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05

선제타격이 전쟁도발? ‘총 든 자’가 ‘땅 파는 자’ 이기는 건 당연 [노정태의 시사철]

영화 ‘석양의 무법자’와
노이만의 ‘상호확증파괴’ 전략

일러스트=유현호
남북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른 미국의 서부. 세 명의 총잡이가 있다. 블론디(클린트 이스트우드), 엔젤 아이즈(리 벤클리프), 그리고 투코(일라이 월릭). 모두 금이 묻혀 있는 어떤 묘지를 쫓고 있던 중이다. 그들은 서로 눈치를 본다. 블론디와 투코는 나름대로 미운 정이 든 사이지만 덥석 믿을 수는 없다. 엔젤 아이즈는 인정사정 보지 않는 냉혈한 현상금 사냥꾼. 본인에게 방해가 된다면 주저없이 쏴버리는 성격이다. 주인공인 블론디는 누굴 쏘아서 쓰러뜨려야 할까?

세르조 레오네 감독의 1966년작 <석양의 무법자>의 하이라이트 장면이다. 국내에서도 1969년 첫 개봉 이래 TV를 통해 여러 차례 방송된 작품이므로 거리낌 없이 결말을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블론디는 엔젤 아이즈를 쐈다. 당연한 선택이었다. 왜냐하면 투코 몰래 투코의 총에서 총알을 빼놓았기 때문이다. 투코도 엔젤 아이즈를 쐈지만 불발이었고, 엔젤 아이즈는 블론디의 총에 맞아 쓰러졌다. 총알이 담긴 총을 든 블론디는 투코에게 총을 겨누고, 자신이 아는 진짜 보물의 위치를 파라고 지시한다. “이 세상엔 두 가지 부류의 인간이 있지, 친구. 하나는 장전된 총을 가진 자, 그리고 땅을 파는 자. 자네는 파는 쪽일세.”

긴장감 넘치다가도 유쾌하게 해학적으로 그려내고 있지만, 이 장면은 다른 차원에서도 곱씹어볼 가치가 있다. 국제정치학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인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 MAD) 전략을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네가 총을 쏘면 나는 죽는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은 총을 들고 너를 겨누는 것이다. 물론 나에게 날아오는 총알을 내 총으로 막을 수야 없지만, 너를 죽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을 지킬 힘이 생기는 것이니 말이다.

상호확증파괴는 헝가리 출신의 천재 미국 수학자 겸 물리학자인 존 폰 노이만이 제안한 개념이다. 그는 게임이론을 선구적으로 개척한 사람이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무렵 미국의 핵 정책을 입안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전략가이기도 했다. 상호확증파괴는 게임이론에 입각한 전략 분석의 일종이다.

폰 노이만이 볼 때 여러 나라가 핵으로 무장하는 것은 황야의 총잡이들이 서로를 겨누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늘날의 기술로도 발사된 미사일의 탄두를 저격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1950년대의 기술 수준에서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상대가 쏜 핵폭탄을 막을 길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뿐. 이쪽에서도 핵으로 무장하여, 상대가 핵을 쏠 때 마주 쏜다는 것을 분명히 해두는 것이다.

문제는 어느 정도로 핵무장을 해야 하느냐다. 잔인한 계산을 해보자. 우리 쪽의 도시 열 개가 파괴될 때 상대방은 도시 하나를 잃을 뿐이라면, 상대는 기회가 주어질 때 핵을 쏠 것이다. 도시 하나를 1점이라고 하면 10점을 얻고 1점을 잃어 9점이 되는 셈이니 말이다. 그러니 핵무장을 할 거면 어중간하게 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의 모든 도시를 한 번에 다 파괴할 수 있을 정도의 핵을 가져야 한다.

물론 상대방도 우리의 모든 도시를 파괴할 만한 핵무기를 갖출 것이다. 대단히 끔찍하게 들리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퍽 안정된 상황이다. 이제는 핵전쟁을 시작하면 서로 잃을 게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핵을 쐈을 때 ‘너 죽고 나 죽는’ 것이 확실하다면, 서부극과 달리 현실에서는 그 누구도 감히 핵공격을 하지 못한다. 서로가 서로를 파괴할 것이 너무도 분명해져야 비로소 안정과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이 역설적 결과를 묘사하고자, 헝가리에서 온 천재는 그 전략의 머리글자를 따 ‘MAD’라는 별명을 붙였다.

앞서 살펴보았듯 상호확증파괴는 그 무서운 명칭과 달리 냉전 시기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했다. 막대한 양의 핵무기로 서로를 겨누고 있다 보니 미국과 소련은 신중할 수밖에 없었고, 여러 차례 다가왔던 위기를 슬기롭게 넘길 수 있었던 것이다. 평화는 말로만 외칠 때가 아니라 전쟁을 하면 안 되는 상황을 만들어 서로에게 강요할 때 가장 잘 지켜질 수 있다는 역설을 우리는 20세기 내내 확인한 셈이다.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우리에게는 핵이 없다.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북한이 미사일을 쏘기 전에, 준비 단계의 핵미사일 발사대를 선제적으로 ‘반격’하는 것뿐이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지난 1월 12일 “킬체인이라고 하는 선제타격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한 것은 이러한 당연한 사실을 확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단순명료한 진리를 이해하지도 납득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와 송영길 대표가 그렇다. 이재명은 윤석열에 대해 “위험한 전쟁 도발 주장”이라고 반발했다. 송영길은 한 발 더 나아가 “아베 신조 등 일본 극우세력의 적(敵) 기지 공격 능력을 갖추자는 논리와 유사하다”며 친일 딱지까지 붙이려 들었다. 이들은 과연 무엇을 지키려는 것일까?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인가, 아니면 김정은과 북한 지도부의 심기인가?

