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09

이낙연發 사면론, 국민통합 카드? 얕은 정치공학!

 [노정태의 뷰파인더⑯] 링컨·만델라의 사면권 행사와 李·朴 사면론이 다른 이유

●군주제 잔재와 민주주의 훈장 사이
●잘 활용하면 사회통합 주춧돌
●파벌·정당 싸움 도구면 존재이유 상실
●지금이 美남북전쟁 직후와 견줄 때인가
●주머니 속 볼펜처럼 사용해서야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가 1월 3일 비공개 최고위원회 간담회를 마친 뒤 국회 의원회관을 나서고 있다. 그는 이날도 전직 대통령 사면과 관련해 “진영 정치를 뛰어넘어서 국민통합을 이루는 정치로 발전해가야 한다”고 밝혔다. [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을 사면해야 한다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발언으로 인해 새해 초부터 정국이 떠들썩하다. 보수 진영에서는 내분을 노린 정치적 꼼수라고 비난하고, 진보 진영에서는 ‘이러려고 촛불 들었나’라는 분노와 탄식이 쏟아져 나온다. 

그 모든 정치적 셈법과 이해관계를 잠시 접어두고, 여기서는 사면권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하자. 사면권은 대통령이 지니는 고유한 권한이다. 동시에 논란의 여지가 없이 삼권분립 원칙을 훼손하는 권한이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사법부 판결을 뒤엎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면은 법이 아니라 사람을 지정해 내리는 특별사면이다. 같은 죄를 지었지만 다른 처벌을 받는 경우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는 법 앞의 평등이라는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근간을 허무는 행위다. 

그럼에도 대부분 국가의 법체계 속에는 사면 제도가 있다. 정치적 혼란에 빠져 있는 여러 국가뿐 아니라 미국이나 영국 같은 민주주의 선진국에도 사면권이 존재한다. 어떤 나라에서는 사실상 사문화돼 있는 반면 다른 나라, 특히 미국의 경우 사면권의 행사가 비교적 잦다. 그로 인한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대체 이런 제도가 왜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는 걸까.

헨리 8세의 큰 그림
왕의 말이 곧 법이던 시절이 있었다. 누군가를 재판하고 처벌하는 것은 왕의 고유한 권한이었다. 따라서 왕이라면 재판 결과를 뒤집고 처벌하지 않을 권리도 있었다. 왕에게 주어진 사면권은 처벌권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당연한 논리적 귀결일 뿐이었다. 

문제는 영국에서 국왕의 권리를 제한하며 입헌군주제가 시작됐다는 것이었다. 마그나 카르타(대헌장) 이후 왕의 권리는 지속적으로 줄었다. 적법절차에 의하지 않으면 자유인, 즉 귀족을 재판할 수도 처벌할 수도 없게 됐다. 

국왕이라고 해서 자신의 권한을 앉아서 뺏기고만 있지는 않았다. 때는 1535년, 헨리 8세 시절. 국왕은 사면권을 요구했다. 의회가 관여할 수 없는 국왕의 권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귀족 처지에서는 양보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범죄자를 사면할 권리가 국왕에게 생긴다고 해서 귀족의 권리가 제약될 일은 없다고 본 것이다. 

이후 헨리 8세의 큰 그림이 드러났다. 의회에는 누군가를 감옥에 보낼 권리는 없었지만 국왕이 임명한 관리나 공직자를 탄핵할 권리는 있었다. 귀족들은 국왕이 임명한 관리나 공직자를 탄핵함으로써 정치적 입지를 키워나갔다. 그런데 국왕의 사면권은 범죄뿐 아니라 탄핵에 대해서도 적용이 가능했다. 의회가 가진 아주 중요한 권리를 무력화할 수 있는 방안이 바로 사면권인 셈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귀족들은 1628년 권리청원, 1689년 권리장전에서 사면권의 문제를 지적한다. 결국 1701년 왕위계승법에서 사면권에 대해서도 제약이 가해진다. 탄핵 중인 정부 인사에 대해서는 사면을 불가능하게 규정한 것이다. 하지만 그 외의 사면권은 폭넓게 인정하는 합의가 이뤄졌다. 

이후 영국으로부터 아메리카 식민지가 독립했다. 미국인들은 영국과 달리 입헌군주제가 아닌 대통령제를 만들었다. 각 주가 기본적인 입법·사법·행정의 권리를 모두 갖되, 연방 단위의 대응이 필요한 사안에 있어서는 연방 정부와 의회 및 대법원이 권한을 행사하는 식이었다. 연방의 대통령은 나라 전체를 대표하는 군주의 지위를, 적어도 어느 정도까지는, 상징적으로 보유하게 됐다. 

그리하여 미국의 대통령은 사면권을 갖는다. 미국 연방헌법 제2조 2항은 이렇다. “대통령은 탄핵의 경우를 제외하고 연방 법을 어기고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에게 형의 집행 정지 및 사면을 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여기서 ‘탄핵의 경우를 제외’한다는 저 구절이 왜 들어가 있는지, 이제 독자 여러분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에서 그간 진행돼온 사면권에 대한 논의를 미국 헌법 제정 과정에서 그대로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법학계의 용어로는 계수(繼受)라고 부른다. 

