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31

올해의 영상물: 갓건배에 대한 모든 것(2017)

〈갓건배에 대한 모든 것〉 트레일러


지난 8월 9일 새벽, 웹 스트리밍 서비스 아프리카의 BJ인 김윤태는 유튜브 스트리머 갓건배의 집 주소를 알아냈다며, 갓건배의 집에 찾아가 죽여버리겠다는 식의 '컨텐츠'를 유포했다. 실시간으로 약 7000여명 가까운 사람이 영상을 시청하는 가운데,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서울 성북경찰서에만 총 3차례 신고가 접수되었다. "그 주소에 갓건배가 살지 않아도 여성이라면 목졸라 죽이겠다"는 발언까지 했다는 증언(링크)까지 나온 가운데, 이 사건은 놀랍게도 살해협박이 아니라 '과도한 남성 혐오, 이대로 좋은가', 혹은 '인터넷 스트리머들의 무분별한 폭력과 증오의 표출은 과연 어디까지 표현의 자유인가' 따위의 주제로 소화되어 버리고 말았다.

초고속인터넷의 보급과 거의 동시에 3cf를 만드는 등 다방면에서 창작 활동을 벌였고 지금껏 꾸준히 인터넷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대한민국의 인디 록 음악가, 시인 겸 작사가, 인터넷 유명인"(위키백과) 권용만은, 갓건배를 소위 '저격'한다는 170여개의 유튜브 영상을 전부 시청한 후, 그것을 모으고 편집하여 컴필레이션 영상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갓건배에 대한 모든 것〉(2017)이다. 이 영상은 올해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진 모든 영상물 중 가장 문제적이다.

갓건배는 게임 〈오버워치〉를 플레이하며 게임 속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남성 유저들의 여성 유저에 대한 성차별, 성폭력, 비하 표현 등을 '미러링'해온 유튜브 스트리머(였)다. 그를 두고 남자들이 쏟아내는 온갖 증오와 욕설의 표현들로 1시간 44분 31초를 꽉 채워넣었는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대목이 몇 가지 나온다. 첫째, 예고편만 봐도 알 수 있다시피 '갓건배 저격'에 나선 것은 대부분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연령대의 어린 남자들이다. 과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아들자식 농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둘째, 마찬가지로 예고편만 봐도 알 수 있다시피, 그게 꼭 애들만 그러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 높은 연령대의 남자들은 어떤 '남자 역할'을 제시하고 수행하는 중인가? 셋째, 대체 이 수많은 '초딩'들의 교육 환경과 삶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거나, 구성되어 있지 못하거나, 망가지고 있는 중인가?

이 영상이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었을 때 발생한 논란은 추가적으로 생각할 거리를 하나 더 안겨준다. 이 '초딩'들은 스스로 영상을 찍어서 올렸다. 그것을 편집하여 별개의 영상물로 만드는 행위를 우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미성년자의 판단력이 부족하다고 전제하고 그들 스스로의 어리석은 행동으로부터 미성년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면 당연히 〈갓건배에 대한 모든 것〉의 존재 자체를 비난할 수 있다. 하지만 다시 말하건대 〈갓건배에 대한 모든 것〉은 모두 직접 찍어 올린 영상을 편집해서 만든 것이다. 등장인물들을 '보호'하려면 〈갓건배에 대한 모든 것〉을 비판하거나 보지 말자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러한 '보호'는, 미성년자의 인격과 판단을 최대한 존중하려 하는 입장에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훈육과 맞닿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지점이 있다. 특정 여성에 대한, 그리고 여성 일반에 대한 인터넷 상의 언어 폭력이 단지 말로만 오가는 차원을 넘어 현실의 폭력으로 돌변하던 바로 그 순간과 이후의 반응으로 인해 〈갓건배에 대한 모든 것〉이 만들어졌다는 사실 말이다. 그 폭력을 휘두르겠다던 남자 BJ들은 '원래 그런 놈들'이라고 치부되면서, 실질적으로는 면죄부를 받았다. 반면 '갓건배'는 언론의 조명을 받더니 소위 '남성혐오'의 대명사가 되었다. 지금도 조금만 검색해보면 그에게 다종다양한 폭력을 행사하고 싶다는 증오의 표현이 넘쳐난다. 우리가 보지 못하고 있는, 혹은 보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는, 그 수많은 폭력은 어디에 있는가?

한 해의 마지막에 이 영상을 소개하면서 '꼭 보라'고 하는 것은 다소 어폐가 있는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기왕 본다면 1시간 44분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꾹 참으며 보기 바란다. 특히 남자라면 말이다. 창작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어쩌면 이것은 여성들이 느끼는 인터넷 속의 언어 폭력을 체감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일 수도 있다. 이게 바로 여성혐오의 민낯이며, 대한민국의 현재이자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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