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생인 나는 가수
나훈아가 한창 날리던 시절을 직접 보지 못했다. 내게 그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파티 초청을 거부한 사람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두세
곡 부르고 약 삼천만원 정도 받는 쉬운 돈벌이였지만 단호히 거부하며 이런 뜻을 밝혔다고 한다. “나는 대중 예술가다. 따라서 내
공연을 보려고 표를 산 대중 앞에서만 공연하겠다. 내 노래를 듣고 싶으면, 공연장 표를 끊어라.”
대체 저런 배짱이 어디서
나왔을까. 그 의문은 올해 추석을 하루 앞두고 풀렸다. 지난 9월 30일 KBS 2TV에서 방송한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를 보니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었다. 호랑이 같은 얼굴에 꾀꼬리 같은 목소리를 가진 이 대범한
예인(藝人)이, 지금부터 2500여 년 전에 살았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에게 격식 없이 건넨 말 덕분이었다. 아, 테스
형!
나훈아는 노래한다. “세상이 왜
이래, 사랑이 왜 이래.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 형.” 원래 이 가사는 그가
작고한 아버지의 무덤에서 떠올린 것이지만, 너무 어둡고 무거워질 것 같아서 모두가 아는 철학자 이름을 빌렸다는 후문이 전한다.
설령 그렇다 해도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 철학의 핵심 주제만큼은 진작부터 그의 가슴 깊이 묻혀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노랫말이 되었고 온 국민의 안방에 전달되었으리라.
고대 그리스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자. 델포이에 세워진 아폴론 신전 입구에는 세 경구가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너 자신을 알라’는 그중 하나다. 아테네에서
버스로 두 시간 거리인 델포이는 예나 지금이나 험난한 곳이다. 신탁을 듣기 위해 신전을 방문하는 것은 그 자체가 고행이었던
셈이다. 지친 발걸음을 이끌고 웅장한 신전에 도달하면 신의 메시지가 기다린다. 너 자신을 알라.
즉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의 원작자가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대부분 소크라테스를 떠올린다. 워낙 열심히 저 말을 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마치 많은
사람이 ‘땡벌’을 나훈아가 아닌 강진 노래로 알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크세노폰이 ‘회상록’에서 전하는
바는 이렇다. “너 자신을 알라”고 외치며, 나 스스로가 누구인지 아는 것은 모든 선한 일의 근원이라고,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자는 미혹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고 경고하고 다녔다는 것이다.
플라톤 역시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전한다. ‘카르미데스’ ‘프로타고라스’ ‘파이드로스’ ‘필레보스’ ‘법률’
‘알키비아데스 1’. 총 여섯 번에 걸쳐 등장하는 그야말로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저 말을
똑같이 반복하지는 않았다. 대화 편에 따라 언급되는 맥락과 방식이 다르다.
가령 ‘알키비아데스 1’에서는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스스로를 인식하는 것이 진정한 앎의 출발점이라는 취지에서 저 말을 인용한다. 반면 ‘파이드로스’에 담긴
맥락은 훨씬 무겁고 비장하다. 고대 그리스 신화 속 괴물인 튀폰을 거론하며, 나 자신을 안다는 것은 “내가 튀폰보다 더 끔찍하고
사나운 짐승인지, 아니면 오만하지 않은 명(命)과 신성을 타고난 온유하고 온전한 피조물인지 알아보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던 것이다.
마치 홍상수 영화 ‘생활의 발견’의 명대사처럼, 인간은 못 돼도 괴물은 되지 말자는 소리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그 이전과 나누는 중요한 분기점이다. 피타고라스, 파르메니데스, 헤라클레이토스 등 이전 시대 철학자들의
관심사는 인간보다 자연에 쏠려 있었다. 우주가 어떤 원소로 이루어져 있는지, 시간은 직선적으로 흐르는지 아니면 순환하는지, 숫자와
세계의 관계는 어떠한지 등이 그들의 주된 고민거리였다.
반면 소크라테스의 주제는
사람이었다. 우주를 인식하고 탐구하며 그 속에서 상호작용하고 윤리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 그러므로 저잣거리에서 젊은이들을 붙잡고
귀찮게 질문을 던져댔던 것이다. 자네는 참 많은 걸 알고 있는 것 같군. 그런데 자네 자신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는 건가?
그렇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은 세상의 그 어떤 지식보다 소중하다. 이건희의 초청을 거절하던 나훈아가 보여준 것도 바로 그런 모습이다. 나훈아는 자신이
‘대중 예술가’, 즉 표를 사고 공연장에 온 대중 앞에서만 노래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 어떤 부와
권력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거나 혼돈에 빠지면 더 큰 수렁에서 헤어날 수 없다.
역사를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도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을 위해 목숨을 건 적이 없다고, 이 나라를 지켜온 것은 평범하고도 위대한 국민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었던
힘도 바로 그런 단단한 자기 인식에서 나왔으리라. 정권 따라 팔랑거리는 얄팍한 ‘개념 연예인’이 아닌 당당한 대중 예술가 나훈아.
