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 2020년 3월 14일 현재, 뉴질랜드의 코로나 19 바이러스 확진자는 총 몇 명일까? 정답은 5명. 눈을 의심할텐데, 다섯 명, 맞다. 감염 의심 증세를 보였으나 검사 결과 음성으로 나온 사람은 379명, 현재 감염이 의심되는 사람은 두 명이고, 사망자는 없다.
뉴질랜드의 인구가 480만명이 조금 안 되는 수준이라고 해도 이것은 실로 경이로운 숫자다. 한국의 확진자가 50명에 검사 결과 음성인 사람이 3800명 정도라고 생각해보면 금방 감이 올 것이다. 세계가 놀라고 경탄해야 할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을 하고 있는 곳은 다른 그 어디도 아닌 뉴질랜드인 것이다.
그런데 그 뉴질랜드의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2월 3일부로 중국발 외국인의 입국을 전면 차단했던 것이다. 1월 28일 컨트롤 타워에 해당하는 National Health Coordination Centre (NHCC)를 세운 후, 그 통제에 따른 대응이었다. 외국인의 경우 중국을 떠난지 2주가 지났음이 확인된 경우에만 입국을 허용했다. 사실상 '중국 봉쇄'를 단행한 것이다.
3월 14일 현재 대만의 확진자 수 또한 40여명 수준에 머물고 있다. 대만 또한 뉴질랜드와 마찬가지로,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초기에 중국으로부터의 입국을 전면 차단했다.
대만과 뉴질랜드, 두 나라에는 공통점이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초기에 중국으로부터의 외국인 입국을 막았고, 돌아오는 자국민을 철저히 추적 관리했다. 더 중요한 것은 두 나라 모두 섬이라는 것이다. 출입국 통제가 용이하다.
반면 한국은 어떨까? 한국 또한 사실상 섬이다. 뉴질랜드나 대만보다 더 훌륭한 의료 체계와 헌신적인 인력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의 초기 대응은 대만 및 뉴질랜드와 너무도 달랐다. 중국 본토로부터의 외국인 입국을 막지도 않았고, 중국에서 돌아오는 한국인에 대한 세심한 추적 관찰도 수행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은 '활발한 사회 활동'을 권유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사망자 수는 대만의 확진자 수보다 많다.
진지하게 묻자. 뉴질랜드와 대만의 중국발 외국인 입국 금지가 차별과 혐오의 표현인가? 뉴질랜드 총리 저신다 아던은 1980년생 여성으로, 세계 최연소 여성 지도자이며, 노동당이다. 대만 총통 차이잉원이 어떤 사람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진보 여성 지도자다. 차이잉원의 내각에는 오픈리 트랜스젠더 장관이 IT 기술을 총 지휘하고 있기도 하다.
중국발 외국인 입국 금지를 혐오냐 아니냐의 문제로 끌고 간,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친문 선전선동가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의 눈에는 차이잉원과 저신다 아던이 혐오와 차별을 주장하는 수구 꼴통으로 보이는가? 내 눈에는 그들이, 자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당연한 일을 담대하게 하는 국가 지도자로 보인다.
솅겐국(aka 유럽)이나 미국처럼 육로로 외국과 교통이 가능한 나라는 입국 금지가 별 효과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만이나 뉴질랜드 혹은 한국 같은 섬나라는 입국 금지를 하면 외국인이 못 들어온다. 입국 조건을 까다롭게 만들기만 해도 필요 이상의 왕래가 줄어들면서 감염 경로 추적이 용이해진다.
문재인 대통령, 한국 정부와 청와대는, 코로나 바이러스 발병 초기에 바로 그것을 하지 않았다. 60명 넘는 국민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남은 국민들은 언제 누구로부터 병이 옮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해 약국 앞에 줄을 선다.
세계가 한국의 코로나 대응을 칭송한다고? 웃기고 자빠진 개소리 집어치워라. 진정 바이러스 대응을 잘 해낸 국가들은 따로 있다. 지리적 여건을 살려 봉쇄에 성공한 나라들은 모두 수십 명 수준으로 감염자를 통제했고, 뉴질랜드의 경우 아무도 죽지 않았다. 대만은 단 한 명의 사망자가 나왔고 그때 보건 총책임자가 통곡했다.
'글로벌 언론'들은 그런 사례를 부각시킬 수가 없다. 이유는 명백하다. 일단 지리적 여건이 갖춰져야 가능한 대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뉴질랜드와 대만의 성공 사례가, 글로벌 언론들이 추구하는 이념적 방향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정부가, 글로벌 언론들의 칭찬을 받으려고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정부의 기본 아닌가?
다시 차별과 혐오의 문제로 돌아가보자. 중국발 외국인 입국 금지가 중국인, 특히 조선족에 대한 혐오를 부추길 우려가 있는가? 물론이다. 하지만 지금은 인류에게 면역도 백신도 없는 바이러스가 퍼지는 상황이다. 질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중국발 외국인 입국을 금지하는 것은, 혐오 행동인가? 아니다.
