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31
독서 목록(2021)
- 20210102 - 존 그리샴, 공경희 옮김,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 - 존 그리샴 베스트 컬렉션』(서울: 시공사, 2004), 전자책, 알라딘.
- 20210112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 1970년대 편: 평화시장에서 궁정동까지·3권』(서울: 인물과사상사, 2002), 전자책, 리디북스.
- 20210114 - 얀 베르너 뮐러, 노시내 옮김, 『누가 포퓰리스트인가』(서울: 마티, 2017)
- 20210122 - 이언 게이틀리, 박중서 옮김, 『출퇴근의 역사』(서울: 책세상, 2016)
- 20210202 - 웬디 우드, 김윤재 옮김, 『해빗』(서울: 다산북스, 2019)
- 20210203 - 이철승, 『쌀 재난 국가』(서울: 문학과지성사, 2021)
- 20210206 - 유현준, 『어디서 살 것인가』(서울: 을유문화사, 2018), 전자책, 리디셀렉트.
- 20210223 - 빌 게이츠, 김민주·이엽 옮김,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경기도 파주: 김영사, 2021)
- 20210302 - 바이바 크레건리드, 고현석 옮김, 『의자의 배신』(경기도 파주: arte, 2020), 전자책, 리디셀렉트.
- 20210305 - 애티카 로크, 박영인 옮김, 『블루버드, 블루버드』(경기도 안양: 네버모어, 2020)
- 20210307 - 히토 슈타이얼, 문혜진·김홍기 옮김, 『면세 미술: 지구 내전 시대의 미술』(서울: 워크룸 프레스, 2021)
- 20210313 - 제임스 네스터, 송영조 옮김, 『호흡의 기술: 한평생 호흡하는 존재를 위한 숨쉬기의 과학』(서울: 북트리거, 2021)
- 20210328 - 김정연, 『이세린 가이드』(서울: 코난북스, 2021)
- 20210328 - 로널드 피서, 서민아 옮김, 『마음챙김의 배신』(서울: 필로소픽, 2021)
- 20210331 - 조지프 S. 나이, 홍수원 옮김, 『소프트 파워』(서울: 세종연구원, 2004)
- 20210403 - 가즈오 이시구로, 김남주 옮김, 『나의 20세기 저녁과 작은 전환점들: 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집』(서울: 민음사, 2021)
- 20210407 - 우오쓰카 진노스케, 장누리 옮김, 『일본 요리 뒷담화』(경기도 파주: 글항아리, 2019)
- 20210409 - 제이크 냅·존 제라츠키, 박우정 옮김, 『메이크 타임』(경기도 파주: 김영사, 2019)
- 20210411 - 야마사키 도요코, 박재희 옮김, 『화려한 일족 1: 열정편』(서울: 청조사, 2007)
- 20210422 -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김남우 옮김, 『비극의 탄생』(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14), 열린책들 세계문학, 전자책, 리디셀렉트.
- 20210423 - 윤희숙, 『정책의 배신』(경기도 파주: 21세기북스, 2020)
- 20210424 - 해리 G. 프랭크퍼트, 이윤 옮김, 『개소리에 대하여』(서울: 필로소픽, 2016)
- 20210425 - 백정흠·이동관, 『아픈 사람의 99%는 목이 뭉쳐 있다』(경기도 파주: 쌤앤파커스, 2018), 전자책, 리디셀렉트.
- 20210428 - 숀케 아렌스, 김수진 옮김, 『제텔카스텐』(서울: 인간희극, 2021)
- 20210502 - 야마사키 도요코, 박재희 옮김, 『화려한 일족 2: 규벌편』(서울: 청조사, 2007)
- 20210502 - 야마사키 도요코, 박재희 옮김, 『화려한 일족 3: 갈등편』(서울: 청조사, 2007)
- 20210503 - 라이언 홀리데이, 이경식 옮김, 『에고라는 적』(서울: 흐름출판, 2017), 전자책, 리디셀렉트.
- 20210504 - 야마사키 도요코, 박재희 옮김, 『화려한 일족 4: 득실편』(서울: 청조사, 2007)
- 20210518 - 사브리나 코헨-해턴, 김희정 옮김, 『소방관의 선택』(경기도 파주: 북하우스, 2020)
- 20210521 - 유발 하라리, 김승욱·박용진 옮김, 『대담한 작전: 서구 중세의 역사를 바꾼 특수작전 이야기』(경기도 파주: 프시케의숲, 2018), 전자책, 리디셀렉트
- 20210523 - 하야카와 타다노리, 송태욱 옮김, 『신국 일본의 어처구니없는 결전생활』(서울: 서커스출판상회, 2019)
- 20210527 - 허지웅, 『살고 싶다는 농담』(경기도 파주: 웅진지식하우스, 2020), 전자책, 리디셀렉트.