그는 그렇게 온 국민의 가슴에 시원한 가을바람 한 줄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소크라테스의 눈으로 오늘날
대한민국을 바라보면 어떨까. 안타깝게도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대통령 문재인부터 그렇다. 지금은
대단한 권력자인 것 같지만 고작 1년여 후에는 평범한 국민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임기 말년의 선출직 공무원이다. 5년 빌려 쓰는
권력을 쥐고 나라의 뿌리를 뒤흔들며 국민의 생명은 아랑곳하지 않고 북한 앞에 빌빌 기면서 국가 재정을 거덜 내는 모습 앞에
국민은 입을 모아 외칠 수밖에 없다.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골칫거리였다. 권력자들은 그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 소송을 걸고 사형선고를 내렸다. 소크라테스는 떳떳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도망자로서 살아가느니 아테네 시민으로서 죽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국민이 아니라 특정 정치인의
팬이나 추종자라고 스스로를 착각하는 이가 퍽 많은 이 나라의 모습을 보면 소크라테스는 과연 뭐라고 할까. 아,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답답한 마음을 한 줄기 노래에 실어 보내며, 우리는 또 다른 내일을 향해 나아간다.
●두 차례나 “김정은 계몽군주” 언급 유시민 ●‘명령하노니, 너는 자유다’ 말하는 王은 근대인인가 ●김정은, 자유와 번영에 힘 실어줄 의향 없어 ●계몽군주는 부유하고 똑똑해진 시민에 의해 무너져 ●자칭 ‘지식 소매상’의 현란한 궤변과 대중 기만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유시민(61)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북한의 김정은을 '계몽군주'라고 부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2018년 JTBC '썰전'에 출연해 김정은을 두고 소년가장이며 계몽군주가 될 가능성이 있는 존재라고 말했다. 당시에도 반발은
있었으나,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거대한 이벤트 덕에 큰 논란거리가 되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9월
25일 북한군이 우리 국민을 총으로 쏘아죽이고 시신을 소각한 지 고작 사흘이 지났을 때다. 유시민은 또 다시 김정은에게
계몽군주라는 수식어를 헌사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준 것에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북측 통지문이 공개된 직후다. 북측 통지문에는 유족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논란이 커지자 유시민은 닷새
후인 9월 30일,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출연해 계몽군주라는 표현이 칭찬의 의미가 아니라는 취지로 둘러댔다.
독재자 중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어느 정도 개혁적 행보를 하는 사람들을 계몽군주라고 칭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자신은 김정은이
권력을 세습한 독재자임을 명시했으니 칭찬이 아니라는 논리다.
물론 궤변이다. 생각해보자.
지구상 그 누구도 김정은이 독재자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니 김정은에게 독재자라고 말하는 건 특별한 비난이 되기 어렵다.
유영철을 살인자라고 부른다 해서 상대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계몽군주라는 수식어는
김정은에게 붙을 경우 당연히 칭찬이 된다. 유시민 스스로가 설명했다시피 '그나마 상대적으로 좀 나은 독재자'라는 뜻이라면 더욱
그렇다. 대체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봐야 저런 소리를 변명이라고 늘어놓을 수 있는 걸까.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계몽군주는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개념이다. 모순이라는
말이다. 칸트에 따르면 계몽이란 우리가 미성년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한다. 미성년 상태란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계몽된 사람은 그 누구의 지도나 간섭 없이 스스로의 지성을 사용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독립적 주체다.
따라서 그 정의상 계몽은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짧지만 중요한 에세이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에서 칸트는 단언한다. "민중이 스스로를 계몽하는
것은 오히려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민중에게 자유만 허용된다면 계몽은 거의 확실히 이루어질 수 있다." 계몽주의자는 궁극적으로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향할 수밖에 없다. 모든 이가 스스로를 계몽해 더 나은 세상으로 향할 수 있다는 낙관적 믿음이 계몽주의의
근간을 이룬다.
여기서 계몽군주라는 문제적
존재가 등장한다. 역사상 어느 지역에서도 계몽주의의 꿈을 시민계급 스스로 이루어낼 만한 역량이 없었다. 시민에게는 왕족과 귀족,
성직자 등 구체제의 기득권을 이겨낼 힘이 부족했다. 구시대적 권력을 쥔 통치자는 새 시대의 문물과 부국강병을 원하지만 자유로운
시민들이 활개 치며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는 것은 원치 않았다.
그 경우 계몽은 밑에서 위로 올라오지 못한다. 반대로 한 사람의 군주가 근대화의 이상을 품고 있을 때, 이를 실현하는 하향식 프로젝트의 형태로 근대화가 시도된다. 전근대적인 방식으로 근대화를 추구하는 기묘한 형국이다.
그 '근대화' 속에는 자유,
평등, 신분제 폐지, 민주주의 같은 가치가 포함돼 있다. 계몽군주는 근대화를 원치 않는 귀족과 백성을 근대로 이끌고자 한다.
신민들의 저항을 이겨내야 하니 더욱 큰 권력을 필요로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계몽군주의 권력이 커질수록 진정한 근대화는 이뤄질 수
없다.
이 대목에서 독립운동가이자
아나키스트였던 이회영(1867년~1932년)에 대한 일화가 떠오른다. 이회영은 독립운동을 위해 가산을 정리하고 노비 문서를
불태웠다. 거느리던 식솔들에게 "너와 나는 평등한 관계이므로 더는 내게 존댓말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런 변화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리 없다. 입에서 나오는 게 존댓말이요 몸은 여전히 굽신 대며 시중을 든다. 그 꼴을 보다 못한 이회영은 회초리를 들어
"너와 내가 평등한 존재라는 것을 왜 이해하지 못하느냐, 어서 존댓말을 그만두지 못하겠느냐"고 혼을 냈다고 한다.
