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12

그날, 그리고 그날 이후

어제 쉬었고 오늘도 쉴 예정이다. 아마 오늘까지도 작은 규모의 촛불집회만이 진행될 듯하다. 대책회의는 10일 이후의 상황에 대해 똑부러지는 대책을 세워놓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소수의 시민들이 KBS 경영권 흔들기에 맞서기 위해 방송국을 두르는 인간 촛불 띠를 만들자고 주장하고, 그에 따라 현장에 나가고 있지만, 아직 숫자가 부족하다. 게다가 정연주 사장 퇴진을 요구하던 KBS 노동조합과 손발이 맞지 않는 것 또한 사태의 해결을 어렵게 한다. KBS 노동조합과 정연주 사장간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많지 않으므로 섯불리 판단을 내리지는 않겠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6월 10일을 기점으로 촛불시위가 제2라운드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이다.

6월 첫째주, 그리고 10일까지 광화문에서 발견되었던 지리멸렬한 분위기는, 사실 대책회의가 청계광장에서 진행하던 '촛불문화제'가 거리로 나와서 널부러진 것이다. 경찰은 청계천의 촛불문화제는 허용하겠지만, 집회 신고 없이 이루어지는 가두행진은 엄단하겠다는 입장을 예전에 표명한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합법'과 '비폭력'을 외치며 어깃장을 놓는 패배주의자들의 모습을 전혀 납득할 수 없다. 흐지부지 무너질뻔한 촛불시위를 지금의 규모로 키운 것은, 안전하고 평화롭게 문화제를 즐기던 다수의 '일반 시민'들이 아니다. 경찰이 때리면 맞겠다는 각오로, 연행하면 닭장차 투어를 떠나겠다는 발상으로 서울 시내를 쏘다니던, 1000명이 채 안 되던 또라이들에 의해 6월 10일의 폭풍이 몰아치게 된 것이다. 우유를 휘저어야 버터가 나온다.

"내가 만든 청계광장에서 학생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던 이명박의 말을 떠올려보자. 그는 진심으로 자신이 '문화제 참가자'들에게 일종의 무대를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보자면, 광화문 사거리에 모여앉아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는 100만여명의 인파를 이명박이 두려워했을 것 같지도 않다. "내가 컨테이너를 쌓아서 임시로 만든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들이 초여름밤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해도 이상할 게 없는 그런 인간이 이명박 아닌가. 그날 모인 사람들이 괜히 모인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했다. 명박산성을 향해 긴 행렬로 움직이던 스티로폼 박스를 보며 내가 환호성을 지른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저 위에 올라 방송장비를 가져다 놓고 이명박에게 소리를 지르면, 이쪽은 즐겁고 저쪽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을 터이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그런 일은, 진압이 불가능한 이른 시간대에 이루어져야 했다.

어제 쉬고 오늘도 쉬는 이유는 몸이 피곤해서가 아니다.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인간들인양 발악을 하고 있던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의 횡포에 넌더리가 났기 때문이다. 그날의 상황을 제대로 모른 채, 마치 사실을 알기 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인권단체연석회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그 스티로폼을 공수해온 사람들이 연석회의이고, 그들의 기본적인 발상은 컨테이너 위에 올라가 연단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비폭력에 환장한 우리의 '일반 시민'님들께서 두 차례에 걸쳐서 그 시도를 좌절시켰다. 만에 하나 불이라도 붙으면 어쩌냐, 컨테이너 박스 위에 올라가는 행위가 폭력 시위로 변절될 가능성이 정말 0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이따위 논리를 들이댔다고 하는데 보면 알겠지만 이건 전부 반대를 위한 반대의 레퍼토리일 뿐이다. 박스에 올라가는 것이 가능하다 해도 청와대 쪽으로 내려갈 수는 없다. 그것은 1초만 생각해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은, 스스로를 '일반 시민'이라 칭하면서도, 진정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상식을 결코 믿지 않는다.