<석양의 무법자>의 원제는 ‘좋은 놈, 나쁜 놈, 추한 놈(The Good, The Bad, The Ugly)’이다. 블론디는 좋은 놈, 엔젤 아이즈는 나쁜 놈, 투코는 추한 놈에 해당한다. 우리는 블론디가 좋은 놈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투코를 속이고 금을 캐게 한 후 골탕을 먹이다가 살려주는 결말을 즐겁게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권총에 총알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투코가 할 수 있는 것은 블론디의 선의에 기대는 것 뿐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블론디는 장전한 총을 가지고 있는 반면 투코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체적인 핵무장은 고사하고 대북 킬체인이나 사드(THAAD) 추가 배치에도 반대하는 더불어민주당. ‘나쁜 놈’이 되지 말자는 원론적 주장만을 되풀이하며 결국 우리를 ‘추한 놈’이 되도록 주저앉히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필자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찬성하며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한다. 하지만 세상이 ‘장전된 총을 든 자’와 ‘땅을 파는 자’로 나뉠 때, ‘땅을 파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위치를 허락해도 되는 걸까. 대선을 한 달 앞둔 지금 온 국민이 함께 고민해볼 일이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윤석열은 박정희 의료보험에서 얼마나 나아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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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태의 뷰파인더] 대통령 되려는 자, 보수·진보 줄타기 두려워마라

● 태초의 자본주의는 혁신적 이념
● 공화당 트럼프의 反세계화 기치
●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의 복지국가
● 존 듀이는 복지에 ‘파시즘’ 우려
● ‘진보’ 등에 칼 꽂은 여성주의


2021년 7월 2일 당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서울 마포구 박정희 기념재단을 방문해 전시물을 둘러보고 있다. [윤석열 캠프 제공]
“국민의힘과 정치철학이 같다.”

지난해 6월 2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기자들에게 꺼낸 말이다. 이날 윤석열은 “인류 역사를 봐도 자유가 보장된 도시는 번영을 이루고 강했다”며 자유에 대한 신념을 밝혔다. “민주주의는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고 국가 헌법도 개인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고 멈춰서야 하는 지점이 있는 것이지 다수결이면 다 된다는 철학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부연 설명이 뒤따랐다.

보수의 철학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우리가 흔히 기대할 답변도 이와 같다. 자유와 평등을 대립하는 가치로 놓고 자유에 더 큰 비중을 둔다거나, 시장 경제와 사회 복지 중 전자를 중시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분단국가여서 북한 문제를 빼놓을 수 없기도 하다. 진보로 분류되는 정치 세력은 북한과 대화를, 보수 진영은 군사력에서 북한을 압도해 평화를 누리는 것을 우선 과제로 삼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관점이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그렇다. 보수로 분류되는 정치 세력은 자유시장과 경쟁, 군사적으로는 강경한 태도를 선호한다. 페미니즘을 비롯한 성(性) 정치와 문화적 측면에서는 전통의 가치를 옹호한다. 반면 진보 세력은 시장의 실패를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군비 축소를 주장하며 페미니즘에 우호적인 경향을 보인다.

물론 이렇게만 바라보는 것을 전적으로 옳다고 하기도 어렵다. 역사적 관점뿐 아니라 현재적 의미를 놓고 보더라도 그렇다. 예컨대 자유시장경제를 추구하는 것은 보수가 아니라 진보의 가치에 부합할 수 있다. 사회복지 역시 진보 진영의 전유물로 보기 어렵다. 자본주의와 사유재산권, 제국주의, 종교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심지어 페미니즘 같은 주제도 마찬가지다. 시대와 상황과 맥락에 따라 이러한 철학적 주제는 진보의 도구가 되기도 했고 보수의 무기로 작동하기도 했다.

2021년 6월 29일 당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대선출마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이날 그는 국민의힘 입당 여부를 묻는 질문에 “국민의힘과 정치철학이 같다”고 답했다. [사진공동취재단]
몽테스키외의 낙관
자본주의는 진보 이념일까 보수 이념일까. 20세기 중후반을 넘어 21세기를 사는 이들이라면 ‘보수의 이념’이라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오늘날 자본주의란 노동력을 착취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기업들이 무제한적 이윤을 추구하는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17세기 후반에는 그렇지 않았다. 당시 유럽, 그 중에서도 최고 선진국이던 프랑스는 절대 왕정 시대였다. 임금의 변덕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경제 정책이 달라졌고 혼란이 발생했다. 다른 유럽 국가 사정도 비슷했다. 왕이나 군주는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이유로 전쟁을 벌이며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자의적 세금을 걷고 무절제하며 방탕한 사치에 빠지기 일쑤였다.

