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26

‘설강화’ 보이콧…이것은 민주화가 아니라 ‘民主독재’

[노정태의 뷰파인더-64] 새로운 금기와 뒤집어진 레드 콤플렉스

● 청와대 국민청원 대상 된 드라마
● 로맨스 위한 고전적 설정이거늘…
● 안기부 야쿠자 취급하는데 독재 미화?
● 이른바 ‘역사의식’ 녹이려 애쓴 흔적
● 민주화 운동 신성시한 태도의 결과
● 업적이지만 성역은 아닌 산업화·민주화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12월 18일 첫 방송된 JTBC 드라마 ‘설강화’의 포스터. 이 드라마는 시놉시스가 유출된 지난 3월부터 이른바 ‘민주화 운동 폄하 논란’에 휩싸였다. [JTBC 제공]
JTBC 드라마 ‘설강화’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지난 3월 시놉시스가 유출돼 이미 ‘민주화 운동 폄하 논란’에 시달렸던 ‘설강화’는 우여곡절 끝에 12월 18일 첫 방송됐다.

비판의 목소리는 쉽게 잦아들지 않는 기세다. 네티즌의 항의를 받은 협찬 기업들은 광고를 거둬들이고 있다. ‘설강화’ 방영을 중단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12월 22일 현재 30만 명 넘는 이들이 서명했다. “민주화운동과 간첩, 안기부를 엮는 것 자체가 또 다른 가해”라며 민주화운동 관련 단체들 또한 반발하고 있다.

논란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12월 21일 ‘설강화’ 논란과 관련해 “운동권에 잠입한 간첩, 정의로운 안기부, 시대적 고민 없는 대학생, 마피아 대부처럼 묘사되는 유사 전두환이 등장하는 드라마에 문제의식을 못 느낀다면 오히려 문제”라며 “창작의 자유는 역사의 상처 앞에서 겸허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방영을 중단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가 ‘어느 편’에 있는지는 혼동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신선하다고 말하기도 힘든 기법
주인공인 남파공작원 임수호(정해인)가 등장하는 드라마의 한 장면. [JTBC 제공]
원고를 쓰기 위해 막 국내에 진출한 스트리밍 서비스 ‘디즈니플러스’를 이용해 ‘설강화’ 1~2화를 봤다. 마지막 장면이 끝날 무렵, ‘설강화’ 논란에 대해 나는 또렷한 입장을 세웠다. 작품에 대한 호오(好惡)와는 별개로, 현재 쏟아지고 있는 숱한 ‘역사왜곡’ 논란은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간략하게 줄거리와 배경을 살펴보자. 1987년 봄, 군부독재의 끝을 향하고 있는 대한민국. 고위층은 다가올 대선을 준비 중이다. 안기부는 북한과 짜고 대국민 사기극을 치려 한다. 야당 대선 후보의 경제 브레인인 한이섭 교수를 납치해 북한에 보낸 후, 그곳에서 사진을 찍어 공개하는 북풍 공작을 기획한 것이다.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한국에 파견된 남파공작원 임수호(정해인)는 한이섭을 납치하는데 성공하지만 안기부 대공수사1국 팀장 이강무(장승조)에 쫓겨 호수여대 기숙사로 숨어 들어간다. 그곳에서 수호는 이전에 기숙사 ‘방팅’에서 만났던 은영로(지수)의 보살핌을 받으며 안기부의 눈을 피하게 되는데…

이것은 로맨스를 뽑아내기 위한 고전적 설정이다. 연인 사이에 함부로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을 세워놓음으로써 서로 안달하게 하고 애타게 하며 극적 효과를 배가시키는 장치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서로가 원수인 가문의 자식들이다. ‘타이타닉’의 잭과 로즈는 신분의 차이가 있을 뿐더러 눈이 맞았더니 초호화 유람선이 침몰한다. 이미 방영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재벌 2세 패션산업가인 여자 주인공이 패러글라이딩을 하다 북한으로 넘어가는 사고를 당하고, 그곳에서 북한 장교와 사랑에 빠지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북한이라는 금기를 로맨스의 장애물로 활용하는, 솔직히 이제는 신선하다고 말하기도 힘든 기법을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왜 ‘설강화’는 이전과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을까? 앞서 인용한 심상정의 말을 다시 짚어보자. “운동권에 잠입한 간첩, 정의로운 안기부, 시대적 고민 없는 대학생, 마피아 대부처럼 묘사되는 유사 전두환.” 모두가 문제고 잘못됐다고 심상정은 언급했다. 글로 써놓고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이런 비판은 어느 정도까지 사실일까?

심상정의 비판을 반박한다!
“운동권에 잠입한 간첩.” 틀린 말은 아니지만 옳다고 할 수도 없다. 수호는 한국에서 독일 베를린대 경제학과 대학원생이라는 위장 신분을 지니고 있다. 단, 영로는 수호가 시위를 하다가 다치고 경찰에게 쫓겨 들어왔다고 오해하고 있으며 수호는 그런 오해를 바로잡아주지 않는다. 간첩이 나오고 학생운동이 나오는 것도 맞지만, ‘한국의 학생운동은 모두 간첩들이 조종한 꼭두각시놀음에 지나지 않았다’는 식의 민주화 운동 폄하나 비하와는 무관하다. 민주화 운동을 얼마나 신성하게 여기고 있느냐에 따라 입장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청와대에 방영 중단 국민청원을 할 사안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마피아 대부처럼 묘사되는 유사 전두환.” 아닌 게 아니라 시놉시스가 유출됐던 지난 3월, 인물 설정 및 캐스팅된 배우들의 이름값으로 인해 ‘군사 독재 미화’라는 비판이 나온 바 있다. 하지만 막상 드라마를 보면 군사 독재 미화는커녕 극히 비판적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안기부장 은창수(허준호)와 여당 사무총장 남태일(박성웅)은 ‘동심회’라는 육군사관학교 사조직에 속해 있다. 1화 초반에 동심회 창립 30주년 기념회 장면이 등장한다. 마치 야쿠자처럼 손에서 피를 내어 술잔에 섞고 마시는 모습이 연출된다. ‘너는 일본 야쿠자 같은 놈’이라면 한국인끼리 할 수 있는 욕 중 가장 수위가 높은 것일 터. 시작하자마자 ‘동심회’와 안기부 등을 일본 야쿠자 취급하는 드라마를 ‘군사 독재 미화’라고 비난하는 게 말이 되는 일일까.

