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에 학자로서 전성기를 맞이한 현대의 거장 위르겐 하버마스는, 1990년대에 대한민국에 급격히 소개되면서 이른바 '포스트' 담론들의 대항마로 큰 각광을 받았고, 그 열풍이 시들해지면서 동시에 급격히 대한민국의 식자층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그는 꾸준히 현실 정치를 관찰하고 그에 대해 글을 쓰며 사회 참여를 하고 있었다. 그 결과 2008년에 등장한 책이 바로 『아, 유럽』이며, 우리는 2011년 그 책의 한국어판을 손에 쥐게 되었다.
이제서야 제 우편함에 당도한 이 뒤늦은 편지와도 같은 책을 읽으며 나는 몇 가지 상념에 빠졌다. 다른 그 무엇보다 먼저 드는 생각은, 외국의 학자들을 유행 따라 읽고 소개하는 한국의 지적 풍토가 얼마나 천박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언제적 하버마스'는 없다. 그는 꾸준히 그가 살고 있는 현재를 해석하고 그 현재와 상호작용한다. 과거의 철학자를 과거의 유물로 만드는 것은 그를 그렇게밖에 치부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이다.
특히 하버마스와 같이, 본인의 독창적인 사상을 만들어내는 것만큼이나 다른 학자들의 논의를 요약해서 전달하는 일에 능숙한 철학자를, 단지 유행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읽지 않는 것은 대단히 큰 손해다. 이 책 『아, 유럽』은 20세기의 중후반부를 살아가는 현대철학의 거목들의 진면모를 아주 짧고 핵심적인 내용만 추려낸 강연문들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제공한다. 거장의 손으로 (본인의 논지를 펴기 위한 왜곡 없이) 요약된 거장을 접할 기회는 그렇게 많지 않다.
최수태. "위기에 빠진 유럽, 하버마스의 처방은?". 프레시안Books. 2011-11-25.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67092
3월 14일 하버마스의 부음을 듣고 저는 어떤 서평 하나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한국 최고의 서평지였던 프레시안북스에 실린, 원고지 50매에 달하는 그 긴 서평의 저자는, 하버마스의 <아, 유럽>을 다각도로 읽어내고 있었죠.
하버마스는 <아, 유럽>에서 미국의 '좌파 애국주의'를 공들여 다루는데, 그것은 유럽통합론자로서 하버마스가 이성 중심의 공론장 뿐 아니라 감성으로 만들어진 애국심, '유럽의 애국심'이 필요하다는 걸 통감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추측을 담아내고 있는 서평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 책의 내용을 넘어서, 그 책을 읽고 있는, 혹은 읽어야 할 한국 지식인 사회의 모습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어쩌면 그런 지점이야말로 이 서평이 독특한 가치를 지니게 만든 부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인지 뇌리에 계속 남아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많은 분들과 함께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언제적 하버마스' 같은 소리나 찍찍 내뱉으면서 한국의 지식인들이 외국의 지적 흐름을 무슨 두쫀쿠 버터떡마냥 소비하고 버리는 동안, 하버마스 같은 진정한 지식인은 본인에게 주어진 맥락 위에서 최선의 지적 활동을 해내가고 있었던 것이지요.
위르겐 하버마스, 위대한 학자이자 열정적인 공공 지식인, 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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