- 20210528 - 모리무라 세이이치, 최고은 옮김, 『인간의 증명』(서울: 검은숲, 2012)
- 20210601 - 이한우, 『고전의 바다에서 지혜를 낚는 법』(서울: 샘터, 2021)
- 20210603 - 이준석, 강희진 엮음, 『공정한 경쟁』(서울: 나무옆의자, 2019), 전자책, 밀리의서재.
- 20210605 - 아글라야 페터라니, 배수아 옮김, 『아이는 왜 폴렌타 속에서 끓는가』(서울: 워크룸 프레스, 2021), 제안들 36.
- 20210608 - 에리히 프롬, 황문수 옮김, 『인간의 마음』(서울: 문예출판사, 2010), 3판, 초판 1977.
- 20210613 - 프란츠 카프카, 배수아 옮김, 『꿈』(서울: 워크룸 프레스, 2014), 제안들 1.
- 20210618 - 다와다 요코, 유라주 옮김, 『글자를 옮기는 사람』(서울: 워크룸프레스, 2021), 제안들 37.
- 20210619 - 유발 하라리, 김희주 옮김, 『극한의 경험』(서울: 옥당북스, 2019), 전자책, 리디셀렉트.
- 20210621 - 제레미 벤담, 신건수 옮김, 『파놉티콘』(서울: 책세상, 2015), 책세상문고·고전의 세계 64, 전자책, 리디북스.
- 20210622 - 캐스 R. 선스타인, 이기동 옮김, 『루머』(서울: 프리뷰, 2009)
- 20210624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 1980년대 편: 광주학살과 서울올림픽·1권』(서울: 인물과사상사, 2002), 전자책, 리디북스.
- 20210625 - 김홍신, 『인간시장 1』(서울: 해냄, 2015), 전자책, 알라딘 ebook.
- 20210627 - 이철용, 『어둠의 자식들』(서울: 새녘출판사, 2012), 개정판.
- 20210707 - 마이클 샌델, 함규진 옮김, 『공정하다는 착각』(서울: 와이즈베리, 2020)
- 20210717 - 강동국・김시덕・김종학・김호섭・신상목・이원덕, 『일본, 한국을 상상하다』(서울: 도서출판 선인, 2021)
- 20210719 - 루이스 캐럴 원작·마틴 가드너 주석·존 테니얼 그림, 최인자 옮김, 『Alice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거울 나라의 앨리스』(서울: 북폴리오, 2005)
- 20210801 - 카를로 M. 치폴라, 최파일 옮김, 『대포, 범선, 제국』(서울: 미지북스, 2010)
- 20210805 - 세스 프라이스, 이계성 옮김, 『세스 프라이스 개새끼』(서울: 작업실유령, 2021)
- 20210810 - 마사 너스봄 외 지음, 조슈아 코언 편집, 오인영 옮김,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 애국주의와 세계시민주의의 한계 논쟁』(서울: 삼인, 2003)
- 20210814 - 제임스 네스터, 김학영 옮김, 『깊은 바다, 프리다이버』(경기도 파주: 글항아리, 2019)
- 20210814 - 요쉬카 피셔, 선주성 옮김, 『나는 달린다』(서울: 궁리, 2000)
- 20210821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 1980년대 편: 광주학살과 서울올림픽·2권』(서울: 인물과사상사, 2002), 전자책, 리디북스.
- 20210829 - 『한국 현대사 산책 - 1980년대 편: 광주학살과 서울올림픽·3권』(서울: 인물과사상사, 2002), 전자책, 리디북스.
- 20210829 - 아스트리드 홀레이더르, 김지원 옮김, 『나의 살인자에게』(경기도 파주: 다산책방, 2019)
- 20210830 - 마이클 길모어, 이빈 옮김, 『내 심장을 향해 쏴라』(경기도 파주: 박하, 2016)
- 20210831 - 자크 데리다, 안 뒤프라망텔 서론, 남수인 옮김, 『환대에 대하여』(서울: 동문선, 2004), 동문선 현대신서 177.
- 20210906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 1980년대 편: 광주학살과 서울올림픽·4권』(서울: 인물과사상사, 2002), 전자책, 리디북스.
