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나는 최대한 '유아인'에 집중하고 싶었다. 연기자로서의 인격에만 논의를 국한하고 싶었다는 말이다. 그 이름은 그가 공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 만든 것이며, 따라서 비판을 받더라도 페르소나의 이면에 있는 인격까지 비난의 대상이 되지는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유아인은 스스로 올린 페이스북 게시물을 통해 자신의 이름 세 글자의 한자 풀이를 하며 기꺼이 선을 넘었고, 따라서 이제 우리는 말해야 한다. 86년생 엄홍식이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온, 82년생 김지영들이 착취당해온 세상에 대해.
소설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보자. 『82년생 김지영』은 이제 모든 사람들이 그 이름을 아는 베스트셀러이며, 화제작이고, 문제작이다. 일단 이 '보편적'인 인물의 프로필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김지영 씨는 1982년 4월 1일, 서울의 한 산부인과 병원에서 키 50센티미터, 몸무게 2.9킬로그램으로 태어났다. 김지영 씨 출생 당시 아버지는 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주부였다. 위로 두 살 많은 언니가 있고, 5년 후 남동생이 태어났다. 방 두 개에 마루 겸 부엌 하나, 화장실 하나인 열 평 남짓 단독주택에서 할머니와 부모님, 삼 남매, 이렇게 여섯 식구가 살았다.
딸 둘에 아들 하나. 김지영 씨 어머니의 시부모 뿐 아니라 친정어머니도 아들을 낳으라고 성화다. 김지영 씨는 태어날 때부터 환영받지 못했다. 실패한 복권이었다. 결국 5년 후 태어난 아들에게 모든 자원이 집중되었다. 밥, 옷, 혼자 쓰는 방, 용돈, 교육비, 기타등등. "우산이 두 개면 동생이 하나를 쓰고 김지영 씨와 언니가 하나를 같이 썼고, 이불이 두 개면 동생이 하나를 덮고 김지영 씨와 언니가 하나를 같이 덮었고, 간식이 두 개면 동생이 한 개를 먹고 김지영 씨와 언니가 나머지 한 개를 나눠 먹었다."(25쪽)
가족 내에서 시작된 차별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누적된다. 학교에서는 남학생들이 급식을 먼저 받아먹고, 더 달라고 성화를 부려 맛있는 반찬을 거덜낸다. 대학에 가도 여학생은 동아리의 '꽃'일 뿐 '활동 주체'로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 김지영 씨는 2001년에 대학에 들어간 01학번인데, IMF의 직접적인 타격은 극복한 듯 보이는 시절이었지만, 친구의 말을 듣고 문득 깨닫는다. 이름만 대면 아는 번듯한 직장 다니면서 '우리 회사 와라'면서 폼 잡는 선배들이 다 남자라는 것. 그 똑똑하고 잘난 여자 선배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다는 것. 그런 '사라짐'이 바로 자신을 기다리는 운명이라는 것.
그렇게 김지영 씨는 계속되는 차별을 겪고, 참고, 입을 다문다. 말을 아끼고 (남자들이 보지 못하게) 한숨을 내쉬고 세상이 나한테만 불공평하게 돌아가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애써 합리화한다. 그러다가 결국 애를 낳기 위해 그 어렵게 들어갔던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된 후, 1500원짜리 커피를 마시는 자신을 보며 남자 직장인들이 '맘충'이라고 킬킬거리는 소리를 들었을 때, 김지영 씨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도달한다.
"그 커피 1500원이었어. 그 사람들도 같은 커피 마셨으니까 얼만지 알았을 거야. 오빠, 나 1500원짜리 커피 한잔 마실 자격도 없어? 아니, 1500원 아니라 1500만 원이라도 그래. 내 남편이 번 돈으로 내가 뭘 사든 그건 우리 가족 일이잖아. 내가 오빠 돈을 훔친 것도 아니잖아. 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돼?" (165쪽)
이렇게 폭발해버린 김지영 씨의 분노는 '말문이 트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다른 여자들, 죽은 사람이건 산 사람이건, 완벽하리만치 똑같은 말투와 표정으로 그 여자들의 말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애를 낳다가 죽은, 남편이 좋아했던 대학 시절 친구에게 그가 고백했던 내용까지도, 미쳐버린, 혹은 신들린 김지영 씨는 알고 있다. 그는 최선을 다해 엄마이고자 했지만 '맘충', 즉 인간 이하의 존재로 비하당했기에, 세상의 모든 여자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책에 붙은 해제에서 여성학자 김고연주가 잘 이야기하고 있다시피, 김지영은 언제나 '말'을 빼앗기는 존재다. 학교에서 급식을 받아먹는 것 같은 사소한 문제에서마저, 남학생이 여학생을 때리고 괴롭히는 것을 선생님에게 호소할 때마저, '너는 여자니까 부당함을 참아야 한다'는 당위적이지 않은 주장이 마치 당위 명제인 양 그를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김지영은 어처구니없고 부당한 상황에서 거의 입을 닫아 버"(184쪽)렸고, 결국에는 자신처럼 입을 닫아버렸던 수많은 여자들을 대신해 말하는 존재가 된다.