그러한 맥락 속에서 자본주의, 그 중에서도 핵심인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합리적 경제인’이라는 개념은 당대의 식자층에게 바람직하고 유익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군주가 경제적 이해관계의 제약을 받아 충동적, 자의적, 돌발적 행동을 하지 못하거나 적어도 자제한다면 국가 구성원 전체가 예측 가능한 삶을 살며 더 큰 풍요와 평화를 누릴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이 퍼져나갔다.

당대를 풍미한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낙관적 사고는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의 한 문장에 잘 축약돼 있다.

“정념이 사람들에게 악인이 될 생각을 불어넣는데도,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이익인 상황에 있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다행스러운 일이다.”

몽테스키외, 그와 동시대인이던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자 제임스 스튜어트 등에게 있어 자본주의란 우리를 혼돈과 폭력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일종의 해독제로 여겨진 셈이다. 요컨대 태초의 자본주의는 ‘진보적 이념’이다.

자본주의를 진보 이념으로 여기는 관점은 뒷 세대인 애덤 스미스의 시대부터 비판과 회의에 직면했다. 19세기에 이르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유행하면서 완전히 뒤바뀐 처지에 놓이게 된다(더 자세한 논의를 원하는 독자는 엘버트 O. 허시먼 지음, 노정태 옮김, ‘정념과 이해관계’(후마니타스 펴냄)를 참고할 수 있다).

오늘날 자본주의, 특히 국경 없는 자유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을 생각해보자.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잘 보여주고 있다시피, 오늘날의 ‘보수’ 정치는 자본주의의 필연적 귀결인 세계화에 부정적 태도를 취한다. 반대로 미국의 민주당이나 영국의 노동당은 국경을 넘어 상품과 노동력이 자유롭게 오가게 함으로써 기업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자본주의적 입장을 견지한다. 현재 지배적 자본주의 시스템에 ‘보수’가 반대하고 ‘진보’가 찬성하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브렉시트나 트럼프에 대해 찬반 논의를 벌이는 것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여기서는 다만 자본주의는 보수,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는 진보 같은 식의 단편적 사고방식이 갖는 한계를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할 따름이다. 그와 같은 경직된 사고방식에 갇혀 있는 한 보수에게도 진보에게도 밝은 정치적 미래는 오지 않는다.

복지 강화로 이어진 박정희의 결단
그 어떤 이념도 그 자체만으로는 진보적이거나 보수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진보성과 보수성을 이념의 속성으로 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시대와 상황의 맥락에 따라 어떠한 이념이 진보적으로 혹은 보수적으로 작용할 뿐이다. 우리는 심지어 이와 같은 역설을 ‘복지국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가에 의해 주도되는 사회 복지는 진보의 이념인가, 보수의 이념인가. 이 주제에 해박한 독자라면 독일의 철혈 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이름을 떠올릴 것이다. 노동자의 양로금이나 건강, 의료 보험제도 같은 복지 제도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시행한 사람이 바로 비스마르크다.

그는 어떤 기준을 놓고 보더라도 진보적 인물이 아니다. 독일 제국의 영광을 꿈꾸었고, 민주주의에 반대했으며, 통일된 독일의 군사력을 극대화하는 것을 지상 과제로 삼았다. 오히려 그런 비스마르크였기에 복지 제도의 필요성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특유의 추진력으로 밀고 나갔다. 부국강병을 위해서는 말 그대로 ‘강한 군인들’이 필요하며, 튼튼한 군인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잘 먹고 잘 자라난 아이들과 의료 체계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보수주의자가 오히려 시장질서가 아닌 국가 주도의 복지 체계를 강화하는 역설은 우리도 경험한 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결단으로 마련된 현행 의료보험 체계가 그렇다. 1970년대 대한민국은 영국처럼 국가가 엄청난 규모의 공공의료 체계를 운영할만한 여유가 없었지만 북한과의 군사적 대치 상황에서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였다. 그래서 박정희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의료를 어떤 면에서 보자면 ‘사회주의적’으로 바꿔버렸다. 온 국민을 국가가 운영하는 단일한 의료보험에 가입시킨 후, 병원은 일부 비보험 항목을 제외하면 오직 그 의료보험을 통해서만 돈을 받도록 강제한 것이다.

다양한 방면에서 논란이 있는 주제다. 한국의 의료보험은 환자의 의료 접근성을 폭넓게 확보하는 동시에 의사들에게도 일정하게 치료 대상과 항목에 있어 자유를 보장했다. 공공성을 강화하면서도 병원에 대해 온전히 통제 일변도의 정책을 펴지는 않은 셈이다. 그런 면에서 다른 나라에서도 참고와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 성공 사례가 돼 있다. 즉 사회복지와 의료보험 같은 주제에서 보수와 진보는 무 자르듯 나뉘지 않는다. 변증법적으로 서로 자리를 바꿔가며 움직인다.

