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31

독서 목록(2020)

  1. 20200110 - 아툴 가완디, 곽미경 옮김, 『어떻게 일할 것인가』(경기도 파주: 웅진지식하우스, 2018), 전자책, 리디셀렉트.
  2. 20200114 - 라종일, 『세계의 발견』(서울: 경희대학교 출판국, 2009)
  3. 20200114 - 라종일, 『낙동강』(경기도 파주: 형설라이프, 2010)
  4. 20200117 - 매슈 워커, 이한음 옮김,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19), 전자책, 리디셀렉트.
  5. 20200118 - 이영훈 외, 『반일 종족주의』(서울: 미래사, 2019)
  6. 20200119 - 도야마 시게히코, 장은주 옮김, 『지적 생활 습관: 죽는 순간까지 지적으로 살고 싶다』(서울: 한빛비즈, 2017), 전자책, 리디셀렉트.
  7. 20200120 -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 이영래 옮김, 『모두 거짓말을 한다』(서울: 더퀘스트, 2018), 전자책, 리디셀렉트.
  8. 20200121 - 제임스 클리어, 이한이 옮김, 『아주 작은 습관의 힘』(서울: 비즈니스북스, 2019), 전자책, 리디셀렉트.
  9. 20200124 - 카렐 차페크 글, 요재프 차페크 그림, 배경린 옮김, 조혜령 감수, 『정원가의 열두 달』(서울: 펜연필독약, 2019)
  10. 20200124 - 김웅, 『검사내전』(서울: 부키, 2018), 전자책, 리디셀렉트.
  11. 20200129 - 발타자르 토마스, 이지영 옮김, 『비참할 땐 스피노자』(서울: 자음과모음, 2013), 전자책, 리디셀렉트.
  12. 20200201 - 다미앵 클레르제-귀르노, 김정훈 옮김, 『무력할 땐 아리스토텔레스』(서울: 자음과모음, 2013), 전자책, 리디셀렉트.
  13. 20200206 - 스티븐 프레스필드, 류가미 옮김, 『최고의 나를 꺼내라!』(서울: 북북서, 2008)
  14. 20200208 - 다니엘 핑크, 김주환 옮김, 『드라이브』(서울: 청림출판, 2011)
  15. 20200208 - 발타자르 토마스, 김부용 옮김, 『우울한 날엔 니체』(서울: 자음과모음, 2018), 전자책, 리디셀렉트.
  16. 20200209 - 롤프 도벨리, 장윤경 옮김, 『뉴스 다이어트』(서울: 갤리온, 2020)
  17. 20200209 - 다니엘 핑크, 이경남 옮김, 『WHEN 언제 할 것인가』(서울: 시공사, 2018), 전자책, 리디셀렉트.
  18. 20200211 - 피에르 크리스탱 글, 세바스티앵 베르디에 외 그림, 최정수 옮김, 『조지 오웰』(서울: 마농지, 2020)
  19. 20200223 - 윌리엄 골딩, 이덕형 옮김, 『파리대왕』(서울: 문예출판사, 1983)
  20. 20200223 - 알베르트 슈바이처, 권혁준 옮김, 『나의 어린 시절』(서울: 정원출판사, 2006)
  21. 20200224 - 마사 너스바움, 조계원 옮김, 『혐오와 수치심』(서울: 민음사, 2015)
  22. 20200225 - 존 로크, 공진성 옮김, 『관용에 관한 편지』(서울: 책세상), 전자책, 리디북스. 책세상문고 고전의 세계 68.
  23. 20200227 - 게오르그 카이저, 장영은 옮김, 『칼레의 시민들』(서울: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0)
  24. 20200301 - 루 버니, 박영인 옮김, 『노벰버 로드』(경기도 안양: 네버모어, 2019)
  25. 20200302 - 김동조,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서울: 북돋움, 2012)
  26. 20200302 - 김동조, 『나는 나를 어떻게 할 것인가』(경기도 파주: 김영사, 2015)
  27. 20200307 - 마이클 모부신, 이건, 박성진, 정채진 옮김, 『마이클 모부신 운과 실력의 성공 방정식』(서울: 에프엔미디어, 2019)
  28. 20200308 - 장강명, 『댓글부대』(서울: 은행나무, 2015)
  29. 20200312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 1940년대편(개정판, 전2권): 8·15 해방에서 6·25 전야까지·1권』(서울: 인물과사상사, 2006), 전자책, 리디북스.
  30. 20200315 - 엠제이 드마코, 신소영 옮김, 『부의 추월차선』(서울: 토트, 2013)
  31. 20200321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 1940년대편(개정판, 전2권): 8·15 해방에서 6·25 전야까지·2권』(서울: 인물과사상사, 2006), 전자책, 리디북스.
  32. 20200321 - Pavel Tsatsouline, Kettlebell Simple & Sinister: Revised and Updated Edition(StrongFirst, 2019), 2nd edition, Kindle.
  33. 20200327 - 김동조, 『모두 같은 달을 보지만 서로 다른 꿈을 꾼다』(서울: 아웃사이트, 2020)
  34. 20200404 - 프랑코 모레티, 이재연 옮김, 『그래프, 지도, 나무: 문학사를 위한 추상적 모델』(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20)
  35. 20200411 - 이소룡, 홍석윤 옮김, 『물이 되어라, 친구여 - 이소룡 어록』(서울: 필로소픽, 2018)
  36. 20200419 - 아서 코넌 도일, 이경아 옮김, 『주홍색 연구』(경기도 파주: 엘릭시르, 2016)
  37. 20200424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 1950년대편: 6·25 전쟁에서 4·19 전야까지·1권』(서울: 인물과사상사, 2004), 전자책, 리디북스.
  38. 20200429 - 버튼 루셰, 박완배 옮김, 『의학탐정』(서울: 실사구시-실학단, 1998)
  39. 20200430 - 리사 샌더스, 장성준 옮김, 『위대한, 그러나 위험한 진단』(서울: 랜덤하우스코리아, 2010)
  40. 20200430 - 히포크라테스, 여인석·이기백 옮김, 『히포크라테스 선집』(경기도 파주: 나남, 2011)
  41. 20200503 - 팀 마샬, 김미선 옮김, 『지리의 힘』(서울: 사이, 2016)
  42. 20200506 - Christopher McDougall, Natural Born Heroes(New York: Knopf, 2015)
  43. 20200508 - 마이클 코넬리, 한정아 옮김, 『배심원단』(서울: 알에이치코리아, 2020)
  44. 20200510 - 다니엘 디포, 정명진 옮김, 『페스트, 1665년 런던을 휩쓸다』(서울: 부글북스, 2020)
  45. 20200518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 1950년대편: 6·25 전쟁에서 4·19 전야까지·2권』(서울: 인물과사상사, 2004), 전자책, 리디북스.
  46. 20200520 - Jerry Saltz, How to Be an Artist(New York, Riverhead Books, 2020)
  47. 20200524 - 애머런스 보서크, 노승영 옮김, 『책이었고 책이며 책이 될 무언가에 관한, 책』(서울: 마티, 2019)
  48. 20200526 - William Ewart Fairbairn, All-in Fighting(Naval and Military Press, 2012), Kindle.
  49. 20200530 - 앨런 무어 글, 데이비드 로이드 그림, 임태현 옮김, 『브이 포 벤데타 30주년 디럭스 에디션』(서울: 시공사, 2020)
  50. 20205031 - 엔도 히데키, 김소윤 옮김, 『인체, 진화의 실패작』(서울: 여문책, 2018), 전자책, 리디셀렉트.
  51. 20200531 - 바바라 스톡 글·그림, 이예원 옮김, 『반 고흐』(경기도 파주: 미메시스, 2012), 전자책, 리디셀렉트.
  52. 20200605 - 로버트 그린, 이수경 옮김, 『마스터리의 법칙』(경기도 파주: 살림, 2013), 전자책, 리디셀렉트.
  53. 20200612 - 마딕 마틴·제임스 V. 하트·사이드 필드 외 지음, 셰리 엘리스·로리 램슨 엮음, 안희정 옮김, 『시나리오 쓰기의 모든 것』(서울: 다른, 2016)
  54. 20200614 - 사이먼 하비, 김후 옮김, 『밀수 이야기: 역사를 바꾼 은밀한 무역』(서울: 예문, 2016), 전자책, 리디셀렉트.
  55. 20200621 - 미치코 가쿠타니, 김영선 옮김, 정희진 해제,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경기도 파주: 돌베게, 2019)
  56. 20200630 - 제프리 슈워츠·레베카 글래딩, 이상원 옮김, 김학진 감수, 『뇌는 어떻게 당신을 속이는가』(경기도 고양: 갈매나무, 2012)
  57. 20200701 - 김성종, 『최후의 증인 上』(서울: 새움, 2015)
  58. 20200702 - 김성종, 『최후의 증인 下』(서울: 새움, 2015)
  59. 20200704 - 김성종, 『제5열 上』(서울: 남도, 1992)
  60. 20200704 - 김성종, 『제5열 中』(서울: 남도, 1992)
  61. 20200704 - 김성종, 『제5열 下』(서울: 남도, 1992)
  62. 20200706 - 마쓰모토 세이초, 김경남 옮김, 『아직 늦지 않았다 - 마쓰모토 세이초, 반생의 기록』(서울: 모비딕, 2019)
  63. 20200708 - 이재찬, 『영양만두를 먹는 가족』(서울: 네오픽션, 2020)
  64. 20200718 - 무라카미 하루키, 양억관 옮김, 『노르웨이의 숲』(서울: 민음사, 2013)
  65. 20200718 - 무라카미 하루키, 임홍빈 옮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서울: 문학사상, 2009)
  66. 20200718 - 무라카미 하루키, 양윤옥 옮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서울: 현대문학, 2016)
  67. 20200719 - 사이토 미나코, 나일등 옮김, 『문단 아이돌론』(서울: 한겨레출판, 2017)
  68. 20200719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 1950년대편: 6·25 전쟁에서 4·19 전야까지·3권』(서울: 인물과사상사, 2004), 전자책, 리디북스.
  69. 20200719 - 마쓰모토 세이초, 김경남 옮김, 『점과 선』(서울: 모비딕, 2012)
  70. 20200726 - 테오도어 W. 아도르노, 폴커 바이스 해제, 이경진 옮김, 『신극우주의의 양상』(서울: 문학과지성사, 2020)
  71. 20200802 - 프레더릭 포사이스, 강혜정 옮김, 『자칼의 날 1』(경기도 파주: 국일출판사, 2006)
  72. 20200802 - 프레더릭 포사이스, 강혜정 옮김, 『자칼의 날 2』(경기도 파주: 국일출판사, 2006)
  73. 20200809 - H. P. 러브크래프트, 정진영 옮김, 『러브크래프트 전집 1』(서울: 황금가지, 2009)
  74. 20200812 - 이언 매큐언, 한정아 옮김, 『속죄』(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2003)
  75. 20200815 - 줄리언 반스, 송은주 옮김, 『시대의 소음』(경기도 파주: 다산북스, 2017)
  76. 20200816 - 김정훈·심나리·김항기, 우석훈 해제, 『386 세대유감』(경기도 파주: 웅진지식하우스, 2019), 전자책, 리디셀렉트.
  77. 20200816 - 정세랑, 『보건교사 안은영』(서울: 민음사, 2015)
  78. 20200817 - 조국백서추진위원회, 『검찰개혁과 촛불시민』(서울: 오마이북, 2020)
  79. 20200818 - 김고명,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하고 싶습니다』(경기도 고양: 좋은습관연구소, 2020), 전자책, 리디셀렉트.
  80. 20200818 - 질 볼트 테일러, 장호연 옮김,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 뇌과학자의 뇌가 멈춘 날』(경기도 파주: 윌북, 2019), 전자책, 리디셀렉트.
  81. 20200822 -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서울: 동아시아, 2019), 전자책, 리디셀렉트.
  82. 20200823 - 볼테르, 이효숙 옮김, 『미크로메가스』(서울: 바다출판사, 2011)
  83. 20200827 - 로드 던세이니, 정보라 옮김, 『얀 강가의 한가한 나날』(서울: 바다출판사, 2011)
  84. 20200830 - Victor M. Koga, 스포츠서적 편집실 엮음, 『자기 방어술』(서울: 일신서적, 2005)
  85. 20200830 - 버트런드 러셀, 서상복 옮김, 『러셀 서양철학사』(서울: 을유출판사, 2019), 전면개정판.
  86. 20200902 - 데이비드 A. 케슬러, 이순영 옮김, 『과식의 종말』(서울: 문예출판사, 2010), 전자책, 리디셀렉트.
  87. 20200905 - James Sallis, Drive (Orlando, Florida: Harcourt, 2005)
  88. 20200917 - 오승은, 임홍빈 옮김, 『서유기 제1권』(서울: 문학과지성사, 2003)
  89. 20200926 - 대런 애쓰모글루·제임스 A. 로빈슨, 최완규 옮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서울: 시공사, 2012), 전자책, 리디셀렉트.
  90. 20201011 - 마루야마 겐지, 김난주 옮김, 『소설가의 각오』(경기도 파주: 문학동네, 1999)
  91. 20201016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 1960년대 편: 4·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1권』(서울: 인물과사상사, 2004), 전자책, 리디북스.
  92. 20201019 - 유현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서울: 을유문화사, 2015), 전자책, 리디셀렉트.
  93. 20201025 - 애거서 크리스티, 김남주 옮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서울: 황금가지, 2002),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
  94. 20201025 - 애거서 크리스티, 신영희 옮김, 『오리엔트 특급 살인』(서울: 황금가지, 2002),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3.
  95. 20201028 - 박성희 『아규멘테이션: 설득하고 설득당하는 사회의 논쟁법』(서울: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14)
  96. 20201029 - 애거서 크리스티, 권도희 옮김, 『비뚤어진 집』(서울: 황금가지, 2004),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8.
  97. 20201029 - 애거서 크리스티, 공보경 옮김, 『커튼』(서울: 황금가지, 2004),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4.
  98. 20201103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 1960년대 편: 4·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2권』(서울: 인물과사상사, 2004), 전자책, 리디북스.
  99. 20201107 - 스튜어트 네빌, 이훈 옮김, 『벨파스트의 망령들』(경기도 안양: 네버모어, 2020)
  100. 20201113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 1960년대 편: 4·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3권』(서울: 인물과사상사, 2004), 전자책, 리디북스.
  101. 20201114 - 센딜 멀레이너선·엘다 샤퍼, 이경식 옮김, 『결핍의 경제학』(서울: 알에이치코리아, 2014)
  102. 20201126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 1970년대 편: 평화시장에서 궁정동까지·1권』(서울: 인물과사상사, 2002), 전자책, 리디북스.
  103. 20201217 - 티모시 페리스, 박선령·정지현 옮김, 『타이탄의 도구들』 (서울: 토네이도, 2017), 전자책, 리디셀렉트.
  104. 20201223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 1970년대 편: 평화시장에서 궁정동까지·2권』(서울: 인물과사상사, 2002), 전자책, 리디북스.
  105. 20201227 - 리처드 리브스, 김승진 옮김, 『20대 80의 사회』(서울: 민음사, 2019)
  106. 20201228 - 폴 바비악·로버트 D. 헤어, 이경식 옮김, 『직장으로 간 사이코패스』(서울: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
  107. 20201228 - 헤너 코테·크리스티안 룬처, 박종대 옮김, 『직장 내 살인사건』(서울: 지식트리, 2012)
  108. 20201229 - 마크 에임스, 박광호 옮김, 『나는 오늘 사표 대신 총을 들었다』(서울: 후마니타스, 2016)

2020-12-30

[朝鮮칼럼 The Column] 실력 없는 권력은 제풀에 무너진다

 

‘킵 캄 앤드 캐리 온’ 구호로 단결 나치 폭격 이겨낸 영국
코로나 버티는 국민의 안정 요구, 文 정권은 ‘독재 면허’로 여겨
윤석열 승리가 보여준 희망… 결국 소신·양심이 이길 것

2차 세계 대전 시기 영국 런던 세인트폴 성당 인근 건물 옥상에서 한 영국 병사가 독일 공습을 감시하고 있다. 왼쪽 사진은 2차 대전이 눈 앞에 닥쳐온 1939년 '영국 정부가 만든 대국민 홍보 포스터 '킵 캄 앤드 캐리 온(Keep Calm and Carry On)’. ‘평상심을 유지하고 하던 일을 계속하라’는 뜻이다. /New York Times Paris Bureau Collection
2차 세계 대전 시기 영국 런던 세인트폴 성당 인근 건물 옥상에서 한 영국 병사가 독일 공습을 감시하고 있다. 왼쪽 사진은 2차 대전이 눈 앞에 닥쳐온 1939년 '영국 정부가 만든 대국민 홍보 포스터 '킵 캄 앤드 캐리 온(Keep Calm and Carry On)’. ‘평상심을 유지하고 하던 일을 계속하라’는 뜻이다. /New York Times Paris Bureau Collection

1940년 9월, 영국 런던. 헤르만 괴링이 이끄는 나치 독일 공군이 폭격을 시작했다. 영국 본토가 외적의 공격을 받은 것은 874년 노르만족의 침공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폭탄이 떨어지는 밤이 두 달 넘게 이어졌다.

