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표된 연구에서 피쉬와 크뢰닉은 각국 전문가 700여 명이 참여한 조사 분석을 통해, 세계 158개 나라 입법부의 권한을 비교하고 순위를 매겼다. 의회의 권한은 다음 네 가지 범주의 변수들을 사용해 측정했다. 행정부에 대한 영향력(국가 원수 탄핵권 등), 자율성(국가 원수의 의회 해산권 등), 고유 권리(전쟁 선포권 등), 실제로 작동하기 위한 능력(의회 직원을 고용할 예산 등)이 그것이다.
분석 결과, 강력한 입법부를 가진 나라일수록 훨씬 역동적인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음이 밝혀졌다. 입법부가 취약하면 행정부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며, 특히 독재자가 권좌에 올랐을 때는 속수무책이 된다.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교수인 피쉬는 "오늘날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은 다름 아닌 대통령"이라고 말한다. 만일 어떤 나라의 입법부가 대통령에 대항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면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12, "국회가 살아야 민주주의가 산다", 〈In Box〉,《Foreign Policy》한국어판, 2008년 3/4월호)
한편 아직까지 대한민국은 '제왕적 대통령제'라 불리는 중앙집권적인 정부 구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령 Bertelsmann Transformation Index에 따르면 한국의 현황은 다음과 같다.
South Korea, however, has not evolved into a liberal democracy. The country’s political system is characterized by a concentration of power in the presidential office, especially when the party of the president holds a majority in the parliament.(Bertelsmann Stiftung, BTI 2008 — South Korea Country Report. Gütersloh: Bertelsmann Stiftung, 2007.)
집권여당이 그냥 그 이름을 달고 있는 국회의원만을 과반수 이상, 또한 그 당에서 나온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3분의 2에 육박하는 의석을 확보했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해가 되면 해가 되었지 결코 득이 되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민주주의의 민주화"가 필요하다는 최장집 학파의 견해 중 '제도적 민주주의'가 이미 달성되었다는 부분에서 '제도적'에 괄호를 치고 나면, 남는 것은 아이추판다님과 같은 '민주주의 발전도상론'이나 홍준표식의 '민주주의 완성론'밖에 없다. 그 양자는 모두 최장집이 진행하고 있는 민주주의 담론을 속류화한 견해인데, 둘 다 정치적으로 그리 긍정적인 효과를 낳지 못한다. 최장집의 민주화 담론에 대해 섬세한 독해가 요구되는 것은 바로 그래서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