의 경우 모두 출판계쪽에 해가 되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것일테고 4번만이 도움이 되는 행위죠. 강유원 스스로 '책의 판매와 관계'된 카피레프트의 명확한 이유를 밝힐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허공에 뜬 이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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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원고를 인터넷에 공개하겠다는 터무니없는 조건에 출판사들이 수긍할 수밖에 없는 것도, 바로 그렇듯 강유원이 어느 정도의 판매량은 보증할 수 있으며 잘 될 경우 그 이상도 할 수 있는 저자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판사는 그들의 그러한 행동이 자신들에게 긍정적이어서가 아니라, 그러한 행동을 용납하지 않아 저자와의 관계가 틀어질 경우 발생할 불이익을 회피하기 위해 저자들의 원고 공개를 승낙한다. 한마디로 그러한 경우 저자가 갑이고 출판사가 을인 것이다.' <--요부분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출판사와 저자가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므로 저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님의 말대로 인기저자와 출판사의 관계가 그렇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강유원도 그러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직접 확인하거나 최소한 들어보기라도 한 사실인지 아니면 강유원도 아마 저랬을 거다라고 지레 짐작하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전자일 경우에 출판쪽에 계신것 같은데 강유원이 흥행보증수표로서의 업적(?)이라도 조금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강유원이 갑이 될 수 있겠지요. 후자일 경우라면 도매금 취급에 당사자에게 모욕이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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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노정태 님은 남 흉보시느라 시간 낭비 그만하시고 강유원 님의 100분의 1만큼이라도 인문학을 위한 '실천'을 함이 옳겠습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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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또다시 분노의 손장난이 시작되었군요. 하긴 한 달에 10만 원이나 책을 산다는 '평범한 독자 양반'이니 책이 매체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 성격도 논할 수 있는 거겠지요. 다만 아무도 제기하지 않는 문제를 혼자 외치고 있다는 의식에 젖어, 제 꼬리 파먹는 뱀처럼 꿈틀대는 게 안쓰러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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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비굴한 강유원빠들2008년 1월 29일 오후 2:31

    너희같은 놈들이 인문학을 망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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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비굴한 강유원빠들2008년 1월 29일 오후 2:31

    너희같은 놈들이 인문학을 망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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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님의 장문의 글을 다 읽고도 공감이 되지 않는 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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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노정태씨도 그렇고 한윤형씨도 그렇고 왜 이렇게 강유원씨에 대해 비판할 껀수를 찾으려 하는지 모르겠군요. 컴플렉스라도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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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차이가 있다면 한윤형의 비판은 그나마 일리가 있다만.. 노정태의 비판은 거의 수준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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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노정태 님의 글들은 강유원이란 사람이 자신의 인쇄된 저작물이나 번역물을 무료로 공개하는 행위에 대한 사회적 가치의 관점에서 가질 수 있는 비판 이외에, 원고를 공개하는 일이 팬들(?) 사이에서 '선생님' 노릇을 하며 자신의 입지를 굳히기 위한 사적인 방편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주장도 함께 보여진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

    그러나 이 둘 사이의 인과관계를 보여주는 주장을 입증하며 또 충분히 납득시키기란 역시 어려운 일일 겁니다.

    이 경우에는 문제의식이 공적 차원으로 높여져서 어떤 합의를 요청한다기 보다는 한 개인과 개인의 내면이라는 인물 비판으로 소급되는 양상을 띨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물론 노정태 님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미리부터 분명한 선을 긋고 그 사람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다고 했지만, 원고를 공개하는 행위가 사실상 그러한 - 그 자신에게 유리한 - 작용을 하고 있다는 뜻에서의 발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실제 그 의도라는 것이 어떤지는 알 수 없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의 명성을 유지하는 일로 쓰이는 것일 뿐이라는 얘기죠.

    사정이 그렇다면 그 사람이 왜 그러는지, 무엇을 위해 그러는지도 분명해져야 합니다.

    어떤 행위에서 궁극적으로는 그 누구에게도 이익이 있지 않고 오직 그 자신의 사적인 이익만이 보장되는 일이라면 그 일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도 자연스럽게 가려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님의 글은 강유원이라는 사람 개인의 행위가 출판시장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평가와 함께 그라는 사람 개인의 인물 비판이라는 관점에서도 보다 분명한 지적이 뒤따라야 합니다.

    그가 이러저러한 희생을 무릅쓰고서라도 - 제 살 파먹기 식의 - 추구하는 이익의 성격이, 그것의 실체가 님의 생각으로는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가오를 잡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가오를 잡음으로서 그가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단지 작가로서 이익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식의 허세를 부리고 폼을 잡는 것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충분치 못한 지적이지 않을까요?

