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12

[북리뷰]대학을 접수한 자본의 대학경영

[북리뷰]대학을 접수한 자본의 대학경영

기업가의 방문
노영수 지음·후마니타스·1만5000원

그는 등록금을 벌기 위해 고깃배에 탔다. 다른 사람들은 하루를 버티면 용하다고 빈정거렸지만, 그는 이겨냈다. 휴학을 하고 한 학기에 걸쳐 배를 탔다. 계약된 기간을 다 버티지 못하고 내리면 최저시급에 턱없이 부족한 기본급만 받아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중앙대학교 독어독문과를 휴학한 복학생 노영수는 그 시간들을 징하게 버텨냈다. 그렇게 번 돈은 316만9000원. 지난 학기 등록금과 똑같은 액수였고, 등록금이라는 것은 매년 치솟는 탓에 2008학년도 등록금인 337만5000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배를 타고 번 돈을 들고 그는 학교로 돌아왔다. 그가 기억하는 학교는 고깃배와 달리, 낙오자의 몫을 남은 사람들이 갈라먹는 그런 잔인한 곳이 아니었다. 노영수의 회고에 따르면 중앙대학교는 학생 자치 및 교육에 있어서 ‘선’을 넘지 않았다. 2003년에 그가 입학할 무렵 중앙대학교 재단은 가난했다. 시설은 낙후되어 있었고 학생들의 자치활동에 대해 많은 재정적 지원이 돌아오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영수를 포함한 많은 학생들은 그 시절을 ‘좋았던 때’로 기억한다.

고깃배를 타고 파도를 건너 돌아온 복학생과 함께 한 기업가가 중앙대학교를 방문했기 때문이다. 중앙대학교는 이사장이 운영하는 사립대학의 형식을 유지했지만, 실제로는 CEO가 경영하는 기업처럼 운영되었다고 노영수는 증언한다. 두산에 소속된 회사원들이 학교의 세부사항을 관리했다. 기업화된 대학은 인기 교수 진중권의 해임에 맞서 시위를 벌인 학생들을 꼼꼼하게 블랙리스트에 올려놓았다. 노영수는 마지막 학기에 본인이 속한 독어독문과 학생회장에 당선되지만, 이미 ‘찍힌’ 그의 이름으로는 과대표 장학금을 줄 수 없다고 재단은 통보해왔다. 노영수의 말에 따르면, 중앙대학교는 마치 두산중공업에서 노동조합을 파괴하기 위해 수행했던 것과 같은 그런 다양한 기법들을 학생들을 대상으로 구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인 <기업가의 방문>은 스위스의 극작가 뒤렌마트의 희곡 <노부인의 방문>을 차용한 것이다. 작은 시골 마을 귈렌에 차하나시안 부인이 방문한다. 그 노부인은 세계 최고의 부자인데, 과거 자신을 임신시켜놓고 법정에서 거짓 증언을 하여 배신한 첫사랑 알프레드 일을 누군가 죽인다면 귈렌의 시민들에게 1000억 프랑을 나누어 주겠노라고 제안한 것이다. 그 제안을 못 들은 척하던 사람들은 점점 술렁이기 시작한다. 있지도 않은 돈이 생겼다고 들떠서 씀씀이가 커진 시민들은 결국 알프레드 일을 살해할 계획을 세우고, 기어이 죽여버린다. 노부인은 약속했던 1000억 프랑을 남겨두고 귈렌을 떠난다. 뒤렌마트의 희곡은 거기서 막을 내린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기업가의 방문’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2008년 경제위기는 전 세계인들에게 통제받지 않는 금융과 자본은 결국 파국을 불러올 뿐이라는 교훈을 안겨주었지만, 해묵은 시장주의의 논리는 오늘도 신문과 방송과 인터넷을 뒤덮으며 또 다른 ‘기업가의 방문’을 예고한다.