“정의로운 안기부.” 안기부 직원인 이강무가 간첩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된 ‘열혈 형사’처럼 그려지고 있는 건 맞다. 하지만 1화와 2화를 아무리 뒤져봐도 딱히 정의로운 인물처럼 그려지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현장에서 뛰는 안기부 직원들 또한 역사와 권력의 희생양으로 묘사되고 있다. 윗선에서 북한과 내통하고 한이섭을 북에 넘기려 하지만, 현장에서는 그런 사정을 전혀 모른 채 한이섭을 납치하러 온 수호를 추적하고 있으니 말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인간적인 공감과 동정을 표할 수 있는 캐릭터이긴 하나, ‘정의로운 안기부’라고 요약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시대적 고민 없는 대학생.” 이건 제작진 입장에서 퍽 억울할 것 같다. 영로와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쓰는 운동권 학생 여정민(김미수)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셈이기 때문이다. 1화. 기숙사 식당에서 작은 소동이 벌어지면서 정민이 들고 온 만화책 ‘공포의 외인구단’의 표지가 벗겨지고, 곧 레오 휴버먼의 책 ‘사회주의란 무엇인가’가 드러난다. 영로는 용기를 내어 자기가 그 책을 수습하고 너스레를 떨어 위기를 모면한다.

“‘넌! 단 한 순간도 우리를 이길 수 없어. 이건 하늘의 뜻이자 엄지의 뜻이다.’ 이건 야구만화가 아니라 순정만화라니까.”

시대적 고민이 ‘있는’ 대학생의 모습은 이후로도 꾸준히 묘사된다. 1화, ‘방팅’에 수호를 끌고 온 광태는 행정고시에 1차 합격한 자신이 여자들에게 인기를 끌 거라고 수다를 떠는데, 그 와중에 생경한 이름이 등장한다.

“아이, 물론이지. 밑바닥 인생들이나 사랑 하나 보고 결혼 하는 거지. 지배계급은 전적으로 경제적 타산 여하에 따라서 결혼이 결정된다고 본 사람이 엥겔스야.”

2화 초반, 기숙사에 숨어들어온 수호를 추적하는 안기부 직원들은 간첩이 있다고 엄포를 놓는다. 같은 방 친구들은 겁을 먹지만 정민은 말한다. “간첩, 짭새들 맨날 하는 소리야. 걸핏하면 우리 빨갱이로 모는 거 몰라?” 그렇게 숨어 있는 수호에게 영로는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한다. 오빠가 데모하다가 강제징집당해서 휴가를 많이 나오지 못하는 처지라고 말이다.

또 다른 레드 콤플렉스가 보여준 희극
1987년 민주화항쟁 당시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앞에서 학생들이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동아DB]
물론 ‘설강화’는 로맨스가 중심이 되는 작품이기에 이러한 ‘시대적 아픔’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작품 곳곳에 깔아두고 있는 요소만 놓고 보더라도, 픽션의 한계를 넘지 않는 선에서 이른바 ‘역사의식’ 내지는 ‘균형감각’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2화까지의 내용을 놓고 볼 때 그간 쏟아진 비난들은 의아하기 짝이 없다. 신성한 민주화 운동 앞에 어딜 감히 ‘간첩’이라는 말을 내미느냐, 이런 식의 권위주의적인 역사관을 전제하지 않은 다음에야, 납득하기 어려운 비난이다.

문제는 바로 거기 있다. 민주화 운동을 신성시하는 태도가 ‘설강화’ 논란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운동, 민주화 운동은 ‘간첩 청정 지대’였나? 북한으로부터 아무 영향을 받지 않았고 다만 민주화를 꿈꾸는 청년들의 순수한 열망으로만 이루어진 것이었나? 그렇지 않다. 학생들이 간첩으로 몰려 고초를 겪고 피해를 입은 역사와는 별개로, 그 학생운동권 중 적잖은 이들이 북한에서 송출하는 단파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학습’을 하고 ‘지령’을 받았던 것 또한 움직일 수 없는 사실 아닌가. ‘감히 신성한 민주화 운동 앞에서 간첩이라는 말을 꺼낸다니’라는 식의 반응이야말로 ‘역사왜곡’이다.

‘설강화’를 둘러싼 논란은 일종의 뒤집힌 레드 콤플렉스라고 볼 수 있다. 간첩이 아닌 사람을 간첩으로 지목해 고초를 겪게 했던 역사에 대한 반성이, 이제는 ‘신성한 민주화 운동에는 간첩이라는 말을 감히 꺼내서는 안 된다’는 식의 또 다른 금기로 이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12월 21일에는 한 네티즌이 ‘설강화’의 작가와 감독이 간첩을 미화했다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국민신문고를 통해 고발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설강화’ 논란이 거울에 비춘 또 다른 레드 콤플렉스임을 이보다 더 희극적으로 보여줄 수가 없다.

20세기의 반공물은 공산당을 머리에 뿔 난 악마로 그리고 우리 편 국군은 아무런 흠결도 인간적 고뇌도 없는 인물처럼 묘사했다. 그런 시대는 끝난 줄 알았는데, 이제는 군사독재 세력은 덮어놓고 극악한 집단으로 취급하며 민주화 세력은 날개 없는 천사처럼 그려야만 하는 세상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민주화된 사회가 아니라 ‘민주독재국가’에 살고 있다고 봐야 한다. 심상정을 비롯해 ‘설강화’를 비난하는 사람들, “창작의 자유는 역사의 상처 앞에서 겸허해야 할 것”이라는 말에 동의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레드 콤플렉스를 해소하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자신들의 손에 그 칼을 쥐고 휘두르고 싶은 것인가.

세계사적 기적의 두 얼굴
대한민국은 식민지에서 출발해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어낸 세계사적 기적이다. 문제는 그 기적의 두 얼굴 모두 완벽하지도 결백하지도 않다는 데 있다. 우리의 산업화는 미군정 시대에 몰수한 이른바 ‘적산재산’과 한일협정을 통해 일괄 처리된 징용 및 위안부 피해자들의 보상금을 밑천으로 삼았다. 경제가 성장했지만 그 분배가 공정하게 이루어졌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산업화 과정에서 수많은 이가 일하다가 죽고 다치고 빨갱이로 몰렸으며 노동운동도 탄압 당했다. 즉 산업화의 이면에서 많은 문제가 파생됐다.

산업화의 그늘은 1980년대부터 노동운동이 성장하면서 느리지만 꾸준히 논의돼 왔다. 산업화는 여전히 대한민국의 업적이지만 ‘성역’은 아니라는 소리다. 같은 원리가 민주화에도 적용될 필요가 있다. 민주화는 더욱 민주적으로, 공개적으로, 사실에 입각해 논의돼야 하는 우리의 역사다. ‘설강화’ 논란을 통해 우리 사회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설강화 #민주화 #산업화 #레드콤플렉스 #신동아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2021-12-25

'디지털 고려장'으로 떠밀려 가는 노인들.. "우리는 개가 아니다"

 

[아무튼, 주말- 노정태의 시사哲]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디지털 격차가 낳은 소외

그는 타고난 손재주와 성실함으로 한평생을 일궈왔다. 남에게 신세 지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었다. 아내와 사별한 후 주로 밤에 일해오던 늙은 목수, 다니엘 블레이크. 그는 어느 날 심장마비를 겪고 추락사할 뻔했지만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주치의의 권고에 따라 직장을 그만두고 치료와 재활에 전념하려 한다.