중국인, 조선족에 대한 혐오는 부도덕(immoral)한 것이다. 반면 질병 확산을 막기 위해 중국발 외국인의 입국을 차단하고, 중국발 한국인의 행동 경로를 추적하는 것은 그저 의학적인 필요에 의한 것일 뿐이다. 그 자체는 도덕적인 선악을 따질 일이 아니다. 비도덕(unmoral)이다. 쓰나미가 몰려올 것에 대비해 제방을 높이 쌓는 것이 도덕과는 무관한 것과도 마찬가지다.
중국발 외국인 입국 금지라는 대응을 초기에 시행하지 않은 이유가, 과연 중국인 혹은 중국계 동포에 대한 혐오를 막기 위한 것이었을까?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청와대가 그렇게까지 탁월한 인권 감수성으로 움직이는 조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대통령이 뭘 하건 옹호하는 친문 네티즌들은 중국발 입국 금지를 주장하는 이들을 '혐오 세력'으로 몰아가기 바빴다.
요컨대 그들은, 부도덕을 막기 위해, 도덕과 상관 없이 요구되는 대응을 포기하자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런 소리를 지껄이던 사람들은, 사람이라면, 지금까지 발생한 60명이 넘는 사망자들 앞에, 일말의 책임감을 느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들 중 상당수는 책임감을 느끼기는커녕 '세계가 감탄하는 한국의 코로나 대응 능력 최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확진자를 찾아낸다 크어~' 같은 소리들을 지껄이는 중이다. 나는 그들을 보며 인간이라는 종 자체에 대해 회의에 빠지고 있다.
정리해보자. 중국발 외국인의 입국 차단은 몇몇 국가에서만 효과가 있었다. 전 국토가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들이 그렇다. 대만과 뉴질랜드는 이른 시점에 봉쇄 전략을 택해 지금까지 잘 버티고 있는 반면, 한국과 일본은 다른 길을 택했고, 그 대가를 값비싸게 치르고 있다.
중국발 외국인 입국 봉쇄를 도덕적 사안으로 바라보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방역 차원에서의 입국 봉쇄 조치는, 그 자체만으로는, 비도덕(unmoral)한 일이다. 도덕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그런 봉쇄 조치가 한국에 이미 거주하고 있는, 혹은 한국인으로 완전히 동화된 중국계 시민들에 대한 혐오로 번질 우려는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부도덕(immoral)의 문제를, 비도덕(unmoral)한 의학적 목적의 입국 봉쇄와 혼동하는 것 자체가 오류다.
이 문제를 연거푸 강조하는 이유는 '혐오'에 대한 정리되지 않은 관념과 끓어오르는 도덕적 정념들이 너무도 위험한 것이기 때문이다. '혐오를 혐오하라' 같은 손쉬운 구호를 앞세우는 얼간이들이 득세할 때 세상은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지고 만다. 지금도 어쩌면 비슷한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도덕적 기준을 잃지 않되, 도덕을 적용할 곳과 아닌 곳을 명확히 구분하는 지혜가, 무척이나 절실한 요즘이다.
중국정부에 그렇게 두들겨 맞고 그 많은 희생을 치룬 홍콩이 코로나 사태 발생하니 1월 말에 중국과 기차와 선편을 통한 인적교류를 중단했습니다.
답글삭제그 결정을 캐리 람이 공식 발표했을 때 저는 그 발빠른 결정과 대처에 놀랐었습니다.
의외로 소셜네트웍 서비스의 한국어 탐라는 이 부분에 대해 조용했습니다만.
바지사장처럼 중국정부 눈치나 보고 하라는대로만 하는 사람이었다면 이런 빠른 결단과 대처는 불가능 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메인랜드로 부터 폭력적으로 얻어터진 후 전염병이 휩쓸고 가면 정말 감당할 수 없을만큼 홍콩이 무너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홍콩의 마지막 안전을 위한 조치였으리라 짐작합니다.
댓글 쓰다 생각나서 지금 검색해 보니 홍콩은 137명 감염에 사망 4명으로 나오네요.
한국의 가장 좋은 대응은 1월 말에 입국을 차단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신천지 변수가 있었다 하더라도 감염원이 늘어날 수 있는 잠재적인 가능성은 줄여야 옳은 것이죠.
중국 정부에 얻어 터진 홍콩도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그 정도의 결정을 내리는데 왜 한국이 할 수 없었는지 안타깝습니다.
이런 상식에 가까운 결정에 대해 입국 제한 했어도 소용없는 게 바이러스 전파라는 논리가 마치 과학적 의사결정인 양 계속 보는 것도 고문입니다.
저는 요즘 한국의 인터넷 여론에 대해 어느 정도는 체념한 상태입니다.
시민이 권력자와 나를 동일시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불가사의한 일이지요.
홍콩의 인구는 740만. 한국 인구가 홍콩의 6.5배라고 대충 잡으면, 홍콩처럼 대응했을 경우 감염자 900명 이하, 사망자 30명 이하라고 추산해볼 수 있습니다. 엉터리 구구단 수준이지만 참고하지 않을 수는 없는 지표겠죠.
