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9-25

비즈니스 프랜들리

개인고객을 상대하는 비즈니스와 기업고객을 상대하는 비즈니스는, 사안마다 다르기야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규모에서부터 큰 차이를 보여준다. 당연히 전자보다 후자가 매출이나 수익 면에서 더 크고 잘 조직되어 있게 마련이다. 지금 줄줄이 피를 보고 있는 미국의 '투자 은행'들도 개인고객이 아닌 기업고객을 주 타겟으로 잡고 있던 회사들이다. IBM은 노트북 및 PC 제조가 기업용 사무용품이 아닌 개인용 일상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미련 없이 PC 사업부를 중국의 레노보에 매각했다.

성매매 논쟁이랍시고 벌어지고 있는 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 중요한 차이를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은 채 진행되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성매매가 노동인가 아닌가, 성매매 여성에게 직업적 선택권이 있는가 없는가, 성매매 여성들은 자발적인가 아닌가, 뭐 이런 '형이상학적' 논의에서 언제나 담론은 맴돌게 마련이다.

저 개별적인 질문들에 대답하기에 앞서 현실을 검토하자면, 물론 나는 낙관주의자이지만 이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데, 개인이 성을 판매하는 행위를 근절시킬 수 있는 해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P2P로 성매매하는 것을 비윤리적이라고 비난할 수는 있어도, 국가의 정책으로 막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도리어 그러한 종류의 단속은 경찰과 포주의 유기적 밀착을 음성적으로 강화할 가능성도 크다. 비록 나는 성매매가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하고, 특히 성을 사는 수요자들을 강력하게 비난하는 입장에 서고 있지만, 개인 대 개인으로 이루어지는 성매매를 완전히 없애버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업고객을 상대로 하는, 한국에서 문제가 되는 바로 그 '성매매'가 지금처럼 활개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며 또 추진되어야 한다고 본다. 한국의 성매매가 문제인 이유를 논하려거든, 성매매 여성의 자발적 선택에 대한 끝도 없는 논의에 빠져들지 말고, 성을 구입하는 이들의 소비 방식에 대해 먼저 고찰해봐야 한다는 뜻이다.

흔히들 성매매가 합법화되어있는 네덜란드를 운운하곤 하는데, 그 네덜란드에서는 '접대'라는 명목하에 법인카드를 들고 가서 집단 성매매 결제를 하는 문화가 있긴 할까? 이에 대해서는 통계를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겠지만, 추측건대, 한국의 성매매를 지탱하는 것은 기업고객들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 수요는 각 기업들의 경영 합리화를 통해 통제될 수 있을 것이다.

성매매에 대한 논의를 하면서 오직 '성'에만 집중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성매매는 어디까지나 성에 대한 매매이며, 그것은 (적어도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매매되고 있다는 그 자체로서 인간의 존엄에 대한 폭력이기도 하다. 그런데 모든 시장은 정부의 적절한 개입에 의해 통제가 가능하다.

따라서 정부가 대한민국의 기업 문화를, 거래를 성사시기키 위해서는 '거래'를 해야만 하는 문화를 바꾸기 위한, 단편적 캠페인을 넘어서는 구조적 노력을 기울인다면, 성매매의 '기업고객'을 감소시키는 것은 어느 정도 정책적으로 노려볼만한 목표가 될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현재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한국의 성매매 산업의 규모를 축소시키는 효과를 노려볼만하다.

하지만 이명박은 '성매매 사범의 무차별적 단속을 자제하라'는 발언을 하고야 말았다. 단속을 하지 말라는 말이다.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못생긴 마사지걸들이 못내 눈에 밟혔나보다. 오늘에서야 비로소 이명박이, 철저하게 한국적인 의미에서, 'CEO형 대통령'으로 보인다. 룸싸롱이 없어지면 사업은 어디서 하나, 기업하기 좋은 나라에서 이러면 안 되지. 이것이야말로 한국적인 '비즈니스 프랜들리' 아닐까.