법인화된 서울대학교는 최근 두산그룹의 전 회장 박용현을 신임 이사장으로 임명했다. 그는 박용성 중앙대학교 이사장의 동생이며, 중앙대학교의 이사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서울대학교를 어떻게 이끌어나갈지 우리는 아직 장담할 수 없다. 다만 <기업가의 방문>을 꺼내어 한 페이지씩 다시 읽어나갈 뿐이다.

<노정태 ‘논객시대’ 저자/번역가>

2014-08-03

[별별시선]교통사고다, 그래서?

[별별시선]교통사고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는 일종의 교통사고인가?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에 이어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역시 같은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 및 피해자들의 편에 서고자 하는 언론, 정치인, 시민들은 한결같이 그러한 발언에 대해 격렬한 반대의 뜻을 표하고 나섰다.

물론 그러한 발언이 나온 맥락과 시점을 고려해보면 두 사람의 여권 인사는 정부와 여당으로 향하는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던져봐야 할 것 같다. 내게 쏟아질 수 있는 비난을 무릅쓰고, 감히 물어보겠다. 세월호 참사는, 그렇다면, 교통사고가 아닌가?

경향신문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김혜진 국민대책위 집행위원장은 “많은 이들이 분노한 건 사고 자체가 아니라 사고가 참사로 이어지는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속에서, ‘교통사고’는 ‘구조 실패’보다 논리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선행한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우리가 향후 방지해야 할 것은 사고 그 자체다.

좀 더 정확히 말해보자. 이미 벌어진 ‘세월호 참사’를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사망자와 생존자, 실종자와 그 모든 이들의 가족 및 친지들이 겪었고 앞으로도 겪게 될 고통을 그냥 없었던 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그 지점에 잔인한 현실이 존재한다. 이미 벌어진 비극으로서의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과 동정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저질러진 일, 이미 벌어진 비극 앞에서, 우리의 감정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세월호의 침몰과 그로 인한 대량의 인명 손실을 그저 ‘세월호의 아이들’에게만 국한된 비극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그런 위험을 끌어안고 있다.

‘세월호는 일종의 해상 교통사고’라는 발언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반발한 것은 그런 면에서 최선의 대응이 아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히려 ‘교통사고’처럼, 언제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는 일, 우리가 살다 보면 우연히 겪기도 하는 일이, 이렇듯 참사로 비화될 수 있다고 응수했어야 한다는 뜻이다.

‘세월호 참사’는 과거의 사고이며, 희생자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남이 겪은 비극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교통사고’는 확률적으로 우리 모두가 겪을 수 있는 일이며, 현재와 미래의 사고이다. 세월호 유가족들 앞에서 ‘누가 놀러 가라고 했냐, 누가 죽으라고 했냐’고 막말을 퍼붓는 어르신들 또한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확률상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즉 ‘교통사고’라는 프레임을 제대로 소화해내는 것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논의의 폭을 사회 전체로 끌어올릴 수 있는 한 방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교통사고’라고 누군가가 어떤 맥락 속에서 ‘막말’을 한다고 해보자. 우리는 그에게 ‘너는 교통사고 안 당할 것 같냐’고 ‘막말’을 되돌려줄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럼 그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정부가 뭘 했냐’고 쏘아붙이는 것도 가능해진다. 이미 벌어진 비극을 놓고 더 많은 사람들의 동정심을 끌어올리는 것도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앞으로 벌어질지 모르는 또 다른 사고의 가능성을 환기시킴으로써 우리는 더 많은 이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다.

미국의 시민운동가 랄프 네이더는 <어떤 속도에서도 안전하지 않다>를 통해, 충분히 안전하게 설계되어 있지 않은 자동차가 교통사고의 위험을 증대시킨다는 것을 입증하고, 그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광범위하게 규합해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그런 움직임이다. 누군가가 이미 겪은 ‘참사’에서, 너와 내가 당할지 모르는 ‘사고’로, 논의의 초점을 옮기는 것 말이다.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라 부른다 해도 정부의 잘못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프레임 속에서 해야 할 이야기가 적지 않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모두가 겪었고, 겪을 수도 있으며, 최선을 다해 예방해야만 하는, 그런 비극적인 교통사고인 것이다.