국가 주도 복지에 대해 ‘파시즘’이라는 날 선 비판을 한 철학자도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진보적인 실용주의 철학자로 알려진 존 듀이다. 듀이가 볼 때 국가 중심의 복지 체계는 파시즘과 다를 바 없다. 국가가 국민을 복지의 대상으로 삼기 위해서는 모든 정보를 독점하고, 국민의 필요를 파악해 그것을 다시 국가가 나눠주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아무리 선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한들 국가의 힘이 그렇게까지 강해지는 것은 듀이가 볼 때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다. 듀이 스스로는 사회 진보와 교육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았지만 국가가 복지를 독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 셈이다.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 한국의 군인 출신 대통령 박정희 같은 보수주의자는 온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의료보험과 사회 복지를 구상하고 실행했다. 반면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 철학자 듀이는 국가가 국민의 삶을 책임진다는 식의 복지를 ‘국가 사회주의(state socialism)’라 부르며 비판적 태도를 견지했다. 그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교육의 가치를 역설하며 여성의 정치적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당대에 손꼽히는 ‘남성 페미니스트’ 중 한 사람이다. 하지만 국가가 복지를 이유로 개인의 삶에 과도하게 간섭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페미니즘은 한쪽의 전유물 아니다
여성 참정권 운동가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자서전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를 썼다. [현실문화 제공]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시각을 적용해볼 수 있다. 특히 오늘날 한국에서 페미니즘은 진보 진영의 전유물로 여겨진다. 물론 대체로 틀린 말은 아니지만 페미니즘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상황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페미니즘은 그 출발부터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정치적 의제로서 영역을 키워왔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영국. 당시 여당은 자유당이었다. 상대적으로 개혁적이고 온건하며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정당이었다. 제1야당은 보수당으로, 여성 참정권 운동에 당연히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 속에서 여성 참정권 운동가였던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고민에 빠졌다. 자유당은 언제나 말로는 여성 참정권을 옹호한다고 하지만, 언제 투표권을 줄 것이냐고 물어보면 늘 ‘나중에’라는 답만 했기 때문이다.

팽크허스트가 볼 때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이 약속을 어기는 자유당을 심판하지 않고 ‘비판적지지’만 하고 있는 한 그 ‘나중에’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었다. 자유당으로서는 여성 참정권을 보장하느니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의 에너지만 쏙 빨아먹은 후 야당인 보수당 핑계를 대며 참정권을 주지 않는 게 더 이득일 테니 말이다. 한국에서도 출간된 팽크허스트의 자서전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를 인용해보자.

“자유당은 여성이 투표권을 혹시 얻게 된다 해도 자유당을 통해야만 하는데, 자유당을 공공연히 적으로 돌리는 여성들에게 투표권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며 비난했다.”

마침 보궐선거로 의석 하나가 기로에 놓였고, 그 의석을 자유당이 보수당에 빼앗기면 여야가 바뀔 상황이었다. 그런 중요한 선거에서 팽크허스트는 자유당 낙선운동에 돌입했다. ‘보수당으로 정권이 바뀌는 한이 있더라도 상관없다, 여성 참정권 운동의 정치적 파괴력을 보여주는 것이 먼저다’라고 여긴 셈이다. 서프라제트(선거권을 쟁취하려는 여성들) 운동은 교양 있는 중산층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 중 대부분은 자유당 지지자였기에 팽크허스트의 방향 전환은 내부에서 만만찮은 저항에 부딪혔다.