그러던 중 10월 10일, 인상적인 기록 사진 한 장이 남았다. 완전히 무너지고 박살이 난 건물 잔해 위에서 우유배달부가 우유를 배달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일상을 유지하는 것. 동요하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 하는 것. 평범한 영국인들이 전쟁을 하는 방식이었다.

‘킵 캄 앤드 캐리 온(Keep Calm and Carry On)’. 1939년, 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도는 것을 감지한 영국 정부가 만든 대국민 홍보 포스터의 문구다. ‘평상심을 유지하고 하던 일을 계속하라’는 뜻이다. 실제로 곧 전쟁이 터졌고, 독일군 비행기가 폭탄을 퍼붓기 시작했다.

영국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밤에는 폭격을 당해도 해가 뜨면 희망찬 하루를 시작했다. 청소부는 청소를 하고 집배원은 편지를 배달하며 우유배달부는 우유를 날랐다. 학생들이 무너진 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총리 처칠은 런던을 떠나지 않은 채 지하 벙커에서 전쟁을 지휘했다. 일치단결한 영국인들의 뚝심 앞에 나치의 기세가 꺾였다. 굴하지 않는 의지, 흔들리지 않는 평상심이 승리를 거둔 것이다.

잊혔던 구호 ‘킵 캄 앤드 캐리 온’은 2000년 영국의 한 서점을 통해 재발견됐다. 빨간 바탕 위에 영국 왕관과 흰 글씨로 이루어진 심플한 포스터가 젊은 세대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지금도 수없이 재생산·패러디되고 있다. 가령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하자,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워싱턴 DC의 한 지하철역에 ‘킵 캄 앤드 워시 유어 핸즈(평상심을 유지하고 손을 씻어라)’라는 포스터를 붙이기도 했던 것이다.

세상 모든 말이 그렇듯 ‘킵 캄 앤드 캐리 온’ 역시 발화의 주체를 누구로 보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사납고 거친 적과 맞서는 이들이 스스로를 다독이고자 되뇌는 담담한 투쟁의 구호일 수도 있지만, 권력자들은 ‘입 다물고 네 할 일이나 하라’는 뜻으로 저 말을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20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전쟁도 그랬다. 정부는 바이러스의 진원인 중국발 입국을 막지 않았다. 창문을 열고 모기를 잡는 꼴이었다. 마스크가 동나고 손 세정제가 품절됐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동요하지 않았다. 침착하게 약국 앞에 줄을 서고 냉장고에 쌓인 식재료를 먹어치우며 1차 유행을 견뎠다. 의료진의 헌신적 자원봉사 속에서 특히 대구 시민들의 ‘자발적 록다운’으로 나라가 위기에서 벗어났다. ‘킵 캄 앤드 캐리 온’의 힘으로 이겨낸 것이다.

총선을 치르며 무언가 엇나가기 시작했다. 국민은 위기 국면 속에서 일단 여당에 힘을 더 실어주었다.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원했던 것이다. 문재인 정권은 그 상식적인 판단을 ‘독재 면허’로 받아들였다. 병상을 확보하고 백신을 구해야 할 시간에 자기 꿍꿍이에 몰두했다. 공공 의대를 설립한다며 의사와 간호사를 갈라치기했고,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켰으며, 자신들이 임명한 검찰총장을 자르려고 난리를 쳤다. 국민이 백신을 요구하자 도리어 화를 내기까지 한다. ‘닥치고 마스크나 써!’

여러모로 절망적인 상황이다. 백신이 개발되며 다른 나라에서는 터널의 끝이 보이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물량을 제대로 확보해 놓지 않았다. 정권에 해로운 수사는 모두 덮어버리고 반대자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고 180석의 힘으로 온갖 악법을 밀어붙여 통과시켜 놓은 상태다. 올겨울은 여러모로 길고 혹독할 것이다.

대체 저들과 어떻게 싸워야 할까. 윤석열 검찰총장이 답을 제시했다. 비정상적인 목적을 달성하려 기형적인 수단을 동원하는 실력 없는 자들은 직업윤리에 충실한 전문가를 이길 수 없다. 침착하게 버티면 제풀에 무너진다. 소소한 삶 속에서 자신의 본분을 다하며 소신껏 살아가는 양심적인 사람들이 결국은 이긴다.

새해에는 또 어떤 ‘깜짝 쇼’가 벌어질까. 걱정되지만 두렵지는 않다. 킵 캄 앤드 캐리 온. 우리의 일상이 우리의 힘이다. 평상심을 지키는 평범한 시민을 권력은 굴복시킬 수 없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신문을 읽고 우유를 배달하고 사랑을 나누었던 영국인들처럼,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2020-12-28

[신동아] 정조대왕이 공수처까지? 이해찬·고민정의 판타지

정조대왕이 공수처까지? 이해찬·고민정의 판타지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입력 2020. 12. 28. 10:01 수정 2020. 12. 28. 17:04
[노정태의 뷰파인더⑭] 盧는 사도세자, 文은 정조?

●‘그림자 정부’ 있다는 ‘노론 음모론’
●실제는 정조와 노론 국정 동반 운영
●거악과 싸우는 ‘외로운 주인공’ 설정
●음모 맞서고자 민주적 절차 족쇄로 여겨
●공수처와 나치 게슈타포 설치 근거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7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마친 후 국회의장 접견실에서 이해찬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우리 역사의 지형을 보면 정조대왕이 1800년에 돌아가십니다. 그 이후로 220년 동안 개혁 세력이 집권한 적이 없어요. 조선 말기는 수구 쇄국 세력이 집권했고, 일제강점기 거쳤지, 분단됐지, 4·19는 바로 뒤집어졌지, 군사독재 했지, 김대중 노무현 10년 빼면 210년을 전부 수구보수 세력이 집권한 역사입니다."
 
누가 한 말일까. 소설가일까. 대중적 역사책을 쓰는 작가의 말일까. 혹은, 한창 혈기 왕성한 젊은 대학생의 발언인가. 아니다. 대단히 성공적인 이력을 밟아온 거물 정치인의 발언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역임한 바로 그 사람이다. 

이야기의 맥락은 이렇다. 이해찬 하면 떠오르는 '20년 집권론'의 논리와 근거가 뭔지 궁금하다는 '시사인'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한 말이다. 민주당이 20년을 연이어 집권한다 해도 그것은 지난 200년 역사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는 소리다.

바로 그 사람, 이해찬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2월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법률안 제안 설명을 하고 있다. [김동주 동아일보 기자]
어떤 정당의 대표가 집권을 위해 노력하겠다는데 말릴 사람은 없다. 일부러 단기 집권만 하겠다고 할 정당도 없으니, 20년이건 200년이건 목표를 잡는 걸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하지만 이해찬의 말은 단순한 선거 전략이나 목표 차원을 넘어선다. 한국의 역사를 바라보는 어떤 관점이 전제돼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대변인 출신으로 21대 총선에서 국회에 입성한 고민정 민주당 의원도 마찬가지 생각을 한다. 그는 12월 10일 페이스북에 "과거 기득권 세력이던 노론은 개혁 군주 정조의 모든 개혁 법안에 대해 끊임없이 저항했다"면서 "하지만 정조는 백성들을 위한 개혁을 멈추지 않았다"고 썼다. 같은 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에 대해 논하며 쓴 게시물이다. 

이렇듯 여당과 청와대, 더 넓게 보자면 그 지지층은 하나의 역사적 판타지를 공유하고 있다.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정조의 죽음에는 노론의 책임이 있다. 독살을 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둘째, 노론이 정조를 죽인 것은 정조가 개혁군주고 그가 추진하는 정책이 노론의 기득권과 충돌했기 때문이다. 셋째, 노론은 이후 200년이 넘는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도 기득권을 지켜왔다. 노론은 곧 영남이고 영남은 친일파이며 오늘날까지도 재벌, 언론, 군대, 관료 등 사실상 거의 모든 권력을 차지하고 있다. 정부의 막후에서 움직이는 그림자 정부, 혹은 '딥 스테이트'(Deep State)를 이루고 있으며, 정권을 빼앗겼어도 여전히 공고하다. 

이런 사고방식을 '노론 음모론'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노론 음모론'은 음모론이다. 실체가 없는 상상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노론 음모론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정조 독살설부터가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멀다. 노론의 정조 독살을 입증할 수 있는 직·간접적 증거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혹자는 노론이 정조를 독살하지 '않았다'는 증거도 없지 않느냐고 되물을지 모르겠다. 물론 그런 증거도 세상에는 없다. 하지만 그것은 입증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흔히 하는 말처럼 '증거의 부재는 부재의 증거가 아니다.' 정조 독살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말을 입증하기 위해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오히려 최신 자료에 따르면 정조와 노론은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었다. 겉으로는 그런 모습을 연출했지만 실제로는 물밑에서 끝없이 대화하고 협상하며 국정을 동반 운영했다. 2009년 세상에 공개돼 2016년 대한민국 보물 1923호로 지정된 정조 어찰첩이 그 진상을 보여준다. 

노론 벽파의 거두 심환지가 정조와 주고받은 비밀 편지 모음집에 따르면, 심환지는 정조가 가장 신뢰하며 속내를 털어놓는 신하였다. 정치뿐 아니라 개인적 고민, 심지어 건강 문제까지 의논했다. 하나로 묶여서 공개된 297통과 그에 포함되지 않은 50여 통을 비롯해,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비밀편지는 350통에 달한다.

정조와 심환지 사이의 비밀편지

2009년 2월 9일 서울 성균관대에서 김문식 단국대 교수, 안대회·진재교 성균관대 교수(왼쪽부터)가 새로 발굴한 정조 어찰 중 일부를 공개했다. [동아DB]
그 중 가장 유명한 한 대목을 읽어보자. 정조는 심환지에게 은밀히 말했다. "내가 사류(士流)의 두목이니, 지금 사류의 전형을 구한다면 형편상 경을 먼저 꼽을 것이다. 경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나의 마음은, 서야(徐也)에게보다 열 배가 넘는다." 조선은 선비들의 집단적 의지에 의해 굴러가는 나라이며 자신은 그 선비들 중 우두머리일 뿐이고, 그러니 정조를 대신해 심환지가 '군기반장' 노릇을 해줘야 한다는 미안한 부탁을 하는 것이다. 

맞는 말이었다. 조선은 양반이 지배하는 나라였다. 임금 역시 양반 위에 군림한다기보다 양반들의 집단적 이해관계 속에서 추대되는 대표자에 가까웠다. 왕은 결혼, 관리 등용, 때에 따라 벌이는 숙청 등을 통해 신하들의 세력을 적절히 키우고 억눌러가며 자신의 입지를 지켰다. 

정조 말기에 이르러 노론 벽파가 노론 시파를 밀어내고 힘을 키운 것 또한 마찬가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음모론에 심취한 이들은 노론 벽파가 단독으로 대단한 힘을 갖고 임금을 가지고 논 것처럼 말한다. 실제로는 정조가 노론 벽파 그 중에서도 핵심 인물인 심환지를 '키워준' 것이다. 

그러니 노론이 정조를 밀어내고 이후 한반도의 역사를 모두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식의 사고방식 역시 자연스럽게 설 자리를 잃는다. 18세기 말에 이르면 사색당파로 대표되는 기존의 붕당 체제는 형해화됐다. 왕실의 인척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도정치 시대가 열렸다. 

일부 역사가들은 세도정치가 시작된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바로 영조와 정조라고 지적한다. 탕평책을 내세워 임금이 지나치게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바람에 당파 간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또한 하나의 해석이겠지만, 적어도 노론 음모론에 비하면 현존하는 사료와 건전한 상식에 부합한다. 

노론이라는 '당파'는 사라졌어도 그 '후예'들이 한국을 지배한다는 주장에는 합리적 근거가 있을까. 그렇지 않다. 노론 음모론은 재벌, 언론, 군대 등 소위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노론의 후예가 장악하고 있다는 주장을 바탕에 깔고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다. 

재벌로 초점을 맞춰보자.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은 자서전에서 본인의 집안이 기호남인 계열임을 뿌듯하게 밝힌 바 있다.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은 빈농의 자식으로 아버지의 소 판 돈을 밑천 삼아 굴지의 기업을 일궜다는 사실을 평생의 자랑으로 삼았다. 대한민국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노론 세력은 대체 어디 있는 걸까. 그들은 너무도 은밀하게 세상을 지배하는 나머지 아예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는 말인가.

이덕일에서 '60일, 지정생존자'까지

역사학계에서는 그 누구도 노론 음모론을 진지한 학설로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대중문화의 영역에서는 거의 통설에 가까운 입지를 차지하고 있다. 정조 독살설을 대중적으로 처음 각인시킨 이인화의 1993년 작 '영원한 제국'은 100만 부가 넘게 팔렸다. 이후 1995년 영화화되면서 다시 한 번 인기를 누렸다. 

그 후 노론 음모론 확산에 결정적 기여를 한 사람은 역사학자 이덕일이다. 이덕일은 1998년 '사도세자의 고백'을 펴낸 후 '누가 왕을 죽였는가'(개정판: '조선왕 독살사건')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등의 저서를 통해 노론 음모론을 줄기차게 주장했다. 2009년 발견된 정조 어찰첩도 그의 '신념'을 꺾지는 못하고 있다. 

노론 음모론은 역사 학설이라고 볼 수 없다. 음모론이다. 거대한 악이 있고, 그 악에 맞서는 외로운 주인공이 있다. 그것이 스토리텔링의 반을 먹고 들어가는 설정이다. 대중문화와 대중역사저술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대중 사이에서는 마치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퍼져나갔다. 그 흐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19년 방영된 tvN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에서는 한 등장인물이 작품 속 대통령 양진만을 "노론 이후 처음 정권교체를 한 대통령"이라고 언급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대립 구도는 대중적 상상력을 쉽게 자극한다.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단순명료한 선악 구도다. '보이지 않는 거악'과 '피와 살을 지닌 주인공'을 대립시킬 수 있으니 감정이입 또한 쉽다. 순수한 마음으로 백성을 위하는 '개혁군주' 정조가 있고, 그를 사사건건 반대하다 급기야 암살해버리는 '기득권층' 노론이 있다는 식이다. 현 정권의 '묻지마 지지자'들은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도세자이며 문재인 대통령이 정조처럼 개혁의 칼을 뽑아야 한다는 식의 서사를 떠올리고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리 재미있어도 음모론은 음모론일 뿐이다. 음모론을 세계관 삼아 현실 정치를 바라보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많은 사람이 민주적 원칙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거대한 음모가 공동체를 위협하고 있다는 서사를 믿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서사는 음모와 맞서기 위해 민주적 원칙과 절차 따위는 무시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는 결론으로 미끄러지기 쉽다. 정치적 당위를 '거악'과의 투쟁에서 찾는 정치 집단은 필연적으로 타락할 수밖에 없다.

음모론의 시대

사회학자 전상진은 '음모론의 시대'에서 음모론을 다양한 방식으로 분류한다. 그 중 하나가 '통치 음모론'과 '저항 음모론'이다. 통치 음모론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나 집단이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동원하는 음모론이다. 반면 저항 음모론은 탄압받는 약자와 소수자가 부족한 정보력을 극복하고 폭압적 통치에 저항하기 위해 동원하는 담론적 무기가 된다.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통치 음모론은 악이고 저항 음모론은 선인 것 같다. 꼭 그렇지는 않다. 저항 음모론이 지나치면 아무리 저항해도 이겨낼 수 없을 만큼 강력하고 조직된 악을 상정하게 된다. 외려 투쟁 의욕이 꺾일 수 있다. 게다가 음모론을 지배의 도구로 사용하는 권력자는 당연히 스스로를 핍박받는 약자의 위치에 놓고 저항 음모론을 펴게 마련이다. 

역사에는 유명한 사례가 있다. 히틀러의 '나의 투쟁'은 두 권으로 이뤄진 두꺼운 책이다. 허구가 가미된 히틀러 본인의 성장담 위에 유대인과 공산주의에 대한 적개심이 뒤덮여 있다. 유대인과 공산주의자들이 손잡고 순수한 독일인 아리안 민족을 위협하고 있으므로, 그들을 막기 위해 민주적 절차나 당위성을 잠시 접어두고 독재를 해야 한다는 게 '나의 투쟁'의 골자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내용 같지 않은가. 그렇다. '유대인과 공산당'을 '노론과 친일파'로 바꾸면 이해찬과 고민정이 말하는 노론 음모론과 다를 바 없다. 유대인, 공산주의자, 친일파, 노론 등 뭐라고 이름 붙여도 상관없다. 그 '거악'과 맞서기 위한 투쟁의 한복판에서 타협과 협상과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는 민주주의의 절차 따위는 거추장스러운 족쇄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민주당은 노론, 친일파, 기득권, 그러니까 나쁜 놈들을 잡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공수처를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는 거다. 비밀국가경찰 게슈타포를 설치할 때 나치가 동원한 논리를 쏙 빼닮았다. 

180석의 의석을 손에 넣은 뒤에도 200년간 한국을 지배해온 노론 기득권을 운운하는 이해찬, 그런 사상을 자연스레 공유하는 고민정 등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이들은 역사 소설이나 대중역사서를 읽고 흥분한 대학교 동아리 학생들이 아니다. 한국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인물들이 아무렇지 않게 음모론을 자신들의 정치 동기로, 혹은 정치 행위를 정당화하는 논거로 거론하고 있다.