    이것은 따지고 들자는 것이 아니라 님의 생각이 어떤지 보다 분명히 알아듣고자 하기 위함입니다.

    제가 강유원 블로그를 보며 느끼는 것은 그것이 공개된 블로그이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장소임에도 어떤 있을 수 있는 담화나 논의의 전개를 '선생과 제자' 라는 위계적인 구도의 틀을 만듦으로서만 성립시키려는 경향이 지나치다는 것입니다.

    특히 상대방이 던지는 발언의 요지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보이기도 전에 글쓰기에 익숙치 못한 사람들이 흔히 보이는 사소한 문법상의 오류나 맞춤법을 문제삼으며 면박을 주는 일도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것을 보면 더욱 부정적인 인상을 받게 됩니다.

    그런 행위가 단순히 그 사람 자신의 인격을 말해주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철학과 인문학을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는 명분으로 매우 지당한 행위인 양 포장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블로그는 한 시대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인간 대 인간으로서 생각과 대화가 오갈 수 있는 평등의 장이지 선생과 제자로 등록되어야 하는 강단의 연장일 수가 없는데, 강유원 씨의 블로그는 그런 점에서 매우 시대착오적인 느낌의....무슨 스콜라 철학 시대를 연상시키는 분위기가 팽배하더군요.

    그가 자신의 저작이나 강연과 블로그에서 보여주는 활동이란 게 기존의 인문학 텍스트의 보급이라는 차원에서 인문학적 지식을 전달하는 정보 제공 서비스의 일종인 정도인데, 마치 이 세상 모든 문제 해결의 열쇠가 그것에 달려 있다는 식으로 지나치게 엄숙화하며 위계적으로 다루려는 태도는 외부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오히려 인문학 일반에 대한 거리감을 넘어선 경멸과 환멸을 가져올 뿐이라고 보여집니다.

    이런 느낌을 가진 저의 생각으로는 노정태 님의 발언이 강유원이라는 사람의 인물 비판에 있다면, 즉 출판물을 파일로 공개하는 행위가 그 자신을 중심으로 한 이러한 사적 분위기에 일조하는 작용을 한다는 의미에서라면 그것은 출판시장 얘기를 떠나서 그 자체로 문제가 있는 사용이라는 뜻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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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님들 전 강유원이 좋아영 넘 좋아영 우리 선생님 욕하지 마세영 질질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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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작성자가 댓글을 삭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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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시원하군. 아름다운 청년의 글,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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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시간이 흘러도 여전하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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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상대방의 의도가 그리 궁금했으면 게시판이나 메일로 확인해 보면 될 것을, 어떤 사실 추궁의 노력조차 없이 황당한 근거들을 가지고 거의 음해 수준의 글을 일방적으로 써서 굉장한 담론을 이야기하듯이 오바하는 이유가 뭘까. 이야말로 가오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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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상대방의 의도가 그리 궁금했으면 게시판이나 메일로 확인해 보면 될 것을, 어떤 사실 추궁의 노력조차 없이 황당한 근거들을 가지고 거의 음해 수준의 글을 일방적으로 써서 굉장한 담론을 이야기하듯이 오바하는 이유가 뭘까. 이야말로 가오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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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매체로서의 책’이라는 개념 규정이 ‘정보 전달 매체’로서의 책의 독점적 지위를 증거하지는 못합니다. 책의 본질적 가치를 정보 전달 매체로 규정하는 것이 책의 ‘물성에 현혹’된 구매 행위와의 차별성을 내세우는 근거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비싼 비용을 지불해 가면서 왜 꼭 책을 구매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주지는 못합니다. 정보 전달 기능만 고려한다면 오히려 온라인 환경을 활용하여 정보 생산자와 독자가 직접 만날 수 있는 환경이 효율적인 측면이 있어 보입니다.

    굳이 “합리적인” 컨텐츠 소비자가 “정보를 안정적이고 완성된 형태로 전달하는, 유구한 역사를 지니는 매체로서의 책”의 위기에 대해 책임감을 가질 이유가 있을까요? 노정태님도 인정하고 있듯이 그들은 자신이 얻게 될 효용과 지불 비용의 크기에 따라 책이라는 아날로그 상품을 구매하든지 아님 디지털 컨텐츠를 찾으면 그만인 것입니다. 변화된 매체 환경 속에서 책이 어떤 특성을 가진 매체인지, 그리고 독자들이 그러한 특성에 대하여 동의하는지의 여부가 중요한 것이지 단순히 매체로서의 속성이 책의 본질적 가치라고 규정하는 것은 출판 시장을 지키기 위한 논리로는 매우 허약해 보입니다.