물질적 측면을 넘어 정신적,
제도적 근대화까지 추구하는 계몽군주가 흔히 처하는 역설이 여기에 있다. '내가 명령하노니, 너는 자유다'라고 왕이 명령한다면 그
백성은 자유인인가, 아닌가. 전근대적 권력을 이용해 근대화를 추진하는 계몽군주는 근대인인가, 전근대인인가.
강제수용소 운영하는 독재자가 계몽군주인가
정리해보자. 계몽군주는 부국강병을 원한다.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모든 군주가 계몽군주는 아니다. 근대 이후
세계에서 나라가 잘 살기 위해서는 사유재산을 보호하고 상공업을 키워야 한다. 강한 군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징병제를 도입해야 하므로
그에 걸맞은 정치적 권리를 국민에게 나눠줘야 한다. 평범한 국민도 일사분란하게 명령에 따라야 하니 적어도 문맹은 면하고 사칙연산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보통교육이 필요해진다.
이와 같은 개혁은 장기적으로
군주의 권력을 약화시킨다. 근대 이후 세계에서 부국강병을 추구하려면 어쩔 수 없이 국민을 부유하고 똑똑하게 만들어야만 한다.
중산층은 경제력을 기반으로 들고 일어날 테다. 군복무를 통해 공통의 정체성을 갖게 된 군중은 문맹에서 벗어나 자유사상가들이 찍어낸
팸플릿과 선동문을 읽고 왕을 향해 총부리를 들이댈 거다.
계몽군주는 스스로 만들어낸
조국 근대화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는 모순의 운명을 끌어안고 있다. 세계사의 수많은 계몽군주들은 무사히 퇴임하거나 사망했어도
결국 자신이 추구한 근대화로 인해 자신의 왕조가 몰락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러시아 표트르 대제가 만든 대학에서 육성된 인텔리겐차는
로마노프 왕조를 무너뜨리고 러시아 혁명을 일으켰다.
김정은을 두고 계몽군주
운운하는 유시민의 말이 엉터리인 것은 그래서다. 김정은은 더 나은 국가를 만들기 위해 국민의 자유와 번영에 힘을 실어줄 의향이
없다. 최근에는 장마당에서의 거래가 늘고 있다는 관측이 없지 않다. 그것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시장을 형성하고 거래를 보장하며
사유재산권을 지켜주는 근대화와는 거리가 있다. 그저 암시장이 늘어난다는 뜻일 뿐이다. 외려 중앙권력의 약화 내지는 의도적 방기로
인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
유럽 대부분의 계몽군주는
가혹한 처벌과 고문을 줄여 자신의 근대성을 입증하려 했다. 김정은은 고모부를 잔인하게 처형했다. 지금도 북한 곳곳에 아우슈비츠를
방불케 하는 강제수용소가 있다. 미국의 북한인권위원회 그렉 스칼라튜 사무국장에 따르면 현재 북한 강제수용소에 12만여 명이 수감
중이다. 계몽군주와는 정반대의 길을 오롯이 걷는 셈이다.
박노자는 10월 5일 블로그와
페이스북 게시물을 통해 "모든 것은 민을 위해서지만, 민에 의해서는 아무것도 이루어질 게 없다"던 신성로마제국 황제 요제프
2세의 말을 인용해 '위에서 아래로 내려 보내는 개혁'을 계몽군주의 본질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 공산주의 체제와 그 권력을
세습한 김정은을 보며 계몽군주를 연상하는 것에는 일리가 있다는 얘기다. 앞서 말했듯 그러한 관점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
'무엇'이냐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일부러 도외시한다. 계몽군주는 평범한 독재자가 아니다. 자신의 발등까지 찍을 수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근대화의 도끼를 크게 휘두르는 독재자다.
근대화라는 신념 혹은 이념
그런 기준에서 보자면 한반도 역사상 가장 큰 족적을 남긴 계몽군주는
박정희다. 그는 엄밀한 의미에서 '군주'는 아니었으나 군주 수준의 절대 권력을 휘둘렀다. 박정희는 조국 근대화라는 명료한 목표를
스스로 인식하며 추구했다. 경제 발전을 위해 법질서를 정비했고 사회 치안을 확립했다. 자유시장경제를 추구했고 중산층을 육성했다.
보통교육을 확립했고 더 많은 이들이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박정희가 근대화를 이념으로서
추구했다는 사실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지금도 정부서울청사에 가로 2m, 세로 4m로 새겨져 있는 박정희의 휘호가 그의 신념을
웅변한다. '우리의 후손들이 오늘에 사는 우리 세대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했고 조국을 위해 어떠한 일을 했느냐고 물을 때 서슴지
않고 조국 근대화의 신앙을 가지고 일하고 또 일했다고 떳떳하게 대답할 수 있게 합시다. 일천구백육십칠년 일월 십칠일 대통령
박정희.'