2008-09-22

두 지도자에 대한 평가

《Foreign Policy》가 자랑하는 코너 중 하나가 바로 ‘Think Again’입니다. 한국어로는 ‘…를 다시 생각한다’라고 번역되는 그 코너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이슈의 반대편에서 독자들의 시야를 넓혀줍니다. 이번호 한국어판의 표제 기사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를 놓고 편집부는 잠시 토론을 거쳤습니다. 한국의 실정을 놓고 볼 때, “김정일과의 마지막 수업을 위하여”가 더욱 적합할 수 있다는 주장은 나름 합리적입니다. 하지만 한국어판 편집부는 《Foreign Policy》의 취지에 부합하도록, “부시는 재평가될 것이다”를 이번호의 표제 기사로 선정했습니다.

‘악의 축’이라는 표현을 만들어낸 것으로 유명한 데이비드 프럼은, 그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된다 하더라도 부시 행정부에서 다져놓은 길을 전적으로 뒤집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그는 부시가 민주주의를 밀어붙이며 국제 질서를 혼란에 빠뜨렸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북한과 미국과의 대화를 놓고 보면, 그 말에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로 그 대화의 상대방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정일에게 러시아어를 가르쳤던 김현식에 따르면, 자신이 ‘평범한 학생’에 불과했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을 일부러 고위직에서 배제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가 김일성으로부터 인정받아 ‘장군’이 된 것은 1993년 북핵 위기 당시 가장 큰 목소리로 강경 대응을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아웅산 테러 사건의 ‘보도 기사’를 북한의 언론인들은 미리 써 놓고 있었습니다. “김정일과의 마지막 수업을 위하여”는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한 비화(秘話)로 가득 차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일독을 권합니다.

이렇듯 두 명의 지도자에 대한 평가와 재평가, 회고와 전망이 담겨 있는 기사 외에도, 이번호 《Foreign Policy》는 허약한 정치, 부실한 경제 윤리가 사회적 약자들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 심각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Prime Numbers의 “쓰레기 지구”와 “죽음을 만드는 사람들 - 가짜 약의 세계”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기사입니다. 중국과 인도처럼 급성장하는 나라에서는, 쓰레기가 쏟아져 나오는 동시에 가짜 약품들도 마구 생산됩니다. 쓰레기를 수거하고 의약품을 단속해야 할 정부가 부패와 무능으로 인해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할뿐더러 타국 국민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FP Index의 테러리즘 지수 수치가 예년에 비해 낮아졌다고 해도 세계가 안전해졌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그 때문입니다. 나쁜 치세는 호랑이보다, 테러리스트보다 더 무섭습니다.

《Foreign Policy》는 질문과 답을 한 권에 담는 매체입니다. 레이먼드 피스먼과 에드워드 미구엘은 “상식만 알아도 ‘부패’가 보인다”에서, 경제학적 기지를 발휘해 부패를 추적하고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는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합니다. 그 내용은 독자 여러분이 직접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필자들은 마치 ‘지식과 정보를 통해 나쁜 정치를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만 같습니다.

임기 말을 향해 달려가는 문제적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와, 철권통치를 이어가고 있는 독재자에 대한 폭로가 동시에 담겨 있는 매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부는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친인척 비리와 간첩 사건이 연이어 터지는 정국입니다. 과거가 되어 있을 현재를, 훗날 긍정적인 시각에서 재평가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이번호 《Foreign Policy》는 평가와 반성, 회고와 성찰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을 그 지성의 토론장으로 초대합니다.