삭제신천지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였습니다. 신천지가 아니었다면 다른 대형 교회나 사찰 등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했을 것이고, 그곳을 중심으로 거대한 클러스터가 생겼을 겁니다. 하필 그게 '이단'인 신천지여서 현 정권은 만만한 희생양을 얻게 된 것이고요.
말씀하신대로, 지금의 혼란 중 많은 부분은 사람들이 권력자와 스스로를 동일시하고 있기에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그 점에서 디커플링을 하고 나면 나머지는 스스로의 양식에 의해 해낼 수 있다고 보는데, 그 첫단추가 정말 안 꿰어지죠. 갑갑한 일입니다.
"도덕적 가치는 정책과 동일하지 않다. 정책은 도덕적 전제와 사실로부터 따라 나온다. 유권자들은 주로 도덕적 시각에 관심을 가지며, 구체적인 정책 세부사항에는 부차적으로만 관심을 갖는다. 예를 들어 노인 의료보호제도와 사회보장제도는 정책―분명히 도덕적 기반을 지닌 정책―이지만 그 자체가 도덕적 가치는 아니다. (중략) 자유, 정의, 공정성, 평등, 단결 등 위대한 추상적 개념 역시 그 자체로는 도덕적 가치가 아니다. 정말이지 그러한 개념은 각각 '논쟁적인 개념'이다.(...)" 조지 레이코프, 『이기는 프레임』
답글삭제동성애 문제에 관해 15대 대선 당시 후보토론이 생각납니다. 당시 한겨레신문에 게재되고, 2017년도 19대 대선 유세 기간에 조선일보에서 정리한 각 후보의 입장입니다. 적어도 개념을 곧바로 가치로 환산하지 않는 신중함이 당시의 정치판에는 남아 있었습니다.
-이회창(1935년생·당시 62세) : 본 적은 없다. 동성애자들의 사생활도 인정받고 인권도 보장돼야 한다는 데는 공감이 가는 점도 있다. 그러나 동성애가 일반인들에게 정상적인 것으로 비치지 않는 현실에서 이들의 사회운동화를 선뜻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으로 본다.
-김대중(1924년생·당시 73세) : 특별히 접할 기회가 없었다. 나는 동성애에 동의하지 않지만, 동성애도 이성애와 같이 인간에 대한 애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조건 이단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동성애자 활동 역시 인권보장의 한 부분으로 접근하는 시각이 필요하다.
-이인제(1948년생·당시 49세) : 동성애는 아주 미묘한 문제다. 사회에 저항하고 자신의 성아이덴티티를 주장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자연의 섭리를 바탕으로 인간다운 삶이 과연 어떤 형태가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영화 ‘필라델피아’에 나타난 것처럼 동성애자를 하나의 신성한 인격체로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다.
-권영길(1941년생·당시 56세) : 영화 ‘필라델피아’를 보았다. 나는 한국 사회가 동성애 운동을 수용할 수 있는 충분한 사회적 여건을 갖추었고, 당국 역시 이러한 사회 조류에 발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4/26/2017042602594.html
'이기는 프레임'은 서양의 정치철학자가 썼지만, 여기서 다루는 진보 프레임의 문제점은 한국 정치판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문제입니다.
자신들이 내세우는 정책을 스스로 도덕적 가치와 분별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까요. 가운데에 개념이 없이 외피만 도덕적 가치로 감싼 채 '우리한테 반대하면 다 적폐 수구 토착왜구임!' 하고 있는 거지요.
'자기들이 도덕적이라 생각하는 오만한 정권' 이란 표현은 다분히 감정적이고 인신공격적이니 공적으로 쓰는 데 문제가 있겠지만, '전통적으로 도덕성 운운하던 집단 치곤 도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는 말할 수 있겠습니다.
P.S : 보드 문제인지 꺽쇠 문자를 쓰면 잘리는군요. 위에 댓글은 삭제해주셔도 됩니다.;;
말씀하신 토론 내용은 97년 대선 같군요. 90년대는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훨씬, 한국 사회가 '야만적'인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만큼, 교양 있는 시민 계층들은 스스로 품위를 지켜야 한다는 자의식이 강하기도 했죠. 바로 그 시민 계층에게 호소하고자 하는 저 대선 후보들의 발언만 봐도 알 수 있듯 말입니다.
삭제김어준과 나꼼수 일당이 조져놓은 게 바로 그것입니다. '공통의 품위'라는 개념을 모욕하고 짓밟으면서 낄낄거리면서, 우리 사회를 사회가 아닌 어떤 짐승 소굴로 바꿔놓고 있죠.
현재 여권은 도덕을 앞세운다기보다, 거의 종교화된 '반일'을 앞세우는 극우 집단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불행히도 한국은 반공 극우와 반일 극우가 양대 정파를 이루고 대립하는 그런 나라가 되고 만 것입니다.
추가) 꺽쇠를 쓰면 곧장 HTML로 인식하도록 블로거가 댓글 시스템을 바꾼 건 최근의 일입니다. 저도 그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구글이 거의 내팽개친 프로젝트인 것은 분명한데, 이렇게 대놓고 개악에 개악을 거듭하고 있는 건 좀 너무하다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