일러스트=유현호

문제가 생겼다. 영국의 행정 편의적이고 관료적인 시스템이 그를 골탕 먹이기 시작한 것이다. 건강이 안 좋아서 의사 권고에 따라 일을 그만두었는데 걸어다닐 수 있고 모자를 제 손으로 쓸 수 있다는 이유로 질병 수당을 받지 못한다. 그렇다고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구직 활동을 했다는 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더 나쁜 건 그 모든 절차를 인터넷을 통해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무원들은 이 노인에게 냉랭하고 고압적이다. “디지털 시대잖아요. 인터넷에 나와요. 예약 없이 오셨으면 이만 가 주세요.”

그는 컴퓨터를 쓰기 위해 도서관에 갔다. 친절한 사서의 도움을 받고 있다. “이게 신청 사이트예요. 더블클릭하세요. 마우스를 올리고 클릭한 다음 내용을 입력하세요.” 다니엘은 마우스를 올리라는 말에, 자신의 손에 쥐여진 낯선 플라스틱 도구를 말 그대로 ‘들어 올려’ 컴퓨터 화면에 가져다 대려 한다. 사서는 웃음을 터뜨린 후 화면 속 ‘커서’를 움직이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문제가 해결되었을까? 그렇지 않다. 이 노인의 수난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2016년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한 장면이다.

다니엘 블레이크는 항의한다. “난 연필 시대 사람이오. 그런 사람들 배려는 안 하나?” 컴퓨터 앞에 앉아 화면에 뜬 서류 내용을 채워넣지 못하면 복지 혜택을 받을 수도 없고, 자신이 받은 부당한 처분에 항의할 수도 없는 세상. 다니엘에게 동정심을 느껴 서류 접수를 직접 도와주던 일자리플러스센터 직원은 ‘잘못된 선례를 만들지 말라’며 윗사람에게 꾸지람을 듣는다. 오늘날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를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디바이드는 흔히 ‘정보 격차’로 번역된다. 모든 것이 전자화되는 사회 속에서 세대⋅계층⋅문화 등 다양한 원인으로 정보 및 기술 활용 능력의 차이가 벌어지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정보의 격차를 일컫는 용어로 소개돼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이야기할 수는 없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로 인해 이득을 보는 자와 손해를 보는 자의 간극, 그 모든 것을 통칭하는 용어가 바로 디지털 디바이드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부터 초고속 인터넷을 전국에 설치했던 IT 강국 대한민국에서 무슨 디지털 디바이드냐 하겠지만, 실상은 복잡하다. 우리가 다른 나라에 비해 인터넷 활용도가 높은 나라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매년 발표하는 ‘인터넷 이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현재 한국의 1984만 가구 중 1980만 가구가 인터넷을 사용한다. 97.1%가 인터넷 메신저를, 92.7%가 동영상 서비스를 이용한다. 거의 모든 국민이 카톡으로 연락하고 유튜브를 본다는 소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디바이드는 이 땅에 존재한다. 지난 3일 서울 노원구 월계동의 한 아파트 단지 상가 앞에서 벌어진 시위가 대표적인 사례다. 해당 위치에 있었던 은행이 지점을 폐쇄하자 그곳을 방문하던 노인 50여 명이 항의의 뜻으로 집회를 열었다. 은행 측은 해당 지점을 키오스크를 활용한 화상 상담을 제공하는 디지털 라운지로 바꾸는 것이지 완전한 폐점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오프라인에서 은행 거래를 이용하는 고객의 수가 꾸준히 줄어들고 있으므로 피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할 것이다.

이것은 비단 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몇 년간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패스트푸드를 중심으로 매장 아르바이트 직원을 전자식 단말기인 키오스크로 대체해왔다. 터치스크린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 키가 작은 어린이, 휠체어에 앉아 있는 장애인 등은 음식을 주문하기 어려워진다. 우리가 흔히 아는 디지털 디바이드, 정보 격차의 모습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누군가는 저 키오스크를 설치하는 비즈니스를 통해 돈을 벌고 있는 반면, 아르바이트로 고용될 수 있었던 청년들은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아야 한다는 것 말이다. 이 또한 일종의 디지털 디바이드라고 할 수 있다. 키오스크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를 만들 줄 아는 사람, ‘디지털 리터러시’가 높은 사람은 새로운 비즈니스의 기회를 얻었다. 반면 키오스크가 대신할 수 있는 단순 접객업 외의 기술이 없는 사람은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다. 디지털 디바이드를 단지 ‘새로운 시대의 문물을 배우려 들지 않는 노인 문제’쯤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돌아와보자. 다니엘의 이웃집에는 중국 공장의 직원과 짜고 운동화를 밀수해 판매하는, ‘차이나’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청년이 산다.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고팔며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세상은 차이나가 손에 쥔 몇 안 되는 기회다. 하지만 바로 그 기회의 창을 다니엘은 넘지 못하고 번번이 넘어진다. 영화 속에서는 다니엘과 친해진 차이나가 다니엘의 서류를 대신 제출해주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리 훈훈하지만은 않고, 관료제와 디지털 디바이드에 갇힌 다니엘의 고난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디지털 디바이드는 기술 발전에 따른 부수적 현상이다. 이 변화의 흐름을 막을 방법은 없다. 그러나 정상적인 국가라면 그 피해와 간극을 최소화하고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앞서 인용한 통계에 따르면 70대 이상의 인터넷 이용률은 2016년 25.9%였지만 2020년 현재 40.3%까지 높아졌다. 긍정적이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여전히 60%의 노인들은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이들은 스마트폰을 통한 방역패스에서도 소외될 가능성이 크다. 디지털 디바이드가 코로나를 만나 ‘디지털 고려장’으로 악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문득 다니엘이 남긴 마지막 편지의 문구가 떠오른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도파민 중독에 빠진 대선.. '사이다' 수렁에서 탈출해야 나라가 산다

 

[아무튼, 주말] [노정태의 시사哲]
日만화 '도박묵시록 카이지'와 내 주머니 속 '사이버 슬롯머신'

1996년 일본. 도쿄에 온 지 3년째 되는 청년 이토 카이지는 하는 일이 없었다. 친구들과 시시한 도박과 술로 세월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채업자 엔도가 찾아왔다. 아르바이트를 같이했던 후루바타에게 30만엔 빚보증을 서준 것이 화근이었다. 월 20% 복리. 1년 만에 385만엔으로 늘어난 고액을 갚으려 카이지는 묘한 제안을 받아들였다. ‘에스포와르’, 프랑스어로 ‘희망’이라는 뜻의 배에서 열리는 비밀 도박판에 참여하기로 한 것이다.