2014-07-29

[북리뷰]뿌리깊은 갈등의 다양한 비극

<팔레스타인>
조 사코 지음·함규진 옮김·글논그림밭·1만2500원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서로를 향해 로켓을 쏘아대면서 전투를 시작한 이후,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SNS 공간은 특히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참혹하게 희생당한 사진으로 뒤덮였다. 저곳에서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똑똑히 보라고, 선의와 분노로 가득찬 이들이 새로운 게시물을 올리면 우리들 중 많은 이들은 묵묵히 리트윗이나 ‘좋아요’ 버튼을 누른다. 그들의 피로 흥건한 참상을 우리 스스로가 일종의 구경거리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회의가 들지만, 우리는 이내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스마트폰 시대의 세계시민적 분노란 이런 게 아닐까.

1917년, 당시 영국의 외무장관이었던 아서 밸푸어 경은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민족적 고향을 세우고, 그 일을 성취하는 데 대하여 팔레스타인에 거하는 비유대인의 시민적 그리고 종교적인 권한에 대해, 또는 타국에 거하는 유대인의 정치적인 상태에 대해 아무런 편견을 갖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 담긴 공개 서한을 보냈다.

이렇게 비극의 씨앗이 뿌려졌다.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지방의 원주민이 아닌 유럽 열강들과의 협상을 근거로, 한 걸음 더 나아가 구약성서에 쓰여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자신들이 팔레스타인의 정당한 거주민임을 주장했다. 단지 말로만, 혹은 외교 협상 문서로만 주장한 것이 아니라 총과 칼과 탱크와 포클레인 등을 서슴없이 동원했다. 하염없이 수세에 몰리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1987년 이스라엘군의 무장 점령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인 ‘인티파다’를 벌인다.

2014년 현재까지 우리가 보게 되는 참상은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단단히 꼬여 있기도 하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재판 없이 구금하고 고문한다. 이스라엘의 폭력이 일상화된 탓에 감옥에 다녀오지 않은 남자를 찾기가 어렵다. 군인들은 병원에 찾아와 환자들을 두들겨패가며 시위 주동자의 행방을 묻고는, 애먼 사람을 몇 명 붙잡아간다. 이것은 분명한 인권 유린이며, 당장 중단되어야 할 조직적인 국가 폭력이다.

그러나 현장에 뛰어들어 취재를 하고 그 내용을 만화로 그려내는 코믹저널리스트 조 사코가 보기에 팔레스타인의 비극은 그보다 훨씬 더 촘촘하고 암담하다. 이슬람 사회 특유의 고질적인 여성 차별, 폭력으로 종종 치닫는 내부 정파 갈등, 터무니없이 높은 실업률 등 이스라엘이 설령 가자 지구와 요르단 강 서안 지역에서 손을 뗀다 하더라도, 그것은 큰 문제의 해결이면서 동시에 비교적 작지만 지독하기로는 큰 차이가 없을 다른 문제의 시작일 것이다. 조 사코는 과감하면서도 섬세한 필체로 팔레스타인의 암담한 풍경과 비극적 일상을 처절하게 담아냈다. 미국인이기 때문에 그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가지 못하는 곳에 갈 수 있다. 가자 지구의 진창에서 뒹굴면서 예루살렘의 깨끗한 호텔로 돌아갈 날을 고대한다. 비극을 ‘경험’하지만, 그 비극의 ‘일부’는 아닌 관찰자인 것이다.

<팔레스타인>은 당사자가 아닌 우리 모두가 팔레스타인의 참상을 마주하면서 겪게 되는 거의 모든 딜레마를 정직하게 담아내고 있는 책이다. ‘좋아요’를 누르기 전에, 리트윗을 하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읽어볼 것을 권한다.

