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17

레오 스트라우스의 경우

이데올로기적 차원에서 철학 논쟁이 진행되는 한 사례로 레오 스트라우스의 경우를 살펴보자. 철학박사 강유원 씨가 《부활하는 네오콘의 대부 레오 스트라우스》에 대해 쓴 서평의 내용을 참조하자면, 스트라우스와 그 제자들 즉 스트라우시언들은 "플라톤의 《국가론》에 대한 비밀스러운 독해에 근거하여 무식한 대중은 그냥 그렇게 살게 내버려 두고 똑똑하고 잘난 엘리트가 지배해야 한다는 정치철학으로 무장한" 자들이다. 문제는 고전의 권위에 기대어 자신들 나름의 독해를 형성하고 그것을 이데올로기의 형태로 전환시켜 유표하는 집단과 정면 대결을 펼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데 있다.

그것은 플라톤의 《국가론》을 읽고 조지 W. 부시를 철학자라고 우기는 것처럼 간단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개별적인 텍스트의 세밀한 맥락에 대한 조심스러운 접근과 침탈을 통해 그 과정이 수행된다. 2005년 6월 무렵의 독서 기록을 뒤져보니, 레오 스트라우스가 플라톤의 《향연》에 대해 강연한 내용인 《Leo Strauss on Plato's Symposium》(Univ. of Chicago Press, 2001)의 몇몇 구절에 대한 의구심을 표현한 내용이 나온다. 그것들은 지금도 의미가 있는 것 같아서 블로그에 공개한다.

And I said, "When we were still children, when Agathon won with his first tragedy, on the day after he and his chorus had offered the sacrifice for victory." "So it was after all," he said, "a very long time ago, it seems. But who narrated it to you? Or did Socrates himself?" "No, by Zeus," I said.(173a5-b1)
20-21p, 《Leo Strauss on Plato's Symposium》.

그래서 내가 대답했지. "우리가 아직 어린아이였을 때, 아가톤이 그의 첫 작품으로 비극 경연 대회에서 우승하여 합창단원들과 함께 신에게 감사의 제물을 올리며 축하연을 열었던 날 바로 다음 날이었다네!"
"그렇다면 그것은 아주 오래된 일인 것 같구먼! 그러나 누가 그 사실을 자네에게 이야기해준 것인가? 소크라테스님 본인인가?"하고 그가 물었지.
"맙소사, 소크라테스님이 아니라" 나는 말하길,
39쪽, 《향연-사랑에 관하여》, 박희영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3년)


명확한 이해를 돕기 위해, 레오 스트라우스가 직접 번역한 《향연》의 한 구절과, 국내 연구자에 의해 한국어로 번역된 같은 구절을 병기해 놓았다. 본격적으로 내용에 들어가기 앞서 배경 지식을 조금 알아보자.

《향연》은 액자식 구성 속에서 또 액자식 구성을 취하는 독특한 구조를 지닌 작품으로, 여기서는 '나'로 지칭되는 아폴로도로스가 익명의 친구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의 향연 참가기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그 향연 참가기 또한 소크라테스가 직접 아폴로도로스에게 말해준 것은 아니고, 아리스토데모스라는 소크라테스 추종자를 통해 전해들은 것을 옮기는 것이다(복잡하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그 향연에서 '사랑'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디오티마라는 여사제의 입을 빌어 전달한다. 그러니 소크라테스의 이름이 나오지만 본인이 직접 말하고 있지는 않다.

여기서 굵은 글씨로 강조된 부분을 살펴보자. 박희영이 그저 '맙소사'라고 옮긴 대목을, 레오 스트라우스는 'No, by Zeus'라고 번역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그리스어 읽는 법을 익히지는 않아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수는 없다(혹시 그리스어를 읽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 해당 부분의 원문 주소를 링크해 놓기로 한다). 하지만 방금 링크한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영문 번역에서도, 해당 부분을 “Goodness, no!”라고 옮기고 있는 것을 볼 때 스트라우스의 번역은 번역이 아니라 (아마도 직역을 통한) 일종의 창조적 해석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스트라우스는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해석을 덧붙인다. "May I say only this: God forbid that Socrates would have told the story." '하느님 맙소사'와 같은 감탄사를, '신'에 의해 소크라테스가 향연에 대해 말하는 것이 금지되었다는 의미로까지 격상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해석'은 한 두 개가 아니다. 네 페이지만 넘겨봐도, 그리스어의 단어 'agathon'을 곧장 beautiful로 번역한 후, 그에 따라 부가적인 설명을 덧붙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치밀한 과정을 통해 《향연》은 레오 스트라우스가 원하는 '바로 그 텍스트'로 조금씩 변해간다.

사실 나는 당시 그 책을 끝까지 읽지 않아서, 레오 스트라우스가 《향연》에서 어떤 함의를 이끌어냈는지까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당시 《국가》를 콘포드(F. M. Cornford)와 백종현의 번역을 병행해서 읽고 난 후, 레오 스트라우스에 대한 궁금증도 확인할 겸 《향연》도 읽을 겸 그 책을 집어든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처음 인용한 부분에서 의아한 생각이 들어, 대조해서 읽기 위한 한국어판을 구했고, '역시, 뭔가 수상한 게 있다!'는 작은 발견을 했기 때문이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과 최소한의 성의가, 고전 텍스트 및 철학적 지식의 왜곡을 통한 이데올로기 투쟁에 맞서는 방식도 아마 이와 같을 것이다. 레오 스트라우스의 설명만을 통해 《향연》을 알게 된 시카고 대학교 학생의 플라톤 이해와, 잘 읽히는 한국어 번역본과의 대조를 통해 그 책을 접한 나의 플라톤 이해는 다를 수밖에 없다. 플라톤의 정치철학을 '어떤 정치철학'으로 받아들이고 있을지, 그리하여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에 따라 엘리트는 모든 정보를 인민에게 개방할 필요가 없다'는 식의 결론에 동의할지 동의하지 않을지도 바로 그 시점에 결정될 수 있다.

