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포스트에서 내가 다소 생뚱맞게도 '금리인하 논쟁'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은, 그것이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첫째, 지금 금리를 인하하는 것은 환율 및 기타 경제지표보다 내년도 성장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동시에 그것은 '이명박의 경제정책'을 좀 더 세부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준다. 의사가 제대로 전달된 것 같지 않으므로, 그 각각을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기준금리 인하로 인한 경기부양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한은 이성태 총재는 '내년도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한다는 점을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미국 연준이 금리를 1%까지 내리고, 일본이 0.5%를 0.3%로 낮춘 것도 전부 2008년도 4/4분기가 아니라 2009년도를 우려하기 때문이다.
만약 여기서 기준금리 인상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한국은행이 원화의 기준금리를 인상한다면 그 신호를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이해할까. 내년도에 어떤 혹독한 경기 후퇴를 겪건, 지금 당장 꺼야만 하는 큰 불이 있다, 이런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상식적인 판단 아닐까.
가령 유럽의 '금융 허브'로 잠깐 떴다가 가장 큰 서리를 맞은 아이슬란드는, 최근 기준금리를 12%에서 18%로 대폭 인상했다. 한국 경제에 대해 아무리 비관하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2008년 11월 3일 현재의 대한민국과 아이슬란드를 같은 사례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내년도 경기 후퇴에 대비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
문제는 그것이 '어떤 경기'에 대한 것인가, 즉 새로운 성장동력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로 집중된다. 비정규직 비율을 줄이고 고용을 안정화하며 사회복지를 확충하는 것은, 모두 국내 소비 진작에 도움이 된다. 미국의 소비심리가 대후퇴하고 있는 지금, 아무리 '환율주권'을 사수한다 한들 수출 주도형 경제로는 안정성 확보에 분명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내가 지난 글에서 우석훈 박사의 '환율주권' 언급을 비판적으로 다루었던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현행 경제구조를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는 한 환율주권론은 의미가 없다. 그런데 우석훈이 특히 《촌놈들의 제국주의》에서 주장한 '전쟁산업'에서 '평화산업'으로의 이행은, 지금과 같은 중공업 중심의 수출경제 구조에 대한 근본적 비판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환율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금리인하에 반대한다는 말은 그의 전체적인 논지에 비추어볼 때, 성립이 불가능하지야 않지만 상당히 어색하다.)
금리인하 논쟁이 중요해지는 이유가 여기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현재 한국 경제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중공업 시대, 건설업 시대를 이어 어떤 곳에서 성장동력을 얻을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전부 사장된 채, 이렇게 해도 한국 경제 망한다 저렇게 해도 한국 경제 망한다, 이런 목소리만 드높았던 것이 최근 두어 주일간 벌어진 담론적 소극 아닌가.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면, 그로 인해 유발될 더 극심한 디플레이션 속에서 어떻게 한국 경제를 재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그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담론이 흘러가고 있다. 한국은행의 결정 이후 환율과 주가가 안정세를 찾자, 한나라당과 청와대는 '미네르바를 잡아라' 따위 마녀사냥질을 시작하고 있지 않은가. 환율이 높아지고 주가가 낮아진다는 이유만으로 이명박 정권 하에서 벌어지는 모든 경제 정책을 싸잡아서 비판하다가, 결국 논의다운 논의도 해보지 못한 채 촛불시위때와 같은 패턴으로 닭몰이를 당하고 있다. 이건 저들이 똑똑해서가 아니라 이쪽이 저들보다 멍청해서 벌어지는 일이다.
'주가 올라가면 미네 버로우? ㅋㅋㅋ' 같은 소리 하던 아고라의 삐딱한 인간들이, 지난주 월요일부터 반짝 기승을 부린 것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명박 욕하기 판소리 대회에 나온 게 아니지 않나. 잘못되고 있는 모든 일 때문에 이명박을 비판하기 시작하면, 그 모든 잘못된 일들 중 하나만 제대로 되어도 이명박을 비판하기 어려워진다. 사람들이 왜 이리 답답한지 모르겠다.
이 상황에서 경제를 살리기 위한 성장동력을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논의다운 논의가 될 것이다. 그 이야기는 조만간 좀 더 자세하게 하고자 한다. 아무튼 요즘, 참 답답하다. 이명박 당선이 '국민이 개새끼'라서 그런 걸까? 그 이명박을 막아낼만한 '지성계'라는게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토론다운 토론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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