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내내 집회에 참석해서 체력이 바닥난 상태다. 요즘 정신적으로도 소모가 심해서 길고 차분한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그냥 아주 간단하게, 사실 하나만 지적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CNN에서 촛불시위에 대해 보도한 기사를 보고 적지 않은 이들이 분노하고 있는 것 같다. '조중동 못지 않다'는 식의 불만이 들려온다. 하지만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CNN이 '미국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미국 매체여서가 아니다(뉴스코프 사장 루퍼트 머독은 호주 출신이다).
외신에서 다루는 한국 소식이 '조중동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것은, 한국에 상주하는 외신 특파원들이 매일같이 중앙일보를 보기 때문이다. 이건 거의 논리적 필연에 가까울 정도로 확실하다. 외신 기자가 International Herald Tribune을 구독하지 않을 리가 없는데, 거기에 매일같이 Joongang Daily, 즉 영문판 중앙일보가 딸려온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그렇다. 외신기자들의 아침은 중앙일보로 시작되는 것이다.
국내에서 그 내용을 지적하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만큼, 같은 내용을 번역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영문판 중앙일보의 내용은 한국어판보다 훨씬 더 '쩐다'. 영어를 잘 못해서 그렇게 번역을 하는 건지, 아니면 너무 잘 해서 미묘한 뉘앙스를 이상한 방향으로 살려내고야 마는 건지 알 수가 없지만, 아무튼 사실이 그렇다. 한국에 상주하는 외신 기자들은, 한국어판 중앙일보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은 Joongang Daily의 정기구독자다.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는 한, 우리는 언제나 외신 보도에 대해 십중팔구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한겨레에서 영문판 서비스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파급력은 아무래도 Joongang Daily에 미칠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한국인들이 기대하는 수준의 '공정 보도'가 외신을 통해 나오는 것은 사실상 거의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외신 기자가 맞았다더라', '외국인이 맞았다더라' 같은 유언비어에 휩쓸려, 타자의 시선을 힐끗거리는 일은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실히 해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