아무튼 새벽 1시가 넘어서던 시점에 다시 스티로폼 박스가 공수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 운송대에 끼어들어서, 무대 가까운 곳까지 진출했고 열심히 박스를 날랐다. 이 지점에서부터 연석회의의 정치적 패착이 이어졌다. 광장에 모여있던 시민들 중 3분의 2 이상이 스티로폼을 쌓아서 컨테이너 위에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막고 있는 한 줌의 집단이 있다. 그렇다면 연석회의는 그 한 줌의 '시민'들과 어설픈 합의를 봐서 연단을 쌓고 그 위에 올라 자신들의 한풀이 발언을 늘어놓는 대신, 바로 그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에게 이 사태의 책임을 물었어야 한다. 연석회의는 얼렁뚱땅 자유발언을 시작하였고, 큰 기대를 걸었다가 흐지부지 끝나는 모습을 보고 실망에 빠진 시민들에게 '아침이슬' 따위 노래나 부르자고 권하며, 마치 어린애 사탕 줘서 달래는 듯한 말투로 일관했다. 명박산성을 점령하지도 않고 그 뒤에서 아무리 어청수 욕을 해봐야 그게 무슨 소용인가? 백 마디 말보다 하나의 행동이 낫다. 1시에 명박산성을 점령했더라면 그날의 열기가 지금처럼 식어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얼렁뚱땅 자유발언이 시작되었다. 그토록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면 무엇보다 먼저 의사진행발언을 해서, 사태를 안정시킨 후에 자유발언을 하거나 말거나 해야 한다. 하지만 연석회의는 어려운 상황을 해결하기보다는 대강 봉합하고 넘기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여러분, 꼭 오늘이 아니어도 이 연단을 쌓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힘을 보여준 거죠, 그렇죠?" 연단에 올라온 사람이 이따위 질문을 던지는 것은,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반칙이다. 나는 그 어린애 달래는 듯한 말투가 역겨웠다. 단상으로 달려간 다음 항의했다. 당신들이 정 자유발언을 하고 싶으면, 당신들과 비슷한 말 하는 사람들만 올리지 말고, 이 연단 저쪽에 붙여서 쌓자는 사람도 자유발언 시키라고. 50대로 보이는 한 아저씨가 자청했고 나는 한 발 물러나 내 친구와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운동권 말투가 베어있는 한 여성이 연단에 올라와 '좌파로서 내가 겪어온 설움'등을 이야기하자, 사람들은 '닥쳐라', '내려와' 등을 연호하며 분노를 표현했다. 그러자 그 발언자는 '내가 발언하는데 닥치라고 하는 이게 민주주의인가요?'라고 울부짖었다. 물론 대중들의 태도는 폭력적이고 비민주적이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까지 된 책임 중 일부는,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 스티로폼의 적하를 막고 있던 비폭력 머저리들을 제어하지 못한 연석회의에게 돌아가야 한다. 스티로폼이 이동하는 것을 본 순간, 명박산성을 점령하고 싶다는 대중들의 욕망은 눈을 떴다. 그것을 말릴 수 없다면, 그 욕망이 좌절된 분노가 자신들에게 향하지 못하도록 최소한의 방어라도 했어야 한다. 하지만 연석회의는, 앞서 내가 미리 짜증을 낸 바와 같이, 사람들을 달래려 들었고 그러한 말투와 태도가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이순신 동상 앞의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창의적인 발상을 꺼내든 연석회의를 비난하지 않겠다. 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해법을 내놓았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현명하지 못하게 대응한 것 뿐이다. 6월 10일, 정말 비난받아야 할 자들은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 세 줄로 버티고 있던, 비폭력에 환장한 자발적 노예들이다. 다시 한 번 말하는데, 자발적 노예들이다. 컨테이너 박스에 올라가는 일이 폭력이라고 주장하며 새벽 3시 4시까지 버티던 그들은, 자발적 노예들이다.

만약 간디가 그 꼴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그 '자발적 노예'들의 비폭력 운동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비폭력 불복종 운동의 상징인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을 떠올려보자. 버스 앞쪽에는 백인들만 앉을 수 있는 것으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상황이고, 그것은 심지어 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만약 어떤 흑인이 그 선을 침범한다면 그러한 행동은 경찰에 의한 연행과 백인들의 폭력을 불러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6월 10일에 발악을 하던 '비폭력' 시민님들은 '그러한 행동은 백인들의 폭력을 불러올 수 있으므로 비폭력 시위가 아니다. 나는 반대한다'고 말해야 한다. 하지만 로자 파크 여사는 백인 전용석에 앉았고,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흑인들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흑인들은 일치단결하여 버스를 타지 않았다. 그리고 이겼다.

비폭력은 불복종과 함께하지 않는 한 저항의 수단이 아닌 굴종의 표현이 되어버린다. 광화문 광장에서 축제를 즐기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자신들의 창의력을 동원해 권력의 벽을 넘겠다는 사람들의 행동에 '비폭력'이라는 단어를 들이밀며 어깃장을 놓는 것은 옳지 않다.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의 횡포는 차라리 님비(NIMBY)에 가까웠다. Not In Myong-Bak's Yard, 이명박이 만들어준 광화문 광장에 폭력적인 스티로폼이 웬말이냐, 웬말이냐. 조중동에게 빌미를 줄 수 있는 일체의 행동을 자제하고, 다만 조용히 앉아서 술 마시며 노래나 부르다가 집에 가라.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비폭력이다. 조중동에게 빌미를 주니까 안되고, 경찰을 자극할 수 있으니까 안되고, 내가 상상하는 평화시위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니까 안된다. 이토록 진한 무식은 그 자체가 벌써 폭력이다.

비폭력 패배주의자들의 '조중동 빌미론'은 마치 고르기아스의 3단계 회의주의론을 연상시킨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1. 비폭력 불복종 시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2. 설령 존재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해낼 수는 없다. 3. 우리가 해낼 수 있더라도 조중동은 왜곡해서 보도할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명박과 경찰이 허용한 범위 내에서, 조중동의 눈치를 봐가며 거리에 나앉아 빈둥거리다가 쓰레기 잘 치우고 집에 가는 것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국민을 협박하는 정부에 맞서, 정부를 협박하는 국민이 되기 위해 거리에 서는 게 아닌가?

