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이유는 새 음반에 수록된 곡 'Zeze'에서 작사가로서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의 주인공인 제제를 소재로 삼아, "넌 아주 순진해 그러나 분명 교활하지"라던가, "어린아이처럼 투명한 듯해도 어딘가는 더러워" 등의 가사를 썼다. 그 음반의 엘범 아트에는 망사스타킹을 신은 소년의 모습이 그려져 있기도 했다. 아이유가 아동성애를 부추긴다, 아동성폭행 피해자를 도외시하고 있다, 기타등등 아동 인권과 관련한 온갖 악덕을 저지르고 있다는 비난이 일순 쏟아지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논란이 이어지는 중이다.
그런데 내가 아는 대한민국은 아동학대에 전혀 민감한 나라가 아니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학대 사례들을 빼놓고, 그냥 미디어에 반영되는 내용만 봐도 그렇다. 지난 10월 13일 SBS에서 방영된 <육룡이 나르샤>의 한 장면을 생각해보자. 남자 등장인물 '땅새'의 각성을 위해, 같은 마을에 살던 소녀 연희가 강간당하는 장면이 버젓이 밤 10시 공중파 드라마에 나왔다.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대한민국이 언제부터 이렇게 아동성애를 금기시하고 아동학대에 민감한 나라였던가? 아이유에게 아동성애 코드를 팔아먹는다고 손가락질하는 분들은, 아이유가 대놓고 '삼촌'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낼 때에는 뭐 하고 계셨는가?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미성년자 강간 장면이 공중파 드라마에 나왔다. 고작 한 달 전 일이다. 'Zeze'처럼 은근한 암시를 하는 듯 마는 듯 하는 수준이 아니라, 대놓고 강간당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그때는 안 나오던 분노가 왜 이제서야 치밀고 있는가?
2.
한국의 대중가요에서 미성년자 소녀가 남성들에게 스스로를 욕망의 대상으로 제공하는 역사는 실로 유구하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려요 / 당신만 아세요 열일곱 살이에요"부터 시작해야 할까? 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겠지만, 일단 떠오르는 것부터 이야기해보면 그렇다. 비교적 최근 임펙트 있게 다가왔던 것으로 박지윤의 '성인식'을 꼽아볼 수 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소녀가 아니에요 / 그대 더 이상 망설이지 말아요 / 그대 기다렸던만큼 나도 / 오늘을 기다렸어요."
아이유의 기존 행보 역시 이러한, 명백히 아동성애에 가깝지만 대중적으로 별 논란 없이 받아들여지던 시선 위에 놓여 있었다. "나는요 오빠가 좋은걸"이라며 고음을 높이고, "너랑 나랑은 지금 안되지"라며 소녀 아이유를 향한 '삼촌'들의 애간장을 태웠다. 굳이 아이유에게 '아동성애 컨셉'이라고 말한다면, 당신들이 아이유에게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던 그때야말로 '아동성애 컨셉'이 한창 꽃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아이유가 달라졌다. 전작 '모던타임즈'부터 서서히 '삼촌팬을 위한 소녀'가 아닌 무언가의 자의식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작 '스물셋'에 와서 드디어 논란이 불거졌다. 아이유에게 붙은 죄명은 뜬금없게도 아동성애자.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한도전의 무도가요제에서 레옹의 마틸다 컨셉을 하고 나왔을 때에는 아무 탈이 없었는데 말이다.
3.
말하자면 대한민국에서 '어떤 아동성애'는 별 문제가 안 된다. 반면 '다른 아동성애'는, 실제로 아동성애인지 아닌지와는 큰 상관 없이, 지탄의 대상이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의 한국어판을 낸 출판사에서 '제제는 그런 아이가 아니다'라며 가상인물의 정신적 순결함을 항변하지 않나, 어떤 소설가라는 분은 아이유의 음반을 전량 폐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아이유의 아동성애 컨셉은 이미 한 차례 트위터를 포함한 소수의 네티즌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었다. 그가 무도가요제에서 영화 '레옹'의 마틸다로 분장하고 나왔던 그때의 일이다.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미성년자 여성을 향한 남자들의 성적 욕망'을 인식하고 그에 맞춰 차려입은 아이유를 보며, 몇몇 트위터 사용자와 네티즌들이 불만을 표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때에는 지금과 달리 논란이 커지지 않았다. 오히려 '예쁘기만 한데 왜들 저러냐'는 식의 비아냥 섞인 반응이 돌아오기도 했다. 아이유가 스스로를 아동성애적 욕망의 대상으로 포장하여 내놓는 것은, 한국 사회의 도덕적 가이드라인과 어긋나는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혹시 모를까봐 하는 말인데 '레옹'의 마틸다는 미성년자다).
