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5-27

폭력 시위를 찾아서

어제 저녁 친구와 함께 광화문에 다녀왔다. 동화면세점 앞 광장과 청계광장 양쪽으로 촛불시위가 형성되어 있었다. 동화면세점 앞은 집회신고가 되지 않은 상태로 사람들이 그냥 모이기 시작한 곳이고, 반면 청계광장은 진보신당과 그 외 단체들이 주도하는 촛불문화제였다. 우선 동화면세점으로 갔다. 닭장차가 그 모퉁이를 빼곡하게 가로막고 있었고, 그 속으로 촛불시위하는 사람들이 들어앉아 있었는데, 그마저도 전경들이 빽빽하게 가로막고 있어서 광화문 사거리 방향에서는 보이지도 않았다. 표현의 자유라는 거창한 말이, 그야말로 물리적으로 차단되고 있었다.

그들은 10시 넘어서 집회가 야간집회로 규정될 때까지 아마도 그 자리에서 계속 대치할 것이므로, 나와 동행인은 청계광장 쪽으로 넘어갔다. 그때가 이미 9시 20분이 막 지나던 시점일 것이다. 촛불문화제는 막판으로 치닫고 있었다. 청계광장에는 그을린 파라핀 냄새가 그득했다. 여고생들이 서명을 받고 있었다. 나는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과 관련된 이 논의의 책임이 정부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당장 협상 무효화를 선언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에, 서명하지 않았다. 내 친구는 이름, 전화번호, 주소와 함께 서명을 남겼다.

곧 촛불문화제가 끝났다. 10시 정각에서 10분 모자란 시각이었다. 사람들은 다양한 방향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배후세력이 정말 있다면 이 많은 인원이 그냥 흐지부지 집에 가게 냅두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제각기 흩어졌고, 그들 중 일부가 방금 내가 보고 왔던 동화면세점 앞으로 향했다. 그들은 촛불을 손에 들고 전경들의 뒷통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10시 정각이 되자, 야간이 되었다는 경고 방송이 흘러나왔다. 어제 몸이 좋지 않았던 동행인은 앉을 자리를 찾았다. 면세점 앞 동상 위에 걸터앉았다가, 내려와 화단에 앉았다. 핸드폰과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사람이 나타나서 같이 찾아주었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10시 20분 무렵까지 별다른 일은 없었다. 별다른 일이 없었을 뿐 아니라, 동화면세점 앞에 모였던 사람들은 한줄로 전경 라인을 뚫고 해산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 속에서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그들은 자진 해산하고 있었거나, 적어도 그런 것 같은 모습을 연출했다. 적어도 1000명은 될 것 같았던 인원은 200명 이하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경찰의 포위망은 더욱 촘촘하게 얽혀들었다. 동화면세점 앞 광화문 버스정류장까지 전경들이 점거했다. 고개를 좌우로 아무리 넓게 돌려도 닭장차가 보이지 않는 곳이 없다. 그것은 바꿔 말하면 그들이 200명 가량의 시위대를 완전히 포위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차를 보았다.


(정체불명의 차량: 클릭하면 크게 보입니다)

아까까지 없던 차가 나타난 것을 보고 나는 경찰에게 물었다. "이 차, 뭐에 쓰는 건가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나이 많은 경찰이, 직업적인 미소를 얼굴에 띄고 대답했다. "최루탄인가요?" "아닙니다." "최루탄 아니면, 살수차인가요?" "대외비라서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운운하며 따져볼까 했지만 피곤한 하루였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 차를 본 순간부터 목구멍이 무겁고 따끔거리기 시작했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나도 그렇고 내 동행인도 그랬다. 공기가 갑자기 안 좋아졌다. 중국에서 황사가 몰려온 탓일 수도 있겠지만, 기체 분자가 확산되는 속도 등을 염두에 둘 때 내 목이 갑자기 아파온 원인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집회 참가 경력이 없기 때문에 저 차의 정체를 식별해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최루탄 발사 차량이 떴다고 단정짓지는 않겠다. 하지만 듀나의 영화낙서판에 가보니, 게시판 주인인 듀나도 "최근에 시내에서 최루탄 터진 일 없죠? 있었다면 뉴스에 났을 테니. 근데 왜 제 코가 계속 가렵고 재채기가 났던 걸까요? 눈도 아리고요. 딱 최루탄 현상인데. 제 코가 미래를 예측하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는 점을 기록해둘 필요가 있다("여러 가지...", 듀나의 영화낙서판, 2008년 5월 27일).