1996년부터 지금까지 연재 중인 일본 만화 <도박묵시록 카이지>의 설정이다.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면, 맞는다. <오징어 게임>에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진 작품 중 하나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오징어 게임>과 달리 <도박묵시록 카이지>는 진지하게 ‘도박’에 집중하는 만화라는 것이다.

평소에는 흐리멍덩하게 하루하루 시간을 죽이던 카이지. 주최 측이 농간을 벌이는 사기 도박판에 떨어지자 엄청난 기지와 용기를 발휘한다. 하지만 위기를 모면하고 탈출하니 다시 나태한 일상을 보낸다. 그러다가 결국 또 비밀 도박판에 뛰어든다. 거기서도 힘겹게 승리를 거둔 카이지는 앞으로 도박을 끊고 손을 씻겠다고 다짐하지만, 막대한 돈으로 일본을 쥐락펴락하는 제애그룹의 헤이토 회장은 비웃는다.

일러스트=유현호

“쾌감은… 정말로 정신이 아득해지는 쾌감은 정상을 벗어나야만 얻을 수가 있네! 크크크… 카이지군도 그 사실은 이미 알 테지… 안 그런가? 카이지군의 뇌는 이미 그 쾌감으로 불태워졌네! 틀림없이 앞으로의 카이지군의 인생은, 그 쾌감을 계속해서 좇는 여행이 될 걸세! 크크크… 그런 의미에선 설령 여기서 1억을 딴다 해도, 조만간 그 쾌감에 몸을 맡기고 사라질 돈… 도박으로 탕진할 돈이야. 마찬가지지! 그것이 중독자의 습성….”

이건 카이지만 겪는 일이 아니다. 도박꾼은 대부분 도박을 끊지 못한다. 도박뿐 아니라 운동이나 섹스, 혹은 권력처럼 다양한 행위에 지나치게 몰두하여 자신과 타인을 파멸로 몰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탐닉 혹은 행위 중독(addiction)의 원인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어떤 해법을 찾아야 할까?

실험용 쥐 두 마리가 있다고 해보자. 한 마리는 언제나 버튼을 누르면 먹이를 받는다. 다른 쥐는 버튼을 누를 때 먹이를 받을 수도 있고 받지 못할 수도 있다. 늘 먹이를 받는 쥐는 배가 고플 때만 버튼을 누르고, 먹이를 먹으면 더 누르지 않는다. 반면 결과가 불확실한 버튼을 누르는 쥐는 심지어 배가 고프지 않아도 계속 버튼을 누른다. 중뇌의 복측피개영역(VTA)에서 쏟아지는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에 중독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도파민은 불확실한 행위를 감행하여 결과를 확인할 때 나온다. 버튼을 누른 쥐와 도박 패를 확인한 카이지 모두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럴 때 뇌의 측좌핵은 쾌락을 느낀다. 문제는 지나치게 많은 도파민이 분비될 때 벌어진다. 생명체는 항상성을 유지하고자 하기에 도파민이 계속 과분비될 경우 도파민 수용체가 줄어든다. 도파민 감수성이 낮아지므로 정상적으로 분비되는 도파민으로는 신경 체계가 정상 작동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도박장을 벗어난 카이지가 일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지루해하는 것은 그래서다. 거액이 오가는 도박판의 스릴과 안도감 때문에 카이지의 보상 체계는 완전히 망가져버린 것이다.

시사 문제와 철학을 다루던 지면에서 신경과학을 논하는 이유가 있다. 도파민 중독은 오늘날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도박, 마약, 술, 담배 같은 것들에 대해서만 중독을 걱정하면 됐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사람의 주머니에 일종의 사이버 슬롯머신이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네트워크(SNS)가 대표적이다. 끝없이 스크롤을 내려도 계속 볼거리를 제공한다. 내가 올린 게시물에 대한 실시간 반응을 전달해준다. 더 많은 ‘좋아요’를 기대하며 자극적인 가짜 뉴스를 퍼다 나르는 사람들은 버튼을 누르는 실험용 쥐와 크게 다르지 않다.

좀 더 크고 무거운 주제로 들어가보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큰아들의 불법 도박이 최근 큰 화제가 됐다. 이 문제는 후보 본인이나 가족을 향한 인격적 비난으로 소비하고 말 일이 아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가 잘 지적한 것처럼 “아들의 치료 약속에 그칠 것이 아니라 불법 도박 근절을 위한 강력한 의지와 제도적 대안을 함께 이야기”해야 할 사안이다.

하루 종일 휴대전화만 보며 도파민을 쥐어짜던 사람들, 특히 청소년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입을 벌리고 있는 불법 도박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불법 도박 시장은 현재 약 84조원에 달한다. 강렬한 자극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더 센 것을 원한다. 도박이 마약, 성매매와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마약류 유통 역시 이전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은밀하고 활발해졌다. 단지 개인의 도파민 분비 차원을 넘어서는 일이다. 불법 도박은 조직 폭력의 수익원이 되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공론장은 정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 차분하고 침착하게 의견을 교환하고 입장의 차이를 확인하며 공통점을 찾아가고자 하지 않는다. 우리의 정치가 도파민 중독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SNS에서 자신의 지지층을 향해 ‘사이다 발언’을 해서 ‘좋아요’를 얻어내는 일에만 골몰하고 있지 않은가. SNS를 자제하지도 못하는 정치인들이 불법 도박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도박묵시록 카이지>를 다시 펼쳐보자. 헤이토 회장과 대결 후 집에 돌아온 카이지. 큰 피해를 보았음에도 도박을 끊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사채업자 엔도를 만나 다시 한번 큰 도박판에 끼워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엔도는 카이지를 제애그룹 회장이 만드는 지하 방공호의 강제 노역장에 처박아버리고, 카이지는 그 와중에도 도박으로 탈출구를 마련하려 든다.

그래서 카이지는 어떻게 되었을까? <도박묵시록 카이지>는 지금도 절찬 연재 중이다. 도파민 중독은 이렇게나 무서운 것이다. 우리 사회, 특히 정치권부터 ‘사이다 중독’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내년에는 맑은 정신으로 우리의 미래를 고민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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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아무튼, 주말] 노정태의 시사哲

2021-12-19

'N번방 방지법' 있었다면 文의 5년 전 '그 사진'은..

