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14

이재명 '공짜 용돈'으론 '청년 간병살인' 못 막는다

 [노정태의 뷰파인더-58] 月 50만 원, 부자에겐 용돈·빈자에겐 무의미한 돈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경기지사로 재직하던 4월 28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1 대한민국 기본소득 박람회’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뉴스1]
11월 10일, 대구고법에 세간의 이목이 쏠려 있었다. 거동이 불편해진 아버지를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존속살해)로 4년형을 선고받은 22세 남성 A씨의 항소심 선고가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항소심 선고를 일주일 앞둔 11월 3일, 탐사보도 전문 매체를 표방하는 '셜록'이 취재하고 '프레시안'을 통해 발행된 기사가 대중의 심금을 울렸던 바 있다.

2020년 9월 13일 A씨의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한 달에 200만 원 가량을 벌던 아버지에게는 본인의 수술 및 치료비를 감당할만한 재산이랄 게 따로 없었다. A씨의 삼촌이 경제적 짐을 떠안았다. 수술은 잘 끝났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평생 소변줄을 차고, 코로 삽입한 줄을 통해 액체형 영양식을 공급받아 연명해야 할 처지가 되고 말았다.

"청년 구하기 위해 포퓰리즘이라도…"

기사에 따르면 A씨는 120kg에 달하는 과체중이다. 취직은 고사하고 아르바이트도 구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나마 몇몇 일자리를 구했지만 자꾸 월급을 미리 달라고 요구하다가 사장의 눈 밖에 나기 일쑤였다. 해당 기사(‘"쌀 사먹게 2만 원만..." 22살 청년 간병인의 비극적 살인')는 아버지의 퇴원 전후로 A씨가 겪은 고초를 다양한 각도에서 묘사하고 있다. 읽고 있노라면 A씨가 받은 판결에 대한 반감이 솟구쳐 올라온다. 누가 저 청년에게 돌을 던질 수 있으랴.

그 기사에 힘입어 A씨의 사건은 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정의당 심상정, 두 대선 후보가 직접 사안을 언급하며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씨는 아버지가 65세가 아니기 때문에 요양급여도 받지 못했고, 노동 가능한 연령대였으며, 노동을 불가능하게 하는 장애도 없었던 탓에 그 외의 복지 혜택도 받지 못했다. 그런 것들을 '사각지대'로 본 이재명은 11월 7일 페이스북을 통해 "국가 입장에선 작은 사각지대지만 누군가에겐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라며, "희망 잃은 청년을 구하기 위해 포퓰리즘이 필요하다면 포퓰리즘이라도 기꺼이 하겠습니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2심의 결론은 1심과 동일했다. 존속살해죄 유죄. 징역 4년. 마침 이 주제에 대해 원고를 쓰기 시작한 터라 나 역시 보도되는 내용들을 이전보다 훨씬 면밀하게 살펴봤다. 그리고 도달한 결론. 2심과 마찬가지로 존속살해죄 유죄라는 판결 내용에는 문제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중병을 앓는 환자의 요양과 간병에 대한 문제의식을 없는 셈 칠 수는 없다. 우리 사회는 지금부터 이 문제를 진지하게 토론하기 시작해야 한다.

일단 사건 자체에 대해 간략하게 논의해보자. 대구고법 형사합의2부(재판장 양영희)는 "이번 사건의 여러 정황과 피고인이 수사기관에서 진술한 내용 등을 비춰보면, 피고인이 피해자를 퇴원시킨 다음날부터 피해자를 죽게 할 마음을 먹고 피해자가 죽을 때까지 의도적으로 방치했다는 점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그러므로 살인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A씨는 자신이 존속살해가 아니라 유기치사를 저질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유기치사는 누군가를 돌보지 않아도 그 사람이 죽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하에 행동할 때, 그리고 그 믿음에 객관적인 타당성이 있다고 여겨질 때에만 성립할 수 있는 범죄다. 그리 춥지 않은 가을날 술에 적당히 취한 친구가 버스 정류장 앞 벤치에서 잠들었는데, 일단 내 버스를 타기 위해 그를 두고 집에 왔더니, 다음날 친구가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경우 등을 떠올려볼 수 있다.

