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든이 역사적인 폭로를 감행할 때 머릿속에 어떤 게임 캐릭터를 떠올리고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산혁명의 주역 조슈아 웡은 '기동전사 건담 철혈의 오펀스'를 현재 탐닉중이라고. 내면이 흔들릴 때 건담을 생각하는, 홍콩과 인류의 민주주의 영웅.Video games offer cleaner victories. But Gundam’s appeal is about more than the drama of battle. Wong appreciates the “more boring” storylines about interplanetary diplomacy. His current favourite iteration of the Gundam cartoons “Iron-Blooded Orphans” begins on Mars, where a 300-year-old colony is seeking independence from Earth. The corrupt adult leaders force children to fight. The youngsters are “soldiers born out of the Earth sphere’s oppressive rule,” explains the fictional leader of the Mars independence movement: “They embody the problems burdening each one of us.” Although Wong denies that he wants Hong Kong to be independent – he argues for greater autonomy and democracy – the parallels are clear. He is amused by the story’s conclusion: the heroes are defeated, but the vanquishing regime adopts democratic reform anyway.
(...) Wong knows that his battles will persist – and that victory poses dangers too. He uses “Iron-Blooded Orphans” as an example to warn activist friends of the challenges they’ll face even if their cause eventually prevails. The youngsters on Mars win many battles but when they achieve power they struggle with how to administer their affairs: “There’s a lot of internal conflict.”
Caroline Carter, Simon Cox, "Gaming with Joshua Wong", 1843 Magazine, 2020년 6·7월호
2020-05-10
건담과 혁명
2020-05-09
[노정태의 시사철]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정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일러스트 = 안병현 |
엄격한 순서가 있다. 옷, 책, 서류, 소품, 추억의 물건. 일단 몽땅 꺼내서 쌓아놓는다. '내가 이렇게나 짐이 많았어!'라고 경악하면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각각에 대한 판단에 들어가는데, 그 과정이 핵심이다. 옷이건 책이건 옛날에 찍은 사진이건, 하나씩 만져보면서 '설렘'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설레면 잘 정리해서 간직하고, 설레지 않으면 물건에 '고마웠어'라고 작별 인사를 하고 버린다. 정중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쌓여 있던 과거와 선을 긋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이 왜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걸까? 일본인은 좁은 집에 산다. 정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반면 넓은 집에 살고 있는 미국인들의 경우 정리를 하지 않아도 대충 살아가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물건을 쌓아두지 않고, '설레는' 것만 남겨야 하는 어떤 이유가 제시되어야 한다. 곤도 마리에의 주장은 그렇게 철학적 맥락을 띠게 된다. 그는 미국인들에게 노자 철학의 일부를 가르치게 된 것이다.
'도덕경'의 11장을 펼쳐보자. 서른 개의 바큇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꽂혀 있으니, 바퀴통이 비어 있어야 쓸모가 있다. 흙으로 그릇을 만드는데 그릇이 비어 있어야 쓸모가 있다. 문과 창을 뚫어 방을 만들어도 방이 비어 있어야 쓸모가 있다. 유(有)가 이로운 것은 무(無)의 쓸모 덕분이다. 있음과 없음,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의 관계가 순환적으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노자 철학의 핵심 대목 중 하나다.
한자 문화권에 사는 동아시아인들은 이 논의에 너무도 친숙하다. 많은 경우 이것을 철학적 논의라고 생각하지도 않는 듯하다. 하지만 곤도 마리에가 찾아가는 미국인들, 심지어 넷플릭스로 지켜보는 모든 이는 신선한 깨달음을 얻는다. 가족이 사는 집, 각자 눕는 방, 심지어 자주 안 쓰는 물건을 치우는 창고까지도, 꽉 차 있으면 쓸모를 잃어버린다. 비어 있어야 쓸모가 생긴다. 더 좋은 삶과 경험을 채워넣으려면, 우선 비워야 한다.
이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진리는 가족이 살아가는 집보다 더 큰 단위에도 어렵지 않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정치의 영역에서도 그렇다. 4월 총선에서 역대 최악의 패배를 기록한 후에도 끝날 기미가 없는 미래통합당의 내부 분열 및 의기양양한 청와대와 여당을 보고 있노라면 드는 생각이다.
