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04

[별별시선]기성세대의 염치

“보수나 진보 할 것 없이, 기성 지식인이나 청년 논객 할 것 없이 지금의 청년들을 뭔가 구별지어 특별하게 다루어주는 듯한 각종 형태의 ‘청년 담론’들을 즐비하게 내놓고 있다. 이것들을 조심하라. 답은 ‘다수화 전략’에 있다.” 지난달 11일, 경향신문에 실린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의 칼럼 ‘또 하나의 기울어진 운동장’의 결론이다. 인용문에서 지적된 ‘청년 논객’에 속하는 한 사람으로서, 대답해볼 필요가 있겠다.

칼럼이 게재될 무렵, 새누리당은 “청년 일자리를 위하여 임금피크제를!” 같은 구호의 플래카드를 내걸고 노동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이러한 정치적 수사는 청년들을 중장년층과 대립하게 만들어 고립시키고, 결과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유지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홍기빈의 지적이었다.

얼핏 들으면 맞는 말처럼 보인다. 하지만 “1992년 대선·총선 이후의 한국 정치는 이른바 ‘민주화’ 세력을 호남과 수도권 일부로 고립시키고, 영남을 중심으로 전국의 보수 지배세력이 하나로 뭉치는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대립 구조에 지배당해왔”다는 대목을 보면, 그의 논리 구조가 결국 ‘피해자 탓하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92년 이후 한국 정치에서 호남이 고립된 것은 김영삼이 3당 합당을 통해 민주화 세력의 절반을 군사독재 세력과 뒤섞어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노무현은 바로 그 3당 합당이 벌어지는 현장에서 ‘이의 있습니다!’라며 반대했고, 결국 통합민주당에 합류한 사람이다. 호남의 고립은 호남의 탓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김영삼의 지지 기반인 영남이 등을 돌려서 벌어진 일이다.

청년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왜 청년 실업률이 외환위기 이후보다 높을까? 정부의 주장대로 임금피크제가 시행되지 않아서라고 할 수야 없겠으나, 청년 실업률을 높이는 주된 원인에 진보 진영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 번 비정규직으로 시작하면 절대 정규직으로 올라갈 수 없는 노동시장의 구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노동시장은 이중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정규직, 대기업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같은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상 다른 나라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자를 ‘1차 노동시장’이라고 하고, 후자를 ‘2차 노동시장’이라고 부른다. 그 사이에는 임금, 고용안정성, 노동조건 등에 있어서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고 있다.

이것은 한 번 ‘눈높이를 낮추면’ 다시는 고개를 들 수 없는 유사 신분제에 가깝다. 당연히 청년들은 처음부터 ‘1차 노동시장’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된다. 진보 진영에서는 자본과 정부의 책임만을 묻는다. 하지만 조합주의에 빠져버린 노동계 역시 이 사태에 있어서 결코 결백하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홍기빈이 청년들에게 요구하는 ‘다수화 전략’은, 노동조합 조직률 10%대를 맴도는 한국의 노동계가 진작에 수행했어야 한다.

청년들은 정부에 속고 있는 게 아니다. 중장년층이 가지고 있는 ‘양질의 일자리’ 지키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진보 진영을 믿지 않을 뿐이다. 높은 연봉을 받는, 잘 조직되어 있는 일부 대기업 생산직에서 이미 가족이나 친지를 대상으로 한 ‘일자리 대물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 아닌가. 같은 라인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차별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통을 모른 체하면서 말이다.

대체 청년들이 뭘 어쨌어야 한다는 말인가? ‘청년 담론’은 때로 보수의 분할 통치 방안으로 동원된다. 하지만 청년들을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노동의 영역에 분할 통치와 이간질이 가능한 차별이 존재함에도, 그것을 미리 바로잡아놓지 않은 스스로를 먼저 돌아보려는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좀 해줬으면 한다. 그것이 기성세대가 보여줘야 할 최소한의 염치라고, 한 ‘청년 논객’은 외치는 바이다.


입력 : 2015.10.04 20:48:37 수정 : 2015.10.04 20:52:0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10042048375&code=990100#csidxf53f26551e49056a682ddaf2c5c432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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