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태의 뷰파인더] '검찰개혁'한다던 '아마추어'와 신종 감시사회
● 개별 통화 모아놓으면 패턴이 나온다
● 구체성 빠진 공수처의 ‘나쁜 사과문’
● 이성윤 공소장 단독보도와 연관성
● 법원은 어떤 근거로 영장 내줬나
● 공수처에 ‘격려 우선’이라는 박범계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이 숫자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2021년 12월 29일 국민의힘은 공수처가 당 소속 국회의원 105명 중 60명의 통신자료를 조회한 것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국회의원 보좌진 6명도 공수처의 통신자료 조회 대상이 됐다. 공수처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캠프에서 활동한 김병민 대변인의 통신자료까지 조회했다.
언론사 소속도, 정치권 인사도 아닌데 조회 대상이 된 경우도 여럿 있다. TV조선 기자의 모친, 동생, 다른 기자의 지인, 전직 종합편성채널 기자와 그의 지인, '조국 흑서'(‘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필자인 김경율 회계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차장을 지낸 김준우 변호사 등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유례를 찾기 어려운 대대적인 민간인 사찰이다.
공수처는 대통령, 국회의원, 대법원장 및 대법관, 헌법재판소장 및 헌법재판관,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대통령경호처·국가정보원 3급 이상 공무원, 판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 및 그 배우자와 직계존비속을 수사 대상으로 한다. 기자, 기자의 가족, 변호사, 회계사 등은 당연히 수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유튜브는 도청할 필요가 없다
여기까지 읽은 어떤 독자가 잠시 분노와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유튜브에 접속했다고 가정해보자. 그 독자는 오늘 점심시간에 잠시 짬을 내어 대학 동창을 만나 새로 출시된 어떤 자동차의 디자인을 칭찬하고, 해외 주식에 대해 심도 깊은 토론을 나눈 후 친구가 최근 방문했던 강원도의 어떤 휴양지에 대해 수다를 떨고 돌아왔다.그런데 유튜브를 켜보니, 세상에. 아까 이야기했던 자동차, 해외 주식, 강원도에 대한 내용이 추천 영상으로 뜨고 있다. 참고로 저 세 가지 화제는 모두 친구가 먼저 꺼냈다. '뷰파인더' 독자는 해당 내용을 단 한 번도 검색해본 적이 없다. 대체 어찌 된 일일까? 구글이 무시무시한 기술력을 통해 핸드폰으로 '뷰파인더' 독자와 친구의 대화를 도청하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내막을 알기 전까지는 필자 역시 그런 의심을 품었다. 물론 실상은 다르다. 구글이건 애플이건 IT(정보기술) 기업은 스마트폰을 통해 사용자 몰래 대화를 실시간 도청하지 않는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음성 정보를 수집해 텍스트로 바꾸고 맥락상 중요한 키워드를 추출하는 고난이도 작업을 하면 사용자의 핸드폰과 서버에 부담이 생긴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도청하지 않아도 빅테크 기업은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 나눈 대화의 소재를 파악할 수 있다.
‘이 사이트는 쿠키를 사용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독자 여러분이 웹서핑을 하면서 수도 없이 접했을 문구다. 대부분 큰 고민 없이 'OK' 버튼을 누른다. 이렇게 웹사이트는 광고 중 무엇을 클릭했는지, 쇼핑몰 사이트에서 어떤 검색어를 입력했는지, 대략 그런 내용을 수집한다. 한 두 개의 사이트라면 사실 그리 심각하게 고민할 이유도 없다. 개별적으로 떼어놓고 보면 별거 아닌 정보다.
문제는 그 정보를 '종합'할 때 발생한다. IT 기업은 인터넷 검색, 클릭, 페이지 종료 등의 행동을 한데 묶어 분석함으로써 우리가 무엇을 필요로 하고 욕망하며, 또 궁금해 하는지 면밀히 파악할 수 있다. 게다가 우리는 스마트폰을 거의 24시간 내내 지니고 다닌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내 핸드폰이 있는 곳에 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빅테크는 마음만 먹으면 우리가 하루 종일 어디에 있는지, 더 나아가 어떤 사람을 만나는지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유튜브는 우리를 도청할 필요가 없다. 최근 자동차, 해외 주식, 강원도 휴양지에 관심이 많았던 사용자 A와 사용자 B가 어떤 카페에서 만났고, 사용자 B가 커피 두 잔 값을 지불했으며, 두 사람이 40여 분간 같은 장소에 있다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헤어졌다는 사실만 알고 있으면 충분하다. 유튜브는 두 사람이 서로의 관심사를 교환했으리라고 추측한다. A는 B에게 자동차, 해외 주식, 강원도 휴양지를 이야기했다. B는 A에게 또 다른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최근 A와 B의 개인적 관심사가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추측은 대체로 맞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만나면 특별한 용건을 주고받거나, 그렇지 않거나, 아무튼 본인의 평소 관심사에 대해 어느 정도 이야기하게 된다. 구글이나 애플 같은 빅테크뿐 아니라 한국 IT 기업도 마찬가지다. 여러 웹사이트가 수집한 개인 정보를 유통하는 시장이 있다. 그런 경로로 우리의 정보들이 사고 팔린다. 그걸 잘 종합할수록 맞춤형 광고를 내보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유튜브 도청'이라는 현상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 대상으로 저인망식 조회
유튜브 알고리즘의 소름 돋는 추천 시스템을 거론한 이유가 있다. 공수처가 감행한 전 방위적 통신자료 조회 행위가 대체 어떤 의미인지 실감나게 느껴보시라는 차원에서다. 이번에 발각된 공수처의 무차별 통신자료 조회는 특정인을 지목한 통신자료 조회와 차원이 다른 일이다. 수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저인망식 통신자료를 조회함으로써, 그들 중 누군가의 통화를 사실상 도청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앞서 설명한 '유튜브 도청'의 원리를 생각해보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내가 누구와 어떤 장소에서 얼마나 길게 통화했는지, 누가 먼저 걸었는지 따위의 정보는 개별적인 한 두 건으로는 그리 큰 의미를 지니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자료를 대량으로 모아놓고 분석하다보면 어떤 패턴이 발견될 수 있다.
