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12

[시사철] 공수처는 '절대반지'.. 권력자 善意 믿지 말고 반지를 파괴해야

 

[노정태의 시사哲] 공수처는 '절대반지'.. 권력자 善意 믿지 말고 반지를 파괴해야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입력 2020. 12. 12. 03:11 수정 2020. 12. 13. 10:30
[아무튼, 주말] '반지의 제왕'과 공수처
일러스트=안병현

어린아이 정도의 키에 맨발로 돌아다니는 소박하고 낙천적인 소인(小人)족 호빗. 그중 빌보 배긴스라는 호빗이 있다.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고 있는 그는 본인의 111세 생일잔칫날 홀연히 먼 여행을 떠난다. 그리하여 조카이자 양아들인 프로도가 절대반지(The One Ring)를 유물로 얻게 되었다.

빌보의 오랜 친구인 마법사 간달프가 프로도에게 사정을 설명해준다. 절대반지는 타락한 신적 존재 사우론이 아주 오랜 옛날 만들어낸 물건이다. 요정들의 왕이 가진 세 반지, 난쟁이 군주들의 일곱 반지, 인간의 왕들이 지닌 아홉 반지. 그 모든 반지를 지배하고 찾아내며 불러내는 절대적인 권능을 지닌 단 하나의 반지가 바로 절대반지다. 절대반지를 끼면 남에게 보이지 않으며,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고, 자신이 꿈꾸던 것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반지에 영혼을 잠식당하고 마는 것이다.

악의 화신 사우론은 먼 옛날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절대반지를 잃어버렸다. 그가 다시 절대반지를 손에 넣는다면 세상은 돌이킬 수 없는 어둠과 혼란 속으로 빨려들 것이다. 절대반지를 파괴하려면 사우론의 본거지인 운명의 산으로 찾아가 용암 속에 반지를 던져버려야 한다. 프로도와 일행은 멀고 험한 여정에 오르고, 사우론뿐 아니라 오래전 반지를 가지고 있다가 타락해버린 골룸이 그들의 뒤를 쫓는다.

‘반지의 제왕’은 전 세계인이 다 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야기다. 그야말로 ‘현대의 신화’인 셈이다. 그것은 단지 3부작 영화가 대성공을 거두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J. R. R. 톨킨의 원작이 지니고 있는 압도적인 세계관 및 진지하고도 보편적인 문제의식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절대반지의 기원을 플라톤의 ‘국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대 리비아에 기게스라는 목동이 살았다. 어느 날 특이한 반지를 얻었는데, 보석받이를 자신의 손바닥 쪽으로 돌리자 본인의 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보석받이를 손등 쪽으로 돌리면 다시 몸이 보인다. 투명인간이 되는 힘을 갖게 된 기게스는 왕궁에 숨어들어 왕비와 간통하고 왕을 살해한 다음 왕국을 장악했다. 그 유명한 ‘기게스의 반지’ 설화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글라우콘은 스승에게 묻는다. 이렇듯 누군가 남에게 들통나지 않고 어떤 짓이건 멋대로 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기게스처럼 악행을 저지르지 않겠습니까? 글라우콘은 다른 사람이 지켜보는 눈이 있어야 인간은 선한 행동을 한다는 입장인 것이다. 반면 소크라테스는 설령 이득이 된다 한들 악한 행동으로는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없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한다. 글라우콘의 입장을 윤리적 가치의 외재설(外在說)로, 소크라테스의 입장을 내재설(內在說)로 불러볼 수 있겠다.

두 입장에는 장단점이 있다. 윤리적 가치의 내재설부터 생각해보자. 가령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나치에 반기를 들고 히틀러 암살 계획에 참여했다. 목사가 살인 모의를 한다는 모순을 논외로 하더라도, 당시 독일인들은 히틀러를 지지하거나 묵인했으니, 그의 행동은 주변 사람의 눈으로 보자면 ‘윤리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물론 오늘날 우리는 본회퍼를 위인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렇듯 내재설은 타인의 반대를 뚫고 옳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 때로 큰 힘이 되어준다. 개인을 위한 윤리라고도 할 수 있다.