-한국어판 편집부


포린폴리시 한국어판 9/10월호 편집자의 말입니다. 책은 지난주에 나왔는데, 개인적인 사정으로 늦게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번 호에 대해서도 블로그 방문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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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0

공포 정치와 중산층의 붕괴

. . . 양씨는 "세 아이 엄마인 내가 촛불집회에 나선 것은 깨끗한 먹을거리와 바른교육, 안정된 삶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것이었는데 이렇게 큰 대가를 치러야할지 몰랐다"며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촛불을 든 엄마가 경찰차를 부수고, 쇠파이프를 휘둘렀겠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또 "더욱 분노를 느끼는 것은 가정에 대한 조금의 배려도 없는 경찰의 막무가내식 수사"라며 "어제 아무런 사전 연락도 없이 집을 찾아왔다는 사실도 믿기지 않았지만 전화로 다짜고짜 `출두할지 안 할지만 말하라', `출두하지 않으면 아무 때나 체포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에 기가 막혔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에 대해 "양씨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아 주거지에 갔었고 임의동행에 응하지 않을 경우 강제조사가 이뤄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했지만 수사 진행 과정은 일반적인 경우보다 훨씬 정중했다"고 반박했다. . .


"물대포 가로막은 '유모차 부대' 주부 입건(종합), 연합뉴스, 2008년 9월 19일


경찰의 지금 행동은 말 그대로 '알아서 기는' 것인데, 문제는 그것을 제어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이 사건은 정말이지 징후적이다. 촛불시위가 불타오르는 과정이 아니라, 촛불시위가 꺼지는 과정에서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제 '핫'하지 않은 이 주제에 대해 그 누구도 열정적으로 입을 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 이명박 정부는 경제적, 사회적으로 중산층 혹은 중산계급을 양 방향에서 압박해 들어가고 있다. 혹자는 그것을 '쌤통'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기들끼리의 건전한 '상식'이나마 간직하고 있는 중간계급이 없다면, 대의민주주의도 직접민주주의도 모두 불가능하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 그 반대로, 너무도 적은 사람들이 중산층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양심'을 갖지 않고 있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중간계급이 경제적으로 무너지고, 또한 자신들이 법 안에 살고 있는 건전한 시민이라는 자의식의 균열을 체험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중산층은 이중적인 존재이지만, 그 이중적인 존재가 없다면 현대 사회에서 민주주의란 존립할 수도 없다.

비정규직과 노동운동을 수호해야 하는 만큼이나, 중산층을 지켜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이명박 정부는 대단히 혁명적으로, 1987년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의 버팀목이 되어온 바로 그 계층을 분쇄하고 있다. 이건 정말이지 징후적이다.

2008-09-15

갈수록 태산

구좌파와 단절 전쟁 각오, 내책임 커
'대한민국 좌파'하자, 야권재편 필연
[인터뷰-주대환] "뉴레프트가 뭡니까"…"운동권 이념은 난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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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수 | 이 자리에 어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하는 질문이다. 지난 대선 민주노동당 후보 경선에서 왜 오랜 동지 노회찬을 지지하지 않고 권영길을 지지했나?

주대환 | 노회찬은 정말 훌륭한 동지이고, 유능한 대중 정치인이고 스타다. 그런데 아무리 훌륭한 선수에게도 코치가 필요하다. 그라운드 바깥에서 보는 풍경은 좀 다르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자면 영국노동당을 만든 케어 하디는 노회찬처럼 하지 않았다. 더 많이 인내하고 양보했다.

누구에게? 무엇을? 노동조합 간부들의 부족함과 근시안과 보수성을 인내하고, 그들의 별로 맞지 않는 의견과 권력욕에 양보했다. 민주노총의 간부들은 100년 전 영국의 노동조합의 간부들보다 훨씬 훌륭하다.

그런데 그들의 뜻이 권영길 후보에게 있었다. 그건 아마 그들이 정치세력화에 소극적인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돈과 표를 모으자고 호소하는 명분을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을 우리가 책임지자”는 데서 찾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여하튼 나의 권영길 지지는 1992년부터 내가 걸어온 ‘노동당’ 노선에 따른 것이었다.