그 시점에서 우리는 자리를 떠났다. 마음같아서는 새벽까지 동참하고 싶었지만 그럴 여력이 없었다. 이미 그저께에도 광화문에 왔었고, 한참을 돌아다녔기 때문에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저께 그와 내가 겪은 일은, 본디 한 편의 다른 글로 작성되었어야 할 성격의 것이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하나의 큰 그림으로 짜맞추어지고 있기에 이 속에 넣도록 한다. 그제 우리는 광화문을 쏘다녔다. '폭력 시위'를 구경하기 위해, 혹은 동참하기 위해 밤 10시 무렵 광화문 역에서 내렸던 것이다. 그리고 근처를 샅샅이 뒤졌다. 전경은 무지하게 많았다. 우리는 광화문에서 청계광장을 지나, 다시 동화면세점 쪽으로 올라간 다음, 세종문화회관 뒷골목을 통해 독립문 방면을, 그야말로 경찰과 함께 들쑤시고 다녔다. 무전기를 하도 시끄렵게 켜놔서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다 들렸기 때문이다.

나와 그는 우리가 한 편의 부조리극에 들어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 사로잡혔다. 범인을 잡겠다고 이 많은 경찰이 돌아다니는데, 정작 불법 시위대는 보이지도 않는다. 광화문 쪽으로! 광화문! 이런 무전을 듣고 따라가보면 그 곳에는 전경만 있다. 독립문 방면, 독립문 방면! 이래도 마찬가지다. 워커 신은 전경들이 뛰기 시작하면 우리는 길 곁으로 비켜서야 했다. 나와 내 친구와 전경 모두가 폭력 시위를 찾아 밤 늦은 서울 거리를 헤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를 집에 바래다주고 돌아오고서야 그 도둑맞은 편지가 어디에 꽂혀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신촌에서 벌어진 대량 폭력 검거 사태가 일종의 토끼몰이라는 추정에 나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정권은 전경들을 공허하게 발굴림하면서 그들의 부아를 자극했고, 필요 이상의 병력을 동원함으로써 서울 중심가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했다. 신촌으로 몰려간 이들은 맞을 만큼 맞고 나서 닭장차에 실렸다. 진중권이 생중계를 한 것은 그 다음 날의 일이다. 어젯밤에는 진중권도 맞았다. 경찰이 사람을 괜히 때린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누군가가 전의경들이 사람을 때리게 한다. 폭력 시위의 배후 세력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가 폭력 시위를 찾아 헤매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나는 내가 어제 목격한 것이 최루탄 발사 차량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경찰은 계속 강경 진압 노선을 고수할 것이다. 분노에 사로잡히고 공포에 휩싸인 군중들이 행여 돌맹이라도 치켜든다면, 경찰은 때가 왔다는 듯이 더욱 강경한 진압 전술을 펼칠 터이다.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일들에 대한 나의 감정은 매우 양가적이다.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인해 혹여라도 사망자가 발생하거나, 그에 준하는 큰 부상이 생긴다면, 몇 명의 노동자가 분신을 하건 두들겨 맞건 눈썹 하나 깜짝하지 않던 한국의 '시민'들도 뭔가 반응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경찰이 그런 방향으로 집회를 몰아가고 있다. 운동권이라면 학을 떼는 '시민'들의 '리좀'은 경찰의 폭력 앞에 더 없이 취약하다.

하지만 이 집회의 결말이 그러한 방향으로 향하지 않을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이렇게까지 뜨거워진 시위가 흐지부지 식어버린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한국 사회의 민주적 역량의 부족을 드러내는 일일 것이지만, 돌이킬 수 없는 폭력이 발생한 후에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시민'들이 입 싹 씻어버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집회에서 맞아죽는 순간 그는 운동권이 되고, 시민들은 등을 돌리는 것이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가능성 중 그 무엇도 실현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 밤이 지난 후,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다시 광화문에 갈 계획이다. 오늘 밤에는 황사 섞인 비가 내린다고 한다. 사람들이 숨고르기를 할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앞서도 말했지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정책적인 문제에 대해 반대 구호를 외치는 것은, 아직 나 스스로 동의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연행자를 석방하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단지 길거리에 서서 팔뚝질 몇 번을 했을 뿐인 사람들을 44시간씩 경찰서에 붙잡아두고 있는 것은 중대한 인권 침해이다.