반면 외재설은 사회적 관점에서 유익하다. 몽테스키외를 비롯한 초기 민주주의 이론가들은 윤리적 가치의 외재설을 따랐다. 입법·사법·행정의 3권을 분리하고, 언론을 통해 외부에서 감시하며, 범죄의 수사·기소·재판 또한 최대한 공개하는 제도적 장치를 고안해냈다. 남의 눈에 보이지 않고 통제받지 않으며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면 그 누구라도 기게스처럼 타락할 수 있으니, 권력자의 선의를 믿는 대신 기게스의 반지를 없애버리는 쪽을 택했던 것이다.

2020년의 대한민국은 정반대로 향하고 있다. 공수처라는 절대반지를 기어이 만들고 있는 것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가 공직자 부패 사건을 모든 수사기관에서 자동으로 가져오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공수처장으로 만들면 현 정권에서 벌어진 모든 권력형 비리를 서랍 속에 넣고 묵힐 수 있다. 공직자 부패 사건을 드러내고 처벌한다는 본래 취지와 정반대로, 부패 비리 집권 세력의 손에 기게스의 반지를 끼워주는 셈이다.

법원을 수사 대상으로 삼는 것 또한 문제적이다. 판사도 법을 지키고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설령 범죄를 저질렀다 해도 헌법에 정해진 제도와 절차를 통해 수사와 처벌을 받아야 한다. 헌법에 근거가 없는 공수처는 판사들로 하여금 여차하면 먼지털이식 별건 수사를 당할 수 있다는 위협을 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폴란드는 ‘정치 활동 금지’라는 명목하에 판사를 처벌하는 법을 만들었고 EU에서 퇴출해야 한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 또한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봐야 한다.

자칭 민주화 세력이 민주주의의 근본을 뒤흔드는 법을 내놓고 입법 폭거를 저지르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왜 이렇게까지 공수처를 추진해야 하는 걸까. 최재형 감사원장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월성 1호기 폐쇄 감사 보고서를 써내려갔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그 내용에 기반하여 수사를 진행 중이다. 저들은 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윤석열 죽이기 법, 최재형 재갈 물리기 법을 만들려고 드는 이유가 뭘까.

공수처는 절대반지다. 권력자의 부패 범죄를 안 보이게 만든다. 권력자는 모든 고위 공직자와 법조인을 억누를 수 있다. 이런 반헌법적 통치 기구는 일단 만들어지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권력자가 이렇게 좋은 걸 포기할 리 없을 테니 말이다. 절대반지를 손에 넣은 자들도 그랬다. 반지의 악에 영혼이 잠식당하고 말았다. 맥락도 논리도 없이 ‘검찰 개혁’만 외치는 여당을 보면 ‘마이 프레셔스’라고 중얼대는 골룸을 보는 것만 같다.

인간, 요정, 난쟁이들은 절대반지의 유혹을 견뎌낼 수 없었다. 결국 절대반지를 파괴하고 세상을 구해낸 건 보잘것없는 호빗들이었다. 공수처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 평범한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탈환하고야 말 것이다. 지금은 21세기 헌정사의 가장 어두운 밤. ‘반지의 제왕’을 다시 보며 용기를 얻는다.

2020-12-06

혜민, 혹은 종교인의 (너)무소유에 대하여

젊고 세련되고 교양 있고 세속의 인간들과 잘 어울리는 승려. 조계종 뿐 아니라 사실 전 세계의 불교계가 원하는 아이콘의 모습이긴 했다. '무'소유가 아닌 '너무'소유를 보여주고 있는 혜민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문제는 그 소유가 온전히 개인의 것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 종교 단체가 많은 부를 쌓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끌어들이는 온갖 자선사업, 기부, 교육사업, 약자 돌봄 같은 가치를, 심지어 겉치례로도 동원하고 있지 않다는 것.

혜민을 옹호하기 위해 동원되는 논리 중 '무소유에 집착하지 말라'는 말도 참 이상하게 악용되고 있다. 그런 건 지나친 고행을 하거나, 굶어 죽기 직전까지 스스로를 학대하고 밥을 안 먹거나, 차 타고 와도 될걸 굳이 걸어와서 보는 사람 불편하게 만드는 그런 극단적 행위자들에게나 할 소리다.