엄청난 착각. 100년이나 후대에 활동하는 사람과 그 전 시대의 사람을 같은 층위에서 비교하고 있다. 100년 전 영국에는 여성참정권도 없었다. 비정규직도 없었다. 지금의 기준에서 보자면, 지금의 노동조합 구성원들이 그때의 노조 간부들보다 훌륭한 건 당연한 것 아닌가? 100년 전 노조 간부들과 똑같거나 더 낮은 수준이라면, 그건 연대의 대상이 될 수도 없을 것이다.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의 안팎을 시끄럽게 하고 있는 이 논쟁은, 결국 '헐 나 삐져뜸'이라고 외치고 있는 주대환에게 모두가 말려들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논쟁을 하지 않고 무시하는 것은 현 시점에서 더욱 옳지 않은 행동일 수도 있다.

이 논쟁에서 가장 나쁜 것은 주대환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회 속에 만연한 '반 운동권' 정서, 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반 정치인' 정서에 기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시선에서 보면 주대환이 운동권이 아닐 리가 없다. 운동권을 아무리 씹어봐야 한 번 운동권은 영원한 운동권일 뿐이다. 운동권과 대중의 정서가 괴리되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 필요하긴 하지만, 이건 아니다.

인터뷰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 문답.

장태수 |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는? 요즘 본 영화 중에서 권하고 싶은 영화는?

주대환 | 〈미션〉이다. 배경 음악도 좋아서 CD를 구해 차에서 듣고 다니기도 했다. 그리고 요즘 본 영화 중에서는 〈크로싱〉이 좋았다. 많이 울었다.


아, 나도 많이 울고 싶다.

명절 독서

1. 칸트의 "On the Common Saying: This May Be True in Theory, But It Does Not Hold in Practice"(Immanuel Kant, Toward Perpetual Peace and Other Writings on Politics, Peace, and History (Yale University Press, 2006))를 읽었다. 홉스와 멘델스존(음악가 멘델스존의 할아버지인 모세 멘델스존)에 대한 반박이 담긴 2장과 3장만 발췌되어 있었는데, 어제 새벽 12시 30분경 2장까지 다 읽었고, 새벽 3시쯤 잘까 하다가 그냥 3장을 봐버려서 결국 4시에 잠들었다.

제목만 보고 좋아라 했던 책인데, 일부나마 직접 읽어보니 너무 재미있고 짜릿했다. 흥분이 쉽사리 가시지 않아, 제목에 담긴 사상을 표현하는 문단을 일부 인용해본다.

Thus, when one considers the well-being of the people, nothing at all depends on any theory but rather everything depends on a practice derived from experience.
If there is, however, something in reason that is expressed by the word constitutional right, and if the concept of it has a binding force and thus objective (practical) reality for human beings who stand in an an antagonistic relation to one another due to their freedon, without regard for the good or ill that this may produce for them (for knowledge of this rests on experience), then it is grounded in a priori principles (for experience cannot teach us what is right), and there is a theory of constitutional right, to which any practice that is to be held vaild must comform. (59p)


전문을 확인하기 위해 Kant's Political Writings(Cambridge Univ., 1991, 2nd ed.)을 알라딘 장바구니에 넣어 놨다. 일단 연휴가 끝나고 학교에 가면 도서관에서 확인해볼 생각이다. 도서관에서 잠시 확인한 후, 통장 잔고를 확인해가며 구매 버튼을 눌러야겠지.


2. 먼 거리를 오갈 일이 많았기 때문에, 지하철 안에서 《서울은 깊다》(전우용 저, 돌베게, 2008)를 다 읽었다. 저자가 오래도록 쌓아왔던 내용을 제대로 풀어낸 역작이라고 생각한다. 풍부한 도판과 다양한 이야기거리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짧은 꼭지 20여개가 연달아 나오기 때문에 자칫하면 식상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었을 테지만, 편집자가 주제별로 배열을 잘 한 것 같고, 제목도 아주 훌륭하게 뽑았다. 휴일에 보기 적당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