 

[노정태의 뷰파인더-62] 정교한 핀셋을 권력의 손에 쥐어주다

● 법 취지 동의하고 대의도 찬성하지만…
● 애플의 극약처방이 반발 직면한 이유
● 정부가 아이폰 내부 들여다볼 권리 획득
● 美, 빅테크 개별 기업들이 자율 규제
● 韓, 기관·단체에 이미지 삭제 권한 줘
● 누가? 대통령이, 어떻게? 대통령령으로!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텔레그램 ‘박사방’에서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로 기소된 조주빈 등에 대한 선고 기일인 2020년 11월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한 단체의 회원이 조 씨 등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12월 10일 'N번방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및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으로 통용되는 몇 개의 법이 1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시행됐다. 구글·페이스북·트위터 등 해외 인터넷 사업자 8곳,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포털,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메신저·인터넷 개인방송 사업자 87곳이 불법촬영 성 착취물의 유통을 막기 위한 동영상 필터링을 시작했다.

오픈채팅방 등에서 영상 또는 움짤(움직이는 사진)이 곧장 업로드 되지 않고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방심위에서 불법촬영물 등으로 심의·의결한 정보에 해당하는지 검토 중입니다"라는 경고문을 내보내는 모습을 보며 인터넷 사용자들은 충격에 빠졌다. 상대적으로 남성 사용자가 많고 익명성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강한 인터넷 커뮤니티일수록 반발의 목소리는 더욱 컸다.

류호정의 설명을 납득하기 어려운 까닭

심상정 대표를 비롯한 정의당 관계자들이 2020년 4월 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N번방 방지·처벌법’ 처리를 촉구하는 침묵 유세를 하고 있다. [뉴스1]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의전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등 9개 여성단체는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라는 이름으로 같은 달 15일 '‘N번방 방지법의 사생활 검열론'은 누구를 위한 목소리인가'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방심위에서 불법촬영물 등으로 심의·의결한 정보에 해당하는지 검토 중입니다.'라는 문구는 모든 영상의 공유 시 나타나는 문구"일 뿐이며 "불법촬영물에 해당하지 않을 시 약 10초 후 영상이 정상적으로 공유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법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지나친 사생활 검열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 공동대책위원회 측 주장이다.

하루 전인 12월 14일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DC인사이드 야구갤러리에 올린 "안녕하세요, 정의당 류호정입니다"라는 글 역시 같은 취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미 불법 촬영물이라 확인된 영상의 '코드'를, 개인 채팅창이 아닌 오픈채팅 및 게시판에 올라온 영상물과 비교하는 것이므로 검열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는 이러한 프로세스를 게임 내 채팅의 욕설 필터링과 비교했다. 그러므로 "고양이 영상이나 사진이 차단된 적도 없고, 그럴 가능성도 없다"고 류호정은 결론을 내렸다.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부터 논해보자.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여성을 겨냥한 성폭력은 용납될 수 없다. 특히 미성년자를 약취, 유인해 성적인 영상을 찍게 한 후 판매하거나 그것을 이용해 미성년자를 협박하는 등의 수법을 구사하는 성범죄자들도 있다. 그런 자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처벌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국가라 부를 수도 없다.

필자는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N번방 방지법'의 궁극적인 취지에 동의하며 성범죄 예방과 성폭력 피해 확산 방지라는 대의에 찬성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나 류호정 등의 설명은 이해하기도 납득하기도 쉽지 않다. 막 시행된 'N번방 방지법', 그 중에서도 논란의 핵심에 있는 개정 전기통신사업법 제22조의5 자체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언제건 그와 같은 방향으로 악용될 여지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 5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78회 국회(임시회) 본회의에서 ‘N번방 방지법’의 일종인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됐다. [뉴스1]

미국에서도 필터링은 작동하지만

현재 국내에서 시행중인 필터링을 '전 세계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중국 같은 극단적인 사례가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똑같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미국에서도 필터링은 작동한다. 구글·페이스북·마이크로소프트 등 이른바 '빅 테크' 기업은 이미 자사 서버에 올라오는 사진이나 동영상 등을 필터링하고 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냐 싶은 분들도 더러 계실 것이다. 하지만 사실이다. 심지어 애플은 사용자가 아이폰으로 찍어 기기에 저장한 사진도 필터링하려다가 대내외 반발에 직면해 계획을 철회한 바 있다. 애플은 아이폰에 저장되는 사진을 기기 내에서 필터링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그것을 국가별로 적용할 수 있게끔 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미국 뿐 아니라 각국 정부의 아동 성범죄 기준에 맞춰 대응하려던 취지다. 이 계획은 2021년 8월 외부에 알려졌는데, 전자 프런티어 재단(Electronic Frontier Foundation)이나 민주주의와 정보통신센터(Center for Democracy and Technology) 같은 시민단체 뿐 아니라 애플 내부에서도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철회됐다.

국내에는 크게 보도되지 않은 이 사건의 맥락을 살펴본 후, 한국의 경우와 비교해보자. 과거에는 '불법 촬영된 영상물'을 만들기 위해 피해자인 여성을 납치, 강간, 혹은 직접 협박해 가해자의 카메라로 찍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카메라를 숨기고 몰래 찍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대다수 사람이 스마트폰을 갖고 있다. 모두가 알 듯 스마트폰은 인터넷이 연결된 카메라다.

오늘날 아동 성 착취자들은 미성년자를 푼돈으로 유혹해 스스로 영상을 찍게 한다. 그것을 제3자에게 돈 받고 팔거나, 그 영상을 이용해 피해자를 다시 협박해 더 많은 금품을 뜯어내고 정신적·육체적 착취를 하는 수법이 널리 퍼져 있다. 국내에서도 현금 및 계좌 거래가 어려운 미성년자들을 대상으로 문화상품권 등을 제시하며 영상과 사진을 찍게 하는 범죄 사례가 여러 차례 확인된 바 있다.

이 경우, '빅테크'가 성폭력 영상의 제작과 유포를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애플을 제외한 다른 회사처럼 자사가 운영하는 인터넷 서비스에 올라온 사진과 영상을 필터링하는 것은 사후약방문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한번 인터넷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은 절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할 테니 말이다.
그러므로 애플은 극약 처방을 떠올렸다. 특히 미성년자 유저가 찍은 사진과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가기도 전에, 기기에 담겨 있을 때부터 필터링을 해서, 만약 문제가 될 것 같은 내용이 발견되면 보호자에게 알리는 등의 시스템을 갖추면 어떨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만들 뿐 아니라 시장 점유율도 큰 애플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접근법이다.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범죄를 원천봉쇄할 수는 없겠지만, 빅 테크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는 점 또한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 해법은 미국 시민사회 뿐 아니라 애플 내부에서조차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아동 성범죄를 막는다는 대의명분에는 동의하지만, 일단 정부에 아이폰의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권리를 주고 나면, 그 후에는 어떤 식으로 악용될지 알 수 없다는 게 핵심적인 반론이었다.