노론 200년과 딥 스테이트

현 정권이 음모론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실로 우려스럽다. 단지 정조 독살설이나 노론 음모론뿐만 아니다. K-방역 자화자찬에 정신이 팔려 미국, 영국, 일본이 확보한 코로나19 백신을 한국만 못 갖게 된 현실이 드러났다. 그러자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백신 접종 후 안면 마비 등 부작용에 대한 보도도 나오고 있다"며 안전성에 대한 공포를 조성하고 나섰다.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지난 정권 때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전자파가 몸에 해롭다'는 주장을 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괴담을 앞장서 유포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음모론 중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나마 야당이던 시절에는 그런 행위를 '저항 음모론'이라고 둘러댈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었다. 지금은 그럴 수도 없다. 대선에서 이겼고 총선에서도 압승을 거뒀다. 더는 피해자 행세를 할 수 없으니 이제는 전직 당 대표가 '노론 200년'이라는 음모론을 유포하고 있다. 대선에서 진 트럼프가 '딥 스테이트'의 부정선거에 당했노라고 호소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세상은 음모로 돌아가기엔 너무도 크고 복잡한 곳이다. 오늘날의 대통령보다 강한 권력을 갖고 있던 임금, 정조에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는 밤마다 여기저기 밀서를 써서 보냈고 치열하게 '정치'를 하다가 병으로 죽었다. 정조 독살설과 노론 음모론을 퍼뜨리는 이들이야말로 그런 '정치인 이산'을 지워버리고, 자신들의 정치적 환상을 투영할 수 있는 얄팍한 비운의 영웅 캐릭터로 만들고 있는 것 아닌가. 과거의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미래의 역사를 올바로 만들어가기 위해, 음모론과 작별해야 할 때다.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basil83@gmail.com

정조대왕이 공수처까지? 이해찬·고민정의 판타지

 [노정태의 뷰파인더⑭] 盧는 사도세자, 文은 정조?

●‘그림자 정부’ 있다는 ‘노론 음모론’
●실제는 정조와 노론 국정 동반 운영
●거악과 싸우는 ‘외로운 주인공’ 설정
●음모 맞서고자 민주적 절차 족쇄로 여겨
●공수처와 나치 게슈타포 설치 근거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7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마친 후 국회의장 접견실에서 이해찬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우리 역사의 지형을 보면 정조대왕이 1800년에 돌아가십니다. 그 이후로 220년 동안 개혁 세력이 집권한 적이 없어요. 조선 말기는 수구 쇄국 세력이 집권했고, 일제강점기 거쳤지, 분단됐지, 4·19는 바로 뒤집어졌지, 군사독재 했지, 김대중 노무현 10년 빼면 210년을 전부 수구보수 세력이 집권한 역사입니다.”
 
누가 한 말일까. 소설가일까. 대중적 역사책을 쓰는 작가의 말일까. 혹은, 한창 혈기 왕성한 젊은 대학생의 발언인가. 아니다. 대단히 성공적인 이력을 밟아온 거물 정치인의 발언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역임한 바로 그 사람이다. 

이야기의 맥락은 이렇다. 이해찬 하면 떠오르는 ‘20년 집권론’의 논리와 근거가 뭔지 궁금하다는 ‘시사인’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한 말이다. 민주당이 20년을 연이어 집권한다 해도 그것은 지난 200년 역사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는 소리다.

바로 그 사람, 이해찬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2월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법률안 제안 설명을 하고 있다. [김동주 동아일보 기자]
어떤 정당의 대표가 집권을 위해 노력하겠다는데 말릴 사람은 없다. 일부러 단기 집권만 하겠다고 할 정당도 없으니, 20년이건 200년이건 목표를 잡는 걸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하지만 이해찬의 말은 단순한 선거 전략이나 목표 차원을 넘어선다. 한국의 역사를 바라보는 어떤 관점이 전제돼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대변인 출신으로 21대 총선에서 국회에 입성한 고민정 민주당 의원도 마찬가지 생각을 한다. 그는 1210일 페이스북에 “과거 기득권 세력이던 노론은 개혁 군주 정조의 모든 개혁 법안에 대해 끊임없이 저항했다”면서 “하지만 정조는 백성들을 위한 개혁을 멈추지 않았다”고 썼다. 같은 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에 대해 논하며 쓴 게시물이다. 

이렇듯 여당과 청와대, 더 넓게 보자면 그 지지층은 하나의 역사적 판타지를 공유하고 있다.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정조의 죽음에는 노론의 책임이 있다. 독살을 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둘째, 노론이 정조를 죽인 것은 정조가 개혁군주고 그가 추진하는 정책이 노론의 기득권과 충돌했기 때문이다. 셋째, 노론은 이후 200년이 넘는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도 기득권을 지켜왔다. 노론은 곧 영남이고 영남은 친일파이며 오늘날까지도 재벌, 언론, 군대, 관료 등 사실상 거의 모든 권력을 차지하고 있다. 정부의 막후에서 움직이는 그림자 정부, 혹은 ‘딥 스테이트’(Deep State)를 이루고 있으며, 정권을 빼앗겼어도 여전히 공고하다. 

이런 사고방식을 ‘노론 음모론’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노론 음모론’은 음모론이다. 실체가 없는 상상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노론 음모론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정조 독살설부터가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멀다. 노론의 정조 독살을 입증할 수 있는 직·간접적 증거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혹자는 노론이 정조를 독살하지 ‘않았다’는 증거도 없지 않느냐고 되물을지 모르겠다. 물론 그런 증거도 세상에는 없다. 하지만 그것은 입증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흔히 하는 말처럼 ‘증거의 부재는 부재의 증거가 아니다.’ 정조 독살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말을 입증하기 위해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오히려 최신 자료에 따르면 정조와 노론은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었다. 겉으로는 그런 모습을 연출했지만 실제로는 물밑에서 끝없이 대화하고 협상하며 국정을 동반 운영했다. 2009년 세상에 공개돼 2016년 대한민국 보물 1923호로 지정된 정조 어찰첩이 그 진상을 보여준다. 

노론 벽파의 거두 심환지가 정조와 주고받은 비밀 편지 모음집에 따르면, 심환지는 정조가 가장 신뢰하며 속내를 털어놓는 신하였다. 정치뿐 아니라 개인적 고민, 심지어 건강 문제까지 의논했다. 하나로 묶여서 공개된 297통과 그에 포함되지 않은 50여 통을 비롯해,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비밀편지는 350통에 달한다.

정조와 심환지 사이의 비밀편지
2009년 2월 9일 서울 성균관대에서 김문식 단국대 교수, 안대회·진재교 성균관대 교수(왼쪽부터)가 새로 발굴한 정조 어찰 중 일부를 공개했다. [동아DB]
그 중 가장 유명한 한 대목을 읽어보자. 정조는 심환지에게 은밀히 말했다. “내가 사류(士流)의 두목이니, 지금 사류의 전형을 구한다면 형편상 경을 먼저 꼽을 것이다. 경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나의 마음은, 서야(徐也)에게보다 열 배가 넘는다.” 조선은 선비들의 집단적 의지에 의해 굴러가는 나라이며 자신은 그 선비들 중 우두머리일 뿐이고, 그러니 정조를 대신해 심환지가 ‘군기반장’ 노릇을 해줘야 한다는 미안한 부탁을 하는 것이다. 

맞는 말이었다. 조선은 양반이 지배하는 나라였다. 임금 역시 양반 위에 군림한다기보다 양반들의 집단적 이해관계 속에서 추대되는 대표자에 가까웠다. 왕은 결혼, 관리 등용, 때에 따라 벌이는 숙청 등을 통해 신하들의 세력을 적절히 키우고 억눌러가며 자신의 입지를 지켰다. 

정조 말기에 이르러 노론 벽파가 노론 시파를 밀어내고 힘을 키운 것 또한 마찬가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음모론에 심취한 이들은 노론 벽파가 단독으로 대단한 힘을 갖고 임금을 가지고 논 것처럼 말한다. 실제로는 정조가 노론 벽파 그 중에서도 핵심 인물인 심환지를 ‘키워준’ 것이다. 

그러니 노론이 정조를 밀어내고 이후 한반도의 역사를 모두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식의 사고방식 역시 자연스럽게 설 자리를 잃는다. 18세기 말에 이르면 사색당파로 대표되는 기존의 붕당 체제는 형해화됐다. 왕실의 인척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도정치 시대가 열렸다. 

일부 역사가들은 세도정치가 시작된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바로 영조와 정조라고 지적한다. 탕평책을 내세워 임금이 지나치게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바람에 당파 간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또한 하나의 해석이겠지만, 적어도 노론 음모론에 비하면 현존하는 사료와 건전한 상식에 부합한다. 

노론이라는 ‘당파’는 사라졌어도 그 ‘후예’들이 한국을 지배한다는 주장에는 합리적 근거가 있을까. 그렇지 않다. 노론 음모론은 재벌, 언론, 군대 등 소위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노론의 후예가 장악하고 있다는 주장을 바탕에 깔고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다. 

재벌로 초점을 맞춰보자.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은 자서전에서 본인의 집안이 기호남인 계열임을 뿌듯하게 밝힌 바 있다.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은 빈농의 자식으로 아버지의 소 판 돈을 밑천 삼아 굴지의 기업을 일궜다는 사실을 평생의 자랑으로 삼았다. 대한민국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노론 세력은 대체 어디 있는 걸까. 그들은 너무도 은밀하게 세상을 지배하는 나머지 아예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는 말인가.

이덕일에서 ‘60일, 지정생존자’까지
역사학계에서는 그 누구도 노론 음모론을 진지한 학설로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대중문화의 영역에서는 거의 통설에 가까운 입지를 차지하고 있다. 정조 독살설을 대중적으로 처음 각인시킨 이인화의 1993년 작 ‘영원한 제국’은 100만 부가 넘게 팔렸다. 이후 1995년 영화화되면서 다시 한 번 인기를 누렸다. 

그 후 노론 음모론 확산에 결정적 기여를 한 사람은 역사학자 이덕일이다. 이덕일은 1998년 ‘사도세자의 고백’을 펴낸 후 ‘누가 왕을 죽였는가’(개정판: ‘조선왕 독살사건’)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등의 저서를 통해 노론 음모론을 줄기차게 주장했다. 2009년 발견된 정조 어찰첩도 그의 ‘신념’을 꺾지는 못하고 있다. 

노론 음모론은 역사 학설이라고 볼 수 없다. 음모론이다. 거대한 악이 있고, 그 악에 맞서는 외로운 주인공이 있다. 그것이 스토리텔링의 반을 먹고 들어가는 설정이다. 대중문화와 대중역사저술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대중 사이에서는 마치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퍼져나갔다. 그 흐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19년 방영된 tvN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에서는 한 등장인물이 작품 속 대통령 양진만을 “노론 이후 처음 정권교체를 한 대통령”이라고 언급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대립 구도는 대중적 상상력을 쉽게 자극한다.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단순명료한 선악 구도다. ‘보이지 않는 거악’과 ‘피와 살을 지닌 주인공’을 대립시킬 수 있으니 감정이입 또한 쉽다. 순수한 마음으로 백성을 위하는 ‘개혁군주’ 정조가 있고, 그를 사사건건 반대하다 급기야 암살해버리는 ‘기득권층’ 노론이 있다는 식이다. 현 정권의 ‘묻지마 지지자’들은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도세자이며 문재인 대통령이 정조처럼 개혁의 칼을 뽑아야 한다는 식의 서사를 떠올리고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리 재미있어도 음모론은 음모론일 뿐이다. 음모론을 세계관 삼아 현실 정치를 바라보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많은 사람이 민주적 원칙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거대한 음모가 공동체를 위협하고 있다는 서사를 믿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서사는 음모와 맞서기 위해 민주적 원칙과 절차 따위는 무시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는 결론으로 미끄러지기 쉽다. 정치적 당위를 ‘거악’과의 투쟁에서 찾는 정치 집단은 필연적으로 타락할 수밖에 없다.

음모론의 시대
사회학자 전상진은 ‘음모론의 시대’에서 음모론을 다양한 방식으로 분류한다. 그 중 하나가 ‘통치 음모론’과 ‘저항 음모론’이다. 통치 음모론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나 집단이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동원하는 음모론이다. 반면 저항 음모론은 탄압받는 약자와 소수자가 부족한 정보력을 극복하고 폭압적 통치에 저항하기 위해 동원하는 담론적 무기가 된다.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통치 음모론은 악이고 저항 음모론은 선인 것 같다. 꼭 그렇지는 않다. 저항 음모론이 지나치면 아무리 저항해도 이겨낼 수 없을 만큼 강력하고 조직된 악을 상정하게 된다. 외려 투쟁 의욕이 꺾일 수 있다. 게다가 음모론을 지배의 도구로 사용하는 권력자는 당연히 스스로를 핍박받는 약자의 위치에 놓고 저항 음모론을 펴게 마련이다. 

역사에는 유명한 사례가 있다. 히틀러의 ‘나의 투쟁’은 두 권으로 이뤄진 두꺼운 책이다. 허구가 가미된 히틀러 본인의 성장담 위에 유대인과 공산주의에 대한 적개심이 뒤덮여 있다. 유대인과 공산주의자들이 손잡고 순수한 독일인 아리안 민족을 위협하고 있으므로, 그들을 막기 위해 민주적 절차나 당위성을 잠시 접어두고 독재를 해야 한다는 게 ‘나의 투쟁’의 골자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내용 같지 않은가. 그렇다. ‘유대인과 공산당’을 ‘노론과 친일파’로 바꾸면 이해찬과 고민정이 말하는 노론 음모론과 다를 바 없다. 유대인, 공산주의자, 친일파, 노론 등 뭐라고 이름 붙여도 상관없다. 그 ‘거악’과 맞서기 위한 투쟁의 한복판에서 타협과 협상과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는 민주주의의 절차 따위는 거추장스러운 족쇄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민주당은 노론, 친일파, 기득권, 그러니까 나쁜 놈들을 잡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공수처를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는 거다. 비밀국가경찰 게슈타포를 설치할 때 나치가 동원한 논리를 쏙 빼닮았다. 

180석의 의석을 손에 넣은 뒤에도 200년간 한국을 지배해온 노론 기득권을 운운하는 이해찬, 그런 사상을 자연스레 공유하는 고민정 등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이들은 역사 소설이나 대중역사서를 읽고 흥분한 대학교 동아리 학생들이 아니다. 한국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인물들이 아무렇지 않게 음모론을 자신들의 정치 동기로, 혹은 정치 행위를 정당화하는 논거로 거론하고 있다.

노론 200년과 딥 스테이트
현 정권이 음모론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실로 우려스럽다. 단지 정조 독살설이나 노론 음모론뿐만 아니다. K-방역 자화자찬에 정신이 팔려 미국, 영국, 일본이 확보한 코로나19 백신을 한국만 못 갖게 된 현실이 드러났다. 그러자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백신 접종 후 안면 마비 등 부작용에 대한 보도도 나오고 있다”며 안전성에 대한 공포를 조성하고 나섰다.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지난 정권 때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전자파가 몸에 해롭다’는 주장을 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괴담을 앞장서 유포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음모론 중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나마 야당이던 시절에는 그런 행위를 ‘저항 음모론’이라고 둘러댈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었다. 지금은 그럴 수도 없다. 대선에서 이겼고 총선에서도 압승을 거뒀다. 더는 피해자 행세를 할 수 없으니 이제는 전직 당 대표가 ‘노론 200년’이라는 음모론을 유포하고 있다. 대선에서 진 트럼프가 ‘딥 스테이트’의 부정선거에 당했노라고 호소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세상은 음모로 돌아가기엔 너무도 크고 복잡한 곳이다. 오늘날의 대통령보다 강한 권력을 갖고 있던 임금, 정조에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는 밤마다 여기저기 밀서를 써서 보냈고 치열하게 ‘정치’를 하다가 병으로 죽었다. 정조 독살설과 노론 음모론을 퍼뜨리는 이들이야말로 그런 ‘정치인 이산’을 지워버리고, 자신들의 정치적 환상을 투영할 수 있는 얄팍한 비운의 영웅 캐릭터로 만들고 있는 것 아닌가. 과거의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미래의 역사를 올바로 만들어가기 위해, 음모론과 작별해야 할 때다.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basil8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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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6

'진중권·강준만·홍세화' 문재인 정부 비판하는 진보논객들

 * 제가 쓴 글은 아니나, 제 저서 『논객시대』가 중요하게 인용되어 전문 인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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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강준만·홍세화' 문재인 정부 비판하는 진보논객들

김도연 기자 입력 2020. 12. 26. 18:56

오래된 논객 진중권·강준만·홍세화의 독설… 유시민·김어준 "어용화" 비판도 공수처 등 검찰개혁 옹호하는 박노자 교수 "극우 집권시, 문대통령 감옥 수순"

[미디어오늘 김도연 기자]

칼럼니스트 노정태씨는 2014년 2월 펴낸 책 '논객시대'에서 우리사회 진보논객들을 분석했다. 이들이 만들어낸 공론장과 논쟁이 우리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비판적으로 살폈다. 논객시대 챕터를 채운 이들은 강준만, 진중권, 유시민, 박노자, 우석훈, 김규항, 김어준, 홍세화, 고종석 등이다.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글쓰기와 각종 논쟁으로 수놓은 이들은 현실 정치에 참여하거나 안티조선운동과 같은 미디어 운동을 주도했고, 이방인·비주류 시선으로 한국사회의 자본주의를 강하게 비판했다. 논객의 세대교체가 이뤄질 법도 하지만 이들 논객 중 일부는 신문이나 방송, 저서를 통해 여전히 '오피니언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물론 이들 사이 견해는 첨예하게 대립하거나 때때로 동조한다. 특히 '조국 사태와 검찰 개혁'에서다.

