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본적으로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종합대책' 중, 부동산 버블을 지속하기 위한 목적이 너무도 뚜렷하게 보이는 것들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가령 양도세 완화라거나, 종부세 완화, 다주택소유자에 대한 중과세 완화, 투기지역 해제, 분양가 상한제 폐지, 기타등등. 이 모든 것들은 안그래도 포화상태인 현재의 건설경기에 기름을 끼얹는 것인데, 이미 버블이 꺼지는 조짐이 너무도 뚜렷하게 보이는 상황이라 시장은 결코 반응하고 있지 않다.
문제는 한국은행이 단행한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들이다. 최근 2~3일간 도드라진 그러한 견해들은, 내가 보기에는, 중앙은행과 행정부의 역할을 분리해서 사고하지 않는 결과 발생하는 오류처럼 보인다. 이성태 한국은행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바와 같이, 한국은행은 현재 요동하는 환율이 국내 시장보다 외재적 변수에 의해 움직인다고 판단하고 있고,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또한 환율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지난 8월 금리를 올렸는데도 환율이 폭등한 사례를 놓고 볼 때, 금리와 환율의 상관관계가 발생하기에는 지금 국제적인 사건이 너무도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으며, 따라서 그것은 단기간의 외환/통화정책으로 이해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앞서 말한 인터뷰에서 계속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내년도 경제성장률이 침체 국면에 접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이것은 중앙은행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업무 내용 중 하나일 것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여기서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한국은행과 정부가 건설경기 부양 OK? OK! 사인을 주고 받은 후 기준금리를 내리고 온갖 감세안과 규제완화책을 내놓고 있다고 생각하는 데 있다. 물론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대의에 동참하도록 강만수가 이성태를 설득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한국은행은 정부가 '어떤 경기를 되살릴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 정상적인 정부라면 이 침체 국면에서, 최대한 국민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나서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명박과 강만수는 파던 삽질 마저 파는 것 말고 아무 생각도 하고 있지 않다. 이것마저 한국은행이 책임져야 할 일처럼 논의가 흘러가는 것이 나는 매우 의아하다.
우석훈 박사가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을 보더라도, 많은 이들이 시중금리와 기준금리가 따로 노는 것을 지적하며 기준금리 인하 정책이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앞서 나는, 어차피 현재 상황에서 환율은 외재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전제하고 있으므로,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환율이 내려갈 것이라고, 따라서 '주권'인 환율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
(여담이지만 '환율주권론'은 원래 강만수의 트레이드 마크 아니었나. 우석훈 박사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는 것을 보게 되다니, 그 분의 책을 거의 다 읽은 나도 뭘 잘못 알고 있었나보다.)
중앙은행이 장래의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정부는 그에 맞춰 낙후된 산업을 정리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일으켜야 한다. 국내 경제만 놓고 보자면 이것이 정답이다. 문제는 한 쪽에서는 제대로 정답을 말하고 있는데, 다른 한 쪽과 손발이 안 맞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금리인하는 건설경기 부양책'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이 둘을 전혀 구분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말하자면 금리인하는 □□경기 부양책이다. 저 안을 무엇으로 채워넣을지는 정부의 몫이지, 중앙은행의 결정사항이 아니다. 여기까지 내가 말한 바에 동의할 수 있다면, 금리인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 내가 느끼는 의아함에 대해서도 충분히 공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본다.
나는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이, 국가의 운영 방식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그리고 그 외 독립기관들은 각자 자신들이 추구하는 '올바른 국가상'을 향해 나아가게 되어있고, 그 과정에서 서로를 견제하며 권력의 남용을 막는다. 한국은행이 생각하는 '올바른 나라'는 '내년에 경기침체를 덜 겪는 나라'다. 그런데 이명박과 강만수가 생각하는 '올바른 나라'는 '아파트 가격이 계속 올라가는 나라'다. 이 두 가지를 싸잡아서 이야기할 수는 없다.
이 시점에서 뇌사상태에 빠진 한국 지성계에 '기준금리 논쟁'이 붙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것이 환율에 도움이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은 거의 이구동성으로 한국은행과 정부의 대책 전부에 대해 반발의 목소리가 커지는 시점인데, 여기서 두 가지 경제 주체를 나눠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칫하면 '실컷 이명박 욕만 하다가 어영부영 위기가 해소되었는데, 정작 제 역할을 한 중앙은행은 조용히 묻히고 강만수만 연임하고 이명박은 으스대는 상황'을 연출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기준금리 논쟁'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현재 국내외에서 한국 경제에 대해 코멘트하고 있는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한국의 경제 상황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 명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경제 문제마저 '이명박 대 반 이명박'으로 단순하게 나누어지는 담론적 구성을 타개하고, 그 과정에서 한국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도 비로소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방침에 찬성한다.
지금 한국의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금리이하와 환율간의 실효적 상관관계를 따지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현재 어떻게 하든 사실상 '큰 상관관계'가 없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듯 말씀하시지만 지금에 있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금리인하는 앞으로 닥칠 심각한 디플레 위험에 대비한 정책적 대응으로 아껴두어야 합니다.
답글삭제더불어 중요한 것은 이성태 한은총재의 갑작스런 부양론자로의 전향이며 금리인하의 폭이 대폭적인 0.75%를 보였다는 것, 그리고 이 기준금리 인하가 부동산 거품 붕괴충격이 더 크도록 하는데 일정부분 기여한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총체적으로 시장에게 주는 시그널은 심각합니다.