팽크허스트는 물러서지 않았다. 서프라제트는 자유당 낙선운동을 가열차게 전개해 나갔다. 실제로 자유당은 선거에서 졌고 보수당이 집권했지만 세상은 자유당의 협박처럼 굴러가지 않았다.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의 정치적 파괴력이 입증됐기에, 오히려 여성 참정권 논의는 이전보다 훨씬 신속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앞선 뷰파인더 칼럼(윤석열과 보수여, ‘이대남 다 걸기’ 초강수 아닌 惡手)에서 말했던 것과 연장선상에 있는 논의다. 페미니즘을 ‘진보의 전유물’로 보는 발상은 역사적으로 옳지 않고 정치적으로도 현명하지 못하다. 페미니스트들 역시 특정 진영과 정치적 입장을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는 강박 혹은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 여성주의는 ‘진보’의 등에 칼을 꽂고 ‘보수’의 손을 들어주면서 비로소 독자적인 정치적 의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윤석열과 자유시장주의
‘주당 52시간 노동제를 철폐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이라면 품질이 떨어지는 식품을 사서 먹을 수도 있게 해야 한다.’ 정치 초년생 윤석열을 곤란하게 했던 문제의 발언들이다. 언론에서 축소, 과장, 왜곡한 측면도 있을 것이지만 우리는 이 각각의 발언을 관통하는 맥락을 더듬어볼 수 있다. 보수 진영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경제, 사회, 정치철학적 태도를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선후보가 된 윤석열이 위와 같은 발언을 공식 석상에서 한 것은 그의 내면에 자유시장주의에 대한 신념이 확고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의 대선후보로서 윤석열이 적합한 인물인지 근심하던 기존 지지층에는 퍽 안심이 되는 일이었을 것이다. 중도층의 눈에는 그렇지 못했다. ‘보수주의=자유시장’이라는 공식에 함몰돼 현재 우리가 겪는 시장의 실패와 부작용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못 본 척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그러한 우려에는 근거가 없는 게 아니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011년 서울시의회를 통과한 무상급식 조례안에 반대하며 주민투표를 시행했다가 투표율 33.3%를 넘기지 못해 자진사퇴한 사례를 떠올려보자. 세련된 이미지에 걸맞게 서울시 행정을 처리해나가던 그가 ‘부잣집 아이들에게도 밥 주는 무상급식에 반대한다’며 주민투표라는 초강수로 맞섰다. 그러자 상당수의 서울시민은 냉소를 넘어 분노했다. 심지어 당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의 지지층마저 이탈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평일에 기꺼이 시간을 내 투표소에 갈 만큼 한가한 시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보수주의=복지 반대’라는 단편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교조적 태도를 보인 오세훈의 정치적 악수(惡手)는 ‘안철수 현상’과 맞물려 서울시장 박원순을 낳았고, 이후 서울시를 기반으로 민주당은 정권 탈환에 성공했다.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요, 사회복지는 사회복지다. 진보의 페미니즘이 있다면 보수의 페미니즘도 있다. 진보의 철학, 보수의 철학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이번 선거는 어떤 결과가 나오건 정치권의 지각변동을 불러올 것이다. 그 과정에서 국민의 삶을 위해 유익한 대안을 내놓는 정치 세력과 이념을 갖게 되기를 희망한다.


노정태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2022-01-29

신비주의의 해로움, '무'를 바라보되 '유'에서 살아가기

1. 신비주의의 해로움

조선일보에 실린 최승자 인터뷰(2010)를 읽었다. 

―우리 시대와 사회가 시인에게 상처를 준 것일까요? 오늘 찾아온 것은 사실 이 때문입니다.

"그건 틀린 말입니다. 자기 삶을 사회나 남에게 전가할 수는 없어요. 괜히 '우리 시대가 저 친구를 버려놓은 것이 아닌가' 말하는데, 이는 내가 선택한 삶이었어요. 나 혼자 겉돌았고 그런 공부를 했고 병원에 들어가 있었을 뿐입니다."

이렇게나 강인한 정신력을 지닌 사람이,

―가장 궁금한 대목은 시를 쓰던 당신이 폐인(廢人)처럼 됐다는 점입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언제부터인가 노장(老莊)·명리학·사상의학·점성술 등과 같은 신비주의 공부에 빠졌던 겁니다. 있는 대로 보이는 대로의 세계가 아닌, 현상을 뛰어넘는 세계로 좇아갔어요. 답이 있을 듯하면서 손에는 답을 쥐기 어려운 공부였어요. 그 공부에 빠지면서 나를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이런 이유로 망가지고 말았던 것이다.

신비주의(로 통칭될 수 있는 것 모두)가 이렇게 해롭다. 적당히 세속적이고 상스러워서 자기 몸에 득 될 만큼만 먹어도 유해한데, 최승자처럼 모 아니면 도, 이런 강단 있는 사람이 탐닉하면 스스로를 망가뜨릴 수밖에 없음.

있는 그대로 보이는 세계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그 너머의 초월을 사유하는 방법. 로마 몰락과 기독교의 홀로서기 당시 교부들이 목숨 걸고 연구한 주제. 그게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철학은 미사여구 음풍농월이 아님. 잘못된 철학은 사람, 사회, 국가, 문명을 망가뜨린다.


2. '무'를 바라보되 '유'에서 살아가기

얼마 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유행한 글이 있다. 제목은 "반야심경 현대어 번역".

반야심경_현대어_번역.jpg

반야심경의 내용을 일본 애니메이션의 독백체로 옮긴 것이다. 아마 일본 웹에서 일본어로 작성된 텍스트를 한국어로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불교는 주지하다시피 '무' 혹은 '공'을 직시하는 종교다. 없으면 없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무에서 유로 왔고, 유에서 무로 돌아간다. 피안과 내세와 안녕을 비는 그 모든 행위는 거짓이다. 우리의 삶과 존재에는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다.

거기서 생각을 멈추면 어떻게 될까? 시인 최승자가 인터뷰에서 말했던 것처럼, "있는 대로 보이는 대로의 세계가 아닌, 현상을 뛰어넘는 세계"를 향한 끝없는 공부에만 빨려든다면?

"반야심경 현대어 번역"으로 돌아가보자. 반야심경을 원래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갸웃할만한 대목이 있다. 원문의 내용을 굉장히 길게 풀어서 번역한 나머지, 원문의 어느 대목의 번역인지 짚어내기도 어려운 그런 부분이 있다.

착각은 하지 마. 무정한 사람이 되라는 소리는 아니야. 꿈이나 공상이나 자비심을 잊지 마. 그걸 할 수 있다면 열반은 어디에나 있어. 사는 방법은 어느것 하나 변하지 않아. 단지 받아들이는 방법이 변하는 것 뿐이지.

