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이라는 단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막대한 개념적 혼돈이 있다면, 그것은 '중간 정도의 소득을 올리는 사람'과, '작은 규모의 자본을 소유하고 있고 그것으로부터 소득을 얻는 소자본가'가 모두 한 단어 안에 혼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 집값이 올라갈 거라는 헛된 기대를 버리지 못하는 '서민'들이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여기고 있다고 할 때, 그 '중산층'은 분명히 '소자본가'를 뜻한다. 반면 강남에서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고, 최근 수년간의 집값 상승을 통해 그 해만큼의 연봉보다 많은 돈을 번 사람이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칭한다면, 그것은 스스로가 소자본가임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이 '중간'임을 표명하고자 하는 의사의 표현일 터이다. 이 양자를 분리해서 사고하지 않으면 적지 않은 개념적 혼돈에 맞닥뜨리게 된다. 가령, 다음과 같은 문단을 읽어보자.
물론 이런 논의와 별도로, 과연 한국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경제수준을 중간계급으로 볼 건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런데 최근 이명박 정부가 여기에 대한 '명쾌한' 정의를 제공했다. 감세정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말이다. 정부는 "감세 효과의 53%가 서민, 중산층, 중소기업에 돌아간다"고 큰소리를 치면서 과표구간으로 연소득 8800만원, 실제 소득 1억 2000만원의 연봉을 '중산층'으로 설정했다. 여기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드높지만 이른바 '글로벌 스탠다드'로 보자면 맞는 말이다. 한국 사회에는 중간계급에 속하지 못하면서도 중간계급 의식을 소유한 '서민들'이 참으로 많다.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감세정책에 대한 지지가 높다는 건 이를 반증한다.
(이택광, "
중간계급", 2008년 9월 13일, WALLFLOWER)
과연 그럴까? 물론 이명박 정부가 설정한 바로 그 사람들만을 '중간계급'으로 보기로 했다, 이런 차원이라면 논의가 더 진행될 여지도 없다. 하지만 연소득 8800만원, 실제 소득 1억 2000만원의 연봉이 '중산층'으로 설정될 수 있고, 그것이 '글로벌 스탠다드'에도 합치하는 일일까? '중산층'을 '소자본가'로 놓고 본다면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택하고 있는 화용론은 그것을 겨냥하는 게 아니라, 한국 사회의 허리를 구성하는 중간 소득 계층이 감세로 이익을 보게 된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그렇게 놓고 본다면, 안타깝지만 연봉 1억 2000만원이 '중산층'이라는 주장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 . . OECD에서는 빈곤층, 중산층, 상류층을 어떻게 구분하고 있을까. OECD는 가구소득을 기준으로 중위소득의 50~150%에 해당하는 계층을 중산층, 그 미만에 해당하는 계층을 빈곤층, 그 이상에 해당하는 계층을 상류층으로 구분하고 있다.
OECD의 이 구분법에 따르면 2007년 현재 우리나라 근로자들 중 소득 상위 20%는 상류층에, 중위 60%는 중산층에, 하위 20%는 빈곤층으로 분류될 수 있다. . .
. . . 국세통계연보(2007)에 의하면 2006년 연말정산 대상 근로자(대기업 임원 등 포함) 1259.5만 명 중에서 상위 5.2%인 66.2만 명의 평균급여는 9482만 원이고, 그 과세표준은 5677만 원이다. 과세표준이란 총급여에서 각종 소득공제를 제외한 과세대상 소득을 의미한다.
이 통계는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 중 상위 5.2%의 근로소득 과세표준 평균이 5677만 원이므로, 과세표준 5677만 원에 해당하는 총급여를 받는 사람은 상위 2.6%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 .