물론 경찰은 시위가 사그러든 후에도 폭력 시위를 찾아 헤매고 있을 것이다. 나와 내 동행인 또한 얼결에 그들의 뒤를 따라다닌 경험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공개된 공간에서 '연행자를 석방하라'는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폭력 시위 가담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이다.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찾아다니던 파랑새처럼, 폭력 시위도 우리 안에 있는 것이다. 두 개의 과제가 각각 수요일과 금요일 마감으로 있다. 가능한 한 빨리, 폭력 시위를 찾아서, 새장을 열러 가야겠다.

댓글 15개:

  1. http://blog.naver.com/zagohaza?Redirect=Log&logNo=15844154
    본지 하도 오래되어서 --;; 긴가민가했지만, 아무래도 최루탄 장착 차량이 맞았던 것 같아요.
    ---나는 8,90년대를 겪지 않은 사람들조차에게도 그시절의 기억이 '여전히' 거대한 피로와 공포로 작동하는 지금의 상황이 좀 신기하게 느껴져요. 아프리카라든가 아고라 같은 데서 올라오는 글들은 518과 지금을 비교하며 흥분하는 내용이 많다는 것에 사실 좀 충격을 받기도 했고(솔직히 말하자면 그 무지함에 -_-;). 나는 1996년과 97년 사이에 아마 90년대 학번 끝물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가장 많은 집회가 한꺼번에 일어났던 시기를 겪으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경험'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대학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집회에 나갈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같은 학교 동갑내기 학생이 시위 도중에 죽고 한총련 사람들이 그 지경에 처하는 걸 보면서, 그 전까지 나와 아무 관계 없었던 애들이지만 이런 상황에 처해있는 걸 일단 보고 난 다음에는 마땅히 정당하게 항의하고 노여워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때의 나처럼, 설령 이 집회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의미에서의) 실패로 돌아가더라도, 이 며칠 동안의 부조리한 상황의 반복을 겪으면서 분명 무의식적으로라도 학습이 될 거라고 믿어요. 그래서 80년대의 기억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무엇으로 애써 치부해버리기보다, 거기서 한발자국 더 나아갔고 변화할 수 있었다는 자신감으로 남을 거라고 믿고 싶어요.
    ---이 상황이 어떤 식으로든 정리된 다음 선결되어야 할 사항은 집시법 수정 작업이 아닐까 싶어요.
    ---술마시면서 입으로만 떠들기보다, 별로 한 일은 없더라도 이틀 연속 광화문에 나가길 잘했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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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오늘 경찰이 '닭장차 탑승'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던 모습으로 미뤄보건대, 잡아넣으려고 작정을 하고 있다는 게 더더욱 명백해보여요. 사람들 시청광장으로 몰아넣고 광장 위에서 라이트 끈 다음 확성기로 미란다 원칙 고지하고 차에 몰아 실었다고 하니까. 포탑은 장착 안 한 페퍼포그 차량 꺼내서 몰고 다니는 것쯤이야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겠죠.

    사람들이 무력감에 빠지는 대신 분노를 느끼는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늘 그렇듯 인터넷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얼마 없고, 그중 직접 거리에 나서는 사람은 더욱 없으니 오늘에 대한 분노가 얼마나 큰 파장으로 이어질지는 더욱 두고 봐야 할 것 같아요. 이런 일들을 계기로 시민이라는 이름의 한국 중산층들이 노동자들에게 어느 정도의 연대의식을 가지게 될지도 사실 거의 미지수에 가깝고. 물론 이 모든 일들은 이 사건에 참여하거나 지켜보는 이들에게 큰 경험이 되겠지만, 방금 부안 시위 당시 전경들이 살인적으로 진압하던 사진을 보고 난 터라 '시민'들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상태에요.

    집시법을 수정해야 하는데... 국회의 3분의 2가 한나라당+친박연대+자유선진당이잖소. 게다가 자유선진당과 창조한국당은 교섭단체로 한 몸이 되었고. 설령, 만에 하나라도 이명박을 하야시키고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과정을 진행시킬 수 있다고 해도, 의회가 저모양이니 온갖 악법들이 통과되는 최악의 4년이 될 것임은 분명한 일이죠. 상상하고 싶지도 않아요.

    현장을 직접 보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참조하는 그런 게 중요한 거 같아. 뉴스로만 보고 있으면 쓸데 없는 토론이나 하면서 힘 빼게 되죠. 업무와 학습 등의 고비를 넘기고 다시 같이 광화문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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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저 차는 나도 잘 모르겠군. 보통 저렇게 특이하게 생긴 놈들은 방송용이거나 살수차량이었는데 색이나 모습에 변형이 있던 것으로 기억하거든. 위쪽에 달린 것이 뭔지를 좀 더 자세하게 볼 수 있다면 더 추측할 수 있을거 같은데, 위에 달린게 방송용 확성기라고 하기엔 너무 작고 초라하고.. 살수차량이라고 하기엔 수도꼭지가 없는거 같고.. 검은색인걸 보면 확실히 최루탄 관련 차량은 맞긴 한거 같은데..