범죄, 특히 아동 성범죄를 막기 위한 필터링 기술은 지금도 존재하며 사용되고 있다. 구글·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페이스북 등에서 우리가 올린 사진과 영상은 아동 성범죄와 관련 있는지 아닌지 검토되고 있다는 소리다. 우리가 알건 모르건 상관없이 말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독자들은 모르셨을 것이다. 알았다고 해서 특별히 더 달라질 것도 없다. 인터넷 시대, 스마트폰 시대의 한 단면일 뿐이다.

인터넷에서 이미지 삭제할 수 있는 힘

그렇다면 국내에서 시행된 'N번방 방지법'에 대해서도 반대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 미국 빅테크들이 수행하는 필터링은 어디까지나 개별 기업들의 자율규제에 가깝다. 프라이버시에 극히 민감한 사람이라면 자신만의 서버를 만들고 텔레그램이나 시그널 등 보안을 더 중시하는 메신저를 사용하는 등의 대안을 찾을 수 있다.

반면 'N번방 방지법'은 법이다. 강제력을 지닌다. 더욱 나쁜 건 그 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 '대통령령'으로 규정돼 있다는 점이다. 개정 전기통신사업법 제22조의5 1항은 전기통신사업자의 삭제 의무를 정하고 있다. 누군가가 신고를 하거나,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관·단체의 요청"이 있다면 해당 정보를 지체 없이 삭제해야 한다. 바꿔 말하면 어떤 기관 혹은 단체가 포털이나 오픈채팅방 등에서 영상과 이미지를 삭제하도록 할 힘을 갖게 된다.

그런데 그 기관이 어디인지, 어떤 인원으로 구성되는지 등에 대해, 국민은 미리 알 수도 없고 통제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대통령령으로 정하기 때문이다. 만약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관·단체'가 다른 의도를 품고 있다면 어떨까? 마땅히 방지해야 할 디지털 성폭력을 구실 삼아 정권에 비판적인 이미지나 영상 등을 필터링의 대상으로 포함시킨다면? 가령 '곰돌이 푸'가 시진핑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필터링하는 중국의 경우와 유사한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을까?

2016년 9월 26일, 당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트위터에 일본 성인물(AV)의 표지 사진이 올라왔던 사건이 있었다. 지금도 일부 네티즌은 그 사건을 웃음거리로 삼는다.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관·단체는 그 이미지를 '음란물'로 보고 통제할 수도 있다. 이론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건 마찬가지다. 마음에 들지 않는 무언가를 인터넷에서 없애버릴 수 있는 정교한 핀셋을 권력의 손에 쥐어주고 있는 셈이다.

2항. "전기통신역무의 종류, 사업규모 등을 고려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조치의무사업자는 불법촬영물등의 유통을 방지하기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하여야 한다." 역시 대통령령이다. 최악의 경우를 상상해보자. 이 법에 따르면 네이버는 필터링을 하게 하면서 카카오는 그런 책임에서 벗어나게 할 수도 있다. 누가? 대통령이. 어떻게? 국민이 감시할 수도 국회가 통제할 수도 없는 대통령령을 통해.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대원칙

다시 말하지만 필자는 여성, 특히 아동 청소년을 디지털 성범죄로부터 보호해야 하며, 좀 더 효과적인 방법을 정부와 국내 IT(정보기술)기업, 해외 빅테크가 함께 모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에 대한 통제는 그 자체가 공개적이고 합법적인 방식으로만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것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대원칙이다. 현행 'N번방 방지법'은 분명히 그 대원칙을 심각하게 결여하고 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을 비롯한 여성주의 진영에서 'N번방 방지법'을 옹호하는 것은 당연하며, 납득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법이 지닌 본질적인 문제와 한계에 대해 그 누구도 언급하지 않는 게 너무도 의아하다. 이 법은 텔레그램은 못 잡으면서 카카오톡만 막기 때문에 문제인 법이 아니다. 카카오톡에 올라오는 내용 중 무엇이 음란물인지 아닌지, 대통령 마음대로 뽑은 사람들이 단정적으로 규정지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민주당과 정의당, 여성계가 이 문제를 대선용 정쟁으로 끌고 들어가지 말았으면 한다. 외려 법치국가의 상식을 준수하면서 여성 인권을 보호할 방법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다.

#N번방방지법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표현의자유 #애플 #신동아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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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2

화성에서 온 안철수, 금성에서 온 심상정의 기이한 연대

 [노정태의 뷰파인더-63] 필요할 땐 양당에 손 내밀고 밀리면 양당 극복?

● 자기 정체도 모른 채 여의도 온 安
● ‘안철수 현상’의 安은 ‘386 우파’
● ‘양보’ 통해 구해낸 건 ‘386 좌파’
● ‘아름다운 양보’ 파행에 이해 구했나?
● ‘새 정치’라는 텅 빈 기표에 현혹
● 민주당 선거법 덥석 문 심상정의 맹신
● 야성·양심 동시에 잃은 진보 정치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2021년 12월 6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왼쪽)와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회동하기 위해 걸어오고 있다. [동아DB]
2021년 12월 6일, 정의당 심상정, 국민의당 안철수 두 대선후보가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이번 대선에서 두 후보 지지율은 공히 바닥에 깔린 상태로 정체돼 있다. 같은 해 10월 이후 추세를 보면 안철수는 5% 내외의 지지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5%를 넘긴 적이 없는 심상정의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두 사람 모두 2012년 이후 '대선 3수(修)'를 하고 있는데, 현재까지의 성적표를 놓고 보면 두 사람 모두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이다.

10여 년 전, 안철수는 단번에 대통령 자리에 오를 듯한 기세로 정계에 등장했다. '안철수 현상'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통용됐다. 그러나 그 불씨는 타오르지 못한 채 여러 차례의 변곡점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심상정의 정치 이력은 더 길지만 결정적 도약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군소 후보의 자리에 머물고 있다.
회동에서 심상정은 "양당체제를 극복하고 민생정치, 미래 정치를 복원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여러 정책적인 협력을 하기로 했다"고 했다. 안철수의 생각도 같을 것이다. 그런데 왜 국민은 그들에게 호응하지 않을까.

