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5-09

식량 위기의 정치적 효과

이코노미스트의 뉴스 해설에 따르면, 식량 위기는 예상보다 심각한 정치적 효과를 불러오지 못했다고 한다. 30여개국에서 시위가 벌어졌는데 고작 아이티 수상 한 명이 사임했다는 것이다(강조는 인용자). 물론 그 대가는 비싸다. 현재 식량 수입국들이 대처하는 방식은 이집트나 파키스탄처럼 배급표를 발급하거나, 자국의 식량 수출을 제한하는 것 등인데, 후자는 태국과 같은 대규모 수출국이 카르텔을 형성하게끔 하는 유인 동기가 된다. 식량 수입국이건 식량 수출국이건 상관 없이, 누군가 자유무역 원칙을 깨기 시작한다면 그 파급 효과는 모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이 추세가 이어질 때 더 많은 정치적 저항이 다수의 국가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예측한다.

한국의 경우 정부가 나서서 '52개 생필품'의 가격을 통제하겠다고 나섰다. 동시에 미국산 쇠고기를, 거의 무조건적이라고 봐도 되는 조건으로 수입하겠다는 말을 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기껏 꺼내든 항변이 '싸고 맛좋은 미국산 쇠고기'였기 때문에 현재의 정치적 저항이 더욱 거세진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식량 생산량을 증대할 수 없다면 수출국과의 자유무역을 통해 시장 가격을 낮추는 것은 하나의 유용한 전략이 될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그것은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다.

한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대규모의 정치적 저항은 국제적인 식량 위기로 인하여 촉발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총체적인 불신이 광우병에 대한 대중적 패닉과 맞물려 벌어지고 있는 현상에 더욱 가깝다. 하지만 식량 위기라는 '조용한 쓰나미'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미리 수립하고 있지 않다면 앞으로 닥쳐올 정치적 위기는 더욱 거센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식량 가격이 예전에 비해 너무도 오르고 있기 때문에, 유전자 조작 식품에 대한 수요나 바이오디젤에 대한 선호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이론적인 결론이다. 하지만 '과학적'인 결론을 국민들에게 들이미는 한국 정부의 ('정치 과학'이라는 단어를 상정하자) 비과학적인 자세를 염두에 둔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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