“어용 지식인” 유시민과 '진보 스피커' 김어준

정계 은퇴를 선언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문재인 정권의 '어용 지식인'을 자처했다. 그는 2017년 5월 한겨레TV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해 “지식인이거나 언론인이면 권력과 거리를 둬야 하고 권력에 비판적이어야 하는 건 옳다”며 “그러나 대통령만 바뀌는 것이지 대통령보다 더 오래 살아남고 바꿀 수 없는, 더 막강한 힘을 행사하는 기득권 권력이 사방에 포진해 또 괴롭힐 것이기 때문에 내가 정의당 평당원이지만 범진보 정부에 대해 어용 지식인이 되려 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듬해 JTBC 프로그램 '썰전'에서 하차했고 지난해 1월부터 노무현재단이 제작하는 '알릴레오'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 재개된 시즌3에서는 '정치 비평'을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지만 앞선 시즌에서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를 수사했던 윤석열 검찰총장과 첨예하게 맞서며 '어용 지식인' 역할에 심혈을 기울였다. KBS 법조팀이 조국 전 장관 보도를 왜곡했다는 주장으로 사회부장이 보직 사퇴하고 해당 법조팀이 사실상 인사 조치되는 등 그는 지난해 이슈와 논란을 몰고 다녔다.

▲ 왼쪽부터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방송인 김어준씨,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사진=미디어오늘, 연합뉴스.

'나는꼼수다' 김어준씨는 2016년 9월부터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기존 공정과 균형이라는 방송 문법에 개의치 않는다. 이 때문에 정부·여당 편향 논란과 공영방송 진행자 자질 시비가 끊이지 않지만 그 영향력은 어떤 경쟁 매체와 비교해도 압도적이다. 한국리서치가 지난달 4일 발표한 2020년도 4라운드 서울·수도권 라디오 청취율 조사에서 12%의 청취율로 1위를 기록했다. 2018년 조사부터 1위에 오른 뒤 2위와 압도적 격차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편향성과 공정성 시비는 최근에도 불거졌다. 김씨는 지난 25일 방송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의 징계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한 판사에 대해 “검찰과 사법이 하나가 돼 법적 쿠데타를 만들어 낸 것”이라며 “행정법원의 일개 판사가 '본인의 검찰총장 임기를 내가 보장해줄게' 이렇게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국 전 장관 배우자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 유죄 판결에는 “판사가 (편파적) 언론 보도를 즐기면서 그 운율에 맞춰 춤춰서 내린 판결”(유튜브 '다스뵈이다')이라고 혹평했다.

1심 재판부가 정 교수 입시비리 공범으로 적시한 딸 조민씨가 지난해 10월 인터뷰한 매체도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이다. 당시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강상현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은 “TBS가 편향적 성향의 출연진을 방송에 출연시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고 했다. '논객시대' 저자 노정태는 최근 신동아 인터뷰에서 유·김 두 사람의 '어용화'를 묻는 질문에 “진보 논객들이 발전담론, 성장담론을 죄악시하거나 설계하지 못하니 퇴행적으로 복수나 과거사에만 집착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돌아온 '독한 혀' 진중권… 신작서 문 비판 강준만

정경심 교수에게 징역형 선고가 나오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페이스북 포스팅을 마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7월 기자협회보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언론에 가장 많이 인용된 인물 18위가 그였다. 기자협회보는 “수많은 인물 중 정체성이 가장 독특한 인물이 있었으니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였다. 당·정·청 및 외교안보와 코로나19 관련 인물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중에 진 전 교수는 1~6월 2093건 인용되며 18위라는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면서 “진 전 교수가 페이스북 등을 통해 문재인 정부와 여당 등에 대립각을 세우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고 해석했다.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그는 문재인 정권에 독설 수위를 높여왔다. '조국백서'에 대응해 '조국흑서'(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공저자에 이름을 올렸고, 지난 23일 마지막 페이스북 글에서도 “거짓을 사실로 둔갑시킨 수많은 사람들이 생각난다”며 “빤히 알면서도 대중을 속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조국을 비호하기 위해 사실을 날조해 음해 공작까지 벌인 열린민주당 정치인들, 그리고 이들의 정치적 사기 행각을 묵인하고 추인해 온 대통령을 비판한다”고 했다.

진 전 교수는 또 “이상한 증인들 내세워 진실을 호도해온 TBS의 뉴스공장”, “여론을 왜곡하기 위해 온갖 궤변을 늘어놓으며 곡학아세를 해온 어용 지식인들” 등도 비판한다고 했다. 유시민·김어준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도 문재인 정권에 비판적이다. 그는 최근 펴낸 책 '싸가지 없는 정치'에서 “문재인 정권이 윤석열에게 보인 태도를 보자면, 문 정권의 인사 실패였던 게 분명하다”며 “문 정권은 해임이라는 '정면 돌파' 대신 윤석열이 스스로 물러나게 만드는 전략을 집요하게 구사했다. 윤석열은 끈질지게 버텼고, 2019년 12월 법무부 장관으로 추미애를 투입하면서 '지저분한 싸움'의 농도는 짙어졌다”고 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검찰 개혁'은 '윤석열 죽이기' 프로젝트로 변질되고 말았으며, 이해하기 어려운 해괴한 일들이 벌어졌다”고 덧붙였다.

강 교수는 이 책에서 유시민 이사장에 대해 “문재인에게 유리하면 뭐든지 선이요 정의라고 보는, 비생산적이고 파괴적인 '진영논리'에 중독”됐다고 평한 뒤 “나는 유시민이 '어용 지식인'과 '어용 시민'을 필요로 하는 정치 패러다임 자체를 의문시하면서, 누구에게 유리한가 불리한가 하는 셈법을 잠시 유보하면서, 자신이 알게 모르게 기여한 '정치의 종교화' 자체를 바꾸는 데에 노력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김어준에 대해서도 “이들은 늘 '거대 꼼수(음모)와 싸운다'며 자주 음모론을 양산해낸다”며 “엉터리 음모론으로 밝혀져도 매우 당당하다.(중략) 물론 김어준의 (사실이 아닌 위험한 주장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그런 특권은 문재인 지지자들의 '닥치고지지'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이들 역시 음모론이 선사하는 '피해자 행세'가 '권력 재생산 메커니즘'일 수 있다는 걸 모르진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 왼쪽부터 홍세화씨, 강준만 교수, 박노자 교수. 사진=미디어오늘, 한겨레TV 갈무리.

문 대통령을 임금님에 비유한 홍세화

또 다른 진보논객 홍세화씨는 지난달 한겨레 칼럼에서 문 대통령을 임금님에 비유했다. 홍씨는 이 칼럼에서 “임금님은 불편한 질문을 받지 않아도 되고 불편한 자리에 가지 않아도 되지만, 대통령은 그렇지 않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팽목항에 가야 했던 것도 임금님이 아니라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불편한 질문, 불편한 자리를 피한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은 대통령보다 임금님에 가깝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으로 백성한테서 '상소문'을 받는다는 점도 그렇다. 임금님인데, 착한 임금님”이라고 비판했다.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선 문 정권 주류를 이루고 있는 86세대를 '민주건달'로 지칭하고는 “지금의 보수는 보수가 아니듯, 진보도 진보가 아니다”라며 “분단체제에서 수구세력, 즉 극우적인 반북 국가주의자들이 보수를 참칭했고, 반일 민족주의를 앞세운 자유주의 보수 세력이 진보를 참칭한 것”이라고 일갈했다.

23일 YTN 인터뷰에서는 정부·여당이 주도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대해 “검찰에는 민주적 통제를 가해야지 또 하나의 권력 기관으로 통제한다는 건 결국 옥상옥이 되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며 “가령 기소에 문제가 있을 때, 민간이 참여해 기소를 심의하게 하든지 피해를 받은 민간에게 공소권을 준다든지 등 방식도 있다. 권력기관을 통제하기 위해 또 다른 권력기관을 만드는 것에 치우쳐 있다는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 당시 반대 입장을 강하게 피력하며 “현 정권은 사회적 격차와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서 뭔가 해소하려고 하는 것 같지 않다”고 비판한 경제학자 우석훈도 지난달 주간동아 인터뷰에서 “사법개혁이 과연 그렇게 모두가 달려가서 풀어야 할 문제인지도 모르겠고, 풀리는 문제인지도 모르겠고, 사법개혁을 한다고 해서 내놓은 방안들이 옳은 해법인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이어 “임기 기간 동안 아까운 시간을 애먼 일하면서 보내고 있는 것 같다”면서 공수처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청년 세대가 소외되고 있는 것에 “청년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 뭐라도 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었다”면서 “그래서 청년들 사이에 586세대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정치인과 관료 몇 사람이 낙하산으로 성과를 다 가져갔다. 정치 실패이자 무능이다. 정치가 청와대를 중심으로 과잉 대표됐다”고 지적했다.

공수처 지지한 박노자 “공권력 중립적이어야”

진중권 전 교수와 함께 사회문화평론지 '아웃사이더'를 창간했던 진보지식인 김규항 작가도 지난 3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지금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처럼 '리스트'만 안 만들었을 뿐이지 진영 논리는 그대로 있다”면서 “또 하나는 감성의 문제인데 진보 진영 내에선 여전히 '적'을 상정하고 그것을 상대로 투쟁을 벌여야 한다는 이상한 의식구조가 강하다. 조국 구하기에 나선 진보진영은 검찰을 '적'으로 상정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25일 자신의 블로그에 “정경심씨 판결과 윤석열씨 복귀는 '상식의 회복'에 속하는 일”이라며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목표인 사람도 있고, 현재의 상식에 질문하며 더 나은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도 있다. 둘 모두에게 일단 다행스럽다”고 했다. 기자 출신 작가 고종석씨는 개인 SNS에서 문 정권을 연일 비판하고 있다.

반면, 다른 목소리를 내는 논객도 있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는 지난 11일 한겨레TV 인터뷰에서 '조국 사태'에 관해 “조국 교수 같은 분들은 한국사회 상류층”이라며 “문제가 됐던 일부는 상류층 관행에, 다른 일부는 교수사회 관행에 가까웠다. 서민들 입장에서 보면 화가 절로 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박 교수는 “검찰이 조국 교수 신상을 털 만큼 털었다. 그러나 (교수의) 대학원생 착취 사건 같은 게 하나도 안 나왔다. 성희롱 등의 사건도 없었다”며 “이런 교수가 대한민국에 얼마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대한민국 교수사회가 그만큼 부패했다는 취지로 읽히는 대목.

박 교수는 “저는 조국 교수도 문재인 대통령도 지지하지 않는다”면서도 “검찰이 공권력이 아닌 하나의 정당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윤 총장이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현실에 “한국사회가 민주화됐다고는 하지만 완벽한 제도화는 아니다”라며 “검찰 권력 같은 공권력은 중립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권력을 상대화해야 한다”면서 공수처 설치에 찬성했다.

박 교수는 진 전 교수에 대해서도 “(진 전 교수가) 크게 착각하시는 것 같다. 현 집권층과 권력을 혼동하고 있다고 비판한 뒤 “대통령이 한국사회의 진정한 권력은 아니다. 대통령과 권력자는 분리해서 봐야 한다. 대통령은 5년짜리”라고 했다. 또 “진 선생이 길게 보셔야 한다. 만약 극우가 집권하면 '윤석열들'한테 다음 순서는 문재인 대통령을 감옥에 집어넣는 것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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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철] K방역, 부동산.. 한국은 지금 '문재인 쇼' 절찬 방영 중

 

K방역, 부동산.. 한국은 지금 '문재인 쇼' 절찬 방영 중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입력 2020. 12. 26. 03:10 수정 2020. 12. 27. 10:45
[아무튼 주말] [노정태의 시사哲] 데카르트와 트루먼쇼
일러스트=안병현

보험 회사 직원 트루먼 버뱅크는 평온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시 헤이븐이라는 작은 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고소 공포증과 물 공포증이 함께 있어 고향을 떠날 수 없는 게 아쉽다. 늘 웃는 얼굴로 친절한 이웃을 만날 때마다 하루 인사를 한꺼번에 건넨다. ‘굿 애프터 눈, 굿 이브닝, 굿 나잇.’

언제부턴가 트루먼의 일상이 삐걱거린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에서 무대 조명이 떨어지지 않나, 자기 머리 위에서만 비가 쏟아지지 않나, 심지어 어린 시절 보트 사고로 죽은 아버지와 똑같이 생긴 노숙자를 만났는데 사람들이 그 노숙자를 버스에 태워서 어디론가 가버리지 않나. 트루먼은 점점 의심한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과연 ‘진짜’일까?

독자 여러분도 모두 아실 그 이야기, ‘트루먼 쇼’의 설정이다. 트루먼의 인생은 전 세계로 생중계되고 있다. 갓 태어났을 때부터 서른 살이 된 지금까지 쭉 그랬다. 사상 최대의 리얼리티 쇼이면서 PPL인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지만, 본인만 그 사실을 모른다. 평생을 보고 듣고 접해온 모든 것이 가짜인 셈이다.

‘트루먼 쇼’는 1998년 개봉 당시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 보면 어떤 부분은 시대에 뒤처져 있다. 스마트폰을 들고 소셜미디어나 유튜브에 자기 일상을 생중계하는 ‘자발적 트루먼’이 가득한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몇몇 주제 의식은 여전히 빛난다. 자기를 둘러싼 이 모든 것이 가짜가 아닐까 의심하는 트루먼의 모습은 서양철학의 근본 질문과 맞닿아 있다. 우리는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와 ‘코기토 명제’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한 가지 가정을 해보았다. 만약 어떤 전능한 악마가 나를 속이기 위해 내가 보고 듣고 접하는 모든 것을 악마 뜻대로 조종한다고 해보자. 영화 속 ‘트루먼 쇼’의 연출자 크리스토프처럼 모든 경험과 인간관계를 조작하는 차원을 넘어, 상식과 감각조차 뒤바꾸는 것이다. 불을 만져도 뜨겁지 않고 물을 마셔도 시원하지 않고, 빨간색이 파랗게 보이고 사람들은 하늘을 날아다니며, 1+1=2가 아니라 3이 정답이라면?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게 있다. 나의 모든 인식이 잘못되었다 해도, 인식하고 있는, 즉 생각하고 있는 나의 존재 자체는 부정할 수가 없다. 악마가 나를 아무리 철저히 속인다 해도, 속이는 대상인 내가 ‘있어야’ 속일 수 있다. ‘트루먼 쇼’의 모든 것이 가짜여도 트루먼만은 ‘진짜’여야 ‘트루먼 쇼’가 성립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데카르트 저서 ‘성찰’의 한 대목. “나는 내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 동안, 그 악마는 결코 내가 아무것도 아니게끔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데카르트는 그 어떤 경우에도 참일 수밖에 없는 절대 진리를 찾아내, 선언했다. ‘코기토, 에르고 숨(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당시는 인류의 지적 역량이 다방면으로 늘어나던 시절이었다. 모든 지식과 도덕적 판단 근거를 성경에서 찾는 신학은 더 이상 ‘제1 학문’의 기능을 할 수 없었다. 그 역할을 대신해야 할 철학이 과연 보편적 합리성을 보증할 수 있을까? 데카르트는 반드시 옳을 수밖에 없는 진리를 인간이 가진 이성의 힘으로 밝혀낸 후, 그 위에서 수학과 자연과학을 포괄한 모든 학문 체계를 세우고자 했다. 마치 트루먼이 ‘트루먼 쇼’의 세트장 밖으로 나간 것과 같다. 인류는 종교와 관습이 아닌 이성의 힘으로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그러나 역사는 때로 뒷걸음질치기도 하는 법.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여전히 ‘트루먼 쇼’가 절찬리 방영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 주인공이다. 가장 가까운 예부터 들어보자. 지난 11일, 문 대통령이 경기 화성시 LH 동탄 공공 임대주택을 방문했다. 그는 44m²(옛 13평형)와 신혼부부용 41m²(12평형)를 둘러본 뒤 “공간 배치가 아늑하고 아주 아기자기하다” “신혼부부에 아이 한 명은 표준이고 어린아이 같은 경우는 두 명도 가능하겠다” “굳이 자기 집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임대주택이 충분히 좋은 주택으로 발전해 갈 수 있다”는 등의 대화를 주고받으며 흡족해했다.

LH 측이 야당 요청으로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그 두 채는 ‘세트장’이었다. 3300만원을 들여 가구를 구입한 후 공임비 650만원과 부가세까지 포함해 총 4290만원을 들인 초호화 세트장이었다. 보증금 6000만원에 월세 20만원 수준인 임대주택에 보증금과 맞먹는 비용을 들여 만든 일종의 ‘가상현실’이었던 것이다.

