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논란을 가만히 짚어보면 가장 중요한 논점이 빠져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국내 축산 농가가 망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의견 차이를 보이지만, 축산 농가를 살리기 위해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극적으로 표현되지는 않고 있는 듯하다. 여론의 관심은 주로 광우병의 공포로 인해 거리에 선 10대들에 맞춰져 있다. 요컨대 문제는 국민 건강과 식품 안전이며, 그 다음은 이명박 정부의 통상 주권과 협상력의 부재라는 식이다.
이러한 종류의 찬성과 반대는 모두,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면, 지금처럼 농가의 붕괴 현상에 대한 대책 없이 수입 장벽을 열어도 좋다는 함의를 지니고 있다. 문제는 그러한 인식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국제적인 흐름을 거스르고 있으며, 국가 경제를 놓고 볼 때에도 타당하지 않고, 결국 국가 경쟁력 재고에도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이 진정 21세기형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핸드폰을 팔기 위해 농촌을 죽이는' 박정희식 개발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지난해 국제 곡물 시장에서 밀의 가격은 287퍼센트, 옥수수는 149퍼센트 상승하였고, 그 외 커피, 완두콩, 콩, 쌀 등 기본적인 곡물들 또한 그러한 추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식량 가격이 이처럼 천정부지로 오르는 이유에는, 확실한 것 하나와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 하나가 있다. 중국 내 육류 소비량이 증가하면서, 가축을 기르기 위한 사료 소비가 대규모로 늘어났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서구 선진국에서 바이오디젤용으로 옥수수를 대량 소비함으로써 식량 가격 폭등에 일조하고 있다는 주장은 현재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중이다. 아무튼 식량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덕분에 세계 최대의 쌀 수출국인 태국은 엄청난 이익을 보고 있다. 더구나 WSJ에서 운영하는 Marketwatch의 보도에 따르면 태국은 OPEC과 유사한 형태의 농업 카르텔을 구성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라오스, 버마, 캄보디아, 베트남, 태국이 그 구성원인데, 태국과 베트남은 세계 1, 2위의 쌀 수출국인 만큼 실제로 구성된다면 그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한국에서 먹는 자포니카와 동남아에서 기르는 안남미가 다르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전체적인 식량 가격이 오른다는 점에서 그 영향력을 무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미국에서 최근 가장 큰 주가 상승률을 보여주는 기업들이 농업 기업이라는 사실 또한 많은 것을 시사한다. theStar.com의 보도에 따르면, 모사익은 319퍼센트, 포타쉬는 140퍼센트, 몬산토는 105퍼센트씩 지난해 주가 상승을 기록하며 전례 없는 호황을 즐기고 있는 중이다. 원인이 뭐가 되었든지간에, 세계 경제의 기조는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애플의 상품과 마케팅이 방증하는 바와 같이, IT는 첨단 산업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문화 산업으로 변해가고 있는 중이다. 2008년을 넘어서는 이 시점에서 세계 각국이 가장 주목하는 산업은 다름아닌 농업인 것이다.
광우병과 관련한 사회적 논란이 '미국 소의 안전성'과 '통상 주권'에만 머물러있는 현실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안타깝다. 현재 돌아가고 있는 국제적인 추세를 고려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농촌을 이런 식으로 죽여서는 안 된다. '값싸고 질좋은 쇠고기'를 먹고 싶다면 한국의 축산 유통 구조를 개편해야지, 무턱대고 미국산 쇠고기의 문호를 열어젖힐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국제적으로 사료값이 엄청나게 오르고 있기 때문에, 미국산 쇠고기의 값 또한 앞으로는 결코 싸지 않을 터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농업 정책, 더 나아가 경제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명백하지 않은가.
광우병 논란의 양쪽 방향을 두루 살펴봐도, 우리의 '국민 감정'은 어디까지나 농촌을 황폐화시키는 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나의 가까운 친구들 중에도 '소수가 희생해서 온 국민이 값싸게 먹을 수 있다면' 같은 소리를 하는 사람이 없지 않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볼 때, 이미 공업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 닥쳐올 농업의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농촌을 죽이고 도시를 살리는' 박정희식 근대화의 2000년대 버전이 아닐 것이다. 우리에게는 '작고 강한 농업'이 필요하며,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국 내의 실정과 지역적 상황에 최적화된 무언가일 수밖에 없다.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느냐 마느냐 여부를 떠나서, 한국의 농업을 이대로 죽여서는 안 된다.