물론 박정희 시대는 완전한
시민적 자유와 거리가 먼 독재 정권 시기였다. 이는 모든 계몽군주의 통치기에서 공통적으로 엿보이는 현상이다. 프리드리히 2세의
프로이센, 표트르 대제의 러시아에서 그랬듯, 국민의 평균 수명이 늘고 영양 상태가 개선되며 문맹률이 낮아지고 고등교육기관이
발전한다. 시민적 자유와 권리의 신장은 그런 물질적 성장을 채 따라잡지 못한다. 이에 국민 사이에 불만이 누적된다.
핵심은 박정희가 근대화 자체를 자신의 신념으로 여기고 있었다는 점이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관한 가장 유명한 일화를 떠올려보자.
길을 뚫어야 하는데 '미신'에
사로잡힌 마을 주민들이 영험하고 신성한 나무를 지켜야 한다며 결사반대했다. 그러자 박정희의 명을 받들어 조국 건설에 한창이던
정주영 현대 회장이 직접 다이너마이트로 나무를 폭파하고 길을 뚫었다. 거침없는 근대화의 길 앞에 과거의 풍습과 전래의 신앙은 그저
폭파의 대상이었다. 박정희는 한국의 명절이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추석과 설날을 없애기까지 했다.(물론 두 명절은 고속도로 건설
현장의 거대한 고목처럼 한방에 폭파할 수 있는 게 아니었고, 오히려 신정(新正)이 사라지는 추세다.)
계몽군주를 다른 절대권력자와
구분하는 기준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근대화에 대한 집착 말이다. 계몽군주는 농노제를 폐지하고, 대학을 만들고, 수염이나 상투를
자르도록 하고, 국민에게 익숙지 않은 서구적 풍습을 도입하는 독재자다. 박정희도 그랬다.
박완서가 단편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에서 잘 그려냈듯 "박정희 정권 초기에 사회를 정화한답시고 관청이나 국영기업체에서 축첩한 자는 자진하여 사표를
쓰라고 엄포를 놓"았다. 당시는 6·25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으므로 남자의 수가 적었다. 먹고 살만한 남자들이
첩을 거느리는 것은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유구한 전통이었다. 박정희는 계몽군주로서 피지배층의 반감을 무릅쓰고 축첩제를 근절하기
위해 나섰다.
박정희는 진심으로 근대화를
추구했고 절반 이상의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자신이 이룩한 근대화의 결과물인 민주화의 물결에 휩쓸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김재규의 돌발적인 박정희 암살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으나, 김재규가 부마항쟁의 현장을 목도하고 심상치 않은 민심을 느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조국 근대화는 성공했다. 그리하여 더는 계몽군주를 용납할 수 없는 근대적 시민이 탄생했다.
‘지식 소매상'과 '용팔이' 사이
이 글의 목적은 박정희 예찬이 아니다. 계몽군주라는 개념이 지니고 있는 양면성을 이해하자는 것이다. 유시민의
궤변과 달리 김정은은 21세기가 아니라 18세기를 기준으로 보더라도 계몽군주는커녕 한낱 폭군에 지나지 않는다. 박정희야말로
계몽군주의 엄밀한 개념에 부합한다. 조국의 근대화를 원했고, 성공했으며, 역사를 진전시킴으로써 자신이 만든 역사에 뒤쳐진 존재가
되고 말았다는 역설까지 놓고 볼 때, 실로 그러하다.
유시민이 잘 말했다시피
계몽군주라는 말은 칭찬도 비난도 아니다. 특정 시기의 특정 독재자가 역사적으로 어떤 역할을 수행했느냐를 기술하는 표현일 뿐이다.
자칭 '지식 소매상' 유시민은 이른바 '용팔이'처럼 거짓말을 섞어가며 현란한 말솜씨로 대중을 기만하고 있다. 김정은은 계몽군주가
아니며 박정희는 계몽군주의 역할을 해냈다. 우리는 그 유산과 부채를 모두 상속받은 대한민국 국민이다. 때로는 더디고 뒷걸음질
치더라도 민주공화국의 역사를 한 걸음씩 진전시켜 나가야 한다.
●1983년 출생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저서 :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北 이기자, 잘 살아보자’는 퀘스트의 힘이 번영의 동력 ●北 몰락하자 남북 힘 합쳐 외세 이기자는 서사 범람 ●박정희에 멈춘 보수, 옛 대북관 넘어서는 담론 못 만들어 ●그 틈새서 반미주의 세례 586, 낭만적 대북관 들이밀어 ●현실의 北, 해수부 공무원 총살 후 시신훼손 만행 ●北은 韓의 짐, 이웃에 폐 끼쳐도 뒷감당은 우리 몫 ●술 마시고 행패부리는 北에 술값 못 찔러줘 안달 ●北 ‘사람 구실’ 하게 만드는 게 ‘선진국’ 대한민국의 퀘스트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영화과 학생이 아니라도 영화에 관심이 있다면 거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교과서가 한 권 있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영화·텔레비전 학교의 교수이며 지금도 현역으로 할리우드 주요 제작사의 스토리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로버트
맥키의 책 'STORY: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다.
책의 서문에서 맥키는
선언한다. 이 책은 이야기의 전형이 아니라 원형에 관한 것이라고. 시대·장소·문화·인종을 불문하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의 틀이 있다. 이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이 대중을 상대로 한 스토리텔링의 핵심이다. 구조는 어렵지 않다.