- 20210909 - 대니얼 해머메시, 송경진 옮김, 『스펜딩 타임』(서울: 해피북스투유, 2021)
- 20210909 - 박태웅, 『눈 떠보니 선진국: 앞으로 나아갈 대한민국을 위한 제언』(서울: 한빛비즈, 2021)
- 20210909 - 지오딘 사르다르·제리 라베츠, 보린 반 룬 그림, 양영철 옮김, 최화정 감수, 『수학사 아는 척하기』(경기도 부천: 팬덤북스, 2021)
- 20210910 - 안드레아 울프, 릴리안 멜셔 그림, 정영은 옮김, 『자연의 발견: 알렉산더 폰 훔볼트의 모험』(서울: 열린과학, 2021)
- 20210913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 1990년대 편: 3당합당에서 스타벅스까지·1권』(서울: 인물과사상사, 2006), 전자책, 리디북스.
- 20210916 - 아즈마 히로키, 안천 옮김, 『느슨하게 철학하기: 철학자가 나이 드는 법』(서울: 북노마드, 2021)
- 20210918 - 로버트 맥키, 고영범·이승민 옮김, 『DIALOGUE: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2』(서울: 민음인, 2018)
- 20210925 - 데이비드 엡스타인, 이한음 옮김,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20), 전자책, 리디셀렉트
- 20210926 - 보니 추이, 문희경 옮김, 『수영의 이유』(경기도 파주: 김영사, 2021)
- 20210928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 1990년대 편: 3당합당에서 스타벅스까지·2권』(서울: 인물과사상사, 2006), 전자책, 리디북스.
- 20211009 - 모리무라 세이이치, 최고은 옮김, 『야성의 증명』(서울: 검은숲, 2012)
- 20211011 - 모리무라 세이이치, 최고은 옮김, 『청춘의 증명』(서울: 검은숲, 2012)
- 20211023 - 시드 마이어·제니퍼 리 누넌, 이미령 옮김, 『시드 마이어: 컴퓨터 게임과 함께한 인생!』(서울: 영진닷컴, 2021)
- 20211023 - 메리 W. 셸리, 오숙은 옮김, 『프랑켄슈타인: 현대의 프로메테우스』(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11), 열린책들 세계문학 160.
- 20211026 - 로버트 D. 헤어, 조은경·황정하 옮김, 『진단명: 사이코패스』(서울: 바다출판사, 2005)
- 20211028 - 플로랑 실로레, 임희근 옮김, 『로버트 카파, 사진가』(서울: 포토넷, 2017)
- 20211103 - 존 르 카레, 조영학 옮김, 『에이전트 러너』(서울: 알에이치코리아, 2021)
- 20211105 - 나카야마 시치리, 민현주 옮김, 『웃어라, 샤일록』(경기도 파주: 블루홀식스, 2021)
- 20211113 - 김태원, 『매혹적인 스토리텔링의 탄생』(서울: 파람북, 2019)
- 20211114 - 필리퍼 피어스, 수잔 아인칙 그림, 김석희 옮김,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서울: 시공사, 1999)
- 20211128 - J.F. 비얼레인, 현준만 옮김, 『세계의 유사 신화』(서울: 세종서적, 2000), 2판.
- 20211128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 2000년대 편: 노무현 시대의 명암·1권』(서울: 인물과사상사, 2011), 전자책, 리디북스.
- 20211204 - 앨리슨 벡델, 안서진 옮김, 『초인적 힘의 비밀』(경기도 고양: 움직씨, 2021)
- 20211212 - 가와사키 사토시, 김동욱 옮김, 『거북의 등딱지는 갈비뼈』(서울: 사이언스북스, 2021)
- 20211219 - 가와사키 사토시, 김동욱 옮김, 『상어의 턱은 발사된다』(서울: 사이언스북스, 2021)
- 20211225 - 찰스 디킨스, 마이클 패트릭 히언 주석, 윤해준 옮김, 『주석 달린 크리스마스 캐럴』(서울: 현대문학, 2011)
다사다난했던 2021년. 독서량이 줄었습니다. 새해에는 더 많이 읽고 열심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2021-12-26
‘설강화’ 보이콧…이것은 민주화가 아니라 ‘民主독재’
● 청와대 국민청원 대상 된 드라마
● 로맨스 위한 고전적 설정이거늘…
● 안기부 야쿠자 취급하는데 독재 미화?