안철수가 만든 진보 좌파의 대부

흔한 답안지가 있다. 한국인은 정치인이 참신하면서도 원숙하기를 기대한다. '경력 있는 신인'을 원한다. 그런 유권자의 모순된 태도가 거대 양당 구도를 고착화하고 있다. 정계에 뛰어든 누군가가 경험을 쌓고 나면 국민은 '신선하지 않다'며 손가락질하고 찍어주지 않는다. 소선거구제와 대통령 5년 단임제, 그리고 결선투표가 없는 현행 선거제도 역시 군소정당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유권자의 의식과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그놈이 그놈'일 뿐인 두 거대정당이 번갈아 집권하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하지만 전적으로 수긍하고 고개를 끄덕이기에 이 답변은 무언가 석연치 않다. 안철수와 심상정, 두 정치인의 이력과 현주소를 통해 제3당 문제, 혹은 양당 체제 이슈에 대해 생각해 보자.

안철수가 정치에 입문하던 2011년 무렵, 당시 야당이던 민주통합당은 지리멸렬하게 여당에 끌려다녔다. 여당 내에서는 친이계와 친박계의 갈등이 극대화돼 있던 상태였다. 제도권 정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시민사회 전반에 팽배하게 깔려 있었다.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뿐 아니라 행동양식까지 완전히 다른 누군가가 등장해 한국 정치를 바닥부터 들어 엎어주면 좋겠다는 기대감이 사회 전반에 가득했다.

‘안철수 현상'은 그런 대중심리의 산물이었다. 이는 안철수에 비판적이던 진보언론 '프레시안'에서 2012년에 펴낸 책 '안철수를 생각한다'의 서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안철수이기에 기존 정치에 불만을 품은 유권자들의 열망과 기대를 품을 수 있었지만, 안철수가 아닌 다른 누구에게도 투영될 수 있던 열망이었다는 점에서 '안철수 현상'은 안철수의 정치적 성공과는 무관한 문제다. 본질은 '안철수 현상'을 만든 유권자들의 열망이다."

이러한 관점은 갓 정치에 입문한 안철수의 캐릭터와 지향이 그의 정치적 급부상과 큰 관련이 없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유권자의 열망이 '다른 누구에게도 투영될 수 있었다'고 전제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는 관찰자뿐 아니라 안철수 본인 또는 그를 돕던 이들도 마찬가지였던 듯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여론조사 1위 후보였던 안철수가 '박원순 지지'를 선언하고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포기한 행보를 설명하기 어렵다. '새로운 정치' '신선한 인물' 같은 키워드에 '올인'하기 위해 박원순을 띄우고 자신은 대선으로 직행하는 초강수를 뒀던 것이다.

그런데 박원순과 안철수는 공통점을 지니는 인물인가? 세계관, 가치관, 정치적 지향 등에서 서로 공유하는 요소가 많은가? 전혀 그렇지 않다. 박원순은 '마을' '공동체' '도시 농업' '골목 재생' 등의 가치에 집착하는 사람이었다. 박원순이 시장직을 맡고 있는 동안 서울의 재개발·재건축은 사실상 중단됐다. 그 결과 공급 절벽이 발생했다. 이를테면 박원순은 2020년 이후 부동산 폭등의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 중 한 사람이다.

오늘날 시민운동은 자생력을 잃고 더불어민주당의 외곽 조직으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거센데, 그 원인을 따지고 들어가면 결국 '박원순의 서울시'가 있다. 서울시장 박원순은 그렇게 한국 진보·좌파 진영의 새로운 '대부(Godfather)'가 돼가고 있던 셈이다.

2011년 10월 24일 당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서울 종로구 안국동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오른쪽) 선거캠프를 방문해 박 후보와 악수를 하고 있다. [동아DB]

10년 만에 비호감도 1위 정치인으로

반면 안철수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지닌 사람이다. 그의 대선 출마 선언문격인 책 '안철수의 생각'에서 무상복지와 선별복지 등을 언급하기 위해 중요하게 다루는 학생 시절의 에피소드만 보더라도 그 점은 분명하다. 의대생 시절 자원봉사를 다니던 무렵의 추억이다.

"치료가 안 되는 원인이 약을 제시간에 먹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생각 끝에 진료비를 100원씩 받기로 했어요. 물론 약값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싼 가격이었지만 환자들이 자기 돈을 내고 약을 받아 가니 꼬박꼬박 챙겨 먹게 되고 치료율도 쑥 높아지더군요. 그래서 큰 깨달음을 얻었어요. 공짜가 반드시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니며, 오히려 귀한 줄 모르고 낭비할 수도 있다는 것을요. 아무리 소액이더라도 돈을 내고 참여하게 되면 주인의식을 고취시키고 만족도와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이와 같은 경험을 반추함으로써 2012년의 안철수가 도달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그래서 우리가 복지를 확충할 때도 소득 상위층뿐 아니라 중하위층도 형편에 맞게 조금씩은 함께 비용을 부담하면서 혜택을 늘려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인간적이고 따스한 세상을 지향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각자의 책임을 중시하고 최적의 효율적 해법을 찾으려드는 중도 우파의 사고방식이다. 문제는 안철수 스스로가 자신의 이념과 가치관을 그리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렇지 않다면야 박원순에게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내주는 선택을 할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이 안철수를 '신선한 대안'으로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그가 정치를 시작한 지 10년이 넘은 '중고 신인'이어서가 아니다. 안철수 스스로가 내렸던 잘못된 결정들 때문이다. 그는 '새정치'라는 텅 빈 기표의 주인공이 돼 돌풍을 타고 단번에 대통령이 되기를 원했다. 그 결과, 말하자면 '386 우파'에 해당할 안철수가 박원순을 서울시장으로 만들었고, 사실상 궤멸 상태였던 민주당의 '386 좌파'들에게 정치적 심폐소생술을 해주는 결과로 이어졌다. 양당 체제는 허물어지기는커녕 더욱 공고해졌다.

지난 10년간 국민의힘으로 대표되는 보수세력은 급격하게 힘을 잃었다. 대신 한국 사회의 헤게모니를 민주당과 진보 진영이 쥐게 됐다. 그러자 안철수는 또 양당 체제 극복을 내세워 국민의힘과 공동전선을 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자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과 후보단일화에 나선 것이다.

이렇게 갈‘지(之)'자 행보를 이어나간 결과, 안철수는 주요 대선 주자 중 비호감도가 가장 높은 정치인이 되고 말았다. 2021년 11월 10일 한국갤럽이 머니투데이 의뢰로 수행한 대선후보별 호감도와 비호감도 조사를 살펴보자. 같은 해 11월 8일과 9일 이틀간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008명을 대상으로 "000후보에게 호감이 가십니까, 호감이 가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응답자의 70.5%가 안철수를 '비호감'이라고 답했다. 조사 대상 중 비호감도 1위다.

