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31

고작 회계 문제? 돈이 곧 윤리다

정의연 건에서 가장 중요한 건 회계 문제다. 회계 문제가 가장 중요하고 나머지, 가령 뭐 운동의 대의가 어쩌고 활동가의 선의가 저쩌고 따위는 모두 부차적이다. 장부에 돈 거래를 제대로 써놓고 투명하게 거래하는 것은 운동권 뿐 아니라 모든 사회가 공유하는 가장 기본적인 규칙과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평범한 시민들은 돈을 벌고 있다. 혹은 내일의 돈벌이를 위해 쉬고 있다. 돈을 번다는 건 그렇게 지엄한 일이다. 돈을 벌어서 그 기록을 투명하게 남기고, 내야 할 세금을 내고, 사장이라면 직원 월급 밀리지 않고, 회삿돈을 잘 관리하는 것 등은 모두 우리 삶의 기본이면서 가장 숭고한 영역인 것이다.

생각해보자. 민주주의를 왜 하는가? 민주화운동을 왜 했는가? 성실하게 일해서 먹고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안온하게 잘 살기 위해서이다. 남을 속이지 않고 권력에게 휘둘리지도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런 세상이라면 당연히 모든 회계는 공정하고 투명해야 한다. 반대로, 그 어떤 아름다운 대의를 갖다 댄들, 회계를 속이는 자들이 권력을 쥐고 있는 한, 그 사회는 투명할 수도 건강할 수도 민주적일 수도 없다.

'그깟 회계 문제'를 운운하는 자들아, 입 닥쳐라. 너희들은 지금 '그깟 회계'로 계산되는 '그깟 푼돈' 벌겠다고 새벽에 눈꼽 떼고 일어나 직장으로 일터로 택배 상하차 물류센터로 향하는 그 모든 평범한 생활인들을 모욕하고 있다. 너희들의 운동이 대체 뭐가 그렇게 고상하고 굉장하기에 이 모든 사람들이 목숨 걸고 싸우는 돈 문제를 이토록 얕잡아 본단 말이냐. 그토록 돈 문제를 우습게 보면서 어쩌면 네놈들 뒷주머니만은 알뜰하게 채워넣고 있단 말이냐.

돈 문제다. 이건 돈 문제고, 바로 그렇기에 가장 투명하고 엄정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반미주의니 반일주의니 거대한 헛소리 다 집어치워라. 돈이 깨끗하지 못한 나라가 어떻게 제국주의로부터 '독립'할 수 있단 말이냐. 이 숭고한 회계 문제 앞에서, 피해자와 활동가의 윤리가 어쩌고 저쩌고 지껄이는 배부른 운동권 족속들, 그 역겨운 아가리들을 다 닥치란 말이다.

댓글 2개:

  1. 돈보다 값지고 소중한 건 많지만, 그 돈의 출처와 내역을 투명히 하지 않고 그런 소릴 하는 사람일수록 '남의 돈'은 별 것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런 사장들을 숱하게 봤고, 정작 직원에겐 월급도 밀리는 주제에 딸내미가 명품을 걸고 출근하고 자기 차가 바뀌덥니다.

    요즘은 개신교 교회도 회계내역 주기적으로 파워포인트 띄워놓고 성도들 앞에서 보고하는 시대입니다.
    아무리 레토릭을 하나님께 드리는 몫이니 뭐니 하며 (적어도 바깥에서 보기엔)부정신학적 근거를 대도 '돈 관리'는 엄연히 인간이 하는 거라 시인하는 거죠.
    지방의 작은 교회들조차 이런데 처음부터 '인간을 위해 인간이 하는 일'을 두고 회계의 투명성을 경시한다? 이제 보니 더 높은 공의가 멀리 있지 않았군요!

    저쪽에서 정치적으로 밥 먹는 사람들은 그렇다치고,
    저 '돈 문제보다 정의연을 (토착왜구 우파로부터)지키는 게 중요하다' 운운하는 누리꾼 대부분은 월급 받고 사는 사람들일텐데, 왜 자신들의 숭고한 경제활동을 모욕하는 자들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는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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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개신교 교회에게도 교인들에게 회계 보고하는 시대라. 그렇게까지 사회 전반에 깨끗하고 투명한 돈 관리 요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줄은 몰랐습니다. 헌대 정말이지 놀랍게도, 가장 시대에 뒤떨어지고 퇴행적인 집단이 가장 큰 권력을 손에 쥐고 말았네요.

      저 또한 대학교 2학년, 정확히 말하면 노무현 대통령 당선 전까지는, 말씀하신 사람들과 대충 비슷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으므로 무슨 논리로 저러고들 있는지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미제-일제-친일파-군사독재-재벌-언론-(최근 추가된) 검찰'까지 어떤 무지막지한 거악이 있고, 그 거악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라면 우리편의 사소한 잘못은 덮고 넘어가야 한다, 그게 훨씬 올바르고 현명하며 정의로운 것이다, 이런 한 줄로 요약이 가능한 어리석은 소리죠. 그런데 저는 희한하게도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을 본 바로 그 순간, 제 머릿속에서 저 구도가 깨지는 것을 느꼈고,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아무튼 저 단순한 '거악 대 (부족한 게 많지만 우리편이잖아요, 거 참) 개혁세력'이라는 허위의 대립 구도를 반박하고 깨뜨리지 않는 한 저들은 절대 설득되지 않습니다. 마치 그 어떤 말로도 '빨갱이는 죽여야 돼'라고 중얼거리는 고령층을 설득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말이죠. 암담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야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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