● 이른바 ‘역사의식’ 녹이려 애쓴 흔적
● 민주화 운동 신성시한 태도의 결과
● 업적이지만 성역은 아닌 산업화·민주화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12월 18일 첫 방송된 JTBC 드라마 ‘설강화’의 포스터. 이 드라마는 시놉시스가 유출된 지난 3월부터 이른바 ‘민주화 운동 폄하 논란’에 휩싸였다. [JTBC 제공] |
비판의 목소리는 쉽게 잦아들지 않는 기세다. 네티즌의 항의를 받은 협찬 기업들은 광고를 거둬들이고 있다. ‘설강화’ 방영을 중단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12월 22일 현재 30만 명 넘는 이들이 서명했다. “민주화운동과 간첩, 안기부를 엮는 것 자체가 또 다른 가해”라며 민주화운동 관련 단체들 또한 반발하고 있다.
논란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12월 21일 ‘설강화’ 논란과 관련해 “운동권에 잠입한 간첩, 정의로운 안기부, 시대적 고민 없는 대학생, 마피아 대부처럼 묘사되는 유사 전두환이 등장하는 드라마에 문제의식을 못 느낀다면 오히려 문제”라며 “창작의 자유는 역사의 상처 앞에서 겸허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방영을 중단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가 ‘어느 편’에 있는지는 혼동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주인공인 남파공작원 임수호(정해인)가 등장하는 드라마의 한 장면. [JTBC 제공] |
간략하게 줄거리와 배경을 살펴보자. 1987년 봄, 군부독재의 끝을 향하고 있는 대한민국. 고위층은 다가올 대선을 준비 중이다. 안기부는 북한과 짜고 대국민 사기극을 치려 한다. 야당 대선 후보의 경제 브레인인 한이섭 교수를 납치해 북한에 보낸 후, 그곳에서 사진을 찍어 공개하는 북풍 공작을 기획한 것이다.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한국에 파견된 남파공작원 임수호(정해인)는 한이섭을 납치하는데 성공하지만 안기부 대공수사1국 팀장 이강무(장승조)에 쫓겨 호수여대 기숙사로 숨어 들어간다. 그곳에서 수호는 이전에 기숙사 ‘방팅’에서 만났던 은영로(지수)의 보살핌을 받으며 안기부의 눈을 피하게 되는데…
이것은 로맨스를 뽑아내기 위한 고전적 설정이다. 연인 사이에 함부로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을 세워놓음으로써 서로 안달하게 하고 애타게 하며 극적 효과를 배가시키는 장치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서로가 원수인 가문의 자식들이다. ‘타이타닉’의 잭과 로즈는 신분의 차이가 있을 뿐더러 눈이 맞았더니 초호화 유람선이 침몰한다. 이미 방영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재벌 2세 패션산업가인 여자 주인공이 패러글라이딩을 하다 북한으로 넘어가는 사고를 당하고, 그곳에서 북한 장교와 사랑에 빠지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북한이라는 금기를 로맨스의 장애물로 활용하는, 솔직히 이제는 신선하다고 말하기도 힘든 기법을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왜 ‘설강화’는 이전과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을까? 앞서 인용한 심상정의 말을 다시 짚어보자. “운동권에 잠입한 간첩, 정의로운 안기부, 시대적 고민 없는 대학생, 마피아 대부처럼 묘사되는 유사 전두환.” 모두가 문제고 잘못됐다고 심상정은 언급했다. 글로 써놓고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이런 비판은 어느 정도까지 사실일까?
“마피아 대부처럼 묘사되는 유사 전두환.” 아닌 게 아니라 시놉시스가 유출됐던 지난 3월, 인물 설정 및 캐스팅된 배우들의 이름값으로 인해 ‘군사 독재 미화’라는 비판이 나온 바 있다. 하지만 막상 드라마를 보면 군사 독재 미화는커녕 극히 비판적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안기부장 은창수(허준호)와 여당 사무총장 남태일(박성웅)은 ‘동심회’라는 육군사관학교 사조직에 속해 있다. 1화 초반에 동심회 창립 30주년 기념회 장면이 등장한다. 마치 야쿠자처럼 손에서 피를 내어 술잔에 섞고 마시는 모습이 연출된다. ‘너는 일본 야쿠자 같은 놈’이라면 한국인끼리 할 수 있는 욕 중 가장 수위가 높은 것일 터. 시작하자마자 ‘동심회’와 안기부 등을 일본 야쿠자 취급하는 드라마를 ‘군사 독재 미화’라고 비난하는 게 말이 되는 일일까.