    “책의 물건으로서의 성격”은 도외시한 채 “출판업의 기본적인 여건”을 얘기한다는 것은 공허한 말장난에 그칠 수 있습니다. 책의 ‘물성’을 부인하는 것은 그것을 만들어 내는 데 참여한 여러 출판 종사자들의 ‘창조적’ 활동이 개입할 여지를 없애 버림으로써 정보 전달 매체로서의 책의 ‘독점적 지위’에 기생하는 존재로 전락시킬 수도 있어 보입니다. 출판 종사자들은 단순히 책이라는 매체를 만드는데 참여했기 때문에 보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매체 생산 과정에서의 일정한 역할에 의해 사회적 보상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문자 텍스트를 보다 정교하게 벼리고 ‘보기 좋게’ 다듬는 작업을 통하여 책이라는 상품에 ‘물성’을 부여하는 것이 출판 종사자들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출판 시장이 계속해서 독자적인 시장으로서 남아 있기 위해서는 ‘책은 그 자체로서 완성된 고귀한 어떤 것’이라는 식의 고답적 자세를 버리고 상업적 출판물은 시장 기제에 의해 유통될 것을 전제로 만들어진 ‘상품’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여 적극적인 시장 개발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만 할 것입니다. ‘좋은 책’이라는 것을 독자들이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독자들은 책을 직접 보거나 아니면 책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는 한 그 책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의 눈에 띄게 하는 활동이 필요한 것입니다. 마케팅 기법들을 천박한 것으로 치부하지 말고 독자들과 보다 적극적인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도구로, 또 출판’산업’의 발전을 위한 도구로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검토되어야 할 것이 출판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관한 문제인데--물론 이것도 마케팅 활동의 일환으로 치부될 수도 있겠지만--출판업이 ‘지식’을 매개로 독자들과의 거리를 줄이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력이 안 되는 작은 출판사에서 시도하기에는 쉽지 않은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각자의 규모에 맞게 저자와 독자가 직접 만날 수 있는 공간(온라인 또는 오프라인의)을 확보하고 각자의 지향점에 부합하는 사회 교육의 장을 마련하여 독자와의 일상적인 접촉의 기회를 넓혀 나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공간은 활용하기에 따라 지명도가 낮은 신인 발굴의 장으로 활용될 수도 있을 것이고, 양질의 컨텐츠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출판업이 불황이라고들 하지만 지표상으로는 꼭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나 생각합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집계하는 출판 통계에 의하면 2000년에 비해 전체 발행종수와 발행부수가 1.5배 정도 증가했습니다. 철학서의 경우를 보더라도 발행종수는 2000년의 600종에서 2007년에는 1,282종으로 2.1배, 발행부수는 2000년의 1,075,800권에서 2,588,031권으로 2.4배 정도 증가했습니다. 또한, 국립중앙도서관에 펴낸 <2006년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성인 1인당 연평균 독서량이 96년의 9.1권에서 2006년에는 11.9권으로 매년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특정 분야나 개별 출판사에 따라서는 부침이 있을 수 있겠지만 지표상으로는 전체 시장의 침체로 일반화하기에는 어려워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어렵다는 얘기가 나오는 오히려 출판물을 ‘기능성 내의’ 정도로 생각하는 ‘장사치’들이 전체 시장을 흐려 놓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출판사 재무제표를 분석하다 보면 홈쇼핑이나 대형 할인점, 인터넷서점 등 할인 채널에 의존하는 회사들의 경우 대체로 성장 둔화와 수익 감소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책과 독자와의 관계를 돈으로만 설정하려 했던 데서 오는 당연한 귀결이겠지요.

    최근의 가격 상승 원인에 대해서도 원자재 가격 인상 등의 원가 상승 요인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다 싶은 감이 없지 않은 것은 정가 인상이 유통 채널의 문제와 관련이 있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즉, ‘현시적 소비’ 때문에 가격이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서점을 비롯한 가격할인 채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다 보니 미리 가격 할인폭 만큼을 정가에 반영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많이 팔리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많은 고민이 녹아 있는 책은 ‘좋은 책’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그 고민의 중심에는 ‘독자’가 놓여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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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출판사에서 공개를 허락했는데, 뭐가 그리 말이 많으신지, 신기하군요. 강유원 씨에게 한이라고 맺힌 것 같습니다. 자기 인생을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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