반면 'Zeze'의 가사와 앨범 아트 역시 소수의 네티즌들이 발견하고 불편함을 표현했는데, 이번에는 일이 커졌다. 음반이 나온지 제법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논란이 시작되었고, 애초에 '아동성애'라는 금기 자체가 '할아버지가 고추 따먹는' 이 나라에서 과연 그렇게 굉장한 터부인가 싶기도 했으나, 출판사가 끼어들면서 논의가 한층 점입가경으로 흘러가는 중이다.
사안의 화제성을 놓고 보자면 음반의 수록곡 중 하나일 뿐인 'Zeze'는 무도가요제와 비교할만한 대상이 못 된다. 아동성애로 장사를 한 게 문제라면 논란은 마틸다 코스프레를 할 때 일어났어야 한다. 하지만 그때는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가 그러한 종류의 페도필리아를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과 그 때의 차이는 무엇인가?
결국 그 차이는 아이유가 스스로를 '상품'으로 내놓았느냐, 아니면 제 손으로 쓰는 가사의 '창작자', 즉 어떠한 종류의 주체로 내세웠느냐에서 갈라진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젊은 여자 가수 아이유가 자신을 소아성애적 욕망의 '대상'으로 내놓는 것에는 대한민국의 윤리 의식이 발작적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
4.
아이유에게 잘못이 있다면 단 하나, 성적 욕망의 '대상'에서 벗어나고자 했다는 것이다. 아이유는 지속적으로 '아티스트'를 지향하는 자기 자신을 내세워왔다. 작사와 작곡에 참여하고, 이번 음반은 자신이 프로듀서로 나섰고, 지난 음반에는 음악계의 '선배님'들을 모셨다.
그러자 엉뚱하게도 아동성애 논란이 벌어졌다. 아이유가 노골적으로 마틸다 코스프레를 하며 아동성애 컨셉을 '팔아먹고' 있을 때에는 없던 일이다. 왜일까? 그 아동성애 컨셉을 '소비하던' 대중들에게, 어린 소녀에게 나이 많은 남자가 성욕을 느끼는 것은 사회규범에서 크게 벗어나는 일처럼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아이유가 'Zeze'의 가사에서 사용한 은유와 상징들은 어딘가 어설프고 아귀가 안 맞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소년을 향한 성인 여성의 욕망인 것처럼 해석되더니만, 난리가 나고 있다.
'Zeze'의 은유는 덜컹거린다. 결국은 밍기뉴라는 나무 그 자체가 아니라, 제제라는 소년의 순수함과 영악한 욕망이 오가는 어떤 지점을 잡아내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다. 아이유의 목표대로라면 밍기뉴를 넘어서 결국 그가 해석한 제제에게 힘이 확 실려야 하는데 그렇게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결과 화자인 밍기뉴가 '성인 여성'이라는 혐의에 힘이 실렸고(꼭 그러라는 법은 없을텐데. 소설에서 가상의 친구인 밍기뉴와 뽀르뚜까 아저씨는 모두 남자 아니던가), 가수로서 지금까지 아동성애적 욕망의 '대상'이었던 아이유가 순식간에 아동성애적 욕망의 '주체'로 둔갑해버렸다.
동녘출판사의 단호한 입장과 달리, 모든 창작물은 발표되는 순간부터 해석의 무중력 속에 던져진다. 누가 그 작품을 보고 무슨 식으로 읽어낼지 창작자는 미리 다 알 수도 없고, 물론 어떤 효과를 노리기야 하겠지만, 그 결과를 일일이 통제할 수도 없다. 대중이 'Zeze'의 가사에 아동성애의 혐의를 씌우는 것 자체를 막아낼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의 머리에는 떨쳐낼 수 없는 질문이 남는다. 가령 조영남은 작품 활동을 넘어 현실의 생활 속에서 별별 '금기'를 다 넘나드는 행보를 보이면서도 '아티스트로서의 면책 특권'을 십분 누리며 살아간다. 반면 아이유는 현실 속에서 아동성애는 커녕 자신보다 훨씬 나이 많은 장기하와 연애하며 근면 성실하게 살고 있다. 그런데 왜 아이유에게는 조영남에게 허락되는 것과 같은 '아티스트 면책 특권'이 반에 반도 부여되고 있지 않은가?
