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12

원자력 악마화와 양이원영의 '보급투쟁'

원자력을 ‘나쁜 에너지’로 몰아가는 흐름은 태양광과 풍력에도 부당한 도덕적 관점을 부여했다. 그저 전기 생산 방식에 지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태양광이나 풍력 등은 ‘착한 에너지’인 양 포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태양광을 깔기 위해 나무를 베고 산을 깎으면 그것이야말로 더 큰 환경 파괴가 된다는 현실적인 반박은 도덕적 함성 앞에 간단히 기각되었다. 풍력 발전 터빈이 친환경적으로 보여도 수많은 새와 박쥐, 곤충의 목숨을 실제로 앗아가고 있다는 과학자들의 경고 역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세상을 선악으로 나눠 직관적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너무도 뿌리 깊은 인간적 경향성 때문이다.

바로 이 경향성이야말로 우리가 극복해야 할 진정한 ‘도덕적 과제’라 할 수 있다. 특정 에너지나 입장을 도덕적 선으로 취급하고, 다른 에너지원과 입장을 도덕적 악으로 치부하는 식으로는 기후 변화와 환경 위기라는 전 지구적 과제를 해결할 수 없다. 나와 입장이 다른 사람이라 해도 그 나름의 도덕적 관점이 있고, 나름의 도덕적 정당성을 지니고 있다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래야 공동체를 위한 올바른 판단과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조너선 하이트 뉴욕 대학 심리학과 교수가 저서 ‘바른 마음’에서 역설한 내용이다.

필자는 지난 5월 20일 아시안 리더십 컨퍼런스(ALC)의 “기후 논쟁의 빈자리: 들리지 않는 목소리들” 세션에 패널 중 한 사람으로 참여했다. 그곳에서 필자가 강조한 내용도 이와 같다. 기후 변화에 대한 담론은 도덕에 얽매여 있다. 모두를 위한 도덕이 아니라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는 식의 배타적 도덕주의에 함몰되어 있다. 에너지 문제, 폐기물 처리와 관리 문제, 그 외 가치중립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수많은 환경 담론이 도덕주의에 오염되어 있다.

양 전 의원이 한수원 비상임이사가 되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도덕주의가 낳는 혼란 중 하나다. 전 국민이 다 아는 반핵·탈원전 전도사가 어떻게 한수원 이사직을 노릴 수 있는 걸까. 본인에게 직접 물어볼 수는 없으니, 도덕주의에 빠진 사람들의 흔한 패턴에 대입해 보도록 하자. 아마 그는 원자력은 ‘나쁜 에너지’고 신재생은 ‘착한 에너지’라는 생각을 여전히 확고하게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혹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쁜 놈들의 돈’을 받아서 ‘좋은 일’에 쓰겠다는 식으로 본인의 이중적 선택을 정당화하고 있을 수 있다. 도덕화된 환경주의는 ‘친환경 내로남불’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노정태. (2026-06-06). 양이원영 한수원 이사 선임? 보신탕집 사장이 애견협회 회장 되는 꼴. 신동아. https://n.news.naver.com/article/262/0000019424?sid=100

지난 토요일에 업로드된 신동아 칼럼입니다.

본문에 쓰려다 말았던 표현이 있습니다. '보급투쟁'이라는 단어죠.

운동권들이 1) 체제 영합적 일자리를 얻거나 2) 그들이 적대시하는 체제와 거래하여 이득을 보거나 3) 심지어 엄한 사람들을 속이고 돈이나 재산을 빼앗거나 할 때, 그걸 정당화하기 위해 쓰는 표현입니다.

대의를 위한 '투쟁'에 '보급'을 하고 있을 뿐이니 오케이다, 뭐 그런 논리죠.

양이원영 전 의원이 한수원 이사가 되겠다고 지원서를 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단어가 곧장 떠올랐는데, 원고를 쓰는 과정에서 의식의 저편으로 묻혀버리고 말았네요.

어쩌면 '보신탕집 사장이 애견협회 회장 하는 꼴'이라는, 더 개쩌는 레토릭이 떠올라, 제 무의식 속에서 묻힌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 칼럼이 나가고 며칠 후, 양 전 의원은 한수원 이사 지원을 철회했습니다. 잘한 선택입니다. 반핵 활동을 하시더라도, 보급투쟁 같은 이상한 논리를 들이대지 마시고, 양심과 시민 사회의 상식에 맞게 행동하기 바랍니다.

첨부한 사진은 제가 ALC에서 발표한 모습입니다(feat. 김재섭 의원). 뜻깊은 자리에 연사로 설 기회를 주신 환경 시민단체 '아울러가꾸는터전'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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