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스 죈트겐, 크누트 푈츠케 엮음, 강정민 옮김, 『먼지 보고서』(서울: 자연과생태, 2012)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 갑자기 춥다가 덥다가 하는 기온 때문만은 아니다. 창문을 활짝 열고 불어오는 봄바람을 맞이하기 어렵게 만드는 불청객, 미세먼지 때문이다. 물론 예전에도 봄마다 불청객 황사가 찾아왔지만 요즘의 미세먼지는 다르다.
올해 초, 설 연휴가 끝나던 주말에는 수도권의 미세먼지가 1000마이크로그램/세제곱미터를 넘겼다. 0에서 30이면 좋음, 31에서 80이면 보통, 81에서 150이면 나쁨, 150 이상이면 '매우 나쁨'인데, 그 '매우 나쁨'의 기준선을 한참 넘어선 것이다.
이전까지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먼지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었을까? 물론 우리는 늘 먼지와 마주치고 살아간다. 먼지는 책꽂이 위에도 쌓여있고, 우리의 몸에서도 뿜어져 나오며, 말 그대로 어디에나 있다. 사실, 먼지는 어디에나 있을 뿐 아니라, 우주가 시작되던 바로 그 순간부터 존재해왔다. 실로 이 우주는 먼지와 함께 시작되었으며, 우리는 먼지와 함께 살아가고 있고, 언젠가 먼지로 돌아간다.
독일 아우그스부르크 대학교 환경과학연구소를 이끄는 옌스 죈트겐은 대단히 특이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다. 화학을 공부했지만 전공을 철학으로 바꿔서, 질료 개념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런 그가 제품 형상을 공부한 크누트 푈츠케와 함께, 자신들을 빼고도 24명이나 되는 저자들이 쓴 글을 묶어 낸 책 <먼지 보고서>를 펼쳐보자.
미세먼지, 또 초미세먼지가 우리의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것들은 호흡기를 통해 폐로 흡수되며, 다양한 질병을 유발한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얼마나 많은 먼지를 만들어내는지,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1990년대 초 플렌스부르크(Flensburg)와 가미쉬(Garmisch) 사이에 있는 3,000가구를 실제로 관찰한 결과 대부분의 공간에 있는 공기는 대도시의 차가 많이 다니는 교차로보다 50배나 더 유해했다는 것이다. 유럽인들은 그들 삶의 60~90%를 집에서 보내기 때문에 집먼지는 외부의 해로운 입자만큼이나 건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178쪽)
이와 비슷한 연구가 또 하나 있다. 북미의 연구자들은 1990년, 178명의 실험 대상자에게 휴대용 먼지감지기를 설치했다. 이 사람들은 하루에 12시간씩 먼지 감지기를 달고 살았는데, 그 결과, 그들의 집과 생활 공간에서의 먼지는 건강을 유지하기에 적합한 기준치 이하였던데 반해, 대상자의 휴대용 먼지감지기에 포착된 먼지의 양은 그보다 훨씬 많았다. 다시 말해, 집은 깨끗해도 사람이 더러웠던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와 같은 현상을 '개인적 구름'이라는 표현으로 해설했다."(188쪽) 우리는 한 평생 스스로 만드는 먼지 구름 속에 살고 있는 셈이다.
건강을 위해 우리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매우 기본적인 것들이다. 잘 씻고, 청소를 깨끗이 하고, 공기가 맑은 날이면 환기를 자주 하는 것 등. 또한 국내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자동차의 매연 및 타이어 마모 먼지 등을 감소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많은 먼지를 발생시키는 중국과 협력하여 보다 나은 환경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한편 우리는 먼지에 대해, 단지 불쾌한 무언가로만 여기지 말고, 진지한 사고를 해볼 필요가 있다. <먼지 보고서>의 편집자 중 한 사람인 옌스 죈트겐이 철학자라는 사실에 주목해보자. 먼지는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며, 동시에 철학적 사유의 대상이기도 하다. 너무 작아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티끌이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아주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것이다.