어디 부동산 정책뿐일까. 2018년 남북 정상회담 역시 돌이켜보면 일종의 ‘트루먼 쇼’였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백두산 정상에 오르고, 평양에서 냉면을 먹고, 판문점에서 군사분계선을 넘는 장면을 연출했다. 그런 ‘쇼’를 열심히 하면 평화가 올 것처럼 바람을 잡았다. 현실은 정반대다. 북한은 핵을 포기할 의향이 없다. 북측 해역으로 흘러 들어간 우리 국민에게 총을 난사하고 시신에 불을 붙이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K방역’이라는 ‘문재인 쇼’ 역시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있다. 미국, 영국, 심지어 일본도 확보한 백신이 한국에만 없다. 겨울과 함께 하루 감염자가 1000명이 넘는 대유행이 시작되었는데 병상 확보조차 제대로 안 되어 전전긍긍이다. 비교적 감염자가 많지 않았던 지난여름과 가을 정부는 대체 무엇을 했던가? ‘덕분에 캠페인’을 벌이며 도리어 의사들을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문재인 쇼’의 청구서는 결국 국민이 감당할 몫이 되어버렸다.

영화 속 ‘트루먼 쇼’가 계속된 것은 시청률 때문이었다. 시청자가 있으니 쇼가 계속되었고, 트루먼은 섬에 갇힌 노예나 구경거리로 살아갔던 것이다. ‘문재인 쇼’도 마찬가지다. ‘우리 이니’가 화면에 멋지게 등장하면 그만이라는 40%의 고정 시청자들이 리모컨을 꽉 쥔 채, 대한민국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로 몰아가고 있다.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가 얻은 결론이다. 그 성찰은 오늘날에도 유효할 것이다. 권력은 온갖 ‘쇼’로 국민을 속일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참 길고 힘겨웠던 한 해의 끝. 더 많은 국민이 스스로 생각하며, 주권자로서 존재하는 새해가 되기를 희망한다.

K방역, 부동산… 한국은 지금 ‘문재인 쇼' 절찬 방영 중

 [아무튼 주말] [노정태의 시사哲] 데카르트와 트루먼쇼
일러스트=안병현
보험 회사 직원 트루먼 버뱅크는 평온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시 헤이븐이라는 작은 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고소 공포증과 물 공포증이 함께 있어 고향을 떠날 수 없는 게 아쉽다. 늘 웃는 얼굴로 친절한 이웃을 만날 때마다 하루 인사를 한꺼번에 건넨다. ‘굿 애프터 눈, 굿 이브닝, 굿 나잇.’

언제부턴가 트루먼의 일상이 삐걱거린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에서 무대 조명이 떨어지지 않나, 자기 머리 위에서만 비가 쏟아지지 않나, 심지어 어린 시절 보트 사고로 죽은 아버지와 똑같이 생긴 노숙자를 만났는데 사람들이 그 노숙자를 버스에 태워서 어디론가 가버리지 않나. 트루먼은 점점 의심한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과연 ‘진짜’일까?

독자 여러분도 모두 아실 그 이야기, ‘트루먼 쇼’의 설정이다. 트루먼의 인생은 전 세계로 생중계되고 있다. 갓 태어났을 때부터 서른 살이 된 지금까지 쭉 그랬다. 사상 최대의 리얼리티 쇼이면서 PPL인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지만, 본인만 그 사실을 모른다. 평생을 보고 듣고 접해온 모든 것이 가짜인 셈이다.

‘트루먼 쇼’는 1998년 개봉 당시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 보면 어떤 부분은 시대에 뒤처져 있다. 스마트폰을 들고 소셜미디어나 유튜브에 자기 일상을 생중계하는 ‘자발적 트루먼’이 가득한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몇몇 주제 의식은 여전히 빛난다. 자기를 둘러싼 이 모든 것이 가짜가 아닐까 의심하는 트루먼의 모습은 서양철학의 근본 질문과 맞닿아 있다. 우리는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와 ‘코기토 명제’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한 가지 가정을 해보았다. 만약 어떤 전능한 악마가 나를 속이기 위해 내가 보고 듣고 접하는 모든 것을 악마 뜻대로 조종한다고 해보자. 영화 속 ‘트루먼 쇼’의 연출자 크리스토프처럼 모든 경험과 인간관계를 조작하는 차원을 넘어, 상식과 감각조차 뒤바꾸는 것이다. 불을 만져도 뜨겁지 않고 물을 마셔도 시원하지 않고, 빨간색이 파랗게 보이고 사람들은 하늘을 날아다니며, 1+1=2가 아니라 3이 정답이라면?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게 있다. 나의 모든 인식이 잘못되었다 해도, 인식하고 있는, 즉 생각하고 있는 나의 존재 자체는 부정할 수가 없다. 악마가 나를 아무리 철저히 속인다 해도, 속이는 대상인 내가 ‘있어야’ 속일 수 있다. ‘트루먼 쇼’의 모든 것이 가짜여도 트루먼만은 ‘진짜’여야 ‘트루먼 쇼’가 성립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데카르트 저서 ‘성찰’의 한 대목. “나는 내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 동안, 그 악마는 결코 내가 아무것도 아니게끔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데카르트는 그 어떤 경우에도 참일 수밖에 없는 절대 진리를 찾아내, 선언했다. ‘코기토, 에르고 숨(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당시는 인류의 지적 역량이 다방면으로 늘어나던 시절이었다. 모든 지식과 도덕적 판단 근거를 성경에서 찾는 신학은 더 이상 ‘제1 학문’의 기능을 할 수 없었다. 그 역할을 대신해야 할 철학이 과연 보편적 합리성을 보증할 수 있을까? 데카르트는 반드시 옳을 수밖에 없는 진리를 인간이 가진 이성의 힘으로 밝혀낸 후, 그 위에서 수학과 자연과학을 포괄한 모든 학문 체계를 세우고자 했다. 마치 트루먼이 ‘트루먼 쇼’의 세트장 밖으로 나간 것과 같다. 인류는 종교와 관습이 아닌 이성의 힘으로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그러나 역사는 때로 뒷걸음질치기도 하는 법.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여전히 ‘트루먼 쇼’가 절찬리 방영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 주인공이다. 가장 가까운 예부터 들어보자. 지난 11일, 문 대통령이 경기 화성시 LH 동탄 공공 임대주택을 방문했다. 그는 44m²(옛 13평형)와 신혼부부용 41m²(12평형)를 둘러본 뒤 “공간 배치가 아늑하고 아주 아기자기하다” “신혼부부에 아이 한 명은 표준이고 어린아이 같은 경우는 두 명도 가능하겠다” “굳이 자기 집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임대주택이 충분히 좋은 주택으로 발전해 갈 수 있다”는 등의 대화를 주고받으며 흡족해했다.

LH 측이 야당 요청으로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그 두 채는 ‘세트장’이었다. 3300만원을 들여 가구를 구입한 후 공임비 650만원과 부가세까지 포함해 총 4290만원을 들인 초호화 세트장이었다. 보증금 6000만원에 월세 20만원 수준인 임대주택에 보증금과 맞먹는 비용을 들여 만든 일종의 ‘가상현실’이었던 것이다.

어디 부동산 정책뿐일까. 2018년 남북 정상회담 역시 돌이켜보면 일종의 ‘트루먼 쇼’였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백두산 정상에 오르고, 평양에서 냉면을 먹고, 판문점에서 군사분계선을 넘는 장면을 연출했다. 그런 ‘쇼’를 열심히 하면 평화가 올 것처럼 바람을 잡았다. 현실은 정반대다. 북한은 핵을 포기할 의향이 없다. 북측 해역으로 흘러 들어간 우리 국민에게 총을 난사하고 시신에 불을 붙이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K방역’이라는 ‘문재인 쇼’ 역시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있다. 미국, 영국, 심지어 일본도 확보한 백신이 한국에만 없다. 겨울과 함께 하루 감염자가 1000명이 넘는 대유행이 시작되었는데 병상 확보조차 제대로 안 되어 전전긍긍이다. 비교적 감염자가 많지 않았던 지난여름과 가을 정부는 대체 무엇을 했던가? ‘덕분에 캠페인’을 벌이며 도리어 의사들을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문재인 쇼’의 청구서는 결국 국민이 감당할 몫이 되어버렸다.

영화 속 ‘트루먼 쇼’가 계속된 것은 시청률 때문이었다. 시청자가 있으니 쇼가 계속되었고, 트루먼은 섬에 갇힌 노예나 구경거리로 살아갔던 것이다. ‘문재인 쇼’도 마찬가지다. ‘우리 이니’가 화면에 멋지게 등장하면 그만이라는 40%의 고정 시청자들이 리모컨을 꽉 쥔 채, 대한민국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로 몰아가고 있다.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가 얻은 결론이다. 그 성찰은 오늘날에도 유효할 것이다. 권력은 온갖 ‘쇼’로 국민을 속일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참 길고 힘겨웠던 한 해의 끝. 더 많은 국민이 스스로 생각하며, 주권자로서 존재하는 새해가 되기를 희망한다.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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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5

[신동아 좌담 下] "문재인은 반동적, 노무현은 역동적"

 

"문재인은 반동적, 노무현은 역동적"

고재석 기자 입력 2020. 12. 15. 10:01
['한때 좌파' 4人의 쾌도난마②] 문재인 시대㊦

●“황우석 편들던 유시민·김어준, 지금도 어용”(나연준)
●“좌파, 盧를 보수정치 희생양으로만 삼아”(노정태)
●“진보 교수들, 혁명 논하다 뒷날엔 부동산 구입”(민경우)
●“진중권 안 좋아했는데 ‘진짜배기’더라”(봉달호)
●“韓보수, 보편적으로 갖는 정서는 불안감”(나연준)
●“국민의힘, 당사에 김대중·노무현 사진 걸어야”(노정태)
●“검찰 문턱도 안 가본 사람들이 검찰 악마화”(민경우)
●“‘기승전 反共’이 ‘기승전 검찰개혁’으로”(봉달호)

‘한때 좌파’ 네 사람이 12월 7일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 모였다. 왼쪽부터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민경우 민경우수학교육연구소장, 나연준 제3의길 편집위원, 봉달호 편의점주. [박해윤 기자]
나라가 분열하고 있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간에 이렇게 살벌한 대치선이 있었던가. 여야는 독재, 횡포, 독선 따위의 단어를 주고받고 있다. 어제의 '민주 투사'들이 국정을 책임지고 있으나 세상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통합 대통령이 돼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일성은 풍등처럼 어디로 날아가 버렸나. 

난세에는 이해관계를 초월한 진단서가 필요하다. 현재 권력과 불화(不和)하되 과거 권력, 그러니까 전통적 보수진영의 계보에도 속하지 않는 인물들을 물색했다. 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에서 97세대(90년대 학번·70년대 출생), 밀레니얼 세대(1980년 이후 출생) 등 세대도 안배했다. 네 사람의 이력부터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민경우 민경우수학교육연구소장은 1965년생이다. 1987년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장을 지냈다.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사무처장으로 일했다. NL(민족해방) 계열 핵심 이론가였다. 

봉달호 편의점주는 1974년생이다. 92학번이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학생운동을 시작해 구력은 길다. 주체사상을 공부했으나 후에는 비(非)NL 계열로 총학생회장에 출마해 당선됐다. 

나연준 제3의길 편집위원은 1981년생이다. 한국 근현대사 정치사상사를 전공하는 역사학도다. 중앙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다.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활동했다.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는 1983년생이다. 딴지일보 온라인 에디터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을 지냈다. 1980년대생을 대표하는 진보 논객으로 불렸다. 

‘신동아'는 12월 7일 서울 서대문구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으로 네 사람을 초청했다. 서로의 글은 즐겨 읽지만 이날 처음 보는 사이도 있다고 했다.

"지금은 노무현 100% 인정"

민경우 민경우수학교육연구소장은 “지금은 대통령으로서의 노무현을 100% 인정한다”고 했다. [박해윤 기자]
기자 | 요새 들어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을 비교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노무현 정부 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투쟁 선봉에 선 민경우 소장은 두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나요. 

민경우 | 노무현과 문재인은 매우 달라요. 저희 때는 노무현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광적으로 좋아한다기보다는 예의 바르게 좋아했다고 해야 할까. 

기자 | 좋아하더라도 남에게 '너 왜 노무현 안 좋아해?' 하며 윽박지르지는 않는다? 

민경우 | 그렇죠. 돌이켜보면 1990년대는 사상적 공백 상황이었어요. 그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등장해 민족문제 대신 참여민주주의를 주창하면서 사회를 굉장히 역동적으로 끌고 갔어요. 2000년대가 되면 미·중 양강 체제로 국제질서가 재편됩니다. 노 전 대통령이 한미 FTA를 추진했는데, 변화하는 국제질서를 고려한 문제의식이었거든요. 나는 이라크 파병에 반대했고, 한미 FTA 반대 범국민운동본부에서 정책팀장을 했지만 지금은 대통령으로서의 노무현을 100% 인정합니다. 훌륭한 대통령이에요. 

2010년대 미·중 양강 체제가 더 심화했습니다. 한국의 다음 과제가 무엇일지 고민할 시기에 유시민 같은 사람이 사회 분위기를 과거사, 적폐청산 등으로 몰고 갔어요. 이 사람들이 주축이 돼 문재인 정부가 탄생했고요. 노무현 정부는 냉전 이후 한국을 젊고 역동적으로 이끌면서 좌파 신자유주의 같은 논쟁도 벌였다면 문재인 정부는 시대를 완전히 거꾸로 몰고 갔어요. 

노정태 |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는데요.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을 지지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직접 댓글을 단 적이 있어요. 체통도 그렇거니와 너무 노골적으로 정치편향 행위 아니냐고 막 화를 내는 사람들이 있었죠. 돌이켜보면 진짜 '인터넷 대통령'이었던 거예요. 지금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에게 완전히 사라진 존재가 됐습니다. 휴가를 썼다고 하는데, 휴가를 쓴 것과 안 쓴 것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도 모르겠고요. 반면 노 전 대통령은 굉장히 거칠고 투박했지만 굵직굵직한 움직임을 보여줬단 말이에요. 

한미 FTA와 이라크 파병에 참여함으로써 한국이 얻은 건 무엇이고 잃은 건 무엇인지 논하면서 노무현 시대를 이해해야 하는데, 노무현의 상징자산을 통째로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이를 회피하죠. 우파는 노무현을 입에 담고 싶어 하지도 않으니 얘기하지 않고, 좌파는 노무현을 보수정치의 희생양으로만 만들고 싶어 하니 얘기하지 않아요. 

봉달호 | 인간 노무현은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면 지지자들이 또 화를 내겠지만, 이분이 대체 조직에 대한 관념이 있는 분이었나 싶어요. 본인은 개인이 아니라 조직을 추스르는 사람이거든요.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전직 대통령으로서 치욕적이라고 느꼈을 테지만 혼자 운명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죠. 거기서부터 우리나라 정치가 참 많이 뒤틀렸어요. 복수의 정치가 생겨났고, 폐족을 자처한 사람들이 그 죽음으로 다시 일어섰고요. 

기자 | 진보 지식인 이야기를 해보죠. 먼저 논객이 떠오르는데요. 진중권, 강준만, 유시민, 김어준 씨가 대표적이죠. 하지만 문재인 정권 들어 이 중 일부가 어용화(御用化)했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논객시대' 저자인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노정태 | 진보 논객들이 발전담론, 성장담론을 죄악시하거나 설계하지 못하니 퇴행적으로 복수나 과거사에만 집착하는 겁니다. 10년 전부터 감을 잡은 게 있어요. '안티조선운동'은 박세길이 쓴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마지막 챕터에 조선일보를 끼워 넣고 '이것은 친일의 잔재'라는 식으로 매도하는 것이었다는 걸요. 진보 논객이란 사람들이 운동권 시절부터 배워서 익힌 '내러티브'를 새로운 적을 찾아 끼워 넣는 방식으로 계속 활용한 거죠.

황우석 사태라는 試金石

나연준 | '황우석 사태' 때 황우석 씨 편을 들던 사람들은 지금도 어용화돼 있어요. 유시민, 김어준 씨 같은 사람이요. 

노정태 | 굉장히 중요한 시금석이죠. 

나연준 | 반면 황씨를 비판한 진중권 전 교수는 여전히 비판적 지식인의 입지를 갖고 있고요. 같은 진영처럼 보이던 논객들이 86세대가 권력을 차지하면서 갈린 겁니다. 한쪽은 권력을 결사옹위 대상으로 삼고, 다른 한쪽은 20년 전과 똑같이 비판적 지식인으로 남았죠. 

봉달호 | 무슨 '주의자'가 되려면 일관돼야 하잖아요. 밖에서는 굉장한 페미니스트로 자처하는데 집에서 부인이나 딸을 막 대하는 사람은 가짜 페미니스트죠. 마찬가지로 정권이 바뀌어도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면 그 사람은 '주의자'죠. 사실 진중권 씨를 별로 안 좋아했어요. 그런데 최근 활동을 보면서 '와 멋지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사람은 박근혜 정권에 들이댄 잣대를 문재인 정권에 똑같이 들이대는 겁니다. 그러면 진짜배기죠(그의 '어용화 진단'이 이번에는 권부를 향해 달려갔다). 현 정권에 속한 사람들 눈에는 권력을 잡았을 때 얻는 떡고물이 너무 잘 보이는 거죠. 권력을 빼앗겼을 때 배고팠던 경험도 있고요. (민주당이) 지방권력을 잡으니까 당 조직이 튼튼하게 강화돼 움직이고 있다고 해요. 결국 조직력은 돈에서 나오거든요. 어용화는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여담인데, 노무현 정부 때 아는 선배가 청와대에 들어갔어요. 어느 상가에서 만났더니 '청와대에 연못이 있는데 거기를 돌려면 몇 분이 걸리고' 이런 얘기를 해요. '이 사람들이 뭔가를 알아가는구나'라고 느꼈어요. 천박한 권력의 맛이죠.