영국은 세계 최초로 입헌군주제를 도입한 국가다. 미국은 세계 최초로 세워진 대통령제 민주주의 국가다. 그 후로 세워진 다양한 민주주의 국가들은 자연스럽게 영국과 미국의 영향을 받았다. 이렇게 사실상 전 세계 모든 국가에 대통령 혹은 국가수반의 사면권이 법제화됐다. 군주제의 잔재, 혹은 흔적이 남게 된 것이다.

링컨은 왜 강경론을 버렸나
동물의 기관이 어떤 기능을 지니기까지 진화하지 못했거나 혹은 기능을 상실할 정도로 퇴화해 흔적만 남아 있는 경우를 흔적기관(vestigial organ)이라고 부른다. 흔히 ‘맹장’이라고 하는 충수돌기, 꼬리뼈, 귀를 움직이는 이개근 또는 동이근, 사랑니 등이 잘 알려진 흔적기관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대표적 흔적기관인 충수돌기에 대해 쓸모가 없고 있어 봐야 문제만 일으킨다고 여겼다. 소화에 직접적 도움은 주지 않으면서 간혹 염증을 일으켜 심한 복통을 불러일으키고, 때에 따라서는 사망의 원인이 되기도 하니 말이다. 최근의 의학적 연구에 따르면 충수돌기는 장내 미생물의 서식을 돕고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한다. 모든 흔적기관이 쓸모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일 수 있다는 의미다. 

사면권 역시 마찬가지다. 사면권은 군주제의 왕이 가졌던 ‘절대 권력의 흔적기관’이다. 그럼에도 근대 이후 이따금씩 그 나름의 긍정적 기능을 발휘했다. 특히 한 사회가 극도의 혼란과 갈등을 경험한 후 막 빠져나올 때, 국가 지도자는 기꺼이 사면권을 행사해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 할 수도 있다. 

에이브러햄 링컨과 그의 뒤를 이은 앤드류 존슨의 사면권 행사는 좋은 예다.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남북전쟁이 발발했다. 당시 미국은 자국 역사상 최초로 군인을 징집했다. 당연히 그 수행 과정에서 오류와 잡음이 빈발했다. 미성년자가 군에 끌려가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의 군역을 대신해 군대에 가는 이도 있었다. 탈영병을 붙잡아 조사해보면 그런 사례가 적지 않았다. 링컨은 틈날 때마다 그런 이들을 사면했다. 

남북전쟁이 끝난 후에도 기조는 계속됐다. 링컨은 전쟁을 통해 남부연합을 굴복시켜야 한다는 강경한 태도를 고수했지만, 전쟁이 끝나가자 견해를 바꿨다. 전쟁의 상처를 극복하고 하나의 미국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벌어진 일의 처벌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불행히도 그는 남북전쟁 종전 직후 5일 만에 포드 극장에서 존 윌크스 부스 일당에게 암살당하고 말았다. 

그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앤드류 존슨은 링컨의 유지를 계승했다. 18681225일 크리스마스. 존슨은 미합중국에 대항해 반군을 결성했던 이들에 대한 포괄적이고 전면적인 사면령을 내렸다. 사면을 받은 사람 중에는 남부연합의 대통령이었던 제퍼슨 데이비스도 포함돼 있었다. 

6·25전쟁이 대한민국과 유엔의 승리로 끝난 후 김일성을 사면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보면, 아찔하다. 미국인에게 이 결정이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보자. 남북전쟁은 군인만 62만 명이 죽었고 민간인 사망자 및 피해자가 셀 수 없이 많이 나온 참혹한 전쟁이었다. 승기를 잡자 북부에서는 온갖 과격한 보복과 복수의 요구가 빗발쳤다. 하지만 링컨은 패자를 용서하는 쪽을 택했다. 그의 죽음 후에도 뜻은 이어졌다. 그리하여 미국은 지금도, 물론 내부의 갈등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하나의 연방 국가를 유지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내전을 겪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심각한 갈등을 딛고 일어선 그 남아공 말이다. 1994년 넬슨 만델라는 흑인 최초로 남아공의 대통령이 됐다. 그는 199512월 진실화해위원회를 설립해 1998년 7월까지 과거에 벌어졌던 인권 침해에 대해 조사했다. 조사 대상자는 7112명이었다. 그 중 849명이 사면을 받았다. 양심을 통해 진실을 고백한다면 사면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즉 만델라는 조사 대상자의 9분의 1 가량에게 일찌감치 공민권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을 터준 셈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를 용서할 때 진정한 사회 통합을 이룰 수 있다는 만델라의 뜻이 반영된 결정이었다.

