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Is Israel guilty of war crimes in Gaza?: But is it a crime?,” The Economist, January 2009, http://www.economist.com/world/mideast-africa/displaystory.cfm?story_id=12957301&fsrc=rss.
UN 학교에 민간인들이 모여있다는 사실을 이스라엘이 몰랐을 리가 없고, 또 그곳을 '실수로' 공격했을 가능성도 사실상 없다. 이스라엘을 ICC로 끌고갈 수도 없고 설령 기소한다 해도 유죄를 입증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 그렇다 해도 이건 정말이지, 끔찍한 범죄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유태인들이 학살당한 홀로코스트가 과연 그렇게까지 엄청난 비극인가?'라는 식의 비아냥 내지는 회의주의가 없잖아 있는 듯하다. 나는 그런 시각에 절대 찬성할 수 없다. 현대 국가 이스라엘의 만행을 고발하는 것과, 그들이 국가 건설 이전에 당했던 비극을 폄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가령 허지웅님의 이 의견을 살펴보자.
또 2차 세계대전 이야기다. 또 유태인 학살 이야기다. 또 유태인을 지켜낸 영웅 이야기다. 어휴 지겨워. 유태인 학살이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자 기억되어야만 할 기록임은 확실하다. 하지만 세계사의 그 숱하게 많은 학살을 다 외면하고 유독 유태인의 희생만 숭고한 듯 꾸준히 복기하는 할리우드의 도덕률은 볼수록 지루하고 의도가 짜증스럽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의 분쟁, 그리고 미국 정부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자면 더욱 그렇다.
"디파이언스, 살아남는다는 사실의 숭고함", ozzyz review, 2009년 1월 16일.
'중요한 사건', '기억되어야만 할 일' 정도의 수식어를 붙여줬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을 건설하고자 했던 시온주의자들은, 본디 800만명 정도의 지지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홀로코스트를 겪으며 (최대치로 추산해볼 때) 600만명이 사망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건설하는 일은 예상만큼 쉽게 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홀로코스트로 인해' 생긴 나라가 아니라, '홀로코스트에도 불구하고' 탄생한 나라인 것이다(참고: "이스라엘을 다시 생각한다",《Foreign Policy》, 2008년 5/6월호). 유태인 자본이 영화계에 손을 뻗치고 있고, 그래서 그렇게 지겹게 홀로코스트니 유태인이니 나치의 잔혹함이니 하는 이야기가 반복된다는 설명은,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정말 끔찍한 일을 겪고 살아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타인의 비극을 논함에 있어 최소한으로 요구되는 인간적인 품위에 대해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유독 유태인의 희생만 숭고한 듯 꾸준히 복기하는 할리우드의 도덕률"이라는 표현의 이면에 담긴 정서를 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너만 슬퍼? 세상에 당한 사람이 너만 있는 줄 알아?'라고 핏대를 세우는 그런 광경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피해자 정서'라는 것이 있고, 한국인들의 징그러운 질투심은 그 피해자 정서에마저도 적용된다. 나도 피해자인데, 나도 당했는데, 누가 나보다 더 큰 소리로 '힘들다, 괴롭다, 당했다'라고 토로하는 광경을 보면 곱게 넘기지를 못하는 것이다. 기어이 한 마디를 덧붙여야 직성이 풀린다. '너만 괴로운 거 아니야. 유난 떨지 마.'
홀로코스트를 보며 미국 이주민들의 인디언 학살이라거나, 한국전쟁 당시에 자행된 양민 학살, 또는 그 외 세계사의 숱한 학살 사례들을 운운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이지 불편해진다.
어쩌면 그들은 진정으로 인류사에 만연한 학살을 보며 괴로워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자신들이 즐겨 보는 헐리우드 영화에, 유태인'만' 피해자인양 묘사되는 것을 마땅치 않아 하고 있을 따름인 것 같다. 게다가 그 유태인들이 세운 인공국가 이스라엘은 세계 최고의 학살 주범이 되어버린 상황이다.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것은 좌파적, 진보적, 도덕적이며 심지어 쿨하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을 비판하기 위해 홀로코스트를 '평가'하려고 들고, 다른 비극과의 경중을 논하려 드는 것은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역사상 벌어진 학살들은 각각의 이유와 전개와 논리와 수수께끼를 포함하고 있다. 일부에 대한 관심이 다른 것에 대해 지대하다 해서, 하나의 가치가 다른 것에 비해 높아지는 것도 아니고, 또 다른 것이 저평가당하는 것도 아니다. 도덕적인 관심과 학문적, 또는 예술적인 관심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서 이 글을 시작하면서 나는,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인해 가자 지구에서 발생하고 있는 여성과 어린이 사망자 수의 그래프를 인용했다. 나는 현대 국가 이스라엘이 저지르는 만행에 대해 단호하게 반대한다. 하지만 그것을 빌미로, '희생자 정서'를 드러내며 홀로코스트의 비극이 다른 것에 비해 과도한 관심을 받고 있다는 둥, 유태인이라서 그렇게 관심받는다는 둥 하는 소리를 듣는 것은 정말이지 지긋지긋하다.
이스라엘의 만행을 비판하고 싶거든, 스스로 먼저 인간의 기본을 지켜야 한다. 가해자로 돌변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정서 또한 결국은 '피해자 정서'에 불과하다. 자신들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는 이유는, 반유대주의 때문이라는 것이다. 범죄 단체를 소탕하다가 민간인의 피해가 생기는 경우는 역사적으로 비일비재했지만, 하필이면 자신들이 유태인이기 때문에 그게 도드라져 보인다, 이런 논리를 구사한다.
유태인이라서 홀로코스트가 더 주목받는다는 논리나, 유태인이라서 가자 지구 폭격이 더 비난받는다는 논리나, 둘 다 인종주의이면서 동시에 발화 주체 각각의 피해자 정서를 드러내고 있을 따름이다. 한국인들은 (사실 자신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역사상의 학살을 빌미로 유태인들이 겪었던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저울질한다. 한편 유태인들은 (다소 극화되어 있는) 유태인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을 토대로, 자신들이 벌이고 있는 가자 지구의 비극을 가볍게 넘기고자 시도한다.
그러나 묻고 싶다. 누가 감히 타인의 비극을 그런 식으로 저울질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