애석하게도 김지영 씨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소설이기 때문에 김지영 씨가 향후 겪게 될 사건을 무궁무진하게 펼쳐갈 수도 있었겠지만, 작가는 대신 그를 정신과 의사에게 데려간다. 정신과 의사(男)는 김지영 씨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면서도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여러 가지로 곤란한 법이다.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175쪽)고 다짐한다. "내가 평범한 40대 남자였다면 끝내 알지 못했을 것"(170쪽)이라며 김지영 씨가 겪어온 고통과 차별을 '특별한 나'를 꾸며주는 장식품으로 몽땅 소비해버리고 난 후에 말이다.
마치, 86년생 엄홍식이 그랬던 것처럼.
2017년 11월 26일 오후 12시 12분에 올린 페이스북 게시물에서, 엄홍식이라는 이름을 가진 대구 출신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보수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구에서 누나 둘을 가진 막내 아들이자 대를 잇고 제사를 지내야 할 장남으로 한 집안에 태어나 ‘차별적 사랑’을 감당하며 살았"다고.
앞서 인용한 『82년생 김지영』의 한 구절과 비교해보자. 86년생 엄홍식이 감당하셨다는 '차별적 사랑'이란, 자신의 누나 두 명이 간식 하나를 나눠먹을 때 본인은 한 개 다 먹는 것, 누나 두 명이 우산 하나를 나눠 쓰고 비에 젖을 때 본인은 제일 좋은 우산으로 비를 가리는 것 등을 의미할 것이다. 누가 봐도 차별을 당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명백한데, 82년생 김지영 대신 86년생 엄홍식이 외친다. 내가 더 힘들었다고 말이다.
86년생 엄홍식의 '불행 배틀'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아들을 원하는 보수적인 집안에서 둘째 누나의 이름이 왜 '방울'이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그가 직접 공개한 내용이고, 나는 그것을 비판하려 하는만큼, 인용하겠다.
작은누나의 이름은 한글로 ‘방울’이다. 그때까지는 내 조부모들의 귀한 자식들인 내 부모가 가진 자식들이 딸 둘 밖에는 없어서 다음에는 꼭 아들을 낳으라고 할머니가 그렇게 지으셨다고 한다. ‘엄방울’ 불쌍하고 예쁜 이름.https://www.facebook.com/hongsik.uhm.14/posts/1985718098308225
이러한 발화 행위를 통해 86년생 엄홍식은 '엄방울'이라는 여성에게서 대단히 중요한 것을 빼앗아갔다. '내 이름이 엄방울인 이유는 내 부모가 여자인 나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표출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 것이다.
이제 전 국민이 엄홍식의 누이의 이름에 얽힌 사연을 안다. 이제 그 누이는 자신이 여성혐오의 극단적인 피해자라는 사실을 감출 수도 없고, 드러낼 수도 없다. 남동생 엄홍식이 누이인 엄방울의 비극을 약탈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86년생 엄홍식은 친누이로부터 빼앗아온 비극을 전시한 후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했다. 마치 아프리카의 국립공원에서 불법 사냥을 한 이들이 맹수의 사체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자신이 맹수인 척 하는 것처럼 말이다.
착취자가 피착취자를, 억압자가 피억압자를, 가해자가 피해자를 낭만적인 대상으로 소비하는 것은 인류 역사상 수없이 반복되어온 패턴이다. 그런데 그것이 이렇게까지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방식으로 표현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으리라고 나는 상상해본 적이 없다. 86년생 엄홍식은 바로 그것을 해냈다. 누이의 비극을 팔아, 그 누이가 자신의 비극을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서사화하고 발화할 수 있는 기회마저 빼앗아버렸다. 누나의 비극까지도 남동생이 무대 장치로 소비해버리는 그런 모습을, 나는 정말이지 보고 싶지 않았다.
여성들은 이렇게 착취당하면서, 착취당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서사화할 기회까지도, 착취당한다.
