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태의 뷰파인더㉓] 누가 그를 ‘납작하게’ 만들고 있나
● 교과서로도 완벽한 책 ‘기후재앙’
● 목표 “세계 에너지산업 바꾸는 것”
● 그의 진심은 원자력발전소 혁신
● 국내 논의는 엉뚱한 방향 향해
● 탈원전 논의 수준에 그칠 책 아냐
● ‘탄소 제로’ 해법, 한국이 쥐고 있다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최근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원제: How to Avoid a Climate Disaster)을 펴냈다. [빌 게이츠 공식 페이스북] |
빌 게이츠의 목표는 명료하다. 2050년까지 탄소 배출을 ‘제로(0)’로 만드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상 탄소 배출을 아예 하지 않을 수는 없다. 발전된 기술과 비즈니스 및 행정을 통해 배출 탄소를 적극 제거함으로써 탄소 중립을 거의 달성한 상태를 그는 ‘제로’라고 부른다.
이 명료한 목표는 사실 대단히 무모한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이 책을 둘러싼 오해와 논쟁은 대부분 그 지점에서 시작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기후재앙’에도 그 비슷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빌 게이츠가 사업에 전념하던 젊은 시절 미국 시애틀에서 가장 오래된 햄버거 프랜차이즈인 버거마스터에서 삼시세끼를 모두 해결했다거나, 그의 아버지도 버거마스터에 죽치고 있다 보니 사람들이 우편물을 버거마스터로 보낼 지경이 되었다거나, 그럼에도 이제는 환경을 위해 치즈버거를 그리 많이 먹지 않는다는 이야기 등(162쪽)은 유쾌하고 진솔하다.
하지만 그런 건 이 책의 핵심적인 메시지와 거의 무관하다. 전혀 상관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빌 게이츠는 그보다 훨씬 크고 근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의 목표는 “세계 에너지 산업, 다시 말해 5조 달러 규모의 산업이자 현대 경제의 근간이 되는 산업을 바꾸는 것”(18쪽, 서문)이다. ‘제로’에 도달하기 위해 인류는 모든 산업의 근간이 되는 산업, 에너지 산업을 근본적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것이 ‘기후재앙’의 주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 거대한 전환은 두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투 트랙 전략이란 첫째로 제로 탄소 전기를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공급하는데 ‘올인’하고, 둘째로 화석연료에 의존적인 지역을 포함해 자동차부터 열펌프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전기화하는 전략이다.”(281쪽)
순서를 바꿔 서술해보면 더 이해가 쉽다. 우선 세상의 모든 에너지 공급원을 전기로 바꾼다. 자동차도 전기로 몰고, 배도 (가능하다면) 전기로 운항하고, 비행기는 배터리가 너무 무겁기 때문에 불가능하므로 탄소 배출 제로인 항공유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한다. 냉방 뿐 아니라 난방 역시 화석연료를 태우는 보일러 대신 전기로 작동하는 히트펌프로 대체하며, 취사 같은 것도 전기로 바꾼다. 그리고 그 전기 자체를 탄소 제로로 생산하면 많은 문제가 일거에 해결되는 것이다.
가령 자동차와 운송 분야를 생각해보자. 테슬라를 필두로 한 전기차 메이커들의 공격으로 기존의 승용차 업계가 큰 도전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정부에서 지급하는 보조금을 빼고 나면 전기차는 여전히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충전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주행 거리가 짧으며, 배터리의 수명이 다하면 다량의 처치 곤란한 폐기물을 발생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전기차를 충전하는 전기의 생산 과정에서 탄소 배출이 있다면 전기차 역시 ‘제로’를 향한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것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대량의 승객과 화물을 날라야 하는 버스, 트럭 등 대형 운송 차량의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리튬 이온 배터리 전기차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된다. 배터리 자체의 무게로 인해 운송 효율이 턱없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비행기 역시 계속 탄화수소(석유)를 연소하는 엔진을 쓸 수밖에 없다. 전 세계 화물의 대다수를 운반하는 컨테이너선의 경우 벙커C유(油)를 연료로 사용한다. 벙커C유는 원유를 정제하고 나오는 잔여물인지라 그 가격이 턱없이 저렴하다. 어지간해서는 가격 경쟁이 되지 않는다. 시장에서 자동적으로 퇴출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빌 게이츠가 원자력에 우호적인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 어떤 다른 청정에너지원도 원자력에너지와 비교할 수 없다.” “우리가 더 많은 원자력발전소를 사용하지 않는 이상, 가까운 미래에 저렴한 비용으로 전력망을 탈탄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123쪽)
빌 게이츠는 체면치레삼아 ‘원자력 발전의 문제는 삼척동자도 안다’고 한 마디 하지만, 그건 그냥 하는 말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의 진심은 이런 것이다.