주인공(hero)이 있고, 주인공이 이루어야 할 목표(quest)가 있다. 목표 달성을 방해하는 반(反)주인공, 즉
안티히어로(anti-hero)가 등장한다. 우리가 아는 거의 모든 이야기는 이러한 원형적 구조 위에 성립하고 있다는 게 맥키의
설명이다.
이야기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는 주인공도 퀘스트도 아니다. 안티히어로를 얼마나 잘 만드느냐, 그 안티히어로의 행동이 얼마나 흥미진진하냐에 따라 관객의
집중도가 오르내린다. 영화나 드라마의 흥행 여부는 이에 달려 있다. 이야기가 막히면 악역을 다시 검토해볼 것! 맥키의 책뿐 아니라
모든 시나리오 작법서에서 공히 지적하는 내용이다.
‘북한을 이긴다'와 '잘 살아보세'
대한민국, 특히 한국 보수 정치에 그 '악역'은 북한이었다.
북한을 이기기 위해 한일협정을 맺고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한 박정희 정권 때부터 이 구도가 더욱 분명해졌다. 박정희는 1961년
대통령에 당선했다. 북한 김일성 체제의 황금기인 1960년대와 겹친다. 북한의 전후 복구와 경제성장은 실로 놀라웠다. 일본에서
공부한 화학자 리승기가 1950년 월북한 후 합성 섬유 비날론(Vinalon) 생산 단지를 건설해낸 것 또한 1961년. 갓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모든 면에서 북한을 이기는 것을 자신들의 과제, 즉 퀘스트로 삼을 수밖에 없었을 테다.
‘북한을 이긴다.' 그
퀘스트는 도덕적 당위도 포함하고 있었다. 군인과 민간인을 합쳐 137만여 명의 사상자를 냈고 온 국토를 쑥대밭으로 만든
6·25전쟁이 끝난 지 고작 10여 년이 흐른 시점이었다. 전쟁의 참상과 공포는 대학에 들어가서야 선배들을 통해 알게 되는
'감춰진 진실'이 아니었다. 모든 이가 보고 듣고 겪어서 아는 실질적 위협이었다.
보수는 정치적으로 성공을
거두었고 대한민국도 번영의 길에 들어섰다. 그 원인은, 아주 근본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북한을 이긴다'는 퀘스트가 지닌 힘
때문이었다. '잘 살아보세'라는 박정희 정권의 모티프는 경제 번영을 향한 열망을 자극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한 생존 본능을 자극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는 온 국민을 일종의
전시체제로 몰아넣었다. 진보 진영에는 바로 그런 이유로 박정희 정권과 그들이 만들어낸 대한민국을 도매금으로 매도하는 경향이 있다.
일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다. 한반도는 종전이 아닌 휴전 상태의 화약고였으니 말이다. 한국 보수
정치는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나라에서 또 다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맞서기 위해 국민을 산업역군이자 전쟁용사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이 전략은 대성공을 거뒀다.
군인 출신의 정치인들은 근대적 시스템에 익숙했다. 한마디로 유능했다.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북한에 맞서 잘 살고 잘 싸울 수
있는 준비를 하자는 목적의식과 동기 부여에 국민이 호응했다. 분명한 전략은 분명한 국가적 서사(national
narrative)로 이어졌다. 국가적 서사는 국민 각각을 그 서사 속의 주체로 재정립했다.
기아와 영양실조의 땅
이 서사가 흔들리기 시작한 시기는 1990년대다. 1994년 김일성이
죽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1991년 소련이 해체됐다. 한 시대가 끝나간다는 건 분명해 보였지만, 당시만 해도
평범한 한국인이 접할 수 있는 세계 소식은 극히 제한돼 있었다. 냉전의 종말과 그로 인한 변화를 한국인들은 김일성의 사망으로
실감했다.
북한은 거의 멸망 직전에
이르고 말았다.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엄포를 놓고 쌀과 라면 등을 사재기하게 만든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무렵부터였다.
두만강과 압록강 너머로 보이는 북한은 내전 상태의 소말리아를 연상케 할 만큼 처참한 기아와 영양실조의 땅이었다. 김일성은 죽었고
김정일은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는데 북한 주민들은 굶어 죽어가고 있는 상황이 펼쳐졌다.
‘북한을 이기기 위해 경제를
개발해야 한다. 잘 살아보자, 잘 살아남아보자.' 1961년 이후 30년 넘게 지속된 대한민국의 서사에 일대 변곡점이 다가왔다.
주인공은 그대로이고 퀘스트도 딱히 달라지지 않았는데, 안티히어로가 제풀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누구와 싸워야 하는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할 시간을
한국 사회는 갖지 못했다. 1990년대의 흥청망청하는 분위기에 휩쓸린 탓도 있고, 더욱 결정적으로는 1997년 외환위기의 충격
때문이었다. '잘 살아보세'를 외치며 30년을 달려왔는데 망했다. 순식간에 거지가 됐다. 적어도 그 시점에는 다들 그렇게 느꼈다.
어떻게든 다시 잘 살아야 하는데, 이번에는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는 게 아니었다. 네가 망하건 말건 나는 잘 살아야 한다는
각자도생의 시대가 열렸다.
게다가 북한이 너무도 비참하게
몰락했다. 물론 우리도 외환위기로 힘들었지만 '고난의 행군'이라고 불린 북한의 경제적 비참은 그보다 빨리 시작됐다. '꽃제비'로
불리는 어린이들이 굶주려 구걸하러 다니는 처지가 됐다는 소식까지 알려지자 북한을 향한 한국인의 경각심은 급격히 사그라졌다. 그런
나라와 경제적으로 대결한다는 건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일 테니 말이다.