82년생 김지영 씨가 속된 말로 '돌아버리게' 만든 방아쇠가 된 사건은 '맘충'이라는 혐오 표현이었다. 86년생 엄홍식 씨는 본인에게 동의하지 않는, 비판하는, 혹은 비아냥거리는 수많은 여성들을 향해 '폭도'라는 혐오 표현을 던졌다. 이건 실수라고 볼 수도 없다. 그가 흩뿌린 수많은 트윗들 뿐 아니라, 11월 27일에 올린 게시물에 선명하게 그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SNS를 통한 저의 외침은 세속적 가치를 내려 놓고 진정한 나의 가치와 관계를 찾고자 하는 의지입니다. 저의 노력이 언제나 처럼 폭도들에 의해 ‘인생의 낭비’로 조롱 당하고 매도 당한다 해도 저는 지금의 인생을 온 힘을 다해 성실하게 살아나가고자 합니다. 부끄럽지 않고 진실되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폭도들아! 내가 여기에 ‘댓글’의 기능을 기꺼이 남겨둔다. 너희의 존재를 모두가 확인할 수 있도록. 더러워지는 것은 내가 아니라 너희의 손이고 너희의 입이고 너희의 영혼이다. 너희가 감히 선량한 사람들과 내가 나눈 소통을 막아서는 일을 묵시하지 않을 것이다.https://www.facebook.com/hongsik.uhm.14/posts/1986309071582461
혹시 모를까봐 하는 말인데, 오늘날 한국어의 용례에서 '폭도'가 지칭하는 대상은 명백하다. 5.18 광주민주항쟁 참여자들 및 광주 시민, 더 넓게는 전라도 사람들이다.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배우 김상경이 연기한 강민우는 외친다. "여러분, 우리는 폭도가 아닙니다!"
'폭도'는 바로 그런 어휘다. 약자를 향해 집어던지는 흉기와 같은 단어. 그런 표현을 대체 어디서 배웠을까? 엄홍식은 누이의 비극을 팔아 페미니스트 행세를 하는 한 대구 남자에 대해 분노하는 여성들을 향해 외친다. "폭도들아!"
그의 의도는 명백하다. 상대를 '폭도'로 규정함으로써 '입을 닥치게' 하겠다는 것이다. 86년생 엄홍식이 그러고 있는 사이, 82년생 김지영'들'은 점점 더 할 말을 잃어간다. 대외적으로 온갖 멋진 모습을 다 보여주는 소위 '개념 연예인'이 처음에는 여성들에게 '메갈짓'을 한다고 하더니, 이제는 '폭도'라고까지 하는 모습을 보며. 그리고 그런 대구 출신의 한 남자를 어떻게든 두둔하려 드는 가부장적 체제의 구성원들을 보며.
86년생 엄홍식이 82년생 김지영을 만나면 무슨 대화를 할까. 차별받는 주체로서의 스스로를 자각하고 본인과 다른 여자들이 못 해왔던 말을 쏟아내는 이들을 향해 엄홍식이 선사한 어휘의 목록을 되짚어보자. '메갈짓', '익명의 폭력배', '온라인 테러리스트 집단', '조직폭력배', 그리고 '폭도'. 이미 그는 수많은 김지영'들'을 향해 이런 소리를 해왔다. 어떤 면에서 그는 『82년생 김지영』의 진짜 화자인 정신과 의사보다도 위선적이고 기만적이다. 적어도 그 정신과 의사는 '나야말로 진정한 페미니스트'라는 난감한 태도를 취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82년생 김지영』은 수많은 남자 독자들의 찬사를 받은 책이다. 수많은 남자들이 이 책을, 읽었건 읽지 않았건, 다른 남자들을 향해 권했다. 그리고 또 많은 남자 연예인들은, SNS에 『82년생 김지영』을 비롯한 다양한 페미니즘 서적을 올리고 소위 '인증'을 하면서 자신의 '개념'을 증명하기에 바빴다.
그런데 그들 중 그 누구도, 내가 아는 한, 82년생 김지영'들'을 향한 86년생 엄홍식의 폭력적 언행을 나무라는 사람이 없다. 정작 현실 속에서는 이렇게 82년생 김지영'들'의 입에서 터져나오는 방언이 그저 '익명의 폭력배'의 행패요 '온라인 테러리스트 집단'의 깡패 놀음 취급당하고 있는데, 이름값 있는 남자들은 현실 속의 김지영'들'을 위해 한 마디 하기보다는 그냥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을 알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전시함으로써 제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렇게 글은 허공에 흩어진다. 문학은 우리의 삶을 겉돈다. 그리고 수많은 김지영'들'은 다시 할 말을 잃는다. 그 자리를 86년생 엄홍식 같은 남자들의 뻔하디 뻔한 자의식 노출이 채워넣는다. 그들이 스스로를 충분히 '불쌍한' 존재로 전시하기 위해 여성의 비극이 동원된다. 여자들의 언어는 충분히 정련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폭발하고,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 86년생 엄홍식'들'은 82년생 김지영'들'을 향해 손가락질한다. 진정한 페미니스트는 나 같은 사람이라고. 너희들은 '메갈짓'을 하는 '폭도'라고.
이 역겨운 역설 앞에 나는 할 말을 잃었지만, 그래도 길게 쓰고 기록으로 남긴다. 86년생 엄홍식과 같은 남자들의 폭력적 언행을 제지함으로써, 더 많은 82년생 김지영'들'이 자신의 언어를 잃고 방언을 내뱉는 존재가 되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여성혐오가 어떻게 여성들의 언어를 박탈했는지, 그 자리에서 터져나오는 분노의 함성을 어떻게 매도하면서 또 소비해버리는지, 우리는 더 정확히 알고 반성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