“원자력은 자동차보다 훨씬 적은 수의 사람을 죽인다. 그리고 원자력은 그 어떤 화석연료보다 훨씬 적은 수의 사람을 죽인다. 이와 같이 우리가 자동차의 문제점을 개선한 것처럼 원자력발전소도 문제를 하나씩 분석한 다음, 혁신으로 해결하며 개선해야 한다.”(126쪽)
일각에서는 빌 게이츠가 원자력발전소를 긍정적으로 언급한 대목이 전체 책의 분량상 얼마 되지 않는다며, 이 책을 탈원전 정책에 대한 반대 논거로 끌어들이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전혀 그렇지 않다. 빌 게이츠는 우리가 원자력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부정적 이미지를 떨쳐내기를 원한다. 원자력을 더 많이, 더 적극적으로, 더 개선하고 발전시켜가며 널리 사용하기를 바란다. 어느 정도냐면, 벙커C유를 퇴출시키기 위해 핵연료로 움직이는 컨테이너선의 활용이 늘어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을 정도다. 중요한 대목이니 직접 읽어보자.
“또한 핵연료로 움직이는 컨테이너선도 고려해야 한다. 핵연료 컨테이너선과 관련된 리스크는 현실적이다(예를 들어 배가 침몰한다고 해도 핵연료가 새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이미 많은 기술적 난제들이 해결되었다. 이미 군용 잠수함과 항공모함은 핵연료로 움직이지 않는가?(211쪽)”
경북 울진에서 가동 중인 한울원자력발전소 전경.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과 ‘2050년까지 제로 달성’은 비슷하게 들리지만 굉장히 다르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은 ‘2050년까지 제로 달성’을 위한 중간 단계의 목표가 아니다. 직감적이지는 않지만 굉장히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잘못된 방식으로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감축하면 자칫 2050년까지 제로 달성을 ‘못하게’(원문에도 강조가 돼 있음) 될 수 있기 때문이다.”(280쪽)
아직 ‘기후재앙’을 읽지 않았거나, 읽었더라도 저자의 취지가 잘 와 닿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방금 언급한 요점을 염두에 두고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이 책은 기후변화에 대한 책이지만, 기후변화‘만’을 염두에 두고 쓰인 책이 아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에너지 체계와 그에 기반한 산업 구조를 만들자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 빌 게이츠의 목표다. ‘기후재앙’은 바로 그 새로운 미래를 향한 청사진이다.
그런데 이 책에 대한 국내의 논의는 실로 엉뚱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특히 진보 언론의 왜곡이 도드라진다. ‘경향신문’은 논설위원 칼럼에서 빌 게이츠가 만든 원자력발전소 연구 기업인 ‘테라파워’의 신형 원자로가 핵융합로라고 서술했다가 독자들의 비난을 받고 슬그머니 칼럼의 내용을 바꿨다.
‘한겨레’ 역시 여러 차례 ‘기후재앙’을 비판했는데 그 또한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2월 23일 공개된 ‘빌 게이츠, 친원전 진영의 구세주가 됐다고?’라는 기사를 보면, “에너지생산, 제조업, 농축산업, 교통, 냉난방 등 인류 전 영역의 변화와 재생에너지 투자·확대를 촉구했던 게이츠의 주장은 오로지 원전만이 유일한 구세주인 것 마냥 납작해졌다”는 대목이 있다.