북한을 상대로 경쟁심을 품는
것이 무의미해진 상황에서, 그 빈자리를 채워 넣은 것은 김진명을 필두로 한 수많은 대중소설 작가들이 만들어낸 '민족 합체물'의
서사였다. '신동아' 8월호(‘여권이 조장한 북한 판타지 기원 '김진명,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서 말했던 바와 같이, 북한의
천연 자원 및 저렴한 노동력과 한국의 기술력이 결합하면 일본쯤은 가볍게 누를 수 있는 세계 초강대국이 될 수 있다는 환상적 서사가
대북 담론의 주류 자리를 꿰찼다.
낭만적 대북관과 찌질한 대일관
‘민족 합체물'의 판타지는 범여권에 더욱 친화적이다. 김대중이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에서 공천을 받아 김진명이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다는 사실만 놓고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1990년대
말부터 설정된 범여권의 공식적인 북한관은 그런 모습을 띠고 있다.
문제는 현재의 야권, 전통적
보수가 과연 어떤 눈으로 북한을 바라보고 있느냐다. 지금도 북핵은 우리 안보의 가장 큰 위험 요소다. 온갖 군사 도발을 통해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직접적으로 위협해온 유일한 집단이 바로 북한이라는 사실 또한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1960년대 이후
30여 년간을 유지해온 북한에 대한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대북 정책에 '정책'으로서, 혹은 그
배후의 '철학'으로서, 김대중·노무현 시절의 그것과 다른 무언가를 찾을 수 있는가. 외려 박근혜는 '통일은 대박이다'라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북한을 일종의 미개척 노다지로 바라보는 시각이었다. '민족 합체물'의 서사와 크게 다를 게 없는 소리다.
그것은 박근혜 혼자만의 탓이
아니다. 보수진영 전체가 북한관을 업데이트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북한은 재래식 군사력으로는 우리에게 더 이상 큰
위협이 아니게 된 시점에 핵을 개발하다가 발각됐다. 그렇다면 북한을 극복하기 위한 경제성장이라는 20세기 대한민국의 내러티브 또한
전면적 수정이 이뤄졌어야 한다.
정작 보수진영은 1997년
외환위기와 함께 찾아온 김대중의 당선 앞에 원투펀치를 맞고 그로기 상태에 빠져들었다. 그들 대부분은 박정희가 세팅해놓은 틀 위에서
고민 없이 내달리는 경주마 같은 존재들이었다. 세상의 규칙이 통째로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도 못했던 것 같다. 이명박과
박근혜가 연이어 당선돼 10년의 집권기를 가졌지만 국정교과서 논란 같은 퇴행적 이벤트나 벌였을 따름이다.
20세기가 아닌 21세기의
북한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세계 10위권의 무역 대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이 최악의 실패 국가인 북한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뤄야
하는지, 진지한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그동안 반미주의의 세례를 강하게 받은 586 세대가 한층 더 낭만적으로 변한
대북관, 그리고 한층 더 지독하면서도 찌질해진 대일관을 들이밀며 우리를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나라'로 인도하고 있다.
호주머니 사정 넉넉해지면 착해질 수 있다?
그러니 무슨 지경에까지 이르렀나. 9월 22일 북한이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 지도 공무원 A씨(47)를 총살하고
시신을 불태운 반인륜적 만행을 저질렀다.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에는 우리 국민 40명이 사망했고 6명이 실종됐다.
대관절 우리에게 북한은
무엇인가? 아무리 눈을 감고 귀를 막는다 한들, 세계 최악의 실패 국가이며 아우슈비츠를 연상시키는 강제수용소를 숱하게 운영하는
최악의 인권 탄압 집단이 우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이 바뀔 리는 없다. 보수뿐
아니라 진보 역시 이런 기본적 사실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민족 합체물'과 같은 판타지에 몰두하는 건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우리에게 북한이란 친하게 지낼
수는 없지만 완전히 외면할 수도 없는 존재다. 우리에게 피해를 입히지만 다른 이웃에게도 폐를 끼친다. 결국 뒷감당은 우리의
몫이다. 그렇다. 북한은 짐이다. 하지만 남에게 떠넘길 수도 없다. 술 마시고 싸우고 빚지고 행패부리는 나쁜 친척 같은 존재다.
반인륜적 만행까지 저지르는
나쁜 친척. 북한을 이렇게 정의하고 나면 현 정권의 대북 정책에서 잘못된 지점이 눈에 들어온다. 미국, 중국, 일본 등 주변
관계국이 볼 때 한국과 북한은 한 나라였지만 분단된 사이다. 역사적 맥락을 고려해본다면 한국이 북한에 대해 더 큰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잘못한 게 아니더라도 북한의 잘못에 대해 우리가 먼저 미안해하며, 북한이 바람직한 국제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계도하고 이끌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는 주어져 있다.