보수 정치라는 집구석에 쌓여 있는 것들을 곤도 마리에식 정리법에 따라 살펴보자. 옷. 새로 맞춘 핑크색 옷이 한가득 쌓여 있다. 설레는가? 그럴 리가. 책과 서류는 어떨까. 오랜 집권 경험을 지닌 거대 정당으로서 막대한 지적 자원을 가지고 있다. 차고 넘친다. 하지만 선거 과정에서 제대로 활용된 바 없다. 쌓여만 있지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렇다면 소품들은? 선거를 앞두고 '잔재주'를 부릴 법한 시점이 있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보수 정치라는 집은 있긴 한데 쓸모가 없는 것들로 꽉 차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늑하기는커녕 퀴퀴하고 답답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추억의 물건을 살펴볼 차례다. 돌이켜보면 나쁜 것만 있던 것은 아니다. 이명박 정권 당시, 2008년 금융 위기에 대응하여 내놓았던 일련의 정책들을 생각해보자. 이명박 정권의 여러 과오와는 별도로 오늘날까지도 참고할 만한 지점이 있지 않은가. 박근혜 정권도 모든 게 잘못되지는 않았다. 지지율 하락을 각오하고 공무원 연금 개혁의 화두를 제시한 정치적 용기만큼은 곱씹을 필요가 있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 정치적 위험을 무릅쓸 수 없는 사람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진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이, 친박 양대 계파는 자신들이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물질적, 상징적 자본을 쇄신하지 않았다. 탄핵 이전에도,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보수 정치는 설레지 않는 것들을 잔뜩 끌어안고 버티고만 있었다. 결국 국민이 보수를 통째로 내다 버리고 만 것이다.
여당과 청와대 역시 버려야 할 것들이 많다. 북한 깜짝쇼 따위 집어치우고, 국가에 필요한 인기 없는 정책을 펴나가야만 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2020년 대한민국은 미래를 위한 노동 개혁이 절실하다. 21세기 초, 독일의 사회민주당과 녹색당 연합정권이 슈뢰더 총리의 지도하에 감행한 하르츠 개혁에 비견할 만한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
이것은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는 문제다. 대기업 정규직과 공무원에게만 유리한 노동 구도를 타파하여, 상위 20%의 양보를 이끌어내고 하위 80%를 좀 더 폭넓게 보호해야 한다. 그래야 온 국민이 창의적으로 일자리를 오가고 만들어낼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벌어질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지형에서 한국이 국제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을 마련해야 한다.
문재인 정권은 의지가 없다. 대통령 지지율은 60%를 넘나들고 국회 의석도 3분의 2나 되는데 뭐가 두려워서 할 일을 하지 않는단 말인가? 쓰지도 않을 것을 모아만 놓는 이들을 '호더(hoarder)'라 부른다. '지지율 호더', 문재인의 지금 모습 아닌가. 지지율은 정책으로 환산되어 필요한 곳에 쓰여야 한다. 경제가 무너지면 지지율도 의미가 없다. 김영삼은 지지율 90%를 넘긴 적도 있지만 정권 교체를 피하지 못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된 첫 주말이다. 나들이 길에 나서는 건 성급할 수 있다. 나는 집 정리를 할 계획이다. 창문을 활짝 열고, 먼지를 털고, 안 쓰는 물건들을 내다 버릴 것이다. 그래야 뒤늦게 찾아온 봄을 신선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내가 청소를 하는 동안 우리의 정치권에서도 유의미한 변화가 벌어지기를 바란다. 여야 할 것 없이,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국민을 설레게 하지 못하는 것들을 내다버린 후, 진짜 설레는 미래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를 소망한다. 이제 과거와 작별해야 할 때가 왔다. 더 이상 설레지 않다면 '그동안 고마웠어'라고 말하고 보내주자. 정중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 2020년 5월 9일자 조선일보 주말판 게재. 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08/2020050802565.html
* 참고: 기사에 포함된 일러스트는 이 게시물의 사진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ㅎㅎ
2020-05-05
Planet of the Humans (1)
마이클 무어가 제작한 ‘Planet of the Humans’를 방금 다 보았다. 아무렇게나 순서 없이 일단 적어놓는 감상.
미국 민주당 계열 환경운동을 대표하는 빌 매키번, ‘지구가 아프다 다큐’로 뭔가 큰 상도 받았던 미국 전직 부통령 앨 고어, 민주당 대선 주자로 경선에 뛰어들었다가 돈만 쓰고 그만둔 마이클 블룸버그 등, 쟁쟁한 인물들.
그들이 어떻게
- Green energy라는 구호를 내걸고 돈벌이를 하고 있는지,
- 자신들이 내세우는 구호와 biofuel(나무 썰어서 폐 타이어 등과 태우는 것)의 괴리를 얼버무리는지
- 그 결과 지구가 어떻게 더 망가져가는지
등을 설득력 있게 묘사하는 충격적인 작품.
나도 한때 열심히 follow up했던 350.org 같은 조직이, 결국 따지고 들어가면 엑손 모빌이나 도요타 같은 기존 화석연료 업계의 후원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다큐를 다 보고 나면 놀랍지도 않은 수준.
각본과 감독을 맡은 제프 깁스(Jeff Gibbs)는 어린 시절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읽고 큰 감명을 받은 후, 이 다큐를 만들기 전까지 시에라 클럽의 맴버로서 열심히 활동해온 열혈 환경운동가.