‘거지끼리 자루 찢는 격'

봉달호 편의점주는 “현 정권이 ‘기승전 반공’을 ‘기승전 검찰개혁’으로 바꿔버렸다”고 했다. [박해윤 기자]
이 대목에서 기자는 화제를 진보 성향 대학교수로 돌려봤다. 교수들과 협업할 기회가 많던 민 소장에게 먼저 물었다. 

기자 | 민 소장은 이른바 진보 교수들을 두고 "말만 과격하고 운동은 치열하게 하지도 않았다"고 꼬집은 적이 있죠. 

민경우 | 진보 교수들은 본질적으로 기회주의자예요. 노무현 정부 때 한미 FTA 반대 운동하면서 교수들과 같이 활동했어요. 이분들은 굉장히 사변적이고 관념적이죠. 허황된 주장을 많이 하는데, 그 산물이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열풍입니다. 술자리에서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 나라에 있나 싶을 정도로 과격한 얘기를 많이 해요. 나는 부동산 갖지 않고 평생 운동하겠다고 생각했어요. 혁명 얘기하다가 그 뒷날 부동산 사는 일은 안 했어요. 그런데 진보 교수들은 버젓이 부동산으로 돈을 벌더라고요. 황당했어요.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 그 사람들이 청문회에 나오는 걸 보는데 하나씩 퍼즐이 맞춰졌어요. 한미 FTA 싸움은 전부 농민들이 한 거예요. 농민 2만 명이 지방에서 트랙터 몰고 서울에 와서 집회했어요. 그러려면 돈도 많이 들어요. 그런데 교수들은 코빼기도 안 보여. 나는 농민들과 집회를 주도하다가 뒷날엔 교수들하고 토론한 뒤 근사한 술집 가서 술 마셨어요. 

나연준 | 제 전공이 역사학인데, 역사학과는 1년에 한 번씩 역사학 대회를 엽니다. 2014년 제57회 역사학 대회의 주제가 국가권력과 역사 서술이었어요. 역사학 교수들이 모여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를 비판하는 학술 프로젝트를 했습니다. 지금 문재인 정부 들어 역사와 관련해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게 '5·18 역사 왜곡 처벌법안'인데, 이걸 비판하는 역사학 교수들을 거의 본 적이 없어요. 정말 당파적이에요. 이 세대가 대체로 86세대예요. 지식인이 아니고 그냥 직업이 교수인 사람들이죠. 

기자 | '우리 진영'에 맞는 지식인만 찾고, 만약 진영의 이해관계에 해가 되는 말을 하면 속된 말로 '좌표'가 찍히죠. 

노정태 | 그러니 분위기를 봐서 얘기하는 게 요새 트렌드죠. 방송 같은 공식 채널에서 배제된 보수 유튜버들은 '거지끼리 자루 찢는 격'으로 자기네끼리 욕하고 저격하잖아요. (일동 웃음) 그래야 후원금이 더 들어오니까요.

보수의 헛발질

나연준 제3의길 편집위원은 “한국 보수가 보편적으로 갖는 정서는 불안감”이라고 했다. [박해윤 기자]
기자 | 최근 전국 단위 선거에서 보수정당이 4연패했습니다. 왜 보수가 약체가 됐을까요. 

노정태 | IMF 위기를 기점으로 발전·성장·군사 담론이 완전히 확 무너졌어요. 보수가 이를 되살릴 기회는 놓치고 '노무현 팬덤 정치'가 이기니 박근혜라는 새로운 아이콘을 데려와 팬덤 정치로 맞섰어요. 담론을 경신하지 않았던 겁니다. 

나연준 | 저희 세대는 유시민, 강준만, 진중권 등 이른바 논객들의 책을 많이 읽었어요. 반면 사회운동이나 정치에 관심 없는 친구들은 자기계발서를 읽었고요. 저는 자기계발서의 존재야말로 우파 담론이 실패한 증거라고 봐요. 좌파는 어쨌든 자기 담론을 생산했는데, 우파는 국가 발전 담론을 대중화하는 데 실패한 겁니다. 자기계발서에는 국가 담론이 없어요. 모든 문제를 개인화해 버려요. 각자도생이란 말이에요. 자기계발서를 보던 친구들이 나중에는 삶이 힘드니까 복지 담론에 가장 취약해져요. 2011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직을 던지고 나오면서부터 우파가 패배했다고 하는데, 그건 패배의 결과였어요. 복지 담론에서 밀렸고 대안 담론이 없으니까 무릎 꿇고 읍소하다가 던지고 나와버린 거거든요. 아직도 우파 지식인들이 베스트셀러를 못 내놓잖아요. 

봉달호 | 보수가 대안 담론을 제시해야 하는데, 자꾸 부정선거 주장하고 이젠 미국 대선까지 부정선거라고 하고 있어요. 어처구니가 없는데…. 

노정태 | 대체 한국 사람들이 미국 대선을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뭔지…. 

봉달호 | 문제는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보수진영에서 어느 정도 발언권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보수에 새로운 대안이 나오지 않고서는 이런 문제가 풀리지 않을 거예요. 보수진영 사람들을 만나 기본소득 이야기를 꺼내면 그냥 무조건 싫다고 해요. 미래 사회가 어떻게 변모할지에 대해 대화 자체를 안 하려고 해요. 소위 진보에 대한 안티테제로만 존재할 뿐이지, 정권을 잡으면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갈 것이냐에 대한 생각이 거의 없어요. 여태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작은 정부나 감세론을 얘기해요. 그러면 그냥 계속 태극기 흔드는 사람일 뿐이죠. 

나연준 | 한국 보수가 보편적으로 갖는 정서는 불안감이에요. 선거에서 계속 졌고 다음 선거에서도 과연 이길 수 있을지 자신감이 없는 겁니다. 불안함이 커질 때 증상이 여럿 있잖아요. 그중 하나가 음모론에 빠지는 겁니다. 또 보수에 감별사가 너무 많아요. 너는 진짜 보수고 너는 가짜 보수라면서 끊임없이 누군가를 감별해요. 

노정태 | 그게 진보가 패배할 때 했던 행동이에요. 

나연준 | 맞아요. 1980년대 운동권들이 누가 레닌에 가까운지 경쟁한 것과 비슷해요. 불안하기 때문에 내부에서 인정투쟁이 심해지죠. 1980년대 운동권들에게 레닌이 하던 역할을 지금 우파에서 하는 인물이 이승만, 박정희예요. 이승만, 박정희 모두 훌륭한 인물이죠. 그런데 지금 한국 보수는 이승만, 박정희를 영웅주의 서사 속에서 보고 있어요. '이 사람들 없으면 우리는 망했고, 깡통 찼을 거고, 배곯고 있고….' 이승만과 박정희는 당시 시대 과제를 해결한 사람들이에요. 지금 한국 보수는 훈고학적이에요. 옛날얘기만 하면서 이승만, 박정희처럼 시대 과제를 내세우는 일은 하나도 못 하고 있단 말이에요. 그러면서 '너 김영삼 좋아해? 그러면 가짜 우파야' 이러고 있어요. 

기자 | 보수도 사림 논쟁 중이군요. 그럼 무엇을 해야 합니까. 

노정태 |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사과하는 것보다 보수에 더 중요한 건 김대중·노무현 두 사람을 대통령으로 인정하는 거예요. 지금 국민의힘이 해야 할 건 당사에서 이승만·박정희의 사진을 떼는 게 아니라 김대중·노무현의 사진을 거는 겁니다. 합법적으로 선출된 모든 대통령을 모두 인정하고 국가 전체를 끌어안는 세력이라는 점을 보여줘야 해요. 김대중·노무현은 뭘 해도 안 되고 용납 못 하겠다는 식으로 나오면 중도를 포용할 수 없어요. 

주사파였던 민 소장이 이즈음 간략히 '보수 혁신론'을 폈다. 

민경우 | 나는 보수라는 말을 싫어하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생활형 보수운동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의사파업이나 탈원전, 최저임금 문제 등 먹고 사는 문제를 다루는 생활형 보수와 몽상가 운동권 정권으로 대치선을 치면 어떨까 해요. 이념형 보수로는 답이 없어요. 나는 보수 유튜브 채널을 보면 정말 기겁하겠더라고요.

검찰개혁의 민낯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는 “여야 모두 검찰의 불기소 처분 권한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박해윤 기자]
기자 | 문재인 정부 들어 가장 많이 회자되는 단어가 '검찰개혁'인데요. 이른바 '추-윤' 정국을 어떻게 봤나요. 

민경우 | 먼저 경험담을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1999년 30일, 2004년 30일 간 검찰 조사를 직접 받았어요. 

기자 | 당시 구속됐죠. 

민경우 | 네. 검찰을 마치 거대 악처럼 생각하는데, 내 경험으로는 거대악은커녕 늘 보는 아저씨들이에요. 

봉달호 | 직장인이죠.(웃음) 

민경우 | 검찰 수사의 전 과정을 관통하는 건 '팩트(fact)'예요. 나는 검찰에서 맞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검찰에 간 첫날 혀 깨무는 연습부터 했다니까요. 하지만 그냥 팩트에 기초해 드라이하게 수사했어요. 1980년대 운동권이 보기에 그 정도면 사랑스러운 검찰이죠.(웃음) 그런데 지난해부터 주변에서 '너 검찰이 무슨 흉계를 꾸미는지 알아?' 이렇게 말해요. 그럼 '나 검찰 조사 60일 받아봤어. 넌 무슨 조사 받았는데'라고 되묻죠. 당연히 받아본 일이 없겠죠. 검찰 문턱에도 안 가본 친구들이 검찰을 악마로 만들어버리는 거예요. 한국은 1990년대를 거치면서 민주화되고 현대화됐어요. 검찰에 다소간 흠결은 있겠으나 검찰개혁이 민주주의의 핵심 과제인 시대는 한참 전에 지나갔고요. 

봉달호 | 지금 검찰이 절대로 기소권·수사권 못 내놓겠다고 하는 상황이 아니에요. 검찰 전체가 나서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요. 여권이 자신들에 대한 수사가 들어오니 검찰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검찰을 '조지고' 있단 말이죠. 어처구니가 없어요. '기승전 반공'을 '기승전 검찰개혁'으로 바꿔버린 셈인데, 과거 자신들이 당했던 걸 그대로 이용하는 겁니다. 

노정태 | 1987년 민주화는 검찰이 군부를 이긴 결과예요. 군부독재의 하수인인 경찰이 사람을 죽였는데 검찰이 다시 조사했잖아요. 자칭 민주화 세력은 검찰이 축소수사를 했다고 주장하는데, 애초에 검찰이 나서지 않았으면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 하고 넘어갔을 사안을 검찰이 들고일어나 조사한 겁니다. 민주주의와 민중주의를 자꾸 혼동하는데요. 민주화는 민중의 힘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 엘리트 내부의 균열로 이뤄졌습니다. 엘리트 내부에서 가장 중요한 집단 중 하나는 자존심 강하고 사실과 법을 존중하는 훈련이 돼 있는 검찰이었어요. 검찰을 새로운 악으로 부추기는 건 탈역사적 행위이자 거짓말에 입각한 세계관입니다. 

나연준 | 사실 일반인이 웬만큼 잘못하지 않으면 검찰한테 조사받을 일은 없거든요. 

기자 | 민경우 소장은 많이 잘못했나 봐요.(웃음) 

노정태 |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하는 게 일종의 신분 증명이잖아요.(웃음) 

나연준 | 검찰개혁을 이렇게 의도적으로 띄우는 이유는 86세대가 검찰에 불려 갈 만한 행동을 차곡차곡 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여요. 검찰개혁이 마치 전 국민에게 급박한 담론인 것처럼 얘기하는 과정에서 노무현이라는 상징이 동원된 거죠. 또 다른 형태의 '노무현 장사'입니다. 검찰개혁은 아무 의미 없는, 그냥 주문이에요 주문. 우리 편 모으는 깃발이죠.

‘국민의 영웅'과 '악당' 사이

이 대목에서 화살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향했다. 

노정태 | 한국 검찰 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검찰이 사건을 덮을 수 있다는 겁니다. 즉 불기소처분이 가능한 건데, 독일 검찰도 수사권은 있어요. 다만 기소를 안 할 권리가 없어요. 그러면 무조건 법정에 가니까 사건이 드러나요. 미국에서는 검찰에 수사권이 없는 대신 FBI나 지방경찰 등 경찰 조직이 여럿 있어요. 사건이 올라오는 걸 검사가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어쨌든 또 법정으로 갑니다. 즉 검찰의 권력을 빼는 방법은 검찰이 사건을 덮지 못하게 만드는 겁니다. 정작 불기소 처분에 대한 얘기를 아무도 안 해요. 국민의힘에서도 자기들이 정권을 잡으면 현재 검찰 제도를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별 얘기 안 하고요. 

봉달호 | 검찰을 키운 건 정치인들이에요. 대화로 풀 수 있는데도 서로 고소·고발하잖아요. 정치가 실종됐죠.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정말 검찰개혁 하려고 했다면 1년차에 했어야죠. 써먹을 땐 '국민의 영웅'이라더니 4년차가 되니 검찰을 '악당'으로 만들어버렸어요.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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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4

[신동아] 文 탈원전 밀어붙일 때, 바이든 "원자력 규제→투자"

 

文 탈원전 밀어붙일 때, 바이든 "원자력 규제→투자"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입력 2020. 12. 14. 10:01
[노정태의 뷰파인더⑬] 이상주의자도 국정운영 나서면 국익 따져

●바이든, 1980~1990년대 원자력 규제 주창
●지난 대선에서 ‘차세대 원자력 개발’ 공약
●기후변화·셰일 혁명으로 美 민주당 정책 변화
●‘反원자력’ 존 케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논란보다 중요한 것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11월 9일 대전 유성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게시판. 녹색원자력학생연대가 월성 1호기 조기폐쇄 의혹에 관해 정부를 비판하는 대자보를 게시했다. [뉴스1]
1994년 미국 델라웨어 강 하류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가 긴급 정지했다. 관리 실수로 인한 비상 정지였다. 발전소가 자리 잡은 곳은 행정구역상 뉴저지 주. 하지만 델라웨어 주가 바로 인접해 있었다. 

델라웨어 주의 젊은 상원의원이 즉각 반발했다. 그는 언론 앞에서 외쳤다. "저는 10년 넘게 살렘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관리, 감독,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원자력 관리 위원회가 되풀이되는 심각한 안전 문제를 눈감아주고 있다며 강한 비난을 쏟아냈다. 원자력 발전에 대해 확고한 반대 의견을 지닌 그 상원의원의 이름은 조셉 바이든 주니어였다. 

조셉 바이든, 그러니까 '조' 바이든은 사반세기가 흐른 후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 세월 동안 바이든의 큰아들이 세상을 떠났다. 바이든은 자신보다 훨씬 젊고 카리스마 넘치는 흑인 대통령 밑에서 부통령을 역임했다. 본인의 머리카락은 하얗게 샜다. 달라진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생각도 180도 바뀌었다. 

한때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관리, 감독,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던 그가 지금은 차세대 원자력 기술 개발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선 공약이기도 했으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홈페이지에도 기재돼 있는 사실이다. 

한국 원전업계는 환영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비판적이던 보수 야당도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특별한 반응이 없다. 탈원전에 우호적이던 진보 언론들은 바이든의 변화를 모른 척 하려 드는 것 같은 인상마저 준다. 

바이든의 원자력 포용 정책은 단지 한 대통령의 태도 변화가 아니다. 50여 년간 지속돼온 미국 민주당의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반대가 찬성으로 돌아섰다는 것을 뜻한다. 초강대국 미국이 거대한 방향 전환을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계바늘을 수십 년 전으로 돌려보자.

1972년 미국 민주당의 새 정강정책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가운데)이 11월 24일(현지시간) 미국 델라웨어 주 윌밍턴 퀸극장에서 차기 외교안보팀 지명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뒷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 인물이 존 케리 기후특사 지명자. [윌밍턴=AP 뉴시스]
1972년 텍사스 철도 위원회(Texas Railroad Commission)가 중대 발표를 했다. 그 전까지 위원회는 미국의 석유 가격을 규제했다. 가격 통제를 포기하고 원유 가격을 오직 시장 논리에 의해 결정하겠다는 게 발표의 골자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석유 수요가 폭등했기 때문이다. 텍사스산 원유만으로는 미국 내 석유 수요를 충당할 수 없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경제가 부흥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세계가 석유에 목마른 상태가 되고 말았다. 

이는 단순히 값싼 외국산 석유를 수입하면 될 일이 아니었다. 예나 지금이나 석유는 가장 중요한 전략 물자다. 안정적 석유 공급 라인을 확보하는 것은 국가 안보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장주의의 나라 미국에서도 텍사스 철도 위원회 같은 조직이 석유의 가격과 공급을 어느 정도 통제했으나 더는 버틸 수 없게 된 것이다. 