문재인 정권은 정반대의 길로
향한다. 북한이 외국과 우리에게 행패를 부려도 그저 비위를 맞추고 굽신 거리느라 정신이 없다. 나쁜 친척이 술 마시고 이웃에게
폐를 끼치는데, 혼내고 말리기는커녕 뒷주머니로 술값 더 찔러주지 못해 안달이다. 호주머니 사정이 넉넉해지고 나면 저 망나니가
착해질 수도 있다고, 이웃들에게 말 같지도 않은 소리나 해가며 실실 웃고 있는 꼴이다. 이렇듯 누군가의 악행을 방조하거나 부추기는
사람을 영어로 'enabler'라고 부른다. 현재 대한민국은 북한의 enabler인 셈이다.
한반도의 통일과 관련해 한
외국 석학은 한국 언론에 질문을 던졌다. 통일에 찬성하느냐고 물으면 젊은이들 상당수가 반대한다. 하지만 질문을 바꿔보자. 북한이
무너진다면 중국이 관리해야 할까? 한국이 관리해야 할까? 이렇게 묻는다면 다들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고 답한다는 것이다. 이 문답
속에 북한 문제에 대한 해법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통일은 대박이 아니다. 박근혜
때도 그랬고 문재인 때도 마찬가지다. 앞으로도 대박이 될 일은 없을 것이다. 한때 우리를 위협하여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과 군사적
강화를 부추겼던, 수족관의 메기 노릇을 해주었던 북한은, 이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삐뚤어진 탑과 같다. 게다가 그들은 핵무기도
가지고 있다. 온전한 정신이 아닌 상태로 행패부리는 나쁜 친척의 손에 흉기까지 들려 있는 셈이다.
해악의 최소화와 '사람 구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지면에서 당장 답하기에는 너무도 큰 질문이다. 일단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주인공을
규정하는 안티 히어로의 성격이 달라졌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할 필요가 있겠다. 20세기 후반, 냉전 시대의 북한은
공산주의 진영 속에서 그 나름 잘나가는 모범 국가였다. 21세기의 북한은 국제 사회의 문제아일 뿐이다. 그 북한이 우리와 주변에
끼치는 해악을 최소화하고, 비유하자면 '사람 구실' 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에 주어진 퀘스트라고 할 수
있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엄마는
없었다. 며칠째 돌아오지 않았다. 맏이에게 남아 있는 것은 약간의 생활비가 들어있는 돈 봉투와 크리스마스 전까지 돌아오겠다는
메모 한 장뿐이었다. 실제로는 네 남매가 살고 있었지만 애가 많이 딸려 있으면 세를 구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엄마는 아이들을 감춘 채
떠돌이 생활을 했다. 출생신고를 하지도 않았으므로 학교는 고사하고 주민등록조차 되지 않은 아이들. 그때그때 다른 남자를 만나
집에서 출산한 자식들이었다. 이제 열두 살 맏이와 세 동생은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2004년
영화 ‘아무도 모른다’의 내용이다.
‘아무도
모른다’는 실화에 기반을 둔 작품이다. 네 남매가 방치되어 있었다. 멀쩡히 잘 살아 있는 엄마는 몇 달에 한 번씩 방문하며 가끔
돈도 보냈다. 하지만 영화와 달리 현실에서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은 차남의 시신이 비닐에 싸여 벽장에 감춰져 있었다.
장남이 어울려 놀던 불량한 친구들이 어른 없는 집을 아지트 삼았다.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졌고 집주인의 신고로 경찰이
개입해 사건이 드러나게 되었다. 1988년 일본 도쿄에서 발생한 ‘스가모 아동 방치 사건’이다.
이런
비극은 남의 일이 아니다. 지난 14일, 인천의 한 빌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열 살짜리 형과 여덟 살짜리 동생이 큰 화상을
입었다. 엄마는 없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전날부터 지인의 집에 머물고 있었다. 이웃은 엄마가 아이들을 학대하고 있다며 이미 세
차례나 경찰에 신고한 바 있었지만 강제력 있는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수업이 진행되면서,
아이들은 급식 대신 스스로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가스레인지에 불을 켰고, 사고가 난 것으로 추정된다.
형제의
어머니는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특별한 직업이 없었다. 기초생활수급가정이었기에 매달 150만원 내외의 지원금을 받았다.
경찰에 따르면 사건 발생 무렵 어머니는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었다. 스가모 사건처럼 사실상 자식을 내다 버린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러 차례 이웃으로부터 아동 학대와 방치로 신고가 접수되었다는 사실을 놓고 볼 때, 양육자는 책임을
다하지 못했고, 아동 보호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듯하다.
약자와
타자를 존중하며 돌보는 것은 여성만의 책임이 아니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철학은 그런 주제에 소홀했다. 대부분의 철학자가
남자, 그것도 지배 계급 남자였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자연에 가까운 교육을 통해 아이들을 문명의 해악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웅변하며 ‘에밀’을 쓴 루소도 그랬다. 정작 자기 자식들은 고아원에 보내버렸던 것이다. 인의예지를 논하면서
수백, 수천명의 노비를 부리던 조선 유학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철학에서 윤리의 지위란 고작 그 정도였을지도 모른다.
리투아니아
태생의 유대인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반성도 그 지점에서 출발했다. 데카르트의 코기토 명제를 생각해보자.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주체의 사유를 통해 세계의 존재를 확인한다. 내가 생각해야 존재가 있고, 존재가 있어야 다른 이들도 있을 수 있으니,
내가 아닌 너, 자아가 아닌 타자는 부차적인 문제로 전락하는 셈이다. 이와 같은 사고는 자기중심적 지배를 끝없이 확장하는 근대적
병폐의 근원이며, 결국 나치의 만행으로 이어졌다고 레비나스는 생각했다. 그의 부모와 형제 모두 아우슈비츠에서 목숨을 잃었다.