딱 봐도 불경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는 아니지 않은가? 혹은, 이런 내용이 정말 이렇게 적혀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그렇다. 이건 '번역'이 아니라, 주관이 많이 개입한 해석이다. 일종의 재창작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 이것의 번역이니 말이다.

無苦集滅道 無智 亦無得 以無所得故(무고집멸도 무지 역무득 이무소득고)

여기에 저 내용이 있다고? 음... 없지 않다. '무고집멸도'. 그것이 저 내용이다. 고집멸도 중 '멸'에 속하는 것에 집착하고 탐닉하면, 수행자는 '무정한 사람'이 되거나, 꿈이나 공상이나 자비심을 잊은 수행 광인이 된다.

그것을 반야심경은 단 5자로 적어놓았고, "반야심경 현대어 번역"은 구구절절 친절하게 설명해준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저 내용의 압축을 저렇게 풀어서 전달하는 게 과연 '옳은' 번역일까? 그렇게 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반야심경 현대어 번역"을 오역이라 매도할 수는 없다. 그 '오역'은 어디까지나 의도된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아예 필요하지 않다. 우리 가족 돈 잘 벌게 해달라고 교회 가고 절 가고 점집도 가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소리다. 그들에게는 과도한 수행이라는 게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가끔, '무'를 바라보다가 정말 그 '무'에 잡아먹히는 사람들이 있다. 니체의 표현을 빌자면 심연을 바라보다가 진짜 그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그들을 위해 반야심경의 원문에는 '무고집멸도 무지'가 적혀 있고, "반야심경 현대어 번역"이라는 걸 쓴 (아마도) 일본인은 그 내용을 참 길고 자세하게도 풀어서 설명한 것이다. '무'를 굳이 바라보고야 마는 모든 이들의 평온을 빈다.

1960년 12월생 윤석열은 설에 63살? 62살? 61살?

 

1960년 12월생 윤석열은 설에 63살? 62살? 61살?

[노정태의 뷰파인더] 세계 유일 한국식 나이 셈법

● 자궁에서 10개월 보내면 한 살?
● 고대, 중세 중국 전통
● 일본 연호가 기년법
● 행정편의주의 ‘年 나이’


한국인은 매년 새해를 두 번 맞이한다. 양력으로 1월 1일에 한 번, 음력으로 1월 1일에 한 번. 새해 결심을 했다가 못 지켜도 두 번째 기회가 있다며 농담하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한국인은 매년 나이도 두 번 먹는다. 1월 1일에 한 번, 자신의 생일에 한 번. 태어날 때부터 일괄적으로 부여받은 한 살에 매년 한 살씩 덧붙는 ‘세는 나이’, 그리고 대부분의 공문서에 사용되는 ‘만 나이’가 그것이다.

한국인의 나이 셈법. 이 문제는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K-팝과 한국 대중문화의 세계적 유행과 더불어 이제는 전 세계인들에게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식으로 나이를 세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다. 미국이나 유럽은 물론이거니와 한국과 같은 한자문화권에 속한 중국, 일본, 대만, 베트남에서도 출생 이후의 나이만을 세고 있다.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이 혼란스러워한 사안이다. 그만큼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2019년, 2020년, 2021년, 매해 빠지지 않고 청와대 국민청원에 등장한 단골 소재이기도 했다.

올해 1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선거대책위원회가 의제를 던졌다. 이준석 당 대표, 원희룡 선대위 정책본부장은 1월 17일 유튜브에 공개된 ‘59초 쇼츠’ 영상을 통해 서로 몇 살인지 물어보며 오락가락하는 한국의 나이 셈법을 문제 삼았다. 그러고는 윤석열을 향해 바꿔보자고 제안하자 윤석열은 “좋아, 빠르게 가”라고 답하며 영상이 끝난다.

생각해보면 이건 퍽 이상한 상황이다. 드러나는 의견만 놓고 보면 그 누구도 복잡하고 난삽한 한국식 나이 셈법을 좋아하지 않는다. 심지어 법과 제도의 영역에서도 대부분의 경우 만 나이를 쓴다. 그런데 왜 우리의 나이 체계는 쉽게 통일되지 않는 걸까?

허세, 주세, 실세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20211112일 서울 광화문 이마빌딩에서 ‘신동아’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일단 가장 흔한 오해부터 바로잡아야 하겠다. 태어나자마자 한 살을 부여하는 한국식 ‘세는 나이’는 태아가 잉태해 있던 시절을 포함하는 인간적인 나이 셈법이라는 주장 말이다. 그렇지 않다. 정자와 난자가 수정해 출생하기까지 사람은 대체로 자궁에서 10개월을 보낸다. 그보다 일찍 태어나는 경우는 종종 있어도 12개월을 채우는 아기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 논리에 따라 1월에 잉태해 11월에 태어난 아기의 나이를 한 살이라고 센다면, 10월에 잉태해 이듬해 8월에 태어나는 아기의 나이는 두 살로 세는 것이 합당하다. 이미 자궁에서 보낸 시간에 세는 나이의 기본인 한 살을 또 더해야 할 테니 말이다.

