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02

탄핵은 대박이다

지지난주 토요일의 일이다. 충무로 인근에 즐겨 가는 한 식당이 있다. 닭을 주재료로 사용하는 집이며 백숙을 잘 삶는다. 그런데 광화문 집회를 몇 시간 앞두고 좀 일찍 저녁을 먹으려 가보니 닭이 다 떨어졌다는 것이다. 백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몰리면서 광화문과 종로 인근을 넘어 충무로까지 식당 매진 사례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것도 창조경제라면 창조경제다. 요즘 분위기 살아난 광화문은 그렇다 치더라도, 주말만 되면 한산하기 그지 없었던 종로와 청계천 일대 상가들까지 '촛불 특수'로 북적거리게 만들었다니 경이로울 따름이다. 경찰이 적극적으로 시민들의 통행을 막지 않으니, 2008년에는 아예 장사를 못하고 울상이었던 광화문과 종로 인근의 대형서점들도 부쩍 늘어난 유동인구의 온기를 느낀다.

그러나 서울 시내의 촛불 호경기는 웃을 일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 앉아 버티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대한민국의 경제가 통째로 마비되어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일부를 제외하고 대기업들은 박근혜 게이트의 불똥이 언제 어디로 튈지 몰라 임원 인사를 한없이 미루고 있다. 경제 성장률 하향이 예상되지만 민간이건 공공이건 경제 연구소들은 한없이 비관적인 수치를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한다. 체감 경기는 한없이 얼어붙었고, 이제는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던 5000원짜리 순댓국집들 중에도 폐업하는 곳이 보인다.

박근혜가 청와대에서 버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발생하는 경제적 효과가 정말 굉장한 것이다. 관련 보도를 인용해보자. "2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6년 11월 소비자동향조사’ 자료를 보면 11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5.8로 조사됐다. 10월보다 6.1포인트 떨어진 것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4월(94.25) 이후 7년7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링크)

한국 대기업들에 대한 신뢰 역시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다. 우리 한국인들끼리야 원래 그랬거니,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현실이 영화보다 저질이구나, 하고 덤덤하게 지나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해외 투자자들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최순실 사태로 인한 국정 불안에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원화 가치 하락이 겹치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증시에서 빠르게 돈을 빼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와 연루돼 총수의 이름이 거론되는 삼성전자(11월 1일 이후 순매도 4627억원), 현대차(321억원), SK텔레콤(408억원) 등 9개 재벌 그룹 관련주도 대부분이 외국인 순매도를 기록 중이다. 이 9개 그룹이 코스피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에 육박한다."(링크)

국내 소액 주주들의 심정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다. 당신이 해외 투자자라고 생각해보자. 스마트폰을 잘 만들어서 수익을 내고 배당도 많이 해달라는 생각에 그 비싼 삼성전자 주식을 매입했는데, 그 삼성전자가 정유라라는 들어본 적도 없는 승마 선수를 위해 수십억 짜리 말을 사고 관리비까지 대고 있었다고? 그래서 검찰에 의해 압수수색을 당하고 있다고? 이건 갤럭시 노트7이 폭발한 것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황당한 사건 아닌가?

시간을 한 달 전으로 되돌려보자. 당시만 해도 한가한 소리를 하던 사람들이 많았다. 대통령에게는 외치와 국방을 맡기고 내정을 전담할 책임총리를 임명하면 어떻겠느냐는 식의 공허한 정치적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가 정치권에서 시끄럽게도 울려퍼졌다. 바닥 경제가 말라붙고, 외국인 투자자들이 돈보따리를 챙기고,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어 기상천외한 소리들을 하고 있는 판에, 한국의 정치권 중 일각은 이 난국을 합법적 절차에 의해 해결하려 들기는커녕 최대한의 정략적 이해만을 도모하다가 헛된 시간을 보내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이 궁지에까지 몰렸다. 누군지 몰라도 법에 대해 잘 알면서 동시에 정략적 이간질에 능숙한 사람이 대신 써준 듯한 3차 대국민 담화문이 투척되자 일순간에 탄핵 대오가 흔들렸다. 이대로는 탄핵안을 발의할 수 있을지언정 통과시킬 수 없다는 게 분명한데도 야권 일각의 분노한 지지자들은 같은 편에게 '사쿠라', '부역자'라며 손가락질하는 모습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나는 대체 왜 이런 지지자들의 행태를 제1야당에서 제지하지 않는지 의아하지만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자. 중요한 건, 이제 더 물러설 길이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를 탄핵해야 한다. 그래야 경제가 산다. 최순실이 대신 써줬다는 의혹이 있지만 최순실 본인은 한사코 아니라고 주장하는 그 표현을 빌려보자. 탄핵은 대박이다. 끝없는 불황의 터널 속을 헤매고 있는 대한민국의 경제를 반전시킬 수 있는 단 한 장의 카드가 바로 탄핵안 가결이다.

생각해보자. 박근혜를 탄핵시키자고, 하야를 촉구하자고, 수많은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에 모여들면서 일대의 경기가 매주 주말마다 불타오른다. 만약 적법한 헌법적 절차에 따라 박근혜의 대통령 권한이 12월 9일 정지된다면 온 나라가 광장으로 돌변할 것이다. 마치 2002년 월드컵 당시 대한민국의 16강 진출이 확정되자 심지어 장례식장에서 눈물 흘리던 유족들도 환호성을 질렀던 것처럼, 4%의 골수 지지자를 제외한 모든 대한민국 국민들이 순식간에 축제 분위기에 휩싸이게 된다. 오늘날의 불황 속에 소비심리를 진작시키고 사람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도록 만들어줄 수 있는 이벤트가 이것 외에 또 있을까?

탄핵은 경제적, 정치적, 외교적 불안정을 해결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해법이다. 탄핵안이 통과되는 날 시민들은 축제를 벌이며 주가는 폭등할 것이다. 어쩌면 출산율도, 마치 2002년 월드컵 당시 그랬던 것처럼, 조금은 올라갈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중요한 건 탄핵안이 부결될 경우 현재의 우울하고 침체되어 있으며 무기력한 분위기가 반전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탄핵만이 해법이다. 이제 상황이 그렇게 되었다. 야당 정치인들은 광장에서 사진 찍을 생각 하지 말고, 비박계 의원들에게 '충성충성충성' 문자 보내고 바짓가랑이 붙잡고 부정청탁법을 어기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로비를 퍼부어라. 광장은 시민들이 알아서 지킬테니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일을 하란 말이다. 오직 비박계의 표를 확보해 탄핵안을 가결시키는 것이 당신들의 역사적 사명인 것이다.

영국의 권위있는 경제지 『파이넨셜타임즈』는 사설을 통해 박근혜의 퇴진을 요청하며 이렇게 마무리를 지었다. "박근혜가 결국 무대에서 물러나게 되는 것은, 대한민국이 더욱 강력한 민주주의와 함께 이 사건으로부터 솟구쳐오를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만한 이유가 되어줄 것이다."(링크) 성공적인 탄핵이 바로 그 출발점이다. 지금 탄핵하지 못하면 박근혜는 끝까지 버티려 들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의 임기가 끝나기 전까지 대한민국의 경제가 버텨줄 수 있을까?

탄핵은 대박이다. 12월 9일은 대통령 탄핵안을 표결하는 날이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 부활의 첫 단추를 꿰는 날이다. 탄핵안 가결을 위해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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