미국은 중동, 특히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 정권 보위에 도움을 주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중동 문제에 단단히 얽혀버린 셈이다. 그때만 해도 사암(砂巖) 암반층에서 셰일 가스를 추출할 기술력은 부재했다. 미국은 중동에 코가 꿸 수밖에 없었다. 지구 반바퀴 너머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뒤섞인 갈등 구도에 발을 들여놓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민주당과 공화당을 막론하고 새로운 에너지원을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1972년 7월 11일 발표된 민주당의 새 정강정책(party platform)을 보자. 1972년부터 1976년까지의 운영 방향을 제시하는 문서에서, 민주당은 원자력을 새롭고 긍정적인 에너지 유형의 일부로 소개하고 있다. 

"지구의 천연 자원은 일시적으로는 풍족하고 무한히 공급받을 수 있을 것 같이 보일지라도 당연히 주어진 것으로 여길 수 없다. 미국은 특히 에너지 공급 패턴에 있어서 중요한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이는 전통적인 정책의 재조정을 필수적인 것으로 만든다. 1980년이 되면 미국은 대서양 동쪽에서 수입되는 석유에 전체 석유 소비량 중 30~50%가량을 의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원자력, 태양광, 지열 발전 같은 새로운 유형의 에너지의 연구 및 보급은 뒤쳐져 있다." 

중동산 석유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문제이므로 원자력을 더 개발하고 활성화하자는,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논의다. 1972년까지는 미국 민주당 역시 원자력에 대해 긍정적 태도였던 것이다. 1973년 오일 쇼크를 겪으면서 원자력을 긍정적으로, 혹은 필요악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한층 더 커졌다.

지미 카터의 등장

1976년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지미 카터가 1977년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상황은 급격히 달라진다. 그는 도덕주의로 대중적 인기를 모으며 정치적으로 급부상한 인물이다. 신임 대통령의 반핵(反核)주의 관점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원자력 연구에 치명타를 입혔다. 당시 한창 연구 중이던 고속증식로에 대한 지원을 중단한 것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상업용 원자로는 우라늄-235를 연료로 삼는다. 반면 고속증식로는 자연계에 더 흔하게 존재하는 우라늄-238과 플루토늄을 섞어 연료를 만든다. 우라늄-235의 핵분열로 에너지를 내는 통상적 원자로와 달리, 고속증식로는 플루토늄의 핵분열로 우라늄-238을 플루토늄으로 바꾸고, 그 플루토늄이 핵분열을 하는 연쇄 과정을 거친다. 그 과정에서 플루토늄이 '늘어나기' 때문에 고속‘증식'로라고 불린다. 

카터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플루토늄은 핵무기의 재료로 쓰일 수 있는데, 그게 더 늘어난다고? 반핵, 반전주의자 카터는 그와 같은 기술 발전의 방향을 용납할 수 없었다. 1979년 발생한 스리마일 섬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미국 원자력 산업의 관 뚜껑에 못을 박았다. 새로운 기술을 연구·개발하지도 않고, 기존 기술로 만들어진 발전소를 더 늘리지도 않은 채, 그저 이미 건설된 발전소를 유지·보수하는 데만 만족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이 선회했다. 

앞서 말했듯 1970년대는 오일쇼크가 전 세계 경제를 강타한 시대였다. 원자력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고 더 나은 기술을 개발해 보급할 수 있는 경제적 유인 동기가 충분했다. 하지만 카터의 개인적 성향, 그의 탄탄한 지지층이던 민주당의 젊은 고학력 베이비부머 세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원자력은 곧 핵무기이고, 핵무기는 나쁜 것이므로, 원자력을 당장 없앨 수는 없어도 더 키우지는 말아야 한다는 관념에 사로잡혔다. 

그러한 경향은 1990년대까지도 쭉 이어졌다. 1994년 대통령이 된 빌 클린턴은 미국 최후의 고속증식로 연구를 중단했다. 이 또한 정책적 판단이기 이전에 정치적 결정이었다. 여러 차례 상원의원 재선에 성공하면서 민주당 중진으로 자리 잡은 조 바이든, 훗날 미국 국무장관을 지내는 존 케리 등이 원자력에 대한 공격의 선봉에 섰다.

기후 변화와 셰일 혁명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원자력 기술의 발전을 가로막은 미국 민주당의 행보를 과연 '반핵'과 '평화'라는 도덕적 가치로만 이해할 수 있을까? 얼핏 보면 그럴싸하지만 실상은 좀 더 복잡하다. 

에너지, 안보, 지정학적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앞서 말했듯 1970년대 이전까지 미국은 세계 최대 산유국 중 하나였다. 1970년대 이후에도 중동 정세에 깊숙이 개입하며 안정적인 석유 공급로를 확보한 나라였다. 미국이 중동의 석유에 의존하는 것은 미국 처지에서 약점이다. 하지만 미국 말고도 세계 모든 나라가 중동의 석유에 의존하는데, 미국이 중동에서 압도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면, 미국에 그렇게까지 나쁜 일은 아니다. 

모든 마을 사람이 마을 한복판에 있는 우물을 마셔야 한다고 해보자. 미국은 원래 자기 집에 있는 우물만 마시면 됐다. 하지만 이제는 그걸로 부족해 물통을 들고 집 밖에 나와야 한다. 다른 자들과 함께 마을의 우물을 마셔야 한다. 이 상황 자체는 불편하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우물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는 한, 마을 사람들 전체의 목줄을 쥐고 있을 수도 있다. 우물을 없애고 집집마다 수돗물을 놓기 위해 투자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말이다. 

패권국가 미국으로서는 석유 시대를 종식시켜야 할 특별한 동기가 없었다. 반면 고속증식로는 한번 완성하고 상용화하면 해당 기술을 보유한 국가의 에너지 문제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미국이 극비리에 개발했던 원자폭탄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소련에 유출되고 결국 전 세계로 퍼졌다는 점을 감안해볼 때, 고속증식로를 비롯한 차세대 원전 기술 역시 미국이 영원히 독점하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릴 거야'라는 명대사가 문득 떠오른다. 독점할 수 없는 기술이라면 만들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법인 셈이다. 

2010년대로 접어들면서 두 가지 변화가 생겼다. 첫째, 기후 변화가 가시화됐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 뭐라도 해야 한다는 유권자들의 압력이 늘어났다. 물론 정치인들은 일단 태양광이나 풍력처럼 겉보기에 그럴듯한 '신재생에너지'의 편을 들었지만, 해가 지고 바람이 멈추면 돌아가지 않는 태양광과 풍력은 처음부터 에너지 문제의 대안이 될 수 없다.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결국 원자력을 늘려야만 하는 것이다. 

둘째, 셰일 혁명이 시작됐다. 모래가 아주 단단하게 굳은 사암층에 갇힌 원유를 채굴하는 방법이 2008년 조지 미첼이라는 텍사스 석유 사업가에 의해 개발됐다. 셰일 가스의 매장량 및 채굴 기술에서 미국은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셰일 가스의 사우디아라비아'라는 농담이 오갈 정도다. 2010년대 이후, 미국은 석유를 위해 중동의 정치에 목을 매달 필요가 없게 됐다. 오히려 영세 셰일 가스 개발 업체의 부실 경영 및 부채가 국가적 골칫거리다.

"원자력, 갑시다!"

12월 3일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원전 관련 부서 모습. 이튿날 검찰은 월성 1호기 원전 관련 내부 자료를 삭제하거나 이를 지시한 혐의 등으로 산업부 공무원 2명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뉴스1]
이에 따라 미국 민주당의 정강정책 역시 근본적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한국 언론에 잘 소개되지 않았으나, 그 변화는 2010년대부터 가시화됐다. 1994년 빌 클린턴의 명을 받아 고속증식로 연구에 종지부를 찍었던 존 케리만 해도 그렇다. 그는 2017년 1월 9일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을 방문해 45분에 달하는 연설을 했다. 

"저는 1970년대부터 원자력에 반대해 논쟁해온 사람입니다. 원자력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기후 변화의 도전에 직면해 있고, 4세대 원자력 기술의 잠재력이 있습니다. 갑시다(Go for it).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탄소 배출을 0으로 만듭시다." 

멋진 연설이다. 이 연설을 한 존 케리가 누구인가? 오바마 행정부 시절 이란 핵협상을 주도한 인물이다. 이란 핵협상이란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는 조건으로 미국이 봉쇄를 풀고 군사적 대립을 완화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석유 때문에 중동에 매달리지 않는' 21세기 미국의 대전략 중 하나인 것이다. 

트럼프뿐 아니라 바이든 역시 적극적으로 4세대 원자력 발전 연구를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그래서다. 1970년대와 달리 지금은 미국이 아닌 중국 같은 나라가 먼저 고속증식로 및 4세대 원전 상용화를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기술력이 평준화됐으니, 미국은 기술 유출이 아니라 기술 낙후를 두려워해야 할 상황이기도 하다.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석탄 석유 등 화석연료를 버리고 4세대 원자력 발전에 집중하겠노라는 미국의 정책 전환은 그러므로 단순한 에너지 정책이 아니다. 중동뿐 아니라 전 세계에 직접 군사 개입을 하는 '세계의 경찰' 역할을 줄이고, 원자력으로 값싸고 안정적인 에너지를 공급해 산업 경쟁력을 회복하며, 중국이나 인도 등 경제적 잠재력을 지닌 인구 대국에 탄소 배출 절감을 요구하며 압력을 넣기 위한 다목적 포석으로 봐야 한다. 그야말로 '파워'(power) 게임이다. 

월성 1호기의 폐쇄 과정에서 불법적인 압력이 있었는지를 따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일이 있다. 에너지 정책을 국가 안보 및 국제 정세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에너지 정책은 전기 안 끊기게 하고 전기 요금 깎아주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경제의 근간이며 안보의 핵심이다. 초당파적 관점에서 오직 국익만을 바라보며 접근해야 할 사안이다.

막강한 원전 경쟁력 활용할 때

빌 클린턴과 존 케리, 조 바이든 등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우드스탁 록 패스티벌에서 춤추고 마리화나를 피우며 월남전에 반대하던 바로 그 세대라는 점이다. 그들은 아무런 거리낌없이 카터의 이상적 도덕주의를 받아들였고 그것을 자신들의 정치적 무기로 삼았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국가를 책임지고 운영할 때가 되자, 미국의 국익에 가장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원자력을 더 활용하고 발전시키는 것 말이다. 

한국은 왜인지 이제는 철이 들어야 할 사람들이 철들지 않는다. 지금은 3세대 원전의 개발과 건설에서 대한민국이 지닌 막강한 경쟁력을 적극 활용해야 할 때다. 그렇게 국부를 쌓으면서 4세대 원전을 향한 경쟁에서도 우위를 차지해야 한다. 망국적 탈원전을 멈추고, 그 과정에서 권한남용이나 비리 등이 있었다면 낱낱이 드러내 바로잡은 후,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basil83@gmail.com

2020-12-13

[신동아 좌담 上] "나꼼수 분열은 '대깨문'과 '소깨문' 싸움"

 

"나꼼수 분열은 '대깨문'과 '소깨문' 싸움"

고재석 기자 입력 2020. 12. 13. 10:01 수정 2020. 12. 14. 17:39
['한때 좌파' 4人의 쾌도난마①] 문재인 시대㊤

● “민주 질서 무시 文정권 리더들은 레닌주의자”(민경우)
● “86세대, 20대 때부터 민주주의 부재 상태”(나연준)
● “조국 속한 집단 전체가 나르시시즘”(봉달호)
● “체제 뒤엎으려던 80년대 대학생, 민주화운동가 아냐”(노정태)
● “촛불혁명은 86세대가 韓 무혈점령한 것”(민경우)
● “한반도에서 北 빼고 가장 저질 팬덤이 문빠”(나연준)
● “文 비판하니 욕설 세례, 내 밥줄 끊으려 해”(봉달호)
● “97세대의 文 지지는 ‘자유로부터의 도피’”(노정태)

‘한때 좌파’ 네 사람이 2020년 12월 7일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 모였다. 왼쪽부터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민경우 민경우수학교육연구소장, 나연준 제3의길 편집위원, 봉달호 편의점주. [지호영 기자]
네 사람 모두 반문(反文)이다. 문재인 정부에 날 선 칼날을 들이댄다. 여기까지라면 별 흥미가 없다. 친문(親文)이 그렇듯 반문도 차고 넘친다. 이건 어떤가. 네 사람 모두 '한때 좌파'였다. 그러면서도 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 97세대(90년대 학번·70년대 출생), 밀레니얼 세대(1980년 이후 출생)가 섞여 있다. 네 사람의 이력부터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민경우 민경우수학교육연구소장은 1965년생이다. 1987년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장을 지냈다.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사무처장으로 일했다. NL(민족해방) 계열 핵심 이론가였다. 

봉달호 편의점주는 1974년생이다. 92학번이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학생운동을 시작해 구력은 길다. 주체사상을 공부했으나 나중에 비(非)NL 계열로 총학생회장에 출마해 당선됐다. 

나연준 제3의길 편집위원은 1981년생이다. 한국 근현대사 정치사상사를 전공하는 역사학도다. 중앙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 논문을 쓰고 있다.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활동했다.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는 1983년생이다. 딴지일보 온라인 에디터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을 지냈다. 1980년대생을 대표하는 진보 논객으로 불렸다. 

‘신동아'는 2020년 12월 7일 서울 서대문구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으로 네 사람을 초청했다. 서로의 글은 즐겨 읽지만 이날 처음 보는 사이도 있다고 했다.

"전쟁 끝났어, 빨리 나와"

민경우 민경우수학교육연구소장은 “문재인 정권의 리더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레닌주의자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 했다. [박해윤 기자]
기자 | 민경우 소장은 1987년 6월 항쟁 당시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장이었는데요. 민주화운동의 상징자본이 파산했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민경우 | 조국 사태 이후 친구들과 전혀 대화가 안 돼요. 과거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들이 지금 국민들이 보기에는 전혀 말이 되지 않는 얘기를 하고 있어요. 검찰개혁을 주장하는데,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상태가 전혀 아니에요. 

기자 |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 중 일부만의 일탈이라는 반박도 가능할 텐데요. 

민경우 | 문재인 정권에 민주화운동의 중심 세력이 있기 때문에 정권이 대중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는 건 민주화운동의 실패라고 볼 수 있죠.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나 서민 단국대 교수처럼 민주화운동 세력에서 부분적으로 이탈한 사람들은 있죠. 저도 거기에 속하고요. 하지만 그 규모가 크지는 않잖아요. 

나연준 | 민주화운동 세력은 민주주의를 몸에 각인할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지하조직에서 주로 활동했기 때문에 조직 보위가 운동가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어요. 타인을 자신과 동일한 권리의 주체로 바라보거나 절차적 정당성을 준수해야 한다는 훈련이 안 돼 있죠. 그 사람들이 20대 때는 별로 가진 게 없잖아요. 50대가 되면 쥔 것도 지킬 것도 많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기득권화됐어요. 여기에 20대 때부터 이어진 민주주의의 부재 상태가 결합한 겁니다. 

봉달호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0년쯤 지났을 때 태평양 어느 섬에서 일본군 장교가 하나 발견됐는데, 전쟁이 끝난 것도 모르고 혼자 투쟁하고 있었어요. '전쟁 끝났어. 빨리 나와' 이러는데 본인은 안 끝났다는 거예요. 

노정태 | 이것은 우리를 항복시키려는 적의 계략이라고 본 건가요.(웃음) 

기자 | 봉달호 편의점주는 "반미, 종북이 본질이던 우리 운동을 민주화운동이라 부르는 것은 도둑질하려고 은행에 들어갔다가 우연찮게 은행 강도를 잡은 도둑을 영웅으로 추앙하는 형국"이라고 쓴 적 있죠. 

봉달호 | 권력을 쥐었는데도 아직 거악과 싸우고 있다는 착각이 이 사람들에게 있어요. 요새 사람들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해 비아냥거리면서 나르시시즘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조 전 장관이 속한 집단 자체가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어요. 

과연 과거에 우리가 민주화운동을 했었을까…. 저는 자주민주통일(자민통) 운동을 했던 것 같긴 한데, 거기서 민주는 '후순위채권'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운동권 문화가 전체주의적이었고 그 안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내면화된 신념 없이 분노나 당위성에 따라 운동했는데 지금도 반복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6월 항쟁 때 反美 외치니 '그러지 마' 하시더라고요"

봉달호 편의점주는 “86세대에게 이념은 허울이나 명분일 뿐이었다”고 했다. [박해윤 기자]
기자 | 최근 민경우 소장이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여권의 압박을 레닌의 폭력혁명론에 빗댔는데, 봉달호 편의점주 의견과 연결고리가 있을 것 같네요. 

민경우 | 1980년대 중반 배운 민주주의론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하다가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어요. 칸트나 로크, 미국의 독립운동에 대해 (운동권 안에서) 토론해 본 적이 없어요. 레닌주의부터 얘기했고, 그조차 이론보다는 행동주의로 받아들였죠. 우스갯소리로 '당을 만들어 무기고를 접수해야 한다'는 얘기를 1984~1985년에 대학교 2학년들이 했다고요. 레닌도 자기를 민주주의자라고 하고, 주체사상도 민주주의라고 하니까 민주주의라는 워딩은 있었죠. 문재인 정권의 리더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레닌주의자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검찰이라는 거대악이 있고 쟤들은 민주적 질서를 거치지 않고서 제거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바로 레닌주의예요. 