“정의로운 안기부.” 안기부 직원인 이강무가 간첩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된 ‘열혈 형사’처럼 그려지고 있는 건 맞다. 하지만 1화와 2화를 아무리 뒤져봐도 딱히 정의로운 인물처럼 그려지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현장에서 뛰는 안기부 직원들 또한 역사와 권력의 희생양으로 묘사되고 있다. 윗선에서 북한과 내통하고 한이섭을 북에 넘기려 하지만, 현장에서는 그런 사정을 전혀 모른 채 한이섭을 납치하러 온 수호를 추적하고 있으니 말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인간적인 공감과 동정을 표할 수 있는 캐릭터이긴 하나, ‘정의로운 안기부’라고 요약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시대적 고민 없는 대학생.” 이건 제작진 입장에서 퍽 억울할 것 같다. 영로와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쓰는 운동권 학생 여정민(김미수)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셈이기 때문이다. 1화. 기숙사 식당에서 작은 소동이 벌어지면서 정민이 들고 온 만화책 ‘공포의 외인구단’의 표지가 벗겨지고, 곧 레오 휴버먼의 책 ‘사회주의란 무엇인가’가 드러난다. 영로는 용기를 내어 자기가 그 책을 수습하고 너스레를 떨어 위기를 모면한다.
“‘넌! 단 한 순간도 우리를 이길 수 없어. 이건 하늘의 뜻이자 엄지의 뜻이다.’ 이건 야구만화가 아니라 순정만화라니까.”
시대적 고민이 ‘있는’ 대학생의 모습은 이후로도 꾸준히 묘사된다. 1화, ‘방팅’에 수호를 끌고 온 광태는 행정고시에 1차 합격한 자신이 여자들에게 인기를 끌 거라고 수다를 떠는데, 그 와중에 생경한 이름이 등장한다.
“아이, 물론이지. 밑바닥 인생들이나 사랑 하나 보고 결혼 하는 거지. 지배계급은 전적으로 경제적 타산 여하에 따라서 결혼이 결정된다고 본 사람이 엥겔스야.”
2화 초반, 기숙사에 숨어들어온 수호를 추적하는 안기부 직원들은 간첩이 있다고 엄포를 놓는다. 같은 방 친구들은 겁을 먹지만 정민은 말한다. “간첩, 짭새들 맨날 하는 소리야. 걸핏하면 우리 빨갱이로 모는 거 몰라?” 그렇게 숨어 있는 수호에게 영로는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한다. 오빠가 데모하다가 강제징집당해서 휴가를 많이 나오지 못하는 처지라고 말이다.
1987년 민주화항쟁 당시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앞에서 학생들이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동아DB] |
문제는 바로 거기 있다. 민주화 운동을 신성시하는 태도가 ‘설강화’ 논란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운동, 민주화 운동은 ‘간첩 청정 지대’였나? 북한으로부터 아무 영향을 받지 않았고 다만 민주화를 꿈꾸는 청년들의 순수한 열망으로만 이루어진 것이었나? 그렇지 않다. 학생들이 간첩으로 몰려 고초를 겪고 피해를 입은 역사와는 별개로, 그 학생운동권 중 적잖은 이들이 북한에서 송출하는 단파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학습’을 하고 ‘지령’을 받았던 것 또한 움직일 수 없는 사실 아닌가. ‘감히 신성한 민주화 운동 앞에서 간첩이라는 말을 꺼낸다니’라는 식의 반응이야말로 ‘역사왜곡’이다.
‘설강화’를 둘러싼 논란은 일종의 뒤집힌 레드 콤플렉스라고 볼 수 있다. 간첩이 아닌 사람을 간첩으로 지목해 고초를 겪게 했던 역사에 대한 반성이, 이제는 ‘신성한 민주화 운동에는 간첩이라는 말을 감히 꺼내서는 안 된다’는 식의 또 다른 금기로 이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12월 21일에는 한 네티즌이 ‘설강화’의 작가와 감독이 간첩을 미화했다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국민신문고를 통해 고발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설강화’ 논란이 거울에 비춘 또 다른 레드 콤플렉스임을 이보다 더 희극적으로 보여줄 수가 없다.
20세기의 반공물은 공산당을 머리에 뿔 난 악마로 그리고 우리 편 국군은 아무런 흠결도 인간적 고뇌도 없는 인물처럼 묘사했다. 그런 시대는 끝난 줄 알았는데, 이제는 군사독재 세력은 덮어놓고 극악한 집단으로 취급하며 민주화 세력은 날개 없는 천사처럼 그려야만 하는 세상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민주화된 사회가 아니라 ‘민주독재국가’에 살고 있다고 봐야 한다. 심상정을 비롯해 ‘설강화’를 비난하는 사람들, “창작의 자유는 역사의 상처 앞에서 겸허해야 할 것”이라는 말에 동의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레드 콤플렉스를 해소하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자신들의 손에 그 칼을 쥐고 휘두르고 싶은 것인가.