<노정태 ‘논객시대’ 저자/번역가>

2014-07-15

[북리뷰]우리는 어린이 인격을 존중하나

[북리뷰]우리는 어린이 인격을 존중하나

어린이 문화 운동사
이주영 지음·보리·1만3000원

‘어린이’라는 단어는 1923년에 만들어졌다. 이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개념이다. 1899년 11월 9일 태어난 소파 방정환이 3·1 운동을 겪은 후 조선 민중 해방운동의 일환으로 어린이들을 해방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 책 <어린이 문화 운동사>의 저자인 이주영은 그 뜻을 이렇게 설명한다. “식민지배 아래에서 억압받는 민중을 부모로 두었는데, 거기다 그 부모한테 또 억압을 받으니 어린이는 이중으로 억압받는 민중이라는 것이다.”(19쪽)

1923년 5월 1일 오후 3시, 최초의 어린이날 행사가 서울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치러졌다. 참여자들은 12만장에 이르는 어린이날 선언을 종로와 전국에 배포하였다. 그 선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그들에게 대한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하게 하라.”

“어린이를 재래의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만 14세 이하의 그들에게 대한 무상 또는 유상의 노동을 폐하게 하라.”

“어린이 그들이 고요히 배우기에 즐거이 놀기에 족한 각양의 가정 또는 사회적 시설을 행하게 하라.”

당시의 조선 사회에서 농촌의 어린이들은 말귀를 알아듣고 두 손 두 발을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그 때부터 한 사람의 농사꾼이 되어야 했다. 도시의 어린이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지 노동에 시달리는 것뿐 아니라 어린이들은 일상적인 폭력과 박해에 노출되어 있었다. 어린이를 동등하면서도 특별한 존재로 인식하지 않는 사회라면, 당연히 그 어린이들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을 테니 말이다. 1923년의 방정환이 벌인 혁명이 바로 그것이었다. 가장 약하고 소외된 자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 그리하여 보편적인 인간 해방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 말이다.

“지금은 어린이날이 5월 5일이지만 처음에 어린이날은 5월 1일이었다. 어린이 운동가들은 노동자의 날인 5월 1일을 왜 어린이날로 했을까? 어린이 운동가들은 어린이도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억압받는 민중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린이들도 오전에는 노동자의 날 행사에 참여하고, 오후에는 어린이날 행사를 했다.”(21쪽)

5월도 아닌 7월에 갑자기 웬 어린이날 타령인가, 왜 <어린이 문화 운동사>라는 책을 꺼내들었는가.

7월 2일, 대전지법 형사법원 제1형사부는 친딸을 목검으로 폭행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즉 살인죄로 기소된 강모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그는 자신이 새로 사귄 여자친구가 싫다며 가출한 딸을 찾아 집으로 데려온 후 1m 길이의 목검으로 한 시간 반 동안 때렸다. 하지만 법원은 “사건 당일의 폭행은 설득과 훈육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었으며, 강씨가 딸을 살해할 만한 다른 동기가 없다는 점을 참작해 살인죄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살인이 아닌 상해치사죄를 적용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한 시간 반 동안 목검으로 14세의 어린이를 때리는 것을 과연 ‘설득과 훈육의 연장선’상의 행위로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어린이에게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하라고 외치던 소파 방정환은 조국과 어린이들의 해방을 목격하지 못한 채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나라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그러나 과연 얼마나 어린이들의 인격과 권리를 존중하고 보호하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노정태 ‘논객시대’ 저자/번역가>

2014.07.15주간경향 1084호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407071727351&code=116

2014-07-10

[GQ] 노인과 불바다

2014년 5월 28일 오전 10시 54분, 지하철 3호선 도곡역에 막 진입하던 오금 방면 전동차 안에서 매캐한 연기가 치솟았다. 그로부터 불과 한달 전 벌어진 세월호 참사의 악몽이 잊히지도 않았거니와, 5월 2일 상왕십리역에서 벌어진 2호선 열차 추돌 사고의 충격이 생생하던 시점, 지하철에 불을 지른 범인은 71세 노인이었다. 범인 조 모 씨는 유흥업소를 운영하다가 손해배상 소송을 벌였는데, 재판 결과가 불리하게 나오자 ‘억울한 사연을 알리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2003년에 있었던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의 범인 김 모 씨는, 범행 두 해 전 부터 갑작스럽게 걸린 병으로 장애인이 되었고, 신병을 비관하여 ‘너도 죽고 나도 죽자’는 심정으로 지하철에 불을 붙였다고 말했다.

