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집은 현재 한국에 존재하는 모든 지식인 중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비록 그가 바라던대로 총선에서 심상정과 노회찬이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연구하는 대상인 한국 사회가 바로 눈앞에 존재하고, 그의 말을 들어주는 지식인 집단과 대중을 확실히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적으로 낙후되고 또한 소외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한국 지식인과 비교해볼 때, 최장집이 누리고 있는 '지적 탐구의 직접성'은 부러움을 살만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런 그는 노무현 정권이 '왼쪽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하는 것'을 진작부터 대단히 못마땅하게 생각해왔다. 그래서 최장집은 탄핵 사태가 벌어졌을 때에는 선관위와 헌법재판소를 비판하였지만, 사태가 수습되고 유시민이 민주당을 파국으로 몰아가던 시점부터는 꾸준히 노무현 정권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유지해왔다. 그 중 많은 이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것은 '정권이 한나라당으로 바뀌어도 상관 없다.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민주적이다'라던 그의 대선 관전평이다. 수많은 '노빠'들이 그 시점에 최장집을 헐뜯기 위해 안달이었지만, 한국에서 가장 행복한 지식인이며 동시에 가장 존중받는 학자 중 한 사람인 그에게는 이빨조차 먹히지 않는 일이었다.
문제는 이와 같은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탐색이 피상적인 차원에서 소화될 경우 낳는 부작용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가령 지금 내가 읽고 있는 "대단히 만족스러운 선거 결과"(Null Model, 2008년 4월 10일)라는, 아이추판다님이 쓴 글을 읽어보자. 여기서 아이추판다님은 "한국의 민주주의는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보더라도 정상적으로 잘 작동하고 있다"라고 자신있게 선언하며 글을 시작한다. 그 내용은 앞서 말한 최장집의 사고방식을 이번 총선에까지 확대 적용한 것이다. 그 논지는 "통합민주당은 확실히 말아먹었고 아직까지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은 이렇다할만큼 말아먹은 일도 없다면(말아먹을 시간도 없었지만) 권력이 민주당에서 한나라당으로 넘어가지 않는것이야말로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어딘가 고장나 있다는 확실한 증거다"라는 문장에 잘 요약되어 있다.
노무현 정권의 실정이 대선 역사상 가장 낮은 투표율과 함께 이명박을 당선시켰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 진실을 외면하고 싶었던 노무현 지지자들에게 최장집이 비춘 진실의 햇살은 마치 장농 밑의 바퀴벌레들에게 사정없이 내리쬐는 형광등 불빛과도 같았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 그 단순한 공식을 그대로 대입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아이추판다님은 "뭘 말아먹었는지 얼마나 말아먹었는지는 사람마다 판단이 다를 수 있겠지만 집권여당이 정권말기에 당 간판을 내렸다면 하여간 무엇이든 심각하게 말아먹었다는 건 분명해보인다"라고 하지만, 구 열린우리당이 당 간판을 내리고 아작이 나게 된 것은 노무현 유시민을 비롯한 일부 정치적 급진주의자들이 지역감정의 해소라는 이념적 당위를 위해 정당의 존립 근거를 전부 뒤흔들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지, 그 자체가 노무현 정권이 행정부 차원에서 벌인 실책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유시민과 이해찬 등 이른바 '친노' 계열과 정동영을 선두로 하는 신규 당권파들이 기존의 민주당 세력과 분당하면서, 지역적 기반을 전혀 갖추지 못한 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의석을 갖게 된 '탄돌이'만으로 구성된 정당이 바로 열린우리당이었다. 망하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앞서 나는 이 글을 시작하면서 최장집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행복한 지식인이며, 동시에 식자층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아이추판다님이 보여주고 있는 사고의 궤적 또한, 일종의 '속류 최장집주의'라고 불려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최장집의 정교한 논변은 그 자체로서 섬세한 맥락 하에 전개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렇듯 단순하게 눈앞에 보이는 모든 사례에 적용되어서는 안된다. 이 부분은 책이 없어서 정확한 인용이 불가능한데, 최장집은 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정당정치의 활성화, 국민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정당 구조 개편 등을 제시한 바 있다. 그렇다면 구 열린우리당 계열의 통합민주당 의원들이, 단지 자신들이 당권을 점하기 위해 벌인 정치적 투쟁과 그것이 불러온 지지층의 이탈에 대해서는 다소 다른 차원의 해석이 필요하다. 현재 벌어져버린 한나라당의 과반수 의석 점유를 단지 '지난 정권의 실정' 탓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노무현 정권 계속 심판론'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급감한 투표율이 말하는 바와 같이, 노무현 정권을 심판하지도 않고 그냥 정치적 의사 표현을 포기해버렸다.