5.
나이 많은 남자가 어린 여자를 대상으로 삼고 있는 한, 대한민국은 아동성애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나라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의 남자들은 '산삼보다 몸에 좋은 고3, 고3보다 몸에 좋은 중3' 같은 소리를 시시덕거리고 있다. 아이유는 그런 욕망의 대상으로 스스로를 포지셔닝하면서 슈퍼스타가 되었고, 지금은 그렇게 스타로서 쌓아올린 자산을 차분히 매각하며 아티스트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빚는 중이다.
아이유의 새로운 행보를 두고, 대중들은 자신들이 소비해왔던 아동성애적 기호들을 새삼 '발견'하며 분노한다. 그러한 해석은 아이유의 의도를 넘어, 스물셋이 된 아이유가 다섯 살짜리 소년 제제에게 '어른의 놀이'를 가르치려 든다는 식의 망상으로 뻗치고 있는 것 같다.
아이유가 '아동성애' 컨셉으로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왜곡했다는 대중들의 분노는, 바로 그 아이유를 상대로 같은 욕망을 불태웠던 스스로에 대한 알리바이 만들기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이 나라에서 진정 금기시되고 있는 것은 어린 여자를 향한 나이 많은 남자의 성욕이 아니라, 여자가 감히 욕망의 대상에서 벗어나려 드는 것 뿐이라는 현실이 폭로되고 있는 중이다. 아티스트 아이유의 건투를 빈다.
전체적인 맥락에는 공감이 갑니다. 말씀하신대로 아이유가 "성적 욕망의 '대상'"에서 벗어나려 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죠. 문제라면 그런 대상에서 벗어나려고 하면서 다른 아이를 그러한 대상에 넣으려 한 게 문제겠죠. 결국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 상황이고, 모 드라마의 구절을 차용하자면 피해자가 누군가를 죽이려 하는 순간 살인자가 될 뿐인 것처럼, 이제와서 아이유씨를 소아성애와 여자의 성상품화의 피해자로만 볼 수는 없다고 생각되네요. 뭐 어찌됐건 님이 말쓴 하신대로 이 나라는 아동학대, 아동성애에 너무 관대한 건 사실이고, 이 일을 계기로 경각심이 세워지길 바라네요.
답글삭제다른 작품이 어떻든..이때까지 아이유를 참아왔든..그것은 문제가 아닙니다..왕따 당하는 아이가...이때까지 참았으니 죽을때까지 참아야 하나요?옆반에 왕따 당하는 아이는 내가 안돕는다고 우리반 왕따도 도와주고 싶은데 형평성 문제로 안도와줘야 합니까??열명의 왕따가 있다면...그 모든 케이스가 당연히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고 당연히 10명을 머두 도와줘야 하는게 마땅합니다..그런데 10명 중에 심하게 왕따 당하는 애가 곧 죽을것 같으니 내가 다른애는 못도와줘도 얘는 도와줘야겠다고 판단할수도 있죠...형평성에 어긋나고 넌 다른 9명의 왕따를 묵인하고 있으니 얘도 도와주지말고 놔둬라?말이 안되죠...
답글삭제다른 작품이 어떻든..이때까지 아이유를 참아왔든..그것은 문제가 아닙니다..왕따 당하는 아이가...이때까지 참았으니 죽을때까지 참아야 하나요?옆반에 왕따 당하는 아이는 내가 안돕는다고 우리반 왕따도 도와주고 싶은데 형평성 문제로 안도와줘야 합니까??열명의 왕따가 있다면...그 모든 케이스가 당연히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고 당연히 10명을 머두 도와줘야 하는게 마땅합니다..그런데 10명 중에 심하게 왕따 당하는 애가 곧 죽을것 같으니 내가 다른애는 못도와줘도 얘는 도와줘야겠다고 판단할수도 있죠...형평성에 어긋나고 넌 다른 9명의 왕따를 묵인하고 있으니 얘도 도와주지말고 놔둬라?말이 안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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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삭제요즘 이슈화되는 아동성애나 성폭력에 대한 이슈는 아이유 잘못이 아니라 루저담론의 만성화된 현상이 문제라는 답글을 달았다가 지웁니다.
