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10

건담과 혁명

Video games offer cleaner victories. But Gundam’s appeal is about more than the drama of battle. Wong appreciates the “more boring” storylines about interplanetary diplomacy. His current favourite iteration of the Gundam cartoons “Iron-Blooded Orphans” begins on Mars, where a 300-year-old colony is seeking independence from Earth. The corrupt adult leaders force children to fight. The youngsters are “soldiers born out of the Earth sphere’s oppressive rule,” explains the fictional leader of the Mars independence movement: “They embody the problems burdening each one of us.” Although Wong denies that he wants Hong Kong to be independent – he argues for greater autonomy and democracy – the parallels are clear. He is amused by the story’s conclusion: the heroes are defeated, but the vanquishing regime adopts democratic reform anyway.

(...) Wong knows that his battles will persist – and that victory poses dangers too. He uses “Iron-Blooded Orphans” as an example to warn activist friends of the challenges they’ll face even if their cause eventually prevails. The youngsters on Mars win many battles but when they achieve power they struggle with how to administer their affairs: “There’s a lot of internal conflict.”

Caroline Carter, Simon Cox, "Gaming with Joshua Wong", 1843 Magazine, 2020년 6·7월호
스노든이 역사적인 폭로를 감행할 때 머릿속에 어떤 게임 캐릭터를 떠올리고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산혁명의 주역 조슈아 웡은 '기동전사 건담 철혈의 오펀스'를 현재 탐닉중이라고. 내면이 흔들릴 때 건담을 생각하는, 홍콩과 인류의 민주주의 영웅.

댓글 6개:

  1. 지배 체제에 저항하는 사람들, 홀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는 사람들에게 몇몇 애니메이션이 정서적 동반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건담 시리즈는 세계관의 선과 악, 정의와 불의가 극명하게 대비되고, (00년대 이후 작품에 한해)결말은 희망적이니까요.
    물론 어떤 소설이든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고, 이길 수 없으니 비극이지만,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현실을 타개해야 한다고 더더욱 다짐하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네흘류도프는(...) 아주 온순한 사람들이 태연히 살인 준비에 가담하며, 거의 모든 사람들이 특정한 경우의 살인을 일반의 행복을 위한 수단과 자기방어 수단으로써 합법적이고 올바른 행위라고 인정하는 놀랄 만한 현상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이 자기들의 사업에 부여하고 있는 높은 의미, 따라서 자기 자신들에게 부여하고 있는 높은 평가는 정부가 그들을 너무나 중대시하고 그들에게 과하는 잔인한 형벌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즉 그들이 지금까지 견뎌온 것 같은 일을 끝까지 견뎌내려면 자기들을 높이 평가하지 않고서는 안 되었다.] - 톨스토이『부활』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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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실 저는 건담 뿐 아니라 대부분의 일본 애니메이션에 잘 감정이입을 못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금 청년층에게 일본 애니메이션 및 인접 파생 분야들이 단지 '서브컬처'가 아니라 일종의 '내적 경전'으로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보이고, 그 현상은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말씀하신대로, 선악 구분이 분명하고 정의가 승리하는 서사가 그만큼 흔치 않아서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리 단순유치하다고 쉽게 비난할지언정, 그런 이야기들이 (특히 고난에 처한)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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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사족이지만 약간 우울한 이야기를 하자면, 최근 몇 년간 일본 온라인 소설 투고 사이트에 올라온 작품과 그를 기반으로 한 애니메이션의 주요 트렌드 중 하나는 '이고깽(이세계에서 온 고딩이 깽판치는 이야기)'입니다. 현실에서 평범한(혹은 평범 이하의) 고등학생이 모종의 사고로 이세계에 떨어지니 놀라온 능력을 얻어 종국에는 해당 세계의 구세주가 되어 미모의 히로인(들)과 주지육림을 이루는 게 주된 플롯이죠.
      한국보다 오래된 장기간의 경기 침체로 취업을 비롯한 사회활동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위축된 일본 청년들의 멘탈리티를 반영하는 듯 해서 씁쓸하죠. 한창 버블이 무너지는 중이던 90년대에도 '꿈'을 꾸는 걸 등한시하지 않던 서브컬쳐들이 2010년대로 넘어가고선 그저 현실에 대해 자조적이고 냉소적으로 되고, 그 정도가 심해질수록 역설적으로 현실에 미련이 있음을 보여주는, 오늘날 사토리 세대의 딜레마를 반영하는 것 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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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자세히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해당 이슈에 대해 아즈마 히로키를 비롯한 일본 이론가들이 논의를 좀 해놓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나마도 3.11 이전의 상황이고, 그 후로 일본 지성계는 멘붕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한국은 코로나로 멘붕보다 더 나쁜 국뽕 하이 상태에 빠져 있는 것 같고요.

      아무튼 한국어권의 사고방식이 일본과 10년 격차 패턴을 벗어나는 것 자체는, 한국어로 생각하고 글쓰는 사람으로서,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봅니다. 다른 언어고 다른 문화권이니 다른 생각의 틀을 가져야죠. 하지만 한국이, 한국과 일본 모두 동의할 수 있는 가치 체계를 구성함으로써 일본으로부터 벗어나고 나아지려 하느냐, 이 질문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울할 따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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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저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별로 많이 안봤지만 '에반게리온'이 대표적으로 자아성찰, 존재의 의미와 연관된 질문을 던진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애니보다 엔딩 즈음 나왔던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가 더욱 기억에 남습니다.

    제가 사는 시카고 교외의 한적한 도시의 극장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상영 주간을 열고, 시립 도서관에 청소년 대상으로 한 일본 애니메 클럽이 늘 북적였던 것을 떠올려 보면 위에 댓글에서 말씀하신 젊은 층에게 '경전'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또 다른 높은 가능성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소재가 워낙 다양하고 미국의 대형 애니메이션 회사들의 비슷비슷한 방향과 아이디어에 비해 선택의 폭이 넓은 것도 인기의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오래 전에 보았던 일본 영화 '카모메 식당'을 보면 핀란드 헬싱키에서 빵과 오니기리를 파는 그 식당의 첫 손님이 재패니메이션의 광팬이었던 젊은 청년이었던 것이 떠오르네요. 세계 어디를 가도 팬이 많고 환영받는 장르.
    요즘은 한국의 웹툰이 이곳에서 상당한 인기랍니다. 미국은 저작권료가 비싼데 한국 포털의 웹툰은 영어로 번역을 다 마쳐서 무료로 푸니까 청소년들이 휴대폰을 들여다 보고 있을 때 반은 게임을 하고 반은 웹툰을 보는 것으로 느낄 정도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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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 웹툰이 미국 등 해외에서 성공하는 방식에 대한 빵과 장미님의 설명을 들으니, 역시 공짜로 푸는 힘이 큰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냐, 에반게리온을 선두로 한 재패니메이션이 처음 한국에 퍼지기 시작할 때도 불법복제의 힘이 컸으니까요. 지금은 그 성공 공식을 이해한 한국 인터넷 미디어 기업들이 처음부터 자발적 무료 전략을 펴고 있는 것일테고요.

      그런데 말씀하신대로 재패니메이션의 팬층은 전 세계적으로 퍼져있고 굉장히 탄탄합니다. 한국의 문화산업 종사자들이, 물론 제가 이런 말 안해도 열심히 고민하고 있겠지만, 따라잡으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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