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델이라는 사람이 있다. 사람들이 잘 모르면서 회사에서 지급하는 컴퓨터나 모니터로 많이 쓰는 델 컴퓨터의 오너다.
마이클 델은 컴퓨터를 값싸게 조립하여 판매하는 생산 라인을 확보했지만, 오프라인 판로를 뚫지 못했다. 그는 거기서 좌절하는 대신, 온라인으로 컴퓨터 견적을 맞추고 주문하여 물건을 받는, 20세기 말로서는 가히 획기적이었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서 대박을 터뜨리고 델 컴퓨터를 상장한 후 소위 '엑싯'을 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델 컴퓨터는 기나긴 침체와 방황을 겪었다. 컴퓨터 산업에 대해 비전도 없고 꿈도 없고 그냥 숫자로 나오는 실적만 예쁘게 해서 자기들 수당 챙기는 것에 혈안이 된, 소위 '경영충'들의 놀이터가 되고 만 것이다.
다행히도 마이클 델은 투자 수완이 좋은 사람이었다. '엑싯'으로 번 돈을 허공에 날리지 않고 이리저리 굴려서 덩치를 더 키웠다. 그렇게 만든 시드 머니로 그는 희대의 결정을 했다. 자신이 상장했던 회사 주식을 다시 사들인 후 비상장기업으로 만들어 의사결정권도 독점한 것이다. 말하자면, '오너의 귀환'인 셈이다.
그 후 나온 첫 작품이 Dell XPS 13이었다. 랩탑에 관심이 좀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 알텐데, (충격과 공포의 노란 봉투) 맥북 에어 이후 애플과 비벼볼만한 노트북으로 윈도우 계열에서 나온 첫 제품이라고 흔히들 평가한다. 극단적으로 베젤 크기를 줄여 거의 11인치 노트북에 가까운 본체 크기와 무게를 구현했다. Dell XPS 15는 15인치 화면을 13인치 크기에 우겨넣었다.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렇게 한번 되찾은 프론티어의 위상을, 델 컴퓨터는 이제 내려놓지 않고 있다. 올해는 17인치 화면을 15인치의 본체 크기에 끼워넣은 Dell XPS 17도 나왔다. 오너가 만들고, 상장했다가 '경영충'의 놀이터가 되어버렸던 과거의 혁신 기업을, 오너가 되찾은 후 혁신의 DNA를 재주입한 멋진 사례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오너 경영'이 꼭 나쁜 건 아니라는 것이다. 중요한 건 1) 어떤 '오너십'이냐 2) 그 '오너'에게 정말 비전이 있느냐 3) 그 '오너'의 '오너십'에 경제적, 법적으로 투명하고 확실한 근거가 있느냐이다.
많은 사람들이 함부로 말하는 것과 달리, 삼성의 미래에 대해 이재용만큼 근심하고 진지한 결정을 내릴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국민연금이 대주주가 된 후, 낙하산 타고 내려와 한탕 하고 사라질 정권의 수족들보다는, 소위 '경영권'이라는 것을 이재용이 행사하는 편이 삼성의 미래에, 더 나아가 한국의 경제 전체의 미래에 바람직할 가능성이 크다. (포스코라는 반례를 보면 너무도 분명하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재용이 편법 상속을 위해 동원한 다양한 '테크닉'에 대해 공정한 법적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사람들이 반대하는 것은 '오너 책임 경영' 그 자체가 아니다. 소위 '오너'라는 사람들이 주주의 이익을 실현시키지도 않고, 경영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기업의 의사결정과 이익만을 독점하는 잘못된 구조가 문제다.
삼성전자의 덩치가 너무 커져서 과연 '합법적'인 방법으로 '경영권' 방어가 될 수 있을지 미지수이지만,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회사를 이재용 부회장이 올바른 방식으로 정당하게 키워나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법은 만인에게 공정해야 하고, 그것이 바로 시장경제의 초석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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