가령 직장과 집만 오가는 어떤 기혼 남성이 퇴근 후 직장도 집도 아닌 제3의 장소에서 어떤 여성에게 전화를 하는 패턴이 있다면 어떨까. 당연히 불륜을 의심해볼만 하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그 여성에게 전화를 한 후, 직후에 한적한 교외의 식당에 전화를 했다면? 그 다음에는 인근 숙박업소에 전화를 걸었다면? 99% 이상의 확률로 그 남자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할 법하다. 이런 사실을 알아두면 훗날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공수처가 이런 목적으로 통신자료 조회를 했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통신자료 조회라는 수단을 통해 긁어낼 수 있는 정보의 수준이 어느 정도가 될 수 있을지, '탐정의 눈'으로 상상력을 발휘해보라는 뜻에서 만들어낸 가상의 사례일 뿐이다. 공수처가 대체 왜 이런 식으로 통신자료를 조회했는지, 그 목적을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2021년 12월 28일 현재까지 공수처는 자신들이 무슨 목적으로 이렇게 많은 이들의 통신자료를 조회했는지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다.
공수처는 "수사 중인 피의자의 통화 상대방이 누구인지 확인한 것뿐이며 적법 절차에 따랐다"며 구체적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다가 논란이 커지자 "과거의 수사 관행을 깊은 성찰 없이 답습하면서 기자 등 일반인과 정치인의 정보 조회 논란을 빚게 돼 매우 유감"이라는 답변을 내놓았을 뿐이다.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구체적으로 지목하지도 않고, 잘못을 어찌 시정할지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는다. '나쁜 사과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세 가지 의문
세 가지 의문이 든다. 첫째, 공수처는 대체 왜 이런 짓을 했을까. 비판적 보도를 한 기자들을 뒷조사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중앙일보 21명, 조선일보 12명, TV조선 12명 등 수십여 명의 기자를 상대로 한 통신자료 조회를 놓고 보자면 그렇다. 중앙일보는 이성윤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의 공소장 내용을 단독 보도한 바 있다. 해당 보도에는 조국 당시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이 법무부를 통해 "불법 출금 혐의 수사를 하지 말아 달라"라고 수사팀에 전달했다는 내용도 있다. TV조선은 이성윤이 관용차를 타고 공수처 조사를 받으러 오는 이른바 '황제조사' 영상을 보도했다. 그 외에도 100건이 넘는 통신자료 조회가 이뤄졌다. 과연 무엇을 위한 조회였는지, 공수처가 해명을 내놓지 않는 한 명확한 답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둘째, 대체 무슨 혐의로 일부 기자들에 대해 영장까지 청구했는가. 공수처는 TV조선 기자 2명과 중앙일보 기자 1명, 전직 종합편성채널 기자 등 최소 4명에 대해 법원으로부터 통신영장을 발부받아 통화 내역을 들여다봤다. 이들은 모두 민간인 신분이다. 영장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수사를 하고 있으며 어떤 목적으로 해당 정보가 필요한지 법원에 소명해야 한다. 영장을 청구한다고 반드시 내줄 필요가 없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법원은 영장을 발급해줬다. 어떤 판사가 무슨 근거로 민간인 사찰을 허용한 것인지, 국민은 해명을 들을 권리가 있다.
셋째, 이 끔찍한 '아마추어 공수처'를 옹호하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대체 무슨 생각인가. 2021년 12월 26일 KBS에 출연한 박범계는 "공수처는 축구팀으로 따지면 창단된 신생팀"이라며 "부족하다면 보충해주고 격려가 우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국의 수사 기관을 축구팀에 비유하는 것도 그렇지만, 현재 논란이 되는 통신자료 조회에 대해 '격려해 달라'고 국민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상식의 범위를 아득히 넘어서는 황당한 소리다. 이쯤 되면 공수처 만의 문제가 아니다. 법무부, 더 나아가 대한민국 법치주의와 사법 시스템 전체의 문제다.
놋수저와 바꿔먹은 엿 같은 조직
#공수처 #통신조회 #민간인사찰 #감시사회 #신동아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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