산업화의 그늘은 1980년대부터 노동운동이 성장하면서 느리지만 꾸준히 논의돼 왔다. 산업화는 여전히 대한민국의 업적이지만 ‘성역’은 아니라는 소리다. 같은 원리가 민주화에도 적용될 필요가 있다. 민주화는 더욱 민주적으로, 공개적으로, 사실에 입각해 논의돼야 하는 우리의 역사다. ‘설강화’ 논란을 통해 우리 사회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설강화 #민주화 #산업화 #레드콤플렉스 #신동아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2021-12-25
'디지털 고려장'으로 떠밀려 가는 노인들.. "우리는 개가 아니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디지털 격차가 낳은 소외
그는 타고난 손재주와 성실함으로 한평생을 일궈왔다. 남에게 신세 지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었다. 아내와 사별한 후 주로 밤에 일해오던 늙은 목수, 다니엘 블레이크. 그는 어느 날 심장마비를 겪고 추락사할 뻔했지만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주치의의 권고에 따라 직장을 그만두고 치료와 재활에 전념하려 한다.
문제가 생겼다. 영국의 행정 편의적이고 관료적인 시스템이 그를 골탕 먹이기 시작한 것이다. 건강이 안 좋아서 의사 권고에 따라 일을 그만두었는데 걸어다닐 수 있고 모자를 제 손으로 쓸 수 있다는 이유로 질병 수당을 받지 못한다. 그렇다고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구직 활동을 했다는 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더 나쁜 건 그 모든 절차를 인터넷을 통해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무원들은 이 노인에게 냉랭하고 고압적이다. “디지털 시대잖아요. 인터넷에 나와요. 예약 없이 오셨으면 이만 가 주세요.”
그는 컴퓨터를 쓰기 위해 도서관에 갔다. 친절한 사서의 도움을 받고 있다. “이게 신청 사이트예요. 더블클릭하세요. 마우스를 올리고 클릭한 다음 내용을 입력하세요.” 다니엘은 마우스를 올리라는 말에, 자신의 손에 쥐여진 낯선 플라스틱 도구를 말 그대로 ‘들어 올려’ 컴퓨터 화면에 가져다 대려 한다. 사서는 웃음을 터뜨린 후 화면 속 ‘커서’를 움직이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문제가 해결되었을까? 그렇지 않다. 이 노인의 수난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2016년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한 장면이다.
다니엘 블레이크는 항의한다. “난 연필 시대 사람이오. 그런 사람들 배려는 안 하나?” 컴퓨터 앞에 앉아 화면에 뜬 서류 내용을 채워넣지 못하면 복지 혜택을 받을 수도 없고, 자신이 받은 부당한 처분에 항의할 수도 없는 세상. 다니엘에게 동정심을 느껴 서류 접수를 직접 도와주던 일자리플러스센터 직원은 ‘잘못된 선례를 만들지 말라’며 윗사람에게 꾸지람을 듣는다. 오늘날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를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디바이드는 흔히 ‘정보 격차’로 번역된다. 모든 것이 전자화되는 사회 속에서 세대⋅계층⋅문화 등 다양한 원인으로 정보 및 기술 활용 능력의 차이가 벌어지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정보의 격차를 일컫는 용어로 소개돼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이야기할 수는 없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로 인해 이득을 보는 자와 손해를 보는 자의 간극, 그 모든 것을 통칭하는 용어가 바로 디지털 디바이드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부터 초고속 인터넷을 전국에 설치했던 IT 강국 대한민국에서 무슨 디지털 디바이드냐 하겠지만, 실상은 복잡하다. 우리가 다른 나라에 비해 인터넷 활용도가 높은 나라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매년 발표하는 ‘인터넷 이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현재 한국의 1984만 가구 중 1980만 가구가 인터넷을 사용한다. 97.1%가 인터넷 메신저를, 92.7%가 동영상 서비스를 이용한다. 거의 모든 국민이 카톡으로 연락하고 유튜브를 본다는 소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디바이드는 이 땅에 존재한다. 지난 3일 서울 노원구 월계동의 한 아파트 단지 상가 앞에서 벌어진 시위가 대표적인 사례다. 해당 위치에 있었던 은행이 지점을 폐쇄하자 그곳을 방문하던 노인 50여 명이 항의의 뜻으로 집회를 열었다. 은행 측은 해당 지점을 키오스크를 활용한 화상 상담을 제공하는 디지털 라운지로 바꾸는 것이지 완전한 폐점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오프라인에서 은행 거래를 이용하는 고객의 수가 꾸준히 줄어들고 있으므로 피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할 것이다.