그가 환경운동 행사장에서 사람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며 ‘당신들 바이오매스에 찬성하냐’고 물을 때, 다들 해맑게 ‘절대 안되지 우리는 친환경인걸!’ 하는 모습은 정말 가슴아프다.
가장 황당하고 꼴같잖은 장면. 우리는 흔히 가운데 탑이 있는 거대한 태양광 발전기가 100% 태양광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지만, 매일 아침 시동을 걸기 위해 가스발전기를 같이 설치한다고. (감독이 인터뷰한 환경 과학자는 그것을 ‘매일 아침 내가 일어나면 커피를 마셔야 정신을 차리게 되는 것과 같다’고 농담하기도.)
풍력발전기도 마찬가지. 태양광/풍력 시설을 늘리면 늘릴수록 가스발전기가 늘어나는 모습이 다큐에 생생하게 묘사된다. 하지만 미국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환경운동가’들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음.
아쉬운 점은 원자력에 대한 언급이, 한번 스쳐가듯 나오지만, 없다는 것. 탄소 배출을 줄이는 차원을 넘어 공격적으로 탄소 포집을 하려면 결국 답은 원자력 뿐이다.
아직 한국어 자막이 없는데, 영어 자막을 켜놓고라도 보시기 바랍니다. 꼭 봐야 할 2020년 최고의 문제작.
2020-04-19
주류 교체? 꼰대 교체!
이번 총선을 ‘주류 교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꼰대 교체’가 더 맞는 표현입니다. 왜 꼰대냐고요? 말이 안 통하니까 그렇습니다.
생각해보시죠. 1992년 총선, 그 유명한 ‘초원복집’ 사건이 터졌습니다. 지역감정을 유발시켜서 총선에서 이겨먹겠다는 내용이 담긴 녹음 테이프가 공개되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습니까? 민주자유당이 이겼죠. 왜냐? ‘우리편’이니까 옳건 그르건 찍어준다는 꼰대들 덕분이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황운하, 김남국, 최강욱, 이런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울산선거 청와대 개입 사건이라던가,
팟캐스트 여성 모욕 발언이라던가, 이런 게 국민들에게 다 알려진 상태에서도 그렇습니다. 왜일까요? 올드 꼰대들이 주춤한 사이, 뉴
꼰대들이 묻지마 투표를 해서 아니겠습니까?
왕년의 꼰대들에게도 할 말은 있었습니다. 빨갱이들은 안 돼, 김대중이는 안 돼, 뭐 그런 것 말이죠. 그들은 그런 소리를 찍찍 내뱉고는 다짜고짜 1번을 찍으러 갔습니다.
지금의 꼰대들과 다를 게 없죠. 새누리당은 안 돼, 쟤들은 수꼴이니까 안 돼, 안철수도 안 돼고 심상정도 안 돼고 다 안 돼, 아 몰라 나는 청와대가 선거개입했다는 증거가 수두룩해도 문재인한테 힘을 실어줄 테야…
한심스러운 상황입니다. 어째 나라 수준이 1992년과 다를 바 없을까요. 황운하가 국회의원 당선되는 2020년이, 정형근이 국회의원 당선되던 1996년과, 뭐가 그렇게 다르다고 할 수 있을런지요.
불과 5년 전만 해도 저는 제가 이런 세상에 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이 힘을 가지면 좀 더 나은 세상이 될 줄 알았죠.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최근 뼈저리게 배워나가는 중입니다. 그래도 웃으며, 힘내서 살아봅시다.
2020-04-18
인류를 위한 일회용품
가령, 한 여고생은 플라스틱 빨대에 대한 문제를 인식했지만, 같은 반의 친구들 중 같은 문제를 인식한 친구는 없었다. 하지만 그 학생은 E-Participation에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만남을 통해 통해 사실은 플라스틱 빨대를 만드는 기업들이 2~30년 전까지만 해도 단순 이익을 창출하려는 기업가가 아니라 소셜 기업가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B형 간염의 바이러스가 대만의 큰 고민거리였고 , 바이러스의 전염을 막기 위해 플라스틱 식기를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B형 간염 바이러스는 사라졌고, 당시와는 다른 새로운 사회적 문제가 생긴 것이다.
강현숙, 오주영, "[인터뷰] 대만 디지털 장관 오드리 탕 (2)", 2020년 4월 10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뉴노멀’이 도래했다는 말에 나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이것은 ‘뉴’도 아니고 ‘노멀’도 아니기 때문이다. 인류가 생명을 위협하는 전염병의 존재를 잊고 살았던 최근 수십년간이 비정상이었을 따름이다.
투표장에서 비닐장갑을 나눠주는 것이 환경오염이라고 근심하던 분들이라던가, 스타벅스의 종이 빨대(주여…)라던가, 온갖 이슈들 속에서 문득 이런 인터뷰를 보게 되어, 재미있어서 적어두고 혼자 보기 아까워서 블로그에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