세는 나이에 대한 두 번째 오해가 있다. 이것이 더 중요하다. 세는 나이는 ‘우리’ 전통이 아니다. 동아시아권, 특히 중국에서 풍부한 문헌 근거를 찾을 수 있는 중국 전통이다. 청나라가 무너진 신해혁명, 그리고 중국 대륙을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차지한 역사적 격변 이전으로 돌아가 보면,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형태의 나이 세는 방식을 고스란히 접할 수 있다.

이기천 서강대 사학과 강사의 논문 ‘당송대(唐宋代) 묘지(墓誌)의 연구와 생년(生年) 표기: 나이 세는 방식의 혼란과 제안’(중국학보 96권, 2021년 5월)을 펼쳐보자. 당나라와 송나라 시대 사람들이 죽은 이를 매장할 때 묻는 묘지(墓誌)라는 문헌이 있다. 운 좋게 고스란히 발굴되면 상당히 큰 사료적 가치를 갖는다. 해당 시대의 사람들이 직접 작성하고 매장한 살아있는 텍스트다. 그리하여 최근 역사학계에서는 묘지를 중요한 사료로 삼는다.

단, 문제가 있다. 당송대 사람들의 나이 세는 방식이 제각각이다. 마치 오늘날 우리처럼, 나이를 세는 방법이 세 가지나 있었다. 가장 흔한 것은 허세(虛歲)다. 지금 우리 ‘세는 나이’와 같은 방식이다. 태어나자마자 한 살로 치고, 매년 해가 바뀔 때 한 살을 더한다. 다만 그 시절에는 양력이 아니라 음력을 썼다는 차이가 있다. 둘째로는 주세(周歲)가 있다. 이것은 한국에서 사용하는 ‘연 나이’와 같은 개념이다. 태어난 해를 한 살이 아니라 0살로 치고, 매년 정월 초하루에 한 살을 더한다. 마지막은 실세(實歲)다. 태어난 날부터 하루씩 더해 생일에 한 살이 된다. 다음해 생일에는 두 살. 지금 우리가 아는 ‘만 나이’다.

이기천은 당시 문헌을 다방면으로 검토해 당송대 사람들은 대체로 허세에 따라 나이를 따졌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당시 사람들에게 ‘당연한 나이 셈법’, ‘표준적 나이 셈법’은 주세도 실세도 아닌 허세였다. 그러므로 후대 연구자들은 일단 허세, 즉 세는 나이에 따라 해당 시대 문헌을 읽자고 주장한다. 개별 연구자가 임의로 주세나 실세를 통해 당나라와 송나라 사람의 나이를 세고 논문을 쓰면 혼동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독창적이고 고유하고 아름답다고?
그러니 ‘세는 나이’에 대한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왜 우리 조상님들은 이런 식으로 나이를 셌을까?’라고 묻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보다는 ‘왜 고대와 중세의 중국인들은 이런 식으로 나이를 셌을까?’라고 물어야 한다. 그 방식은 베트남과 일본 등 한자문화권에 고루 수출됐지만, 오직 대한민국만이 여전히 이를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세는 나이’의 수수께끼는 간단하다. 기년법(紀年法)을 개인에게 적용한 것이다. 기년법이란 무엇인가? 왕의 제위 기간에 따라 달력을 구분 짓는 방식이다. 태종 이방원은 서기 140011월에 즉위했다. 그에 따라 1400년은 ‘태종 1년’으로 불린다. 그는 서기 1418년 9월 9일에 왕좌를 세종에게 물려줬다. 따라서 1418년은 태종 18년이자 세종 1년이 된다. 0이라는 개념 없이, 왕에서 왕으로 이어지는 방식으로 시대의 흐름을 구분 짓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어떤 독자는 이런 식의 나이 세는 방식, 혹은 시대 구분하는 법을 어디서 본 것 같은 기분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전 세계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동아시아의 전통적 군주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 일본의 연호가 바로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 2019년 5월 1일, 아키히토 텐노가 물러나고 나루히토 텐노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을 때, 스가 요시히데 당시 일본 내각관방장관은 ‘令和’라고 쓰인 붓글씨를 대중에 공개했다. ‘令和’, 일본식으로 ‘레이와’라 읽는 새로운 시대가 개막했음을 알린 것이다. 2019년은 일본인에게 헤이세이 31년이자 레이와 원년, 즉 레이와 1년이 됐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전통에 대해 ‘기원’보다는 ‘사용’, ‘과거’보다는 ‘현재’를 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대찌개가 어엿한 한국의 ‘전통음식’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나는 기꺼이 동의한다. 일본의 ‘노리마키’(海苔巻)와 한국의 ‘김밥’은 모두 적당히 간을 한 밥을 김에 싸서 먹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같고, 엄밀하게 기원을 따지자면 노리마키가 김밥의 원조다. 그러나 노리마키의 ‘전통’을 김밥은 넘어선지 오래다. 우리는 그 속에 치즈를 넣고 참치를 넣고 뒤집어서 싸고 청량고추로 매콤한 맛을 내며 심지어 밥이 아니라 계란지단을 꽉꽉 채워 넣으면서도 ‘김밥’이라고 부른다. 전통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 있다.

