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21

해외 언론이 한국의 방역에 깜짝 놀라는 진짜 이유

간단하다. 외국 언론은 상대적으로 언론으로서 제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언론으로서 제 기능을 한다는 것은 그렇다면 무엇인가? 정부를 비판하는 것이다. 해외 언론이 한국의 방역에 깜짝 놀라는 진짜 이유는 그러므로, 그 언론이 자리잡고 있는 국가의 방역을 비판하기 위한, 헐리우드 액션이다.

마치 '엄친아'와 '엄친딸'이 완벽한 존재인 것과 비슷하다. 엄마 친구의 아들 딸이 정말 그렇게 대단한 애여서가 아니라, 내 새끼 잘 되라고 혼내기 위해 엄마들은 자기 친구의 아들 딸을 세상 최고의 모범생이자 효자 효녀인 것처럼 칭찬한다.

외국 언론의 기사에서 한국이 바로 그 '옆집 걔'다. 외국 언론은 우리가 실제로 어떤 나라인지 진짜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에게 실제로 진심어린 예찬을 보내는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반대로 생각해보자. 한국 언론은 왜 이렇게 '해외 언론이 한국 방역에 깜짝 놀라 엄지척을 했다'에 집착하는 걸까? 상대적으로 언론으로서 제 기능을 못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방역 대책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그런 문제가 현장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취재하는 대신, '국뽕팔이'에 도움이 될 요소들을 긁어서 국민에게 전달하고 있다는 뜻이다.

국내 언론에 소개되는 '해외 언론의 찬사'를 보면, 한국 언론의 수준에 화가 난다. 국민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동시에 정부를 제대로 비판하여 보다 나은 방향으로 견인해야 하는 것이 언론이다. 그러나 지금 언론이 하는 짓들은 어떤가. 국민을 '나랏님의 멋진 모습' 앞에 따봉 날리는 청맹과니 박수부대로 길들이고 있지는 않은가.

'해외 언론이 한국의 방역에 깜짝 놀라' 같은 저질 기사가 계속 나오는 한, 우리는 영원히 선진국이 되지 못할 것이다. 반면, 그 나라의 주요 언론을 아무리 뒤져도 한국처럼 이 와중에 이런 재앙을 소재로 국뽕팔이를 하는 기사가 보이지 않는 나라일수록, 선진국이다.

단적인 비교를 해보자. 뉴욕타임스에 '세계가 깜짝 놀라는 미국의 COVID-19 검사 속도' 같은 기사가 나오나? 안 나온다. 하지만 '한국의 뉴욕타임스'를 지향한다는 수많은 진보 언론은 그딴 기사를 하루가 멀다하고 내보낸다. 그 정도면 모를까, '미국인들은 사재기를 한다네요 우리는 안 하는데~' 같은, 불과 한 달 전의 현실을 까맣게 잊은 듯한 국뽕 기사도 최근 쏟아져 나왔다.

이게 우리의 수준이고, 우리의 현실이다. '세계가 칭찬하는 한국'을 여태까지도 찾아 헤매는, 이 와중에도 그러고 있는, 그게 바로 우리 언론의 수준이고 그래서 우리는 선진국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선진국 되려면 멀었다. 그런 면에서라면, 사회 엘리트의 건강한 정신과 판단과 양식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여전히 우리는 미국과 유럽의 수준에 전혀 미치지 못하고 있다.

댓글 2개:

  1. 좌파가 더 이상 본연의 사회변혁의 내재성을 갖지 못한 채 문화 자본의 기득권으로 전락하고, 국민들은 그런 자들의 이념을 소비하며 권력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참상을 보고 해외 유수 학자들은 진작 파시즘으로 흐르고 있다는 말들을 했었지요.
    근데, 그렇습니다. 이런 소리까지 듣게 된 원인이야 끌어오자면 오만 데서 끌어올 수 있겠지만 저 역시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이렇듯 에리히 프롬이 묘사한 그대로의 소비 사회와 속물주의, 냉소주의의 씨앗은 애저녁부터 있었고, 그걸 식자층이란 사람들이 방관하고 심지어 조장했다'고 말입니다.
    마치 히틀러가 등장하기 전부터 자기들의 허무주의와 유미주의에 빠져 결국은 좌파의 계몽도 우파의 사회 안정도 실패한 20세기 초반 독일 지식인들처럼 말이죠.

    조국이란 사람이 일찍이 자전적 수필에서 사르트르의 '지식인의 앙가주망'을 인용한 적 있습니다. 훗날 그가 구애(?) 끝에 현 정권의 민정수석으로 임명되고, 교수로는 출강하는 일이 현저히 줄었을 때도 그가 받는 교수 수임은 그대로였는데, 이에 대해서도 저걸 인용하며 '내 본업은 교수(지식인)이고 민정수석 활동은 사회 참여의 수단일 뿐'이라는 말장난으로 퉁치려 들었지요.
    이제 조국 씨는 그렇게 좋아하는 트위터 페이스북으로나 그 앙가주망 열심히 하라고 하고, 문제는 다른 사람들입니다. 20세기 초 독일, 히틀러를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부류의 사람들, '사회 엘리트들' 말이지요. 그들의 앙가주망이 무엇보다 절실한 시대입니다.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목소리를 '민의'의 이름 아래 짓밟아버리고, 언론과 정권은 교묘히 그를 이용하고, 문화 자본가들은 그런 민의의 수요를 충족시켜 단물을 빠는 데 급급하여, 좀처럼 '꼰대의 쓴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 지금같은 시대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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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생이 다 그런 거지 뭐', '나만 아니면 돼', '다 똑같아, 까놓고 보면' 같은 이죽거림과 냉소만 남겨놓은 자들이, 정작 도덕과 윤리를 들먹이며 남을 공격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마치 원숭이들이 동물원 구경 온 사람에게 배설물을 던지듯, 그들은 스스로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회적 가치를 들먹이며, 오직 상대를 비난하려고만 들죠.

      이상주의는 좋은 것일 수도 있고 나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조국 같은 사람도 지금껏 스스로를 이상주의자라고 생각할테고, 아마 맞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듯 높은 이상의 존재를 (의식적으로건, 무의식적으로건) 비웃는 자들이 있다고 해서, 이상 그 자체가 필요가 없거나 무용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이렇게 온 세상이 힘든 시절에야말로 인류 공통의 꿈과 이상이 절실할 것입니다. 문제는, 일단 한국으로 한정지어보면, 이 와중에도 '국뽕'이나 탐닉하며 현실도피하는 세태겠지요.

      결국 우리는 말을 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말하지 않고 있는데 세상이 저절로 바뀔 리는 없으니까요. 제가 최근 블로그에 이런 저런 소리들을 많이 늘어놓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그런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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