하지만 앞서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빌 게이츠는 세상의 모든 에너지를 전기로 통합하기를 원한다. 그 전기의 생산에서 원자력의 비중이 지금보다 훨씬 더 늘어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원전만이 유일한 구세주인 것 마냥”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빌 게이츠가 볼 때, 원전을 배제한 그 어떤 ‘친환경 정책’도 친환경이 아니라는 것 역시 명백하다.
원자력발전과 에너지를 둘러싼 논의는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오염돼 있다. 그 현실이 ‘기후재앙’에 대한 해석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는 셈이다. 빌 게이츠가 볼 때 원자력의 사용은 너무도 당연해서 논쟁거리가 되지도 않는다. 그래야 마땅하다. 그가 원자력에 그렇게까지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 않는 이유는 그래서이다. 당연히 택해야 할 해법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통째로 바꾸는 이야기를 하는데 왜 빌 게이츠를 한국의 탈원전 논쟁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있는가. 빌 게이츠를 ‘납작하게’ 만들고 있는 건 과연 누구인가.
2017년 7월 31일 당시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가운데)과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왼쪽에서 2번째)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국회에서 탈원전 정책 긴급 당정협의가 열리고 있다. [동아DB] |
‘기후재앙’에 대한 국내 언론의 반응과 논란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빌 게이츠가 이 책에서 한 이야기는 대한민국의 탈원전 논쟁과 무관하지 않다. 원전 사용을 늘리자는 것이니 굳이 분류하자면 탈원전 반대다.
하지만 그 맥락에서 소비되고 말 논의가 절대 아니다. 인류가 에너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생존과 번영을 도모할 수 있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구만리 상공을 나는 대붕의 눈이다.
메추라기들의 짹짹거리는 소리는 잊고, 대붕의 눈높이에서 한국의 탈원전 논쟁을 바라보자. 현재 대한민국은 러시아, 중국과 함께 원전을 낮은 가격으로 양산해낼 수 있는 원천기술을 보유한 몇 안 되는 국가다. 미국을 비롯한 자유 서방 세계의 동맹국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원전은 에너지 인프라이며 동시에 안보 자산이기 때문이다.
2050년까지 ‘탄소 제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에 많은 원자력발전소가 필요하다. 원자력발전소를 저렴하게 빨리 짓는 것으로 정평이 난 우리의 기술이 필요하다. 지금 인류가 겪고 있는 기후변화가 진정 ‘역대급 위기’라면, 그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법을 우리가 손에 쥐고 있다.
현 정권이 탈원전 정책을 철회하고 적극적인 원전 세일즈 외교를 펼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빌 게이츠를 비롯해 기후변화 대책으로 원전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환경주의자와 운동가들을 앞세워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에너지 산업 분야에서도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처럼 세계시장을 주도하는 중요 플레이어를 배출할 수 있을지 모른다. 역사상 두 번 오기 힘든 기회다.
이는 경제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다. 대한민국은 6‧25전쟁으로 쑥대밭이 된 후 유엔과 국제사회의 도움 속에 성장하여 여기까지 왔다. 이번에는 기후변화라는 위기를 맞아 전 세계를 구원함으로써 그 은혜를 멋지게 갚을 수 있는 상황이다. 자체적인 원자력발전소 기술을 가진 중국은 논외로 해보자. 인도, 나이지리아 등 인구가 많고 경제가 성장하고 있지만 에너지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석탄화력 발전소를 늘릴 수밖에 없는 나라가 아직 지구상에는 많다. 선진국 역시 마찬가지다. 가령 대정전을 겪은 텍사스에 한국의 원전이 힘을 보탤 수도 있지 않을까. 그들에게 대한민국의 빠르고 안전한 원자력발전소가 빛을 안겨준다면, 우리는 돈을 벌면서 동시에 세계와 우리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
‘기후재앙’은 그런 면에서 신선한 자극을 준다.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쇠고기를 덜 먹고 비닐봉지 대신 에코백을 들고 다니자는 ‘착한’ 운동을 넘어, 지구 전체를 바라보고 이해하며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물론 빌 게이츠의 생각에 찬성할 수도, 반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호쾌한 시각만큼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우리도 이제 개인과 국가를 넘어 문명을 고민해볼 때다.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basil8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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