(홍헌호, "
"MB 정부, 스스로 일본 전철 따르나"", 2008년 9월 16일, 프레시안)
과세표준 5677만원에 해당하는 총급여를 받는 사람이 상위 2.6%에 해당한다면, 과세표준 8800만원을 받는 사람은 당연히 그보다 더 낮은 퍼센트를 점유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글로벌 스탠다드'에 입각해 '중간계급'이라고 칭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형용모순이다. 상위 2.6퍼센트에 속하는 중산층이라는 말은 동그란 네모라는 말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엄연히 소득상으로 상류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칭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만, 한국인들의 '평등에의 요구'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한 담론적 회피 기동이다. '나는 상류층이지만 나보다 더 돈이 많은 사람들을 보면 배알이 꼴려서, 내가 잘 산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아요'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하면 맞아죽을까봐 겁이 나니까, '에이, 잘 살긴 뭘, 그냥 먹고는 살지'라고 둘러대는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나처럼 어중간하게 돈 있으면 그게 더 괴로워!'라고 역지랄을 하는 전법도 즐겨 사용되는 것 같다. 중요한 건 그런 소리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뭐라고 규정하건, 연봉이 과세표준으로 5677만원을 넘는다면 대한민국 상위 2.6%안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이들이 스스로를 '중산층'이라 칭하는 것과, 97년 외환위기 전까지 수많은 한국인들이 자신을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중산층'이라 칭하던 현상을 같은 층위에서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양자 모두 자신을 안전한 '중간'에 배치하고픈 일종의 회피 심리의 표현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할지 모르겠으나, 그 허위위식을 비판하기 위해 현실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중간계급의 경제적 붕괴를 도외시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OECD의 구분법에 따르면 한국에서 근로소득을 올리는 사람 중 중위 60%가 중산층에 해당한다. 따라서 그만큼의 사람들이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칭하는 것은 그리 잘못된 일이 아닐 것이다. 과세표준을 적용해서 총 급여액이 1345.6만원 이상 4036만원 이하면 중산층이다. 이것은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을 분류할 때 적용될만한, 그런 종류의 계급 구별은 아니지만, 적어도 국제 기구에서 중산층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를 드러내주는 하나의 기준 역할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우리가 '서민'이라고 칭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중산층이고, 또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계면쩍은 표정으로 주장하는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수는 상류층이다. 다만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상류층에 속한다는 사실을 그다지 인정하고 싶지 않아하는데, 그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자신을 상류층의 일원으로 파악하면 그만큼 상대적인 박탈감이 커지기 때문이다. 강남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같은 동 사람들끼리 서로 비교하고 살면 고만고만한 '서민' 행세를 할 수도 있지만, 한남동의 저택 소유자들과 자신을 견주면 즉각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내가 겪어본 강남 주민들은 자신의 '중산층 됨'을 한남동과의 비교에서 찾는다. 내 위에 누가 있으니까 나는 중산층이다, 이런 논리이다.
혹자는 지금까지의 논의를 본 후, 내 주장을 다음과 같이 비판할 수도 있다. 이것은 경제적 중산층과 계급적 중산층을 혼동하는 견해라고 말이다. 계급적 중산층이라는 말보다는, '중산층'이라는 일종의 허위의식과 사회 소득 분포의 배분 비율로서의 중산층을 설정하는 편이 낫겠다. 아무튼 이런 주장에 대한 나의 반박은 이렇다. 우선 그 '중산층'의 허위의식부터가 단일하지 않다. 엄연히 상류층에 속하는 이들이 자신을 중산층이라 칭하는 '위로부터의 중산층'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빈곤층에 속하는 이들이 자신을 중산층이라 칭하며 '아래로부터의 중산층'을 구성할 수도 있다(하지만 연간 총 급여가 1345.6만원도 안 되는 사람이 과연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볼까).
이렇듯 적어도 한국 사회를 논함에 있어서, 내적으로 정교하게 설정되어 있지도 않은 '중산층'을 비판하기 위해, '경제적 중산층'이 몰락하고 있는 현실을 도외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KDI의 2008년도 추산에 따르면 중산층 비중은 2000년 61.9%에서 2007년 58%로 4%포인트 줄어들었다. 흔히 '서민 경기가 얼어붙었다'로 표현하는 그 현상은, 실상 중산층의 경제적 몰락이며 그것은 분명히 큰 문제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떳떳하게 '중산층'이라 말하는 소득 낮은 사람들의 숫자는 줄어들고, 대신 소득분위상으로는 부유층에 속하면서도 '그냥 먹고 산다'고 말하는 허위의 중산층이 출현하고 있는 것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기사를 살펴보자.