답글삭제루저담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보자면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루저담론이 한창 이슈화될 때 비확인된 루머들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던 시절이 있었죠. 생각해보면 그로인해 그 불편함과 사회소모적인 현상을 해결해야 된다는 공감이 얻어졌습니다. 외형적으로 보이는 현상 너머의 무언가를 통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비확인된 사실이 사람도 자살하게 만들고 큰 사회문제를 만들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아이유도 그러한 시대 변화를 감지하고 가사에 자신의 의견을 반영한 것 같네요. 그런데 왜 그 대상이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였냐는 의문은 남습니다. 인기를 얻으면 파급이 큰 유명인의 노래 가사에서 순수하게 받아들여져왔던 대상을 한번이라도 깐다면 그렇게 보이는 대상에게 의심이 더 쉽게 가는 면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이유를 비난하는 것도 나쁘지만 그 비난의 논조나 방식이 이미 소셜네트워크에서도 다른 사안을 비판할 때도 쓰인다는 것에서 뭔가 제지를 걸고 싶은 분들도 있었을거라고 봅니다. 어떤 분들은 그저 노래가사인데 뭐라고 하느냐고 하실 수도 있는데 사보타지의 세계에서는 그저 노래가사도 소재가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그 비판의 대상을 아이유로 하기보다는 루저담론과 성담론이 과연 일방적으로 무엇을 주장할 구실이 되어야 하는가에 있다고 생각해봅니다. (썼다 지운 댓글도 이런 논지인데 윗글에 노정태님이 맨스플레인과 잘난척을 엮으신 글을 보니까 무서워져서 지웠네요)
답글삭제윗분들이 왕따 예를 든 것도 왕따에 처한 아이들이 느끼는 것이 자기자신에게 부과된 고통이 남들에게 이해가 안되고 혼자서 고립된다는 기분인 것이고, 그런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은 자기가 한 행동이상으로 뭔가 의심을 받는 것 그것이라고 생각하는데 현상 너머의 무언가를 통찰하고 싶은 의지를 순수함에 대한 공격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순수함을 보여줬던 아이유가 갑자기 컨셉을 아이에 대한 비판적 시각으로 바꿔서 당황스러웠던 분들이 있었나보네요.
삭제제 예전 닉네임이 [un]ion인데 최근 써온 닉네임인 청색공책으로 표시를 바꿉니다. 오랜만에 구글 블로그에 와서 글 남기다보니까 깜빡하고 바꾸는 것을 잊었군요 ^^;
삭제아이유가 주체적으로 '어린여자 성적 판타지'의 대상에서 벗어나려 한것이 아니라 본인이 그러한 성적 판타지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린아이를 성적 대상화 하는 잘못을 저지르게 된...예전에 알리의 '나영이'사건이 생각나네요. 본인이 성범죄 피해자 임에도 불구하고 성범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어처구니 없는 해프닝.
답글삭제아이유는 스스로 어린여자의 성적 판타지를 벗어나려는게 아니었겠죠. 아이유는 인기 가수이고 그녀와 그녀의 소속사는 그 인기의 바탕을 잘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 국내에서 여자 연예인이 성공하기 위해서 필요한게 섹시코드죠(그것이 옳든 그르든). 아이유는 성적인 매력이 부족한 편이니 어리고 귀여운 이미지를 바탕으로 로리타를 마케팅 요소로 내세웠을 뿐입니다. 대놓고 로리타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1집때부터 쭉 이어지던 컨셉이었죠. 지난번 노래에서도.. 이번 스물셋 무대도.. 여전히 기본은 섹시 어필입니다. 아이유는 그것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반대로 아티스트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양면적인 매력을 어필하려는 것 뿐이죠. 제제 논란은 그 와중에 아이유의 실수로 인해 벌어진 해프닝일 뿐. 문학의 해석은 독자 고유의 몫이라고 생각하기에 아이유에 대한 말도 안되는 비난에 대한 입장은 공감하지만, 성 대립의 구도로 가져가려는 다른 본문들은 공감 할 수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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