그나마 새벽 5시에 컨테이너 박스에 올라 일제히 깃발을 흔들기라도 했으니 망정이지, 그마저도 못 했다면 한 줌의 비폭력 얼간이들때문에 촛불시위 전체에 찬물이 끼얹어질 뻔했다. 물론 이미 광화문의 분위기는 많이 식었다. 시위를 청계광장 바깥으로 끌어낸 열성 분자들은, 이제 KBS 앞에 모여 이명박 정권의 방송 장악 기도와 맞서고 있다. 예전에 이런 짓을 할 생각을 못한 까닭은, 광화문이 아닌 다른 곳에서 경찰에게 폭력 진압당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신촌 사태가 주요 언론에 의해 거의 보도되지 않은 선례를 보건대, 처음부터 여의도로 나가지 않은 것은 현명한 판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6월 10일을 넘긴 후 군중들은 빠져나갔고, 대책회의는 내일 집회 준비 외의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지만, 경찰들이 시위대를 함부로 때려잡을 수도 없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나는 KBS 앞에서 시위하는 이들의 자발성을 지지한다.

그날 이후 상황이 묘하게 돌아간다. KBS 노조는 지탄을 받고 있지만 화물연대는 전례 없는 호응 속에 13시 자정을 기해 총파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15일부터는 민주노총도, 투표를 통해 파업에 들어간다. 그에 대해서도 시민들의 지지와 호응이 뒤따라야 한다. 왜 이명박은 100만명이 모여도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을까?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100만명이 어차피 내일 다들 출근할 사람들이라는데 있기도 하다. 축제의 형식을 지닌 투쟁이 아닌, 투쟁의 형식을 지닌 축제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을 위정자가 두려워해야 할 까닭이 없다. 하지만 파업은 다르다. 파업을 벌이면 정말 국가 경제가 멈추고, 경제에 타격이 오며, 따라서 CEO 대통령의 입지는 더욱 좁아진다. 꿩 잡는 게 매고, 쥐 잡는 게 파업이다.

민주노총에 가입한 사업장이 아닌 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이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민주노총의 집회 현장에서 촛불시위를 벌임으로써, 경찰들이 과격진압을 하기 껄끄러운 상황을 연출할 것. '일반 시민'들에 대한 대응보다 몇 배 더욱 강경한 태도를 보일 것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다. 왜냐하면 기껏해야 몇 시간 도로 막히고 마는 '일반 시민'들의 축제와는 달리, 파업은 길면 몇 달 넘게 국가 경제가 막혀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촛불시위를 이어나가는 것은 파업 노동자들을 도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둘째, 시청 앞 광장에서 나눠주는 각종 단체의 홍보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배포할 것. 6월 10일 해봤는데 은근히 반응이 좋다. 나는 수돗물, 전기, 가스 민영화에 반대하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 홍보물이 마음에 들어서 그것을 친구와 함께 수십장 가져다가 행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KTX 승무원들의 파업 홍보물도 있길래 그것을 서른 장 떼어서 여기 저기 돌리고 있었는데, 서대문에서 돌아오는 한 일행들에게 나누어주자 그 사람들이 대답하길, '우리 철도노조에요'라고 하더라. 사회적인 이슈는 이미 광장 위에 충분히 올라와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들을 퍼뜨리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셋째, 창의적인 집회를 위해 늘 생각하고 연구할 것. 비록 매우 늦은 새벽 5시에 벌어진 일이지만, 명박산성의 위에서 깃발을 흔든 것은 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스티로폼을 나르는 시민들 속에서, 나는 고전 컴퓨터 게임 레밍스를 떠올렸다. 앞으로도 이런 시도가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 상상력을 억누르는 비폭력에게는 냉소와 경멸로 맞설 생각이다. 우리는 더 똑똑해져야 하고, 더 실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전국적으로 100만명이 모인 것보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항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사건은 결국 하나의 원인에 기인한다. '비폭력'이라는 단어로 포장된 '일반 시민'들의 패배주의가 오마이뉴스 등의 진보 상업주의와 만나, 축제의 형식을 띈 투쟁이 아닌 투쟁의 외양을 흉내내는 축제를 낳았고, 그래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으며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파업이 시작되고 있다. 그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도 전례 없이 높다. 촛불시위대는 파업 노동자들의 옆에서, 촛불을 들고 사수대를 뛰어야 한다. 그들이 말하는 바 '공공성의 복구'를 실어 나르는 신문팔이 소년 소녀가 되어야 한다.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생각하고 토론하며 철옹성을 넘어설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할 일이 너무도 많다. 비폭력 패배주의자들과 다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능동적이지 않을 사람들은 이명박이 만들어준 청계천으로 돌아가라. 불복종 없는 비폭력은 투항일 뿐이다. 내일이면 본격적으로 제2라운드가 시작될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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