朴, 정치적으로 부활해 야당 표 깎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3월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국무위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문 대통령 뒤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초상화가 보인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합리성과 법치주의를 넘어서는 어떤 거대한 ‘정치’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국민 전체가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을 저지른 사람이라 해도, 용서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기도 한다. 국가 전체의 미래를 고민하는 역사적 결정이 요구되는 시점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럴 때 군주제의 흔적기관인 사면권은 긍정적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법적 시시비비와 판결의 정당성을 떠나 화해와 용서를 통해 새 장을 열어야 하는 역사의 전환점이 있게 마련이다. 어쨌건 공동체가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가장 많은 국민의 선택을 받은 대표자인 대통령이 그 결정권을 갖는 게 그나마 가장 합리적일 테니 말이다. 

요컨대 사면권이란 가장 크고 넓은 의미에서의 ‘정치’가 필요한 순간을 위한 것이다. 특정 정당의 후보로서 당선된 정치인이 아닌 모든 국민을 대표하는 첫 번째 시민으로서 대통령이 갖는 고유한 권한이라고 해석해야 마땅하다. 우리가 국민국가 체제를 이루고 사는 한 사면권이라는 절대왕정 시대의 유산은 완전히 사라질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과연 지금의 사면 논의가 ‘가장 넓은 정치’에 부합하느냐다. 우리가 특정한 사안을 해결해야 할 상황에 놓여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다. 두 전직 대통령이 유죄 판결을 받아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 죄책 여부, 공과 과를 떠나 두 사람 모두 헌법과 법률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 국민의 지지를 받고 대통령직에 올랐던 인물이다. 

하지만 현재의 맥락이 가령 남북전쟁 직후의 미국이나 인종 분리 정책 철폐 이후의 남아공과 견줄만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뉠 수 있다. 삼권분립 원칙을 어기면서까지 달성해야 할 국민 통합의 명분이 있는가. 꼭 그래야만 할 시대적·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는가. 이에 대해 국민 전반의 공론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게 현실 아닌가. 

지금의 사면 논의가 ‘가장 좁은 정치’에 부합하는 것은 분명하다. 사면론이 나온 시점, 맥락, 의도하는 효과 등에서 얕은 정치공학의 함의가 너무도 뻔히 보이니 말이다. 

철옹성 같던 ‘대통령 지지율 40%’가 깨졌다. 중도층의 민심 이반도 도드라지는 모양새다.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지난해 1228일부터 31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20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1월 4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문 대통령이 ‘국정수행을 잘못하고 있다’라는 부정평가는 59.9%로 집계됐다. 문 대통령이 한 발 빼고 있었지만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칼을 휘두를 때마다 추인해주었던 ‘윤석열 쫓아내기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렇게 살아난 윤석열은 여론조사에 따라 대선후보 선호도 1위와 2위를 오간다. 여당이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서울시장 자리 역시 지킬 수 있을지 미지수다. 현 정권의 주요 관계자라면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면을 받아 정치적으로 부활해 야당 표를 깎아주기를 기대할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낙연 대표의 독단적인 판단에 의해 사면 논의가 나왔을 수도 있지만, 물밑에서 어떤 ‘교감’이 있었다 한들 놀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략의 도구냐 민주주의 유산이냐
지난해 1229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2021년 신년 특별사면 발표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뉴스1]
가장 좁은 의미의 정치, 즉 파벌과 정당의 싸움 도구로 악용되기 시작하면 사면권은 존재 이유를 잃고 만다. 앞서 살펴보았듯 사면권은 군주제의 잔재다. 동시에 사면권은 절대군주가 갖고 있던 권력을 법치주의의 일부로 수용했음을 보여주는 민주주의의 훈장이기도 하다. 군주의 권리를 법제화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법 위에 선 왕’은 없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사면권은 가장 민주적인 방식으로 가장 넓은 의미의 정치와 사회 통합을 위해서만 사용돼야 한다. 

필요하다면 링컨처럼 사면권을 과감하게 사용할 수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주머니 속 볼펜처럼 취급할 물건은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이 지니고 있는, 가장 민주적이지 않으며 법치주의와 거리가 먼 제도가 바로 사면권이기 때문이다. 

여권에서 정략의 도구로 사면권을 거론하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유감스럽다. 야당 시절, 입만 열면 ‘제왕적 대통령제’를 비판해왔던 그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사면권은 대통령제 가 전제군주정을 어느 정도 모방해 만들어진 것임을 보여주는 역사적 유물이다. 제왕적 대통령을 상징하는 제도를 딱 하나만 대라고 한다면 그게 바로 사면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월 5일 문재인 대통령이 ‘탈정치 선언’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큰 논란이 일었다. 진위야 어찌됐건 대통령은 ‘탈정치’를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좁은 의미의 정치만을 해서도 안 되는 자리다. 행정수반이자 국가 원수로서 필요하다면 자신을 뽑아준 국민뿐 아니라 뽑지 않은 국민까지도 대표해 가장 넓고 큰 정치를 해야만 한다.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을 사면하는 것이 과연 그런 과업에 해당할까. 사면권은 대통령의 전속권한이다. 어떤 판단을 하건 최종적인 책임은 문 대통령 스스로 질 수밖에 없다.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basil83@gmail.com

▶ 네이버에서 [신동아] 채널 구독하기
▶ 신동아 최신호 보기 / 정기구독 신청하기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