2011년의 안철수는 민주당의 구세주였다. 지금의 안철수는 경선과 단일화를 통해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서울시장 자리를 재탈환하는 데 큰 도움을 준 일등 공신이다. 그런데 막상 여론조사를 해보면 민주당 지지자의 69.4%, 국민의힘 지지자의 67.5%가 안철수를 '비호감'이라고 응답한다. 진보 보수 양쪽으로부터 '술 사주고 뺨 맞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안철수와 그의 지지자들 입장에서 보자면 매우 억울한 상황이다. 한데 문제의 원인은 안철수 본인에게 있다. 자신의 가치관과 지향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에 맞춰 정치적 캐릭터를 쌓아나는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양당 체제를 극복하는 대신 양당 지지자들에게 골고루 미움 받는 처지가 되고 만 것이다.

국민은 단순히 못 보던 얼굴 원하는 게 아냐

대체 '새정치'란 무엇인가? 왜 국민들은 새로운 인물과 세력과 정치 구도를 원하는 척하면서, 정작 새로운 인물이 나오면 더 혹독한 평가 기준을 들이대고 까다롭게 검증하다가 결국 두 거대 정당 중 하나를 택하고 마는 것일까?

스티브 잡스가 했다는 유명한 말을 떠올려보자. 고객은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른다. 기업이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해 보여주면 그제야 '그래, 이게 내가 원하던 거야'라고 환호한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유권자는 '새로운 인물, 새로운 정치'를 원한다고 하지만 그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유권자가 원하는 건 정치에 처음 뛰어든 신인이 아니다. 현재 구도 속에서 새로운 지평을 보여줄 수 있는, 일관된 태도와 메시지를 지닌 인물. 그것이 국민이 원하는 '새 정치'의 본질이다.

노무현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은 이미 정치를 시작한 지 10년도 더 된 '중고 신인'이었다. 5공 청문회에서 날카로운 질문으로 전두환을 몰아세우며 전 국민적 각광을 받은 후, 민주당 간판을 달고 부산 출마 후 낙선을 거듭하며 '바보 노무현'의 이미지를 쌓았다. 이렇듯 일관된 메시지와 그에 기반한 정치적 캐릭터가 잡혔기에 노무현은 청년들도 열광하는 '새정치'의 아이콘이 됐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정치 입문과 동시에 제1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현상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정권교체 여론이 팽배했지만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그것을 소화해 줄 정치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윤석열도 몇 가지 논란을 자초했다. 정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메시지 역시 분명치 않다는 비판이 있다. 심지어 정치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미지만 놓고 보면 그다지 신선한 인상을 주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두 일리 있는 말이지만 윤석열의 지지율은 흔들리지 않는다. 왜일까? 윤석열을 일약 대선주자로 부상하게 한 핵심 메시지인 '정권교체와 심판'이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2011년과 2012년의 안철수는 본인의 캐릭터와 시대의 요구를 종합한 일관된 메시지를 내놓지 못했다. '새정치'라는 추상적 문구에 지배당했다. 안철수라는 사람을 지지하면 대한민국이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짧고도 분명한 언어로 전달하는 데 실패했다. 신선하고 깨끗하다는 이미지 하나로 대선에 출마했던 박찬종 변호사나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대표와 유사한 함정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새 인물이 등장해 제3당을 앞세워 정국을 뒤바꾸는 일은 좀체 벌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새 정치를 원한다면서 막상 새 인물이 나오면 찍지 않는 유권자의 이중적 태도와 모순 때문이 아니다. 새롭게 정치에 도전하는 이들이 시대정신을 파악하고 자신의 역할을 정립하는 데 실패해 왔기 때문이다. 국민은 단순히 못 보던 얼굴이 등장하는 것을 원하는 게 아니다. 시대에 맞는 역할과 언어를 원한다. 이 조건을 충족하면 이미 알던 얼굴이 보여도 개의치 않는다.

정의당, 밭과 농기계 탓하는 농부 신세

2019년 12월 26일 심상정 정의당 대표(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농성장에서 패스트트랙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이튿날 국회에서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뉴스1]
문제는 제3당, 특히 진보정당이다. 지난 2017년 말부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밀어붙여 왔던 심상정과 정의당이 현재 처한 상황을 짚어보자. 정의당과 그 전신인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은 지역구에서 약하고 비례대표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다. 비례 의석이 늘면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리라는 확신이 있었을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정의당이 민주당과 손을 잡은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의 숙원 사업이라 할 수 있는 '사법개혁' 관련 법안에 협조하는 대신, 군소정당에 이득이라 생각한 준(準)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을 패스트트랙에 올려 통과시키는 '빅딜'이 이뤄졌다.

정상적인 민주국가라면 선거법을 패스트트랙에 올린다는 발상을 하지 않는다. 선거법은 민주주의의 핵심 절차법 중 하나다. 당사자 모두의 심사숙고와 합의 끝에 바꿔야 하는 대상이다. 그러나 정의당은 '우리의 의석수가 부족한 것은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제도가 잘못됐기 때문'이라는 진보 정치 특유의 '맹신'에 빠져 민주당이 던진 미끼를 덥석 물었다. 총선 정국이 열리자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은 모두 총선용 위성정당을 만들어 정의당을 비롯한 군소정당이 '공짜 의석'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막아버렸고, 정의당은 총 6석의 의석에 만족해야 했다.

난해하기 짝이 없는 비례대표 선출 산식을 두고 "국민들은 세부 내용을 알 필요 없다"고 했던 심상정,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국회 의석 몇 개를 더 가져가보겠다고 민주당과 야합했다가 위성정당 꼼수에 막혀 눈물을 흘리던 심상정.

그랬던 그가 정권 심판이 핵심어로 떠오른 이번 대선에서 5% 미만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심지어 조국 전 법무장관의 편을 들기까지 했으니, 국민의 눈에 심상정의 정의당은 야당이 아니라 정권의 위성정당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야성과 양심을 동시에 잃은 진보 정치는 오늘날 민주화 이후 최대 위기를 겪고 있다. 이건 선거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진보 정치, 양당 체제를 넘어서려는 제3당 스스로의 문제다.

어떤 농부는 밭을 탓한다. 또 다른 농부는 농기계를 탓한다. 유권자의 수준이 낮고 변덕스럽다고 화를 내는 사람들, 선거제도가 불공정해 훌륭한 정치인과 정당이 빛을 보지 못한다고 불평하는 이들의 모습이 그렇다. 일말의 진실이 없지는 않겠지만, 진지한 정치인이나 지지층이라면 함부로 떠올리거나 입 밖으로 꺼낼 내용은 아니다. 시대정신을 포착해 올바른 방향으로 제시할 줄 아는, 진정한 새 정치의 출현을 국민은 언제나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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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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