국보 1호 숭례문 역시 그런,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재가 되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서 철학관을 운영하던 채모 씨는 토지 문제로 H건설과 갈등을 빚다가 소송을 걸었고, 패했다. 비슷한 시기 아내와 이혼한 그는 곧 창경궁 문정전에 불을 질렀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그리고 2년 후 숭례문에 불을 질렀다.

이 사건들에는 일관된 패턴이 있다. 무엇보다, 나이 많은 남성이 있다. 지하철 3호선 방화 사건의 범인 조 모 씨는 71세,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의 김 모 씨는 당시 56세, 숭례문 방화 사건의 채 모 씨는 당시 70세였다. 그들은 사회, 세상, 혹은 시스템과 충돌하고 불화한다. 갑작스런 개인적 재난 상황에서, 그들은 일관되게 불특정 다수를 공격했다. 지하철에 불을 질러 억울함을 알리겠다는 생각, 내가 너무 억울하니까 남들도 죽이고 나도 죽어야겠다는 발상, 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는 매우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개인 대 개인, 인간 대 인간으로 보자면, 우리는 이러한 무작위 증오 범죄를 용납할 수 없다. 하지만 사회적인 차원으로 시각을 확장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세상으로부터 당하고 쌓인 게 많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공공장소를 활보하는 ‘그들’에 대해, 우리는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2014년 6월 5일 <중앙일보>에 흥미로운 기사가 등장했다. ‘질풍노도의 노인들’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양선희 논설위원은 “요즘 노인 무섭다”는 말이 떠돈다며 운을 뗀다. 2011년을 기준으로 노인 범죄 중 가장 비중이 높은 것은 폭력 사건이다. 전체 범죄 중 무려 32.5퍼센트를 차지한다. 지난 10년간, 노인들이 저지른 강도와 강간 사건은 4배, 방화는 2.7배, 살인은 2배 증가했다. 요약하자면, “노인 1명이 늘면 범죄 3건이 느는 꼴이다. 게다가 평생 전과 없이 살다가 60, 70대에 처음 범죄를 저지르는 초범은 5명 중 3명꼴이다.”

노인이 늘어나는 사회 속에서, 그 노인들이 강력 범죄를 저지르는 비중 역시 커지고 있다. 이것은 다른 나라의 노인 범죄와는 정반대의 양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노령화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주장을 펴는 이들은 대체로, 젊은 남성이 늙은 남성으로 대체되면서 그에 따라 강력 범죄가 줄어든다는 것을 논거로 삼곤 한다. 몸이 지치면서 영혼도 유순해지고 안정된 삶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노인들은 반대다. 은퇴 연령을 넘긴 노인들이 사람을 때리고 칼을 휘두르며 성범죄를 저지르고 지하철에 불을 지른다. 나름의 방식으로 조사를 해본 양선희 논설위원은 이 현상에 대한 선행 연구가 거의 없다는 사실에 대해 경악한다.

이렇듯 폭주하는 비행 노인들이 늘어가고 있는 가운데, 얄궂게도 한국 사회는 점점 더 ‘노인 친화적’인 곳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일단 호칭 문제부터가 그렇다. 노인들은 언제부턴가 ‘어르신’의 위치를 획득했다. 한국어의 크나큰 단점 중 하나는 발화자와 수용자 사이의 사회적 위계 관계를 전제로 하지 않는 2인칭 호격이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향해 ‘야’, ‘너’ 같은 표현을 쓰면 십중팔구 좋지 않은 대답이 돌아온다. 애매하면 ‘저기요’나 ‘사장님’ 정도로 통칭하게 마련인데, 이 혼란 속에서 한국의 고령층, 특히 남성들은 ‘어르신’이라는 극존칭 대명사를 쟁취해냈다. 얼마 전 난동을 부리는 노인을 향해 사복경찰이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어르신, 진정하시죠.”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어르신이라는 표현이 갖는 상대적 비중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극존칭이지만, 실제로는 별볼일없는 노인들에게 돌아가는 호칭이 바로 어르신이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요금을 안 내고 승차하는 어르신, 젊은이들이 자리에서 비켜주기를 바라며 헛기침을 하는 어르신, 담배 피우는 젊은 여성과 시비가 붙은 어르신 등, 이 목록은 끝이 없다.