간식배달업체인 ‘우리비’를 경영하는 윤광욱(38) 사장은 국내 최초의 초고속인터넷 통신망 회사인 두루넷의 공채 1기 출신이다. 두루넷이 코스닥에 상장했을 무렵 그는 대리급이었지만 우리사주로 받은 주식이 적지 않아 한때는 평가액이 20억원을 넘기도 했다. 그러나 2002년 회사가 부실해지면서 주가가 폭락했다. 손해를 보고 주식을 판 뒤 그는 조그만 중소 통신업체로 옮겼다. 그러나 이 회사도 1년 뒤 부도가 났다.
우 여곡절 끝에 집을 담보로 잡히고 간식 배달 사업에 뛰어들었다. 직원을 20명이나 채용하며 공격 경영에 나섰지만 1년여 만에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친척과 친구의 도움으로 간신히 버티던 그는 한 컨설팅업체의 도움을 받아 회생의 계기를 잡았다. 지금은 연 매출 20억원 규모로 성장했고 그의 가정도 중산층으로 복귀했다.
("
'양극화 해소' 외친 노 정부때 중산층 되레 줄어", 중앙일보, 2008년 7월 5일)
여기서 중앙일보는 "중산층으로 복귀했다"라는 절묘한 수사법을 통해, 두루넷 공채 1기 출신이며 평가액 20억 상당의 주식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그 당시에 '중산층'이었다는 잘못된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실제로 강남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바로 이런 이유로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주장한다. 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마치 중산층을 위한 것인 양 혼동하게 만드는 주범이 바로 이 계층, 부유층의 사다리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이들이다.
'한국인들은 자기가 중산층인 줄 안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래로부터의 중산층'을 비아냥거리는 맥락을 띌 때, 결국 강남 상류층(중 밑바닥)들의 징징거림에 편승하는 행위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 하지만 재벌 2세 나오는 드라마 보고 대사 따라한다고 해서 재벌 2세 되는 게 아닌 것처럼, 강남에 거주하는 고소득층을 (그들 자신이 스스로에게 그러하듯이) 중산층이라고 불러준다고 해서 강남 사람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그들이 진정 중산층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건 그저 '강남 쁘띠'들의 프레임에 놀아나는 것일 뿐이다.
여기서 해법은 '중간계급'과 '소자본가'를 명확하게 갈라서 생각하는 것이다(앞서도 말했지만 이 글에서 나는 '중간계급'을 OECD 기준으로 사고하고 있다). 강남의 따라지 상류층들이 자신을 '중산층'이라 지칭함으로써, 그들만을 위한 종부세 개편 등을 '중산층을 위하여'라고 부르는 기만적인 언어 사용을 막아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중산층'이라는 개념의 혼탁함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대신, '자기가 중산층이라는 허위의식에 빠져있는 사람들' 같은 표현을 무분별하게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중산층'이라는 단어를 '소자본가'라는 뜻으로 풀어서 읽는다면 저 표현에는 그리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OECD 기준으로 본다면, 중산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여기는 게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소득이 중간인 사람들이 중산층이다. 따라서 소득이 중간인 사람들이 자신을 중산층으로 보는 것을 비아냥거리는 것보다는, 엄연히 상위 5%, 2% 안에 속하면서도 스스로를 '중산층'이라 칭하며 '중산층을 위한 종부세 감세'를 요구하는 바로 그들의 지배 전략을 폭로하는 편이 더욱 올바른 일일 것이다. '중산층'에 대한 허위의식이 존재한다고 해서, 한국 사회 내 중산층의 존재 자체가 허위라고 보는 것은 그야말로 오류추리이다. 좌파정치가 지켜내야 할 '서민'들도 결국은 그 중산층 아닌가.
8800만원 버는 사람들을 '중산층'이라 칭한 이명박 정부의 개념 분류법을 '옳은 소리'라고 받아들이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것은 오직 자신들만이 '중산층'으로 분류되기를 바라는 강남 거주자들의 언어적 프레임에 그대로 갇혀버린 담론이다. 차라리 그들을 떳떳하게 '쁘띠'라고 부르자. 그럼으로써 우리는 '중산층'이라는 언어를 진정한 중산층의 것으로 수복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