투표율의 하락에 대해서도 아이추판다님과 같이, 그것을 모두 '건강한 민주주의'의 발로라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이번 총선의 가장 큰 특이점 중 하나는 통합민주당과 한나라당 의원들이 내놓는 공약에 거의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정동영과 정몽준이 맞붙은 동작을의 경우, 두 후보 모두 동작 지역에 뉴타운을 건설하겠다며 목청을 높였다. 다른 곳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야당 후보와 여당 후보가 모두 뉴타운을 건설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울 때, 여당 후보가 이기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이것은 국민들이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건 괜찮을 것이다'라고 민주주의적인 낙관을 품고 있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 '나라가 망하건 말건 우리 집값부터 올리고 보자'는 근시안적인 개발 환상에 젖어있었다고 해석하는 편이 더욱 정확하다. 이번 총선이 얼마나 '뉴타운 선거'였는지를 알고 싶다면 KBS 스페셜 "노회찬과 상계동 사람들"의 시청을 권한다. 후마니타스 박상훈 주간의 말마따나 이번 선거는 민주화 이후 최악의 선거였다.
여기서 더욱 우려가 되는 것은 현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진지하게 인식하지 않는 사람들의 수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가령 sonnet님은 "총선 단상"(a quarantine station, 2008년 4월 10일)에서 "지금 반 한나라당 성향의 사람들은 어짜피 친박세력이나 선진당은 다 그나물의 그밥이라고 평면적으로 생각하는 모양인데, 친박세력의 한나라당 복당을 허용하면 (지금도 헐거운) 히데요시의 당 장악력은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기 때문에 이 문제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는 주장을 편다. 그 밑에 달린 리플들을 보더라도 이러한 인식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적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오히려 사태를 지나치게 입체적으로 보고자 함으로써 한나라당과 친박연대 및 범 보수 진영을 관통하는 계급적 이익을 전혀 바라보지 못한다. 나름대로 개혁적이라고 표방하고 있던 열린우리당? 아, 열린우리당(당명을 하도 자주 바꿔서 혼동이 있었다)이 겉으로는 그렇게 싸우다가도, 비정규직법 개악에 있어서만큼은 일치단결하여 일사천리로 국회 통과시키던 광경을 기억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물론 박근혜와 이명박이 박터지게 싸워서 이명박 맘대로 운하를 못 팔 수도 있다. 하지만 한미 FTA는 국회에서 통과될 것이고 노동법은 이번 국회 내에 한층 더 개악될 것이며, 현재의 파견근로법 따위가 나아질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지금 이상의 최악으로 나아갈 것임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다. 범 한나라당 계열에서 벌이게 될 이러한 대대적인 악법의 연속에 맞설 수 있는 방안은, 현재로서 전혀 없다.
다시 최장집으로 돌아가보자. 그가 노원과 덕양을 오가며 심상정과 노회찬을 지원하고 있었다는 것은, 이번 선거에서 두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한국의 민주주의 그 자체에 큰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었다는 점을 방증한다. 노회찬과 심상정은 삼성의 로비가 통하지 않는다고 공인된, 매우 드문 정치인이다. 그들이 국회의원으로서 보여준 실력과, 특히 노회찬이 가지고 있었던 전국적인 단위에서 대중들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는 능력은 그 자체가 한국 정치의 드문 희망이었던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지막지한 '시장주의'의 질주를 막기 위해서는, 그와 반대되는 방향의 사회적 합의가 구성되어야 하고, 그것은 결국 정치라는 과정을 통해서만 형성될 수 있다.
나는 지난 글을 통해 노회찬이 지역구 차원에서 또한 공약 차원에서 실패하였다는 말을 한 바 있다. 그것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정치적 비전이 무엇인지에 대해 탐색해야 한다는 요청이다. 노회찬과 심상정은 그러한 목적에 가장 잘 부합하는 인재였다. 그런 그들이, 비록 선전하였지만 국회에 입성하지 못했다는 것은 한국 사회의 전체적인 행보에 대단히 짙은 암운을 드리우는 사건이다. 한국의 현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자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천하는 최장집이, 과연 언제까지 '행복한 지식인'으로만 살 수 있을지, 이제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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