물론 나는 고대철학에 대해 그 이상의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번역본을 대조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완전하지 않다. 그리스어 원문에 대한 나의 해석을 제시하지 않는 한 나와 레오 스트라우스는 《향연》의 해석을 놓고 '논쟁'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종류의, 약간의 의심을 곁들인 관심을 더 많은 사람들이 품고 있다면, "플라톤의 《국가론》에 대한 비밀스러운 독해에 근거하여 무식한 대중은 그냥 그렇게 살게 내버려 두고 똑똑하고 잘난 엘리트가 지배해야 한다는 정치철학으로 무장한" 학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여지는 훨씬 더 좁아질 것이다.

올바른 과학적 지식이 미신과 선동에 맞서 싸우는 동력이 될 수 있다면, 인문학적 지식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자신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철학자의 이름이나 들먹이는 그런 종류의 '관심'이 아니라, 알 수 있는 만큼 알아보고 모르는 것에 대해 겸허해지는 그런 종류의 '지적 탐구'가 일반화되어 있어야 한다. 나는 내가 탐구할 수 있을 만큼 레오 스트라우스에 대해 그의 저작을 통해 알아보았고, 뭔가 이상한 방식으로 자신의 정치철학을 구성하고 있다는 혐의를 지니게 되었다. 레오 스트라우스에 대해서는 여기까지 말할 수 있다.

댓글 5개:

  1. 전체적인 논지에 동감하지만, 언급하신 문장에 대해서는 사실을 선명하게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원문 173b1에 "ou ma ton Dia" 라는 문장이 있는 것으로 보았을 때 'No, by Zeus.'라는 번역은 가능한 것 같습니다. (저도 그리스어를 읽지는 못하지만 단어만 비교했을 때 그렇습니다)
    이렇게 번역한 사람이 레오 스트라우스가 처음이 아닙니다. 제가 확인해보니 프랑스의 Dacier 와 Grou가 번역한 1873년판에는 'Est-ce de Socrate ? - Non, par Jupiter!' 라 번역되어있더군요.( 주소/ http://www.mediterranees.net/histoire_grecque/socrate/banquet.html) 이 문장을 영어로 번역한다면 레오의 번역과 유사합니다.
    이러하기에 언급하신 내용은 레오 스트라우스의 창조적 번역이라기 보다는 직역의 하나로 보는게 합당한 것 같습니다.레오의 번역과 다른 번역어로 언급하신 'Goodness'나 '맙소사'는 출발어보다 도착어의 현재성을 더 중요하게 여긴 의역으로 보아야겠죠.

    하지만 "No, by Zeus"에 대한 레오의 해석은 노정태씨와 똑같은 의심을 제게도 품게합니다. 제가 언급한 불어 원문 'Non par Jupiter!'는 일반적으로 "쥬피터에 맹세코 아니야"라고 읽힙니다. "No, by Zeus"도 그런 맥락에서 해석한다면 결국 '맙소사', 'Goodness'와 일맥상통하겠죠.

    그런데 'zeus에 의한 no'라고 해석한건 너무 과한 해석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 덧붙이자면,링크로 걸어놓으신 사이트의 자료에 오류가 하나 있었습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저도 그리스어를 독해할 수는 없습니다만, 단어만 비교해서 보았더니 노정태씨가 링크로 걸어놓은 사이트에선 그리스어 원문 173b1에 해당하는 내용을 영문으로는 173a의 하부로 편입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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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자신이 없어서 "스트라우스의 번역은 번역이 아니라 (아마도 직역을 통한) 일종의 창조적 해석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는데, 그 부분이 블로그 독자들에게는 눈에 잘 띄지 않을 수 있겠군요. 단어 대 단어로 파악할 수준도 안되어서 매우 조심스럽게 짚었는데, 직역을 통한 '강한 해석'을 확인할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173b에서 Dia라는 단어를 클릭해보니 Zeus라고 하는군요. 덕분에 직역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페르세우스 프로젝트는 그리스어와 영어를 완벽하게 대응시켜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무료로 저 정보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지만 말이죠.

    아무튼 스트라우스의 해석은 분명히 과도합니다. 스트라우스의 제자인 앨런 블룸의 국가 번역이 '직역' 중심이라는데, 그것도 이와 비슷한 '직역을 통한 해석'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나 궁금해지는 대목이죠. 지금 당장 확인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나중에 그 책을 읽게 된다면 꼭 염두에 두어야 하겠습니다.

    이창준씨의 좋은 코멘트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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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덧글을 쓰고 나서야 '(아마도 직역을 통한)' 이라고 쓴 부분을 확인했습니다. '지적하셨듯이'라는 말을 첨가하려했더니 덧글 수정기능이 없더군요.

    '직역을 통한 해석'이라는 점에 무척 공감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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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blogspot.com은 단순해서 좋긴 한데 없는 기능이 너무 많습니다. 저야 편하지만 방문자들은 불편할 것 같군요. 따로 방법을 찾아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주 방문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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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이 글의 논지대로라면 b가 e라는 성급한 오류를 범하듯이 a또한 d라는 오류를 범하고있군요ㅋㅋ
    정치철학전공자가 그냥 잼있게 읽고 갑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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