그러니 ‘세는 나이’를 ‘우리 전통’이라고 부르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덧붙여 우리 문화의 ‘고유한’ 전통이라거나, 오직 우리에게만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 분명하므로 반드시 지켜야 할 미풍양속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세는 나이의 기본이 되는 기년법, 그 연장선상에 있는 허세는, 중국에서 만들어져 한반도에 유입됐다. 앞서 언급했듯 전 세계에 기년법을 일상적으로 쓰는 사람들이 한국인만 있는 것도 아니다. 세습군주제를 유지하는 일본은 온 국민이 우리만큼이나 능숙하게 기년법을 쓴다. 세는 나이를 옹호하고자 우리 문화의 독창성, 고유성, 아름다움을 근거로 들이대는 것은 다소 억지스러운 주장일 수밖에 없다.

71%가 세는 나이 폐지에 찬성
중국과 대만은 세는 나이를 일소한 지 오래다. 일본 역시 단 하나의 예외를 제외하면 기년법이나 그로부터 파생된 나이 세는 법을 쓰지 않는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이렇게 허세, 혹은 세는 나이가 보편적으로 살아남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을까.

나 나름대로 열심히 논문과 책 등을 뒤져보았지만 마땅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아주 거친 추론을 해보는 수밖에 없겠다. 필자는 한국에서 쓰이는 또 다른 나이 셈법인 ‘연 나이’에 주목한다. 연 나이는 문화와 관습이 아니라 법에서 쓰이는 나이 셈법이다. 청소년보호법이나 병역법 등 일부 법률은 연 나이를 사용한다. 이런 법을 개정해 만 나이로 통일하자는 것이 국민의힘 공약이다.

연 나이를 사용하는 저 두 법에 뭔가 공통점이 느껴지지 않는가. 젊은이들을 ‘일괄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목적성을 짐작할 수 있다. 만 나이에 따라 청소년보호법을 적용한다고 해보자. 같은 학교와 학급 내에서도 청소년보호법의 대상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나뉠 수 있다. ‘관리’하기 힘들다는 소리다. 병역법의 목적은 더욱 분명하다. 대한민국은 분단국가로, 늘 전쟁 위험을 안고 있다. 여차하면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을 단번에 군사 단위로 편성해야 했다. 병역의무를 부과할 때 만 나이를 기준으로 삼기는 곤란하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연 나이와 세는 나이는 시작점이 0세냐 1세냐 차이만 있을 뿐 기본적으로 같은 나이 셈법이다. 연 나이는 청소년이냐 성인이냐, 군 입대 대상자냐 아니냐와 같이, 한국인 특히 남자들의 인생에서 큰 분기점을 나누는 방식으로 사용돼 왔다. 그러니 그 자매품이라 할 세는 나이 역시 수십 년간 한국인의 문화에 깊게 자리 잡게 된 것은 아닐까.

이유가 무엇이건, 이제 세는 나이는 사라질 때가 됐다. 1월 5일 한국리서치에서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71%가 세는 나이 폐지에 찬성한다. 청소년 보호와 병역 의무 수행이라는 중요한 과제 역시 행정편의주의가 아닌 당사자의 실제 연령에 맞춰야 마땅하다. 국제적인 표준에 맞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 나가는 한 해가 되기를 희망한다.


노정태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저항적 지식인이 체제에 복무하(게 하)는 방법

옌롄커의 대표작은 '레닌의 키스' 이후 나왔다. 하지만 이 책들은 중국에서 금서가 됐다. 작가 옌롄커는 '가장 문제적 작가'가 됐다. 작가도 움츠러들 수 밖에 없다. 작품에 대한 자기검열은 한창 강화됐고, 정부에다가는 해외 출판이라고 허락해줘 고맙다고 해야 한다. 나랏돈 받아 글 쓰는 중국작가협회 소속 전업작가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짐작케 한다. (링크)

1) 국가가 월급을 줘서 먹고 살게 해준다.
2) 책을 내는 족족 금서로 만든다.
3) 단, 해외 출판을 허용한다. 해외에서 인터뷰도 하게 해준다.

옌롄커는 책을 쓰고, 내고, 생계를 보장받는다. 중국은 '우리에게도 비판적 지식인이라는 게 있다'는 알리바이를 얻는다.

나는 그의 입장을 머리로는 이해해도 온전히 상상하지 못한다. 옌롄커를 비판하거나, 비난하거나, 비아냥거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단, 충분히 강력한 독재 체제는 '비판적 지식인'마저도 이렇게 써먹을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비판적 지식인'이건 '대중적 지식인'이건 마찬가지다. 작가 역시 다른 직군과 마찬가지로 시장에서 평가받아 자기 힘으로 먹고 살아야 한다.

옌롄커의 '저항'이 따옴표 치지 않아도 되는 저항이 될 날이 오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