기자 | 여권이 많이 쓰는 표현이 '민주적 통제'인데요. 

민경우 | (레닌주의와) 똑같죠. 

노정태 | 저는 민주화운동이 파산했다기보다는 이제야 진상이 보인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혁명운동하고 반체제운동한 사람도 포용하는 국가는 민주국가죠. 그런데 이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추구하고 있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란 말이에요. 1980년대 김영삼(YS), 김대중(DJ)이라는 정치 지도자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YS, DJ 찍었을 때 받게 될 멸시와 배척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찍은 사람들이 있었어요.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자에 가깝죠. 대학가에 모여 체제를 통째로 들어 엎자는 모의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던 사람들이 민주화운동가는 아니었습니다. 요새 태국 민주화운동에 대한 보도가 많잖아요. 태국에는 야당 지도자가 없어요. 민주화운동이 작동할 만한 대안이 되는 정치세력, 즉 지도자가 부재하니 대학생들이 왕정 폐지를 주장해도 아무런 힘을 받지 못하는 겁니다. 

기자 | 민주화 과정에서 양 김씨의 역할이 중요했다는 주장인데, 민경우 소장도 동의하나요. 

민경우 | 5·18과 관련해서도 DJ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어요. 5·18 이후에는 부산이 운동의 중심이었는데 1983년 김영삼이 단행한 23일간의 단식이 부산 시위를 촉발했어요. 야당이 선전한 1985년 2·12 총선이 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였죠. 그때 서울대 총학생회를 비롯해 대학생들은 '뻘짓'하고 있었어요. 주체사상, CA(제헌의회)그룹 같은 이상한 소리를 했어요. 정치적 의미에서 대학생의 민주화운동은 터무니없이 과장됐습니다. 

나연준 | 1987년 6월 항쟁 때 CA그룹에서는 '제헌의회 소집'을 내걸었죠. NL(민족해방) 계열은 '독재타도'를 표면적으로 내걸었지만 원래 하려던 말은 '반미자주'였어요. 6월 항쟁에 대해 86세대가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당시 현장에서 86세대가 외치고 싶었거나 실제 외친 구호는 민주화가 아니었습니다. 

나연준 편집위원의 '돌직구'를 민경우 소장은 저항 없이 순순히 맞았다. 그러고는 경험담을 꺼냈다. 

민경우 | 넥타이부대가 판을 깔아주니 대학생들이 거리에서 활개를 친 거죠. 6월 항쟁 후에 대학생들은 조국통일론으로 확 빠져버렸어요. 학생운동의 주요 동력은 이미 1986년 자주통일운동이 돼 있었어요. 이걸 일시적으로 반독재투쟁으로 전환했다가 1988년 본궤도로 돌아온 거죠. 사실 제가 그랬어요. 6월 항쟁 때 거리에 나가서 반미(反美)를 외쳤어요. 어느 날 명동성당 앞에서 넥타이 매신 어른이 절 부르더니 '너 그러지 마' 하시더라고요. 나는 학교에서 늘 하던 소리니 괜찮겠지 하고 한 거죠.

文의 콘크리트 지지층 97세대

나연준 제3의길 편집위원은 “민주화운동 세력은 민주주의를 몸에 각인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고 했다. [박해윤 기자]
기자 | 그 유산이 90년대 학번으로 이어집니다. 1990년대에도 자주통일운동이 학생운동의 중추 아니었습니까. 봉달호 편의점주가 이 중 유일한 97(90년대 학번, 70년대 출생)세대인데요. 

봉달호 | 저는 거창하게 얘기하면 1996~1997년 전향했어요. 더는 NL이니 PD(민중민주)니 ND(민족민주)니 이런 말은 안 하겠지 했는데 지금도 같은 말을 하고 있잖아요. '세상이 왜 이래'(웃음). 저는 고등학생이던 1989년 운동을 시작했어요. 1980년대 학생운동은 그나마 고민이 있던 것 같아요. 1990년대 학생운동은 주입식이었어요. 김정일이 쓴 '주체사상에 대하여'는 거의 외우다시피 했죠. 1990년대 중반이 되면 정통을 따지면서 북한에서 나온 원서가 아니면 보지도 않았습니다. 굉장히 교조화한 거죠. 1990년대 대학에는 상반되는 세력이 공존했어요. 전체주의 문화를 가진 운동권이 있던 반면, 서태지와 아이들에 빠진 대학생들이 있었어요. 두 집단이 대학에서 어울렸는데 지금은 똑같은 정치 성향을 보이니 참 그로테스크(grotesque·기괴)해요. 

기자 | 나연준 편집위원은 "97세대는 팬덤과 같은 자신의 문화 경험을 정치로 확장했다"고 쓴 적이 있잖아요. 

나연준 | 1980년대 학생운동을 한 사람 상당수는 제도 정치권 진출에 성공했고 안착했어요. 반면 1990년대 학생운동은 계속 실패하면서 역량을 소진했어요. 90년대 학번은 자기를 대변해 줄 수 있는 정치세력을 세대 내에서 못 찾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윗세대를 지지하죠. 지지를 만들어가는 방식에서 두 세대 사이에 차이가 있어요. 서태지와 아이들이 1992년 데뷔했어요. 90년대 학번들에게는 누군가를 공적으로 좋아하는 첫 경험이 팬덤이었던 겁니다. 팬덤이 정치 영역으로 확장하면서 '노무현 바람'에서 '안철수 현상'까지 흐름이 이어졌죠. 

노정태 | 1930~1940년대 독일인들이 왜 자발적으로 나치를 지지했을까. 당시 바이마르공화국의 혼란 속에서 (불안해하는 독일인들에게) 히틀러가 '나에게 종속되는 게 너에게는 좋다'는 식으로 대중을 설득했어요. 에리히 프롬이 전체주의를 분석하며 꺼낸 '자유로부터의 도피'입니다. 97세대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자유로운 대중문화를 만끽한 세대입니다. 하지만 자유로운 존재로서 스스로를 재정립하지 않고 의탁할 수 있는 또 다른 존재를 찾아 헤매고 있었고, 노무현의 출현 및 비극적 죽음과 맞물려 유사종교화 된 게 아닌가 싶어요. 

나연준 | 러프(rough)하게 정의하자면 팬덤은 정서와 서사의 공동체예요. 서태지와 아이들이 순위 프로그램에 나가면 팬들이 손가락 부서져라 ARS를 눌렀어요. 저도 그중 한 명이었죠.(웃음) 그렇게 해서 1등 만들어놓으면 기분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런 식의 서사를 정치인에게도 투여한 거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되는 과정이 굉장히 극적이었잖아요. 돌아가시는 과정도 상당히 비극적이고요. 여기에 완전히 매몰돼 있거든요. 이 서사의 특징은 스스로 늘 선한 세력으로 규정한 뒤 악마와 싸우는 겁니다. 가까이는 노무현에 머물지만 멀리는 토착왜구 운운하면서 식민지 시기까지 올라가는 겁니다. 

이 대목에서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가 '추억 열차'를 타며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노정태 | 서태지와 아이들과 1위 경쟁을 하던 트로트 가수가 있었는데…. 누구였죠? 

나연준 | 2집 때 가장 치열하게 경쟁한 가수는 김수희 씨죠. '애모'. 

기자 | 나연준 편집위원은 진짜 팬이셨네. 

노정태 | 서태지와 아이들 팬으로서 자아를 형성한 세대에게는 김수희 씨 같은 구세대와의 경쟁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 아마겟돈처럼 느껴질 거예요. 97세대의 의식세계 속에는 어릴 때 느낀 문화적 답답함이 남아 있어요. 걸핏하면 음악 검열을 했던 기성세대가 아직까지도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한단 말이에요. 하지만 97세대를 억눌렀던 사람들은 나이 먹고 은퇴했어요. 이제는 97세대가 사회적으로 어른 역할을 해야 하는데 여전히 공부 안 하고 콘서트 가다 걸려서 부모님한테 혼나던 시절의 마인드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文 대통령은 허물로만 있고요"

97세대가 난타당하자 기자는 지긋이 봉달호 편의점주를 쳐다봤다. 그가 눈치껏 운을 뗐다. 

봉달호 | 요새 욕먹는 97세대로서 자기반성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웃음). 우리 세대는 뭐라고 규정하기 어려우니 X세대라고 불렸어요. 앞 세대와 달리 저희 세대에는 동질감이 없었어요. 이제야 뒤늦게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요. 우리는 축복받은 세대예요. 소비자본주의의 혜택을 가장 먼저 받았고, 문화적 다양성을 경험했죠. 대학 진학률도 높았고 대학 내에서 다양한 의견을 관철할 수 있었죠. PC통신을 통해 정보통신 혁명의 세례도 누렸고요. 

40대가 문재인 정부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현상을 두고도 과도한 정치적 해석을 할 필요는 없어요. 현 정부를 지지하는 분들에게 물으면 '지금 코로나 상황이잖아. 힘들 때는 뒤에서 장수한테 뭘 꽂는 거 아니야.' 이러거든요. 40대는 안정이 가장 중요해요. 40대가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는 건 진보적 사고가 아니라 오히려 안정성을 희구하는 보수적 사고예요. 우리 세대를 대표할 만한 지도자가 나온다면 얼마든지 뒤집히고 열광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민경우 | 지금의 40대가 20대이던 1990년대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책이 나왔어요. 기업 담론이 역동적으로 한국 사회를 장악했을 법했는데, 당시 20대에게 거의 영향력이 없었어요. 대신 유시민 같은 논객이 담론의 공백을 메웠어요. 

기자 | 그렇다면 봉달호 편의점주는 86세대 기득권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봉달호 | 노무현 정부 때는 86세대가 기관장 할 나이가 아니었죠. 지금은 딱 기관장을 할 나이예요. 오랫동안 연락이 안 되는 선배들이 있는데, 나중에 보면 다 어디 들어가 있어요.(웃음) 아주 쉽게요. 1990년대 후반 어떤 선배가 저한테 운동을 왜 하느냐고 물어봤어요. 저는 순진하게 '민중을 사랑해서 합니다'라고 답했어요. 선배가 하는 말이 '그래? 나는 권력을 잡으려 하는데'였어요. 굉장히 충격을 받았는데, 돌이켜보면 (그들에게) 딱 맞는 말이에요. 권력의 핵심에 들어가면서 이해관계에 얽히고, 그러면서 하나의 그룹을 형성해 가는 거예요. 이념은 허울이나 명분일 뿐이었던 거죠. 

기자 | 86세대인 민경우 소장이 이야기를 이어가면 좋겠는데요. 

민경우 | 민주화운동 세력이 적이라고 불렀던 집단은 2010년 즈음에 다 돌아가셨어요. 마침 노무현 정권 때 30대 중반이던 사람들이 40대 중후반이 돼 한자리할 수 있는 나이가 됐죠. 운동권만이 아니더라도 기업이나 법조계 등에서 중견 간부 지위에 올라갔습니다. 2016년 촛불시위는 보수가 물리적으로 퇴장하고 사회를 장악한 민주화운동 세력이 (한국을) 무혈점령한 거예요. 문재인 대통령은 이와 같은 구조 위에 허울로만 있고요. 

구(舊)조국, 신(新)조국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는 “민주화운동의 진상이 이제야 보인다”고 했다. [박해윤 기자]
기자 | 이야기를 다시 팬덤으로 돌려볼까요. 팬덤 하면 '문빠'를 빼놓을 수 없죠. 

노정태 | 최근 '나꼼수'(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멤버들이 분열한다고 하던데요. 편의적으로 단어를 붙이면 대깨문(문재인 대통령 열성 지지자)과 소깨문의 싸움 혹은 구깨문과 신깨문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는데….(일동 웃음) 

기자 | 구(舊)조국, 신(新)조국 있듯이….(웃음) 

노정태 | 네. 적과의 싸움을 통해 정체성을 확인하는데, 이건 인간의 본능에 가까워요. 스포츠처럼 그냥 즐기려고만 하면 안전하기도 하고 그 나름의 휴먼 드라마도 탄생합니다. 문제는 이 본능을 정치에 대입해 버린 거예요. 자신들이 움직이면 결과가 나온다는 걸 눈으로 확인해 버리니 멈출 수 없게 된 겁니다. 고작 수백, 수천 명이 악플 단다고 정치인이 말 바꾸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정치가 사람들의 본능을 악용하고 있는 겁니다. 

나연준 | 아이돌 팬덤은 아주 예의 바르게 행동해요. 불우이웃도 돕고 기부도 하고 나무도 심잖아요. 

노정태 | 연예인 이름으로 대신 기부하잖아요. 

나연준 | 그렇죠. 선행을 하면서 우상의 이미지 제고를 꾀한단 말이에요. 발산하는 방식이 건강하잖아요. 같은 팬덤이더라도 '대깨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과는 아주 결이 다릅니다. 저는 한반도에 존재하는 팬덤 중 '북쪽' 빼놓고는 가장 저질 팬덤이 대깨문이라고 생각해요. 

기자 | 노무현 전 대통령도 노사모라는 팬덤이 있었는데요. 

나연준 | 노사모와 문빠의 본질은 같다고 생각해요. 노사모가 한창 활동할 때 제가 민주노동당에 있었습니다. 선거만 있으면 노사모가 민주노동당(2010년 지방선거 때는 진보신당) 게시판에 단체로 몰려와서 후보직에서 사퇴하라고 도배를 했어요. 

기자 | 민주당과 야권 단일화를 하라고 요구했죠. 

나연준 | 남이 나와 똑같은 참정권을 갖고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겁니다. 민주주의 훈련이 덜 된 거예요. 그들은 자신이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걸 두려워합니다. 노무현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했어요. 진보진영에서 노무현 정부를 비판했는데, 당시 노사모는 FTA 해야 한다고 주장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노무현 정부 때 체결한 한미 FTA를 이명박 정부 때 비준하려 하니까 반대했어요. 그러면서 내세운 슬로건이 '노무현의 FTA는 착한 FTA, 이명박의 FTA는 나쁜 FTA'였습니다. 정책을 선악으로 나누는 겁니다. 스스로도 설명이 안 되면 생각을 바꿔야 하는데, 나꼼수나 '김어준의 뉴스공장' 같은 데서 매일 소스를 던져주잖아요. 

민경우 | 1988년부터 1997년이 매우 중요한 시기예요. 경제적으로 풍요로웠고,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고 있었어요. 또 여대생 비율이 급격하게 올라갑니다. 1990년대 초반에는 총학생회장이 주로 남자였어요. 1990년대 후반이 되면 여성 총학생회장이 대거 등장해요. 1987년 6월 항쟁 이후 NL은 통일운동으로 많이 갔어요. 8·15가 되면 범민족대회를 했는데, 대학이 해방구 같았어요. 세상에 서태지가 있건 말건 대학 내에서 10만 명이 축제를 벌였어요. 축제의 키워드는 통일운동이었죠. 그게 팬덤과 유사했어요.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거칠 수가 있을까"

봉달호 편의점주가 얕은 한숨과 함께 말을 받았다. 

봉달호 | 문 대통령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정서가 강하게 깔려 있는 것처럼 보여요. 문제는 그 정서가 공격적으로 표출된다는 거예요. 제가 팔자에 없이 '신동아'에 칼럼을 쓰는데, 한번은 하루에 100개 넘는 욕설 메일을 받은 적이 있어요. 제가 편의점을 하잖아요. 프랜차이즈 본사에 전화해 '이런 사람이 이런 글을 쓰는데 왜 가만히 놔두느냐'고 해요. 어떻게 사람들이 이렇게 거칠 수가 있을까. 생각의 차이를 이유로 누군가의 밥줄을 끊어버리겠다는 거잖아요. 중국 문화대혁명(문혁) 때와 너무 똑같아요. 문혁에 대한 기록을 보면 스승을 마당에서 두드려 패고 고깔을 씌웠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중·고등학생이고 순진한 사람들이었단 말이에요. 이 말을 들으면 문 대통령 지지하는 분들이 기분 나쁘겠지만, (그분들은) 역사적 상황이 문혁 때처럼 주어지면 똑같이 행동할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노정태 | 최근에 역사 강사 설민석 씨가 박정희 정권이 몰락한 이유 중 하나로 2차 오일 쇼크(파동)를 들면서 경제가 거꾸러지자 부산·마산 민심이 이반했다고 말했어요. 사람들이 이 설명을 못 받아들인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박정희를 쫓아낸 것은 우리 위대한 민주화운동의 결과'이지 무슨 석유값 같은 걸 들먹이느냐는 거죠. 그러면서 설씨 아버지가 박정희 정권 때 청와대 경호실에 있었는데 후에 민주당으로 갈아타 국회의원을 했다며 설씨를 공격해요. 박정희가 오일 쇼크의 직격탄을 맞은 건 사실이고, 그때 무너진 정권이 굉장히 많거든요. 하지만 (정치)소비자들이 '우리가 갖고 있는 정의로운 역사관에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압력을 주는 거죠. 

*‘한때 좌파' 4人의 쾌도난마 문재인 시대②로 이어집니다.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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