지금은 정부가 부동산 시장에 매도압력을 주어야 하는 시기이지요... 구조적 본질을 보시고 별 중요성도 없는 금리인하냐 인상이냐에 목숨을 걸지 마세요...
혼동하시는 것 같아서 덧붙이는데 중앙 은행의 최우선 목표는 물가 안정입니다. 경제 성장률 걱정은 정부의 몫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나라에서 정부와 중앙 은행 사이의 자율과 견제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면 중앙 은행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금리 인하를 단행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답글삭제우리 경제의 펀더멘탈에 대한 의심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원화 가치를 더욱 약화시킨다는건 외환 시장에서 원화 수요 유인을 더욱 떨어트립니다. 더 큰 문제는 올해 초 정부의 금리 인하 압박에 굴하지 않았던 것 같은, 그나마 있었던 중앙 은행의 자율성이 다 사라지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시그널링을 시장에 보내게 됩니다.
금융위를 통해서 통화량 확대 압박도 있는걸로 알고 있는데 (이 역시 성장률 확대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물가에는 큰 악재입니다, 물가를 방치하면 결국 그게 성장률을 몽땅 잡아먹을 겁니다) 그걸 보면 더욱 확실히 알 수 있겠죠.
익명/ 중앙은행의 최우선 목표가 물가안정이라는 명제는 어떤 경제학자가 주장했는지요?
답글삭제프리드만이 그 주장을 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케인즈주의자들도 그 명제에 동의하는가요.
안녕하세요? 포스팅과 상관없는 댓글이라 죄송합니다만, FP Korea 편집장님 앞으로 책 한 권 보내드려도 될까요? 리뷰 청탁처럼 보일까 봐 일부러 기다렸다 말씀드리는 거니 행여나 부담은 갖지 마시고요:) 이유는...팬이라서입니다. 그래도 부담스럽다고 하시면 할 수 없지만 일단 말씀드려봅니다.
답글삭제모든 방문자께: 답글이 늦어 죄송합니다.
답글삭제익명/ '앞으로 닥칠 심각한 디플레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바로 지금 금리를 내려야 합니다. 미국 내에서 20년만인가, 아무튼 아주 오랜만에 소득 중 소비액 비율이 줄어들었다고 하죠. 세계 경제는 빙하기까지는 아니어도 꽤 추운 내년과 후년을 보내게 될 겁니다. 그에 대한 대응은 당연히 지금부터 해야 하는 거고, 중앙은행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대응은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부동산 경기를 무리하게 유지하려고 하는 것은 저 또한 결코 동의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줄곧, 중앙은행과 정부의 역할을 구분해서 비판하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금리를 인하하지 않거나 도리어 인상하는 것은, 한국은 내년도 경기가 아무리 위축된다 한들 그보다 환율 문제가 더 시급한 나라다, 줄여 말하자면 '우리는 이미 망해있다'라는 신호를 외국에 보내는 것밖에 안 됩니다.
중앙은행의 최우선 과제가 물가 안정이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그 외에 다양한 과제가 있다는 사실을 도외시하시는 것 같습니다. 명백히 디플레이션이 예상되는 이 시점에, '최우선 목표'만을 붙들고 있을 수는 없죠. 저는 이성태 총재가 입장을 바꾼 것이 매우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결과 이명박 정부가 요구하는 '금리인하'를 하게 되었지만, 이명박이 요구한다고 해서 무조건 악한 일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거죠. 좋은 리플 감사합니다.
익명/ 중앙은행의 역할을 보는 것 자체가 경제학파를 가르는 기준선이 되지만, 경제 문제는 결국 실증적으로 판가름나게 되어 있으므로, 위에서 리플을 달아주신 익명의 방문자님께 굳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요구하실 것까진 없을 것 같습니다.
익명/ 네, 보내주셔도 괜찮습니다. 청탁의 요건이 갖춰져 있는 경우라면, 원고를 청탁하셔도 무방합니다. 제 개인적인 연락처는 공지사항에 써 있으니 그 정보를 참조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위에 중앙 은행의 유일한 목표는 물가 안정이라는 덧글을 남겼었는데 늦게 보고 추가로 남깁니다. 익명이 많아서 헛갈리네요.
답글삭제중앙 은행의 목표에 대해 여러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저는 그런 경제학적 논쟁에 대해 이야기 한게 아니라 한국은행법 1조에 의거해 드린 말이었습니다. 한국 은행이 현 상황에서 금리를 내리고자 한다면, 그리고 물가 안정 외의 다른 방법으로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한다면 우선은 법률을 바꿔야겠지요.
이 법률안의 개선 여부, 위헌 여부, 경제학적 논쟁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의 덧글과는 약간 다른 문제니 여기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다른 나라들도 다 같이 내리고 있으니 어차피 모두 다 함께 골로 가는 일은 없을 거다라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도 현실적으로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쨋거나 지금의 결과는 시간이 흐르고 나면 좀 더 분명해 지겠죠. 금리가 내려가고 있으니 이 블로그 필자분의 말씀이 옳기를 바라는 수 밖에요.
저도 말씀을 듣고 한국은행법을 찾아봤습니다. "이 법은 한국은행을 설립하고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하여 물가안정을 도모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있군요. 아마 법관들은, 누군가 방문자께서 지적하신 바처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가 한국은행법 1조에 어긋나므로 무효라는 행정소송을 낼 경우,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 이 법의 최종적인 목표이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는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이라고 해석할 가능성이 큽니다. "물가안정의 도모"가 명시되어 있긴 하지만, 오직 저것만이 한국은행의 존재 이유라고 볼 수는 없다는 거죠. 좋은 지적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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