이것은 비단 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몇 년간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패스트푸드를 중심으로 매장 아르바이트 직원을 전자식 단말기인 키오스크로 대체해왔다. 터치스크린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 키가 작은 어린이, 휠체어에 앉아 있는 장애인 등은 음식을 주문하기 어려워진다. 우리가 흔히 아는 디지털 디바이드, 정보 격차의 모습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누군가는 저 키오스크를 설치하는 비즈니스를 통해 돈을 벌고 있는 반면, 아르바이트로 고용될 수 있었던 청년들은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아야 한다는 것 말이다. 이 또한 일종의 디지털 디바이드라고 할 수 있다. 키오스크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를 만들 줄 아는 사람, ‘디지털 리터러시’가 높은 사람은 새로운 비즈니스의 기회를 얻었다. 반면 키오스크가 대신할 수 있는 단순 접객업 외의 기술이 없는 사람은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다. 디지털 디바이드를 단지 ‘새로운 시대의 문물을 배우려 들지 않는 노인 문제’쯤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돌아와보자. 다니엘의 이웃집에는 중국 공장의 직원과 짜고 운동화를 밀수해 판매하는, ‘차이나’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청년이 산다.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고팔며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세상은 차이나가 손에 쥔 몇 안 되는 기회다. 하지만 바로 그 기회의 창을 다니엘은 넘지 못하고 번번이 넘어진다. 영화 속에서는 다니엘과 친해진 차이나가 다니엘의 서류를 대신 제출해주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리 훈훈하지만은 않고, 관료제와 디지털 디바이드에 갇힌 다니엘의 고난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디지털 디바이드는 기술 발전에 따른 부수적 현상이다. 이 변화의 흐름을 막을 방법은 없다. 그러나 정상적인 국가라면 그 피해와 간극을 최소화하고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앞서 인용한 통계에 따르면 70대 이상의 인터넷 이용률은 2016년 25.9%였지만 2020년 현재 40.3%까지 높아졌다. 긍정적이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여전히 60%의 노인들은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이들은 스마트폰을 통한 방역패스에서도 소외될 가능성이 크다. 디지털 디바이드가 코로나를 만나 ‘디지털 고려장’으로 악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문득 다니엘이 남긴 마지막 편지의 문구가 떠오른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도파민 중독에 빠진 대선.. '사이다' 수렁에서 탈출해야 나라가 산다
日만화 '도박묵시록 카이지'와 내 주머니 속 '사이버 슬롯머신'
1996년 일본. 도쿄에 온 지 3년째 되는 청년 이토 카이지는 하는 일이 없었다. 친구들과 시시한 도박과 술로 세월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채업자 엔도가 찾아왔다. 아르바이트를 같이했던 후루바타에게 30만엔 빚보증을 서준 것이 화근이었다. 월 20% 복리. 1년 만에 385만엔으로 늘어난 고액을 갚으려 카이지는 묘한 제안을 받아들였다. ‘에스포와르’, 프랑스어로 ‘희망’이라는 뜻의 배에서 열리는 비밀 도박판에 참여하기로 한 것이다.
1996년부터 지금까지 연재 중인 일본 만화 <도박묵시록 카이지>의 설정이다.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면, 맞는다. <오징어 게임>에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진 작품 중 하나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오징어 게임>과 달리 <도박묵시록 카이지>는 진지하게 ‘도박’에 집중하는 만화라는 것이다.
평소에는 흐리멍덩하게 하루하루 시간을 죽이던 카이지. 주최 측이 농간을 벌이는 사기 도박판에 떨어지자 엄청난 기지와 용기를 발휘한다. 하지만 위기를 모면하고 탈출하니 다시 나태한 일상을 보낸다. 그러다가 결국 또 비밀 도박판에 뛰어든다. 거기서도 힘겹게 승리를 거둔 카이지는 앞으로 도박을 끊고 손을 씻겠다고 다짐하지만, 막대한 돈으로 일본을 쥐락펴락하는 제애그룹의 헤이토 회장은 비웃는다.
“쾌감은… 정말로 정신이 아득해지는 쾌감은 정상을 벗어나야만 얻을 수가 있네! 크크크… 카이지군도 그 사실은 이미 알 테지… 안 그런가? 카이지군의 뇌는 이미 그 쾌감으로 불태워졌네! 틀림없이 앞으로의 카이지군의 인생은, 그 쾌감을 계속해서 좇는 여행이 될 걸세! 크크크… 그런 의미에선 설령 여기서 1억을 딴다 해도, 조만간 그 쾌감에 몸을 맡기고 사라질 돈… 도박으로 탕진할 돈이야. 마찬가지지! 그것이 중독자의 습성….”