조계종에도 나름의 문제가 없지 않을 것이다.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와 전통을 가진 종단인만큼, 승려의 재산 소유에 대해 이미 분명한 답을 내려놓았다. 당연히, 중은, 제 몫의 재산을 가져서는 안 된다.

"조계종은 종단 법령인 ‘승려법’으로 소속 승려가 종단 공익이나 중생 구제 목적 외에 개인 명의로 재산을 취득하는 것을 규제하고 있다." 서유근, "남산뷰·뉴욕뷰 ‘건물주 논란’ 혜민 스님 “크게 반성…중다운 삶 살겠다”", 조선일보, 2020년 12월 3일.

중이라고 해서 돈 벌면 안 되냐, 정당하게 책 써서 판 돈이면 괜찮지 않냐, 이런 소리를 하는 분들을 퍽 많이 접해서 요즘 놀라고 있는 중이다. 

당연히 중 뿐 아니라 모든 종교인은 돈벌이 자체가 목적인 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들의 활동은 본질적으로 사후세계의 위안을 약속하며 현세의 재물과 지위를 받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공포를 이용하여,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것이 종교다. 따라서 종교를 이용한 돈벌이를 정당하다고 해버리면 세상은 온갖 사이비 잡종교인으로 넘쳐날 수밖에 없다.

'정당하게 번 돈'을 인정해야 한다는 어떤 당위가, 잘못된 영역에서 엉뚱한 사람을 옹호하는 논리로 오용되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검찰 문제 단상

나는 대깨문 뿐 아니라 넓은 의미의 진보, 심지어 윤석열에게 원한 품은 몇몇 보수 분들까지도 '검찰주의자'라는 말을 욕처럼 쓰는 걸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

검사가 검찰주의자여야 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어떤 법조인을 검사로 만드는 건 그가 검찰에 있기 때문이다. 검찰에 있다면 당연히 검찰로서의 직업 윤리, 가치, 금기, 도의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런 걸 늘 새기고 지키는 게 왜 욕먹을 일인가?

아,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 수사하고 잡아넣어서? 그래서 '검찰주의자'가 나쁜 건가? 검찰총장이 우리편은 봐주고 저쪽편은 조져야 하는데 안 그래서 속상하다 이건가?

한국에서 원리원칙적인 자유주의자 해먹기 정말 힘들다.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라는 말이 도깨비방망이처럼 쓰이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일단 민주주의는 다수가 소수를 쪽수로 찍어누르는 게 아니다. 소수의 의견이 다르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확인하고, 다수가 의사결정권의 많은 부분을 갖되 그럼에도 소수를 존중해야 민주주의다.

게다가 법이란 근본적으로 '다수의 지배'가 성립하지 않고, 성립해서도 안 되는 분야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범인이라고 몰아붙인다고 해서 결백한 사람이 범인이 되지는 않는다. 증거와 법리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검사는 판사와 마찬가지로 사법 기관이다. 국가를 대신하여 범죄자를 소추하고 기소하여 감옥에 넣는 것이 검사의 일이다. 따라서 검사 역시 '다수의 횡포'로부터 자유로워야만 하는 직종이다. 온 국민이 사랑하고 죄 없다고 박박 우겨도, 증거가 있고 해당하는 형법 규정이 있다면, 검사는 최대의 형량을 구형해야 한다.

이 난장판의 큰 부분은 우리 사회의 법에 대한 교양 수준이 너무 낮기 때문에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다수의 법조인들은 아예 그런 대중 교양 함양에 관심이 없다. 글쓰기에 관심이 있거나 약간의 재주가 있는 법조인들은 그럴싸한 포우즈 취하고 깨시민 상대로 인기 끌 궁리 뿐이다.

대한민국이 망한다면 무식해서 망할 것이다. 기층 민중이 아니라, 상위 중산층 레벨에 속하는 사람들이 무식하고, 그러면서 자신들의 악다구니를 정당화하기 위해 아무말이나 갖다붙이면서 더 무식해지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망할 것이다.