레비나스는
존재론, 인식론, 윤리론으로 이어지던 서양 철학의 위계를 뒤집었다. 기존 철학은 내가 있고 너를 알게 된 후 네게 선한 행동을
한다고 생각했다. 반면 레비나스는 비참하고 고통받는 타자인 네가 있고, 그런 너를 보살피면서 나는 윤리적 존재가 되고 자신을 알게
된다고 주장했다. 너는 나보다 먼저고, 윤리는 존재보다 앞선다. 제1 철학으로서의 윤리학을 선포한 것이다.
레비나스는
‘얼굴’ ‘애무’ 같은 용어를 철학적으로 끌어올렸다. 우리는 남의 속을 모른다. 타자를 모두 알 수는 없다. 근대 철학은 그
무지에서 한계와 공포를 느낀다. 레비나스의 생각은 다르다. ‘전체성과 무한’의 한 문장. “타자가 내 안에 있는 타자의 관념을
넘어서면서 자신을 제시하는 방식을 우리는 얼굴이라고 부른다.” 서로가 얼굴을 가진 타자로서 자신을 드러내고 상대를 바라보며 이해할
수 있다는 희망이 담겨 있다.
‘애무’
또한 마찬가지다. 연인은 끌어안아도 여전히 서로에게 목마를 수밖에 없는 타자다. 그렇게 사랑을 나누다 보면 또 다른 타자, 즉
아이가 태어난다. 연인은 함께 아이를 쓰다듬으며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다. 인간의 몸을 가진 사랑의 철학. 레비나스 이전에는 그
어떤 철학자도 마주보고 어루만지는 것을 이토록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우리는
정반대로 향하고 있는 듯하다. 최근 복지라는 미명하에 거론되는 온갖 선심성 현금 살포 정책들만 놓고 봐도 그렇다. 인천
형제에게는 기초생활수당과 아동급식카드가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필요한 관심과 보살핌은 받지 못했다. 학교가 문을 닫고 아이들은
고립됐다. 양육자인 엄마가 해주지 못하는 역할을 대신해야 할 국가는 돈만 주고 손을 놓았다. 요즘은 그런 돈을 먹고살 만한
사람들에게도 주는 게 대단한 복지요 정의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기본소득을 이야기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벌어질 수 있는 일자리 파괴에 대응하고자 미리 고민하는 것까지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얼마를 주네, 누구한테 주네 목청을 높이는 현 정치권의 논쟁은 값싼 포퓰리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원래
기본소득이라는 제도 자체가 그렇다. 국가가 사람을 고용하고 훈련시켜 직접 복지를 제공하는 대신, 몇 푼의 돈을 주고 알아서
해결하라는 것이다. 밀턴 프리드먼 같은 우파 경제학자도 기본소득에 찬성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천 형제 사건 앞에 우리는 대체
무엇을 배웠단 말인가.
스가모
사건의 충격은 컸지만 2010년 오사카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는 일본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 복지의 사각지대를
어떻게 없애야 할지 밤새 토론해도 부족한 시점이다. 얼굴을 마주 보고 끌어안는 따스한 공동체를 향한 철학과 정치가 절실하다.
코로나와 독감이 동시에 유행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가 무료로 독감 백신을 접종하겠다고 해놓고, 예산을 최대한 덜 쓰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액수로 백신 단가를 후려쳤다. 당연히 기존의 정상적인 업체들은 손을 놓아버렸고 처음 백신 시장에 들어온 의약품 유통업체 신성약품이 낙찰받았다.
신성약품은 비용 절감을 위해 냉장 상태를 유지한 채 배송해야 할 백신을 종이상자에 담아 보내는 말도 안 되는 실수 혹은 과실을 저질렀다.
문재인 정권은 여기서 어떤 대응을 할 것인가? 또 뻔뻔스럽게 신성약품을 상대로 '네 이노옴!' 하고 소리지르고 손가락질하며 무마하려 들 것인가?
공공성은 공짜가 아니다. 정부는 제대로 된 비용을 지불할 각오를 하고 공적인 일에 착수해야 한다. 그 재원이 부족하다면, 역시 정당한 절차와 논의를 거쳐 세금을 걷어야 한다.
국가가 날강도처럼 구니까 국민들도 서로 뜯어먹을 궁리나 하는 것이다. 더 이상 이 나라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지 말기 바란다.
보건당국이 독감백신 사업에서 가격을 지나치게 낮게 잡은 것이 관리 소홀 문제로 이어지게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약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백신 단가를 8,000원으로 책정했는데 이 가격은 시중 병원 납품가(1만 4,000~1만5,000원)의 절반 수준에 불과해, 주요 업체들은 아예 응찰을 하지 않았다. 입찰이 대여섯 차례나 유찰을 거친 후에야 이번에 신성약품으로 공급사가 정해진 것이다. 의약품 유통업체인 신성약품은 1,100억원 규모의 4가 독감백신 국가 조달 입찰에 성공하면서, 이번에 처음 백신 시장에 진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