이건 카이지만 겪는 일이 아니다. 도박꾼은 대부분 도박을 끊지 못한다. 도박뿐 아니라 운동이나 섹스, 혹은 권력처럼 다양한 행위에 지나치게 몰두하여 자신과 타인을 파멸로 몰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탐닉 혹은 행위 중독(addiction)의 원인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어떤 해법을 찾아야 할까?
실험용 쥐 두 마리가 있다고 해보자. 한 마리는 언제나 버튼을 누르면 먹이를 받는다. 다른 쥐는 버튼을 누를 때 먹이를 받을 수도 있고 받지 못할 수도 있다. 늘 먹이를 받는 쥐는 배가 고플 때만 버튼을 누르고, 먹이를 먹으면 더 누르지 않는다. 반면 결과가 불확실한 버튼을 누르는 쥐는 심지어 배가 고프지 않아도 계속 버튼을 누른다. 중뇌의 복측피개영역(VTA)에서 쏟아지는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에 중독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도파민은 불확실한 행위를 감행하여 결과를 확인할 때 나온다. 버튼을 누른 쥐와 도박 패를 확인한 카이지 모두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럴 때 뇌의 측좌핵은 쾌락을 느낀다. 문제는 지나치게 많은 도파민이 분비될 때 벌어진다. 생명체는 항상성을 유지하고자 하기에 도파민이 계속 과분비될 경우 도파민 수용체가 줄어든다. 도파민 감수성이 낮아지므로 정상적으로 분비되는 도파민으로는 신경 체계가 정상 작동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도박장을 벗어난 카이지가 일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지루해하는 것은 그래서다. 거액이 오가는 도박판의 스릴과 안도감 때문에 카이지의 보상 체계는 완전히 망가져버린 것이다.
시사 문제와 철학을 다루던 지면에서 신경과학을 논하는 이유가 있다. 도파민 중독은 오늘날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도박, 마약, 술, 담배 같은 것들에 대해서만 중독을 걱정하면 됐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사람의 주머니에 일종의 사이버 슬롯머신이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네트워크(SNS)가 대표적이다. 끝없이 스크롤을 내려도 계속 볼거리를 제공한다. 내가 올린 게시물에 대한 실시간 반응을 전달해준다. 더 많은 ‘좋아요’를 기대하며 자극적인 가짜 뉴스를 퍼다 나르는 사람들은 버튼을 누르는 실험용 쥐와 크게 다르지 않다.
좀 더 크고 무거운 주제로 들어가보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큰아들의 불법 도박이 최근 큰 화제가 됐다. 이 문제는 후보 본인이나 가족을 향한 인격적 비난으로 소비하고 말 일이 아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가 잘 지적한 것처럼 “아들의 치료 약속에 그칠 것이 아니라 불법 도박 근절을 위한 강력한 의지와 제도적 대안을 함께 이야기”해야 할 사안이다.
하루 종일 휴대전화만 보며 도파민을 쥐어짜던 사람들, 특히 청소년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입을 벌리고 있는 불법 도박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불법 도박 시장은 현재 약 84조원에 달한다. 강렬한 자극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더 센 것을 원한다. 도박이 마약, 성매매와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마약류 유통 역시 이전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은밀하고 활발해졌다. 단지 개인의 도파민 분비 차원을 넘어서는 일이다. 불법 도박은 조직 폭력의 수익원이 되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공론장은 정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 차분하고 침착하게 의견을 교환하고 입장의 차이를 확인하며 공통점을 찾아가고자 하지 않는다. 우리의 정치가 도파민 중독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SNS에서 자신의 지지층을 향해 ‘사이다 발언’을 해서 ‘좋아요’를 얻어내는 일에만 골몰하고 있지 않은가. SNS를 자제하지도 못하는 정치인들이 불법 도박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도박묵시록 카이지>를 다시 펼쳐보자. 헤이토 회장과 대결 후 집에 돌아온 카이지. 큰 피해를 보았음에도 도박을 끊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사채업자 엔도를 만나 다시 한번 큰 도박판에 끼워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엔도는 카이지를 제애그룹 회장이 만드는 지하 방공호의 강제 노역장에 처박아버리고, 카이지는 그 와중에도 도박으로 탈출구를 마련하려 든다.
그래서 카이지는 어떻게 되었을까? <도박묵시록 카이지>는 지금도 절찬 연재 중이다. 도파민 중독은 이렇게나 무서운 것이다. 우리 사회, 특히 정치권부터 ‘사이다 중독’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내년에는 맑은 정신으로 우리의 미래를 고민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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