세월호가 국정원에 보고 체계를 갖추고 있었던 이유

뉴스타파 김성수 기자의 페이스북 게시물을 인용한다. 밑줄 강조는 내가 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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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12월 4일 오전 10:33 

적당히들 하시면 좋겠습니다.



 왼쪽은 어제 사참위가 배포한 보도자료 가운데 일부입니다. "세월호가... 유일하게 해양사고 발생시 국정원에 보고하도록 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었고"라고 되어 있네요.

 

오른쪽은 세월호와 쌍둥이 배라고 불리던 청해진해운 소속의 오하마나호 내부에 붙어 있던 해양사고 보고 계통도입니다. 1기 특조위가 2015년 3월 26일 현장조사를 나가 촬영한 사진입니다. '국정원 인천지부'가 포함돼 있습니다. 당시 여러 언론사가 동행 취재를 했고 이걸 촬영하지 않은 언론사는 거의 없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뉴스타파도 촬영했고요.

일단 사참위는 이런 사실을 무시하고 세월호만이 유일하게 국정원에 보고하는 체계였다고 발표했습니다. 국정원과 세월호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의혹을 '강하게' 증폭시키려고 한 것이죠. 제가 늘 하는 얘기지만, 의혹 제기도 팩트에 기초해야 합니다. 일개 언론인이 이런 원칙을 갖고 있을진대 국가조사기구라면 말할 것도 없죠.

그렇다면, 왜 세월호와 오하마나호라는 단 2척에 대해서만 국정원이 보고 계통에 들어 있느냐, 적어도 국정원과 청해진해운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는 거 아니냐, 이런 질문을 하실 수는 있겠습니다. 근데 이 내용은 참사 초기에 저도 취재했고 1기 특조위도 조사했던 내용입니다. 결론도 같았습니다. 

세월호와 오하마나호는 제주와 인천을 논스톱으로 운항하는 '유이한' 여객선이었습니다. 국정원은, 2010년대 들어 탈북자들의 국내 유입 경로가 이른바 '동남아 루트'(북한 --> 중국 --> 인도차이나 반도 등 동남아 --(밀항)--> 제주도)로 바뀜에 따라 이 두 척의 선박에 대한 특별 관리에 들어갔습니다. 제주도로 밀항해 들어온 탈북자(물론 국정원의 목적은 '탈북 위장 간첩 검거'였죠)들이 수도권으로 한방에 올라올 수 있는 교통수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세월호와 오하마나호에는 탈북자 관련 사전 첩보를 입수한 국정원 직원들이 직접 승선해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국정원 직원들 타고 가면 식당 아주머니들이 밤참이며 술안주를 만들어 바치기도 했죠.

앞서 말씀드렸듯 이런 내용은 1기 특조위의 조사에서도 수집된 정보입니다. 1기 특조위 자료를 모두 이관받은 사참위도 모르고 있을 리 없는 내용이고요. 

사참위 여러분, 제발 팩트에 충실한 발표만 하시고, 본인들 시나리오에 불리한 정보라고 모른 척 넘어가는 식으로 일하지는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학자금 대출 탕감은 공정한 정책인가

 미국 진보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대학 학자금 대출 때문에 젊은이들이 빚더미 위에서 인생을 시작한다! 국가가 나서서 탕감해줘야 한다!'

별 고민 없이 미국 진보의 레파토리를 수입하곤 하는 국내 진보 계열에서도 많이 하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그게 과연 정의로운 소리냐, 이런 비판이 있습니다. 특히 미국의 경우 대학 진학률이 30% 정도밖에 안 되는데, 대체로 상류층과 어퍼 미들이죠. 그걸 국가가 세금으로 갚아준다? 좀 그렇죠?

앞장서서 '브라만 좌파'라는 용어를 만든 피케티가 그런 소리 하는 것도 웃기다는 지적. 학자금 대출 탕감은 '브라만 구제금융'(brahman bailout)이라는 신랄한 표현을 적어둘만 합니다.

 Zaid Jilani, Canceling Student Debt Would Be a ‘Brahmin Bailout’, Wall Street Journal, 2020년 11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