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무어가 제작한 ‘Planet of the Humans’를 방금 다 보았다. 아무렇게나 순서 없이 일단 적어놓는 감상.
미국 민주당 계열 환경운동을 대표하는 빌 매키번, ‘지구가 아프다 다큐’로 뭔가 큰 상도 받았던 미국 전직 부통령 앨 고어, 민주당 대선 주자로 경선에 뛰어들었다가 돈만 쓰고 그만둔 마이클 블룸버그 등, 쟁쟁한 인물들.
그들이 어떻게
- Green energy라는 구호를 내걸고 돈벌이를 하고 있는지,
- 자신들이 내세우는 구호와 biofuel(나무 썰어서 폐 타이어 등과 태우는 것)의 괴리를 얼버무리는지
- 그 결과 지구가 어떻게 더 망가져가는지
등을 설득력 있게 묘사하는 충격적인 작품.
나도 한때 열심히 follow up했던 350.org 같은 조직이, 결국 따지고 들어가면 엑손 모빌이나 도요타 같은 기존 화석연료 업계의 후원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다큐를 다 보고 나면 놀랍지도 않은 수준.
각본과 감독을 맡은 제프 깁스(Jeff Gibbs)는 어린 시절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읽고 큰 감명을 받은 후, 이 다큐를 만들기 전까지 시에라 클럽의 맴버로서 열심히 활동해온 열혈 환경운동가.
그가 환경운동 행사장에서 사람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며 ‘당신들 바이오매스에 찬성하냐’고 물을 때, 다들 해맑게 ‘절대 안되지 우리는 친환경인걸!’ 하는 모습은 정말 가슴아프다.
가장 황당하고 꼴같잖은 장면. 우리는 흔히 가운데 탑이 있는 거대한 태양광 발전기가 100% 태양광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지만, 매일 아침 시동을 걸기 위해 가스발전기를 같이 설치한다고. (감독이 인터뷰한 환경 과학자는 그것을 ‘매일 아침 내가 일어나면 커피를 마셔야 정신을 차리게 되는 것과 같다’고 농담하기도.)
풍력발전기도 마찬가지. 태양광/풍력 시설을 늘리면 늘릴수록 가스발전기가 늘어나는 모습이 다큐에 생생하게 묘사된다. 하지만 미국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환경운동가’들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음.
아쉬운 점은 원자력에 대한 언급이, 한번 스쳐가듯 나오지만, 없다는 것. 탄소 배출을 줄이는 차원을 넘어 공격적으로 탄소 포집을 하려면 결국 답은 원자력 뿐이다.
아직 한국어 자막이 없는데, 영어 자막을 켜놓고라도 보시기 바랍니다. 꼭 봐야 할 2020년 최고의 문제작.
영상추천 감사합니다. 이미 조금은 알던 사실들도 있지만 새로운 것도 많았는데, 아쉬움은 어떤 부분에서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실이나 통계를 넣었다면 좀더 신빙성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애플이나 구글이 100% 재생에너지로 운영된다는 부분은, 저는 그런 주장이 있는 줄 몰랐고 전세계에서 그렇다는게 공장까지 포함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설령 오피스 빌딩만을 의미한다 해도 거의 믿기 힘든 주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하려던 얘기는, 그럼에도 이들도 일반 전력공급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다, 고 지적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그들의 '친환경' 주장을 공격하는 것은 그리 설득력있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누구라도, 플랜 B는 마련하는게 당연하니까요. 그들이 실제로 매달 얼만큼의 전력을 화력발전소 등에서 공급되었을, 재생에너지가 아닌 에너지를 소비했다, 라는 정보가 그 순간 필요해 보였습니다.
답글삭제또 재생에너지가 전기를 생산하는 마지막 단계만 보면 친환경적으로 보이지만 태양광패널을 생산하는 단계에서부터 전체 라이프사이클을 보면 차라리 천연가스나 석탄 발전이 탄소배출이 적다든가 하는 통계, 전기자동차보다 차라리 휘발유 먹고 달리는 차량이 탄소발자국이 적다던가, 하는 정보가 있었다면, 이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문제제기만으로도 혁명적이고 훌륭한 업적입니다만, 신문기사들이 종종 "oo지역에 사는 oo 씨는 최근 황당한 경험을 하였다" 식으로 개별 케이스만 부각하고 일반적 통계, 사실의 밑받침이 없는 고발성 내용일 때에는 제대로 된 논의의 기반 자체가 없다고 생각하기에 말이지요. 일단 문제가 던져졌으니, 좀더 찾고 읽는 노력은 저의 숙제로 생각하렵니다.
또 한가지 이슈에 관심을 갖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이 작품이 다큐멘터리로서 완결성이 높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가령 언급하신 '그리드에 연결되어 있으니 100%가 아니다' 같은 주장도 허술하죠. 하지만 '풍력도 공짜가 아니다, 새가 죽고 나무가 썰려나간다' 같은 당연한 사실을 환경운동에 참여했던 사람의 입으로 전달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큰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지적하신 다른 대목들의 아쉬움도 그렇고요.
삭제실은 그보다 저 다큐의 진정한 문제는 '인간이 죽는 것이 친환경이다'라는 극우적 사고방식과 유사한 결론을 향한다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죽지 않고도, 가령 원자력 같은 고밀도 고효율 에너지원을 사용하면, 인류의 번영을 유지하면서 탄소 배출을 줄이는 수준을 넘어 대기중 탄소를 포집하여 기후 변화를 통제할 수도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원자력에 대한 근거 없는 공포심을 이겨내는 것이 21세기 인류의 환경적, 인식론적 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좋은 감상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다큐멘터리, 그리고 이 리플에서 말했던 내용들을 조만간 한번 더 정리해볼 필요가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