먼지에 대한 가장 오래된 정의는 로마교회의 교부(敎父)이자 2001년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인터넷의 수호성인으로 추존된 성 이시도르(Isidor von Sevilla, 기원후 560-636)가 지은 백과사전에서 발견된다. 그는 돌과 금속에 관한 장에서 '바람에 의해 이동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구약성서 시편 1장 4절을 증거로 든다. 이 정의는 순전히 현상에 의존한다. 즉 먼지는 바람에 의해 이동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의 저술은 수백 년간 최상의 권위를 누렸기 때문에 중세까지도 대학생들은 그렇게 배웠다.(35쪽)
시편 1장 4절은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 어떤 자연과학적 판단의 근거가 된다니, 이것이 중세인가 싶고, 왠지 틀렸다고 말하고 싶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먼지에 대한 현대적 판단 기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독일 연방환경청에서 근무하는 라이너 레무스의 말을 들어보자. "먼지의 묘소와 관련하여 지난 시기에 다양한 정의와 협약이 내려졌다. 그에 따르면 먼지는 고체와 액체 입자로 된 복잡한 혼합물이다. 이러한 혼합물은 에어로졸이라고도 일컫는다."(147쪽)
이 작은 입자들은 "자신의 크기로 인해 어떠한 침전에도 예속되지 않는다. 즉 그들은 중력에 의해 침강하지 않으며 대기권에 아주 오래 머문다."(같은 곳) 쉽게 말해보자. 모래는 아무리 작아도 우리가 그것을 놓는 순간 땅에 떨어진다. 중력에 끌리는 것이다. 하지만 먼지, 에어로졸은 너무도 작기 때문에, 공기와의 마찰로 받는 힘이 중력에 끌리는 힘보다 더 크다. 마치 사람과 곤충의 차이와 흡사하다. 우리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다치지만 곤충들은 다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워낙 몸이 작고 가볍기 때문이다. 너무도 작아서 떨어지지 않고, 대기 속에서 부유하다가, 공기와의 마찰 혹은 정전기나 기타 힘에 이끌려 어딘가에 붙어있기도 하는 존재들, 그것이 바로 먼지인 것이다.
먼지는 우리에게 보다 근본적인 사색의 기회를 준다. 우리는 문자 그대로 먼지로부터 만들어졌다. "우리 태양계는 약 46억 년 전에 거대한 성간가스와 먼지구름, 즉 태양계 이전의 먼지구름에 의해 탄생"(86쪽)했기 때문이다.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가 한 말처럼, "우리는 먼지와 그림자"인 셈이다. 지금도 천문학자들은 우주의 기원을 밝히기 위해, 우주의 먼지들을 수집하고 분석한다. 성층권까지 올라가는 비행기에 끈끈이를 붙여서 우주먼지를 수집하고, 연구실로 가져와 분석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가장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가장 바보같은 사람들이나 할 법한 이런 행위를 통해, 이렇게 우리는 우주의 비밀을 하나씩 배워나가고 있다.
라이프니츠와 편지를 주고받았던 바젤 출신의 수학자 요한 베르눌리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자. 아주 작은 것과 아주 큰 것에 대해 함께 사고하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 "무엇 때문에 신은 우리들의 대상을 규정하고 우리의 사고에 해당하는 크기의 종류만을 창조했단 말인가. 극미한 먼지에도 이 커다란 세계의 모든 것에 상응하는 질서 잡힌 세계가 존재할 것이라는 것을, 반대로 우리들의 세계가 무한히 큰 다른 세계의 먼지 외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쉽사리 생각할 수 있지 않은가."(38쪽) 미세먼지가 잦아들고 황사가 불어오지 않는 맑은 봄 밤, 청소를 하고 환기를 하며, 먼지 속의 우주, 우주 속의 먼지를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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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1라디오 '이주향의 인문학 산책'의 책 소개 코너를 위해 작성한 원고. 내가 이렇게 줄글로 서평을 써서 보내면 작가분이 받아서 라디오 대본으로 재구성한 후 그것을 들고 방송을 했다. 2015년 3월 19일 방송분. KBS 홈페이지에서 다시 들을 수 있으려나. 유튜브 이후였다면 곧장 링크를 찾을 수 있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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