이렇듯 우리가 일상 속에서 부대끼는 어르신들을 향해 짜증과 분노를 느끼는 동안, 그와 비슷한 연령대의 어떤 이들은 멘토나 스승, 혹은 원로의 자리에 오른다.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 찬조 연설에 나섰던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의 찬조 연설을 보고 감동한 젊은이들의 반응은 사실 대부분 비슷했다. 그 나이대의 노인이 이성적인 태도로 합리적인 말을 조곤조곤 한다는 사실 자체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대중교통에서 맞닥뜨리는 그 막무가내 어르신과 다른 모습을 봤다고 흥분했다. 드디어 우리가 존경할 수 있을 만한 어른을 만났다면서.

이듬해부터 서점가에 불어닥친 인문학 열풍은 어떤 면에서 ‘어르신의 귀환’이기도 했다.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와 비교해보자. 한때의 차세대 사상가 아즈마 히로키마저도 이제는 중견 취급을 받는다. 사사키 아타루나 히로세 준, 후쿠시마 료타 같은 젊은 사상가들이 인문서의 주요 저자군으로 활동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인문학 열풍은, 강신주를 빼고 나면, 주로 그보다 나이대가 더 높은 저자들의 것이었다. 서울대의 김난도 교수나 법륜 스님 등, 해당 직업군에서는 한창때지만 생물학적으로는 이미 아저씨와 할아버지의 경계에 선 사람들이 포문을 열었고, 그 뒤를 이어 불문학자 황현산이나 문학평론가 도정일 같은 원로 인문학자들이 그동안 쟁여둔 원고를 꺼내 들고 나섰다.

이미 학문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높은 성취를 이룬 이 원로들은, 자신들과 비슷한 또래의 어르신과 지하철 등 대중교통 수단에서 부대낄 일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반면 그들의 책을 손에 든 젊은이들은 출퇴근 시간의 번잡함을 견디며, 어르신과 함께 고단한 하루를 여닫고 있다. 어떤 노인의 책을 읽으며, 다른 노인을 가까스로 견디는 젊은이들은, 언제 어디서 불길이 치솟을지 모르는 지하철을 탄다.

이것은 대단히 부조리한 일이다. 일제강점기 때 교육을 받은 1930년대생, 4.19세대, 386세대 등 엘리트 집단에 속하는 이들은 자신들을 나이대로 묶고 이전 세대와 차별화하며 스스로의 이권을 지켜나갔다. 오늘날까지도 그들은, 주로 대학생들을 향해, 멘토가 되어주고 꾸짖는다. 하지만 대학교 입학 연도를 중심으로한 세대론의 구조 속에서, 재산이 없고 대학에 가지 못한 사람들의 자리는 애초에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그렇게 잊힌 채 제대로 된 이름조차 가져본 적 없는 그들이 오늘날 어르신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엘리트 계층에 속하지 못한 이들은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아저씨가 되었고, 나이를 먹고 나니 어르신으로 불리며 이곳저곳을 배회하고 있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엘리트들은 동년배 대중들의 존재를 내팽개쳤다. 그들을 설득하고 계몽해 민주 사회의 시민으로 재구성하는 대신, 그저 선거철이 다가오면 지역 개발 이슈를 던지거나 지역 감정을 자극하는 식으로 표를 긁어냈을 뿐이다. 그렇게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한 채 한평생 먹고사는 일에 급급하다가 나이를 먹은 어르신들, 새로운 세상에 온전히 적응하지 못한 그들은, 가슴속에 방향 없는 울분을 가득 쌓은 채 지하철에 타고 버스에 오르며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어르신들, 노인들이 세상을 불바다로 만들기 전에, 멘토들이 먼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

<GQ>, 2014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