농업 관련된 가장 적절한 지적인 듯 합니다. 다들 농업 그 자체는 잊고있는 것 같아요. 여기서 민노당은 잘 하면 점수 좀 딸 수 있을거 같고...
답글삭제뭐 여하튼, IT가 문화사업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 공업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 완전히 동감합니다. 하지만 뭐 우리나라 대기업들, 아직 그런 시각도 부족한 것 같고, 그 놈의 문화라는게... 안습인 실정이니... 참 거시기하네요.
민주노동당이 선전하고 있는 동안, 의석이 없는 진보신당은 장외투쟁만 해야 하는 현 국면이 참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문화적인 차원의 결핍이 결국 문제로 되돌아온다는 말씀에도 동의하고요.
답글삭제FP 한국어판 편집장이 해야 할 일을 해주고 있군. ㅋㅋㅋ 강기갑이 날라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배가 아플 수밖에 없는 건 사실인 것 같구나. 물론 당연히 그를 지지하지만..... 그리고 이 글은 디시 진갤에 좀 퍼갈께.
답글삭제의석이 없으니 강기갑 혼자 훨훨 날아다니는 걸 손가락 빨고 보고만 있어야 하는 현실이지. 이 글에서 쓸까 하다가 말았는데, 진보신당의 광우병 관련 인식은 상당히 미흡한 수준이더라. 진갤에서 달리는 리플들도 지금 재미있게 보고 있음.
답글삭제낄낄. 우석훈박사 무시하나연? 그양반 한 명 밖에 없어서 문제겠습니다만.
답글삭제또 한가지 지적할 지점은, 이 글 만으로는 기업농의 확대냐 소농의 유지냐라는 문제에 님이 어떤 답을 하였는지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미국, 아니 서산 현대간척지처럼 초대형 기업농화를 통한 효율 강화를 시행하느냐, 아니면 소농의 유지냐(이건 제가 아는 바로는 노무현식 5도 2촌 아니면 생협 모델의 확대라는 두 가지 대안 속에서 다룰 수 있겠습니다)라는 두 유형의 답모두가 농업의 국내 총생산 비중을 줄이지 않는 방식의 접근일 수 있습니다.
답글삭제물론 농업 자체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점은 확실한데, 그 농업이 어떤 주체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수행되는지 역시 매우 중요한 다음 질문일 것입니다. 게다가 대농업(과 짜투리 땅 및 임야의 골프장) 또는 5도 2촌(과 별장, 그리고 역시 골프장)은 이미 국가에 의해 상당한 지원을 받고 있는 모델이기에, 정책대안을 말하려 한다면 이들 현행 모델에 대한 평가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답글삭제우석훈씨가 기존에 농업과 관련하여 많은 논의를 진전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광우병 파동에 대해서는 거의 '소고기'로 논점을 몰아가고 있더군요. 질문하신 정책적인 부분에 대해 구체적인 대답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제가 아니라 그분일 겁니다. 저로서는 현재 내놓은 것 이상의 발언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아무튼 좋은 지적이고, 농업의 주체와 형태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답글삭제저도 전세계적인 추세가 식량 자급률을 올리는 방향으로(일본만 아닌가??) 나가고 있다고 들었어요.나중에 심각한 식량위기가 올지도....
답글삭제수하이/이미 전세계적으로 식량자급율이 낮은 나라들은 심각한 식량위기가 닥쳤습니다. 얼마전에 티비에 나왔는데, 필리핀이나 아이티의 경우는 정말 난리도 아니더군요...
답글삭제위 두 분의 의문에 답변이 될만한 포스트를 새로 작성해서 올렸습니다. "식량 위기의 정치적 효과"를 참조해 주세요.
답글삭제태국에서는 수출 목적으로 자포니카 재배를 합니다. 자포니카의 교역량은 쌀 무역량 전체의 10%에 불과해서 가격 탄력성은 더 낮다고 하네요.
답글삭제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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