    다만, 과거에 최루탄 등의 용도로 만들어진 차량이 다른 용도로 개조되는 경우도 있어서, 뭐라고 확실히 말할 수는 없겠지. 좀 더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면.. 채증을 목적으로 하고 있거나 아니면.. 설마 Jam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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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지나가던 93학번입니다.
    기묘하리만치 아름다운 글입니다. 달리 표현할 며리가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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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요며칠 많은 시위관련글들을 읽었는데..
    담담하고 조용한 글이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되는 글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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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이상한 모자/ 자네가 모른다니, 그야말로 경찰의 신 병기인 건가. 광화문 근처에서 핸드폰이 잘 안 터지고 또 안 받아진다는 속설이 떠돌고 있는 걸로 봐서, 정말 Jamming을 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 비록 길게 솟아오른 알루미늄 안테나 따위는 없지만 말야.

    익명/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익명/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하는 시위니까요. 서울 한복판에서 여중생을 연행하는 모습까지 보게 될줄은 몰랐습니다.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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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위에 붙은걸로 보면 살수차가 맞는듯.

    http://imgnews.naver.com/image/001/2005/12/04/kp1_2051204s2261.jpg

    아마 수도꼭지가 뒤로 돌아가있지 않나 싶은데. 다만 일전에 경찰이 최루액 섞은 살수차 사용을 검토하고 있다는 뉴스를 본 일이 있고 또 울산 플랜트 등의 집회에서 묘하게 미끌미끌한 화학 물질이 들어간 살수차가 등장했던 것으로 봐서... 무슨 물이 나올지는 알 수가 없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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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아항, 그렇군여. 근데 왜 까만색을 칠하고 다닐까. 나름대로 야간이라고 신경 쓰고 있는 건가. 그게 사실이라면 좀 한심한데. 아무튼 냄새가 났던 건 확실해. 무슨 발상인지 알 길은 없지만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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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78년 쯤이라 기억하는데...
    친구와 종로5가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전경(그때도 전경이었나?)둘이 학생증을 보자하여 학생이 아니다하니(책을 들고 있었음)무조건 닭장차에 타라해서 영문도 모르고 한발을 올렸는데 지나던 아주머니(지난 후 생각하니 구세주)가 전경에게 조카인데 왜 그러냐? 하시니 그냥 가라하더군요, 하여 아주머니와 지하철역까지 갔습니다.
    아무래도 역사가 30년을 거슬러가는 듯 합니다. 이사태를 어찌해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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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경찰들의 강경진압은 사실 꾸준히 지속되어온 일이지만 '시민'들에게까지 노골적으로 폭력을 행사한 건 이례적인 일인듯 합니다. 저는 이 사태가 좀 더 정치적으로, 또한 생산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라는데 현 국면은 전혀 그렇지 않죠.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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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거의 컴맹 수준이라 이 글이 잘 올라갈지 모르겠네요.

    저 차량은 페퍼포그라고 하는 겁니다. 80년대 시위 늘상 등장하던 물건이지요. 머리 위에서는 일명 지랄탄이라고 하던, 최루탄이 연발로 발사되곤 하였습니다. 최루탄이 발사되던 곳은 차량의 머릿부분 돌출된 곳이고요. 그런데 저 물건이 왜 저기에 등장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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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글이 너무 좋네요. 출처 밝히고 개인 홈피로 퍼가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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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jong-i-gong/ 음, 그런가요? 위에 이상한 모자가 달아놓은 사진을 보니 살수차이기도 한 것 같고, 또 말씀을 듣고 보니 패퍼포그인 것 같기도 하네요. 아무튼 저런 물건이 현장에 나와있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여차하면 험한 꼴 연출하겠다는 의사 표현이죠.

    익명/ 네,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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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90년대 후반, 00년대 초반에 집회에 몇번 나갔었는데, 페퍼포그가 맞는 것 같습니다. 기억이 희미하지만, 살수차는 보통 호스가 달려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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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페퍼포그건 살수차건, 오늘 저녁과 밤에 또 볼 수 있으리라는 사실은 명백합니다. 다시 보게 되면 좀 더 자세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다른 분들도 광화문이나 시청 쪽으로 나와보시는 게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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