존속살해 아닌 유기치사라 부를 수 없어

A씨의 아버지는 그런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 두 시간마다 누워 있는 자세를 바꾸지 않으면 몸에 욕창이 생기는 중증 환자였다. 꼬박꼬박 먹어야 할 약도 매우 많았고, 콧구멍을 통해 삽입된 줄을 통해 영양식을 공급해야만 했다. A씨의 돌보지 않는 행위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고, A씨 스스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아버지를 돌보지 않은 A씨의 행위는 살인일 수밖에 없다.

만약 A씨가 이 모든 돌봄을 수행하고 있었다고 해보자. 그러다가 어느 날 피로 누적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깊게 잠이 들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숨을 거두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살인이 아닌 유기치사라는 항변이 성립할 여지가 있다. 이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A씨는 아버지에게 약을 먹이지도 않았고, 하루에 세 팩 이상 들어가야 할 영양식을 퇴원 후 사망까지 고작 10팩 제공했다. 대소변 처리 및 자세 바꾸기 역시 제대로 이루어졌을 리 없다.

이와 같은 사실관계는 A씨에 대해 우호적으로 서술된 기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쌀 사먹게 2만 원만..." 22살 청년 간병인의 비극적 살인'의 한 대목이다.

"A씨는 아버지가 들어오지 말라고 한 그 방에 5월 3일 밤 들어가 봤다. 그때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이 강도영 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1심 판결문에 담겨 있다.
"피고인(A씨)는 피해자(아버지) 방에 한 번 들어가 보았는데, 피해자는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피고인에게 물이나 영양식을 달라고 요구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피고인은 이를 가만히 지켜보면서 울다가 그대로 방문을 닫고 나온 뒤 피해자가 사망할 때까지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환자가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살아있는 자, 즉 A씨의 일방적인 진술일 뿐이다. A씨는 아버지가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도 문을 닫고 나온 후, 사망할 때까지 문을 열어보지 않았다. 이와 같은 행위는 유기를 했을 뿐인데 살인이라는 결과가 실수로 나온 게 아니다. 죽을 것을 알면서, 죽을 것을 기대하고, 유기한 것이다. 존속살해라는 법원의 판결은 너무도 당연하고, 정당하다.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를 존속살해가 아닌 유기치사라고 부를 수는 없다. 아이를 낳고 기르기 힘들다는 이유로 의도적으로 방치하여 죽게 만드는 미숙한 부모,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지 않지만 지금도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을 비슷한 존속살해 등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순간의 동정심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A씨의 존속살해를 유기치사로 판단하는 순간, 대한민국은 순식간에 영아 살해와 고려장을 사실상 허용하는 폭력적 전근대 사회로 회귀하고 만다.

진짜 필요한 '억강부약(抑强扶弱)'은 무엇인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경기지사로 재직하던 4월 20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 행정복지센터에서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현장접수가 이뤄지고 있다. [뉴스1]
앞서 말했듯 이재명은 이 사안을 두고 '포퓰리스트라는 비난을 무릅쓰고서라도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 취지 자체에 대해 반대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문제는 방법론이다. 이재명은 이 사건에 대한 페이스북 게시물에서 따로 해법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미 이재명의 복지 정책과 방향성에 대해 알고 있다. 전 국민에게 '사각지대' 없이 나누어주는 기본소득을 골자로 하고 있는 것이다.

온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나눠주는 세상이 되었다고 해보자. 그런 세상에서는 A씨와 같은 비극적 사건이 발생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을까. 아주 간단한 계산만 해보더라도 그렇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된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는 월 50만 원인데, 이 액수를 온 국민에게 지급하려면 매년 312조 원이 소요된다. 2020년 현재 대한민국의 한해 총 예산이 500조원이다. 1인당 매달 30만원을 지급하기 위해서는 모든 경제주체가 직접세와 소비세 같은 간접세를 지금보다 53%씩 더 내야 한다.

문제는 월 30만 원이나 50만 원 같은 현금 복지가 어느 정도의 효용성을 지니느냐에 있다. 신체 건강하고 사회 활동에도 문제가 없지만 딱히 일하고 싶지는 않은 사람에게 매달 50만 원이 생긴다면 그는 신나게 그 돈을 쓰면서 즐거운 나날을 보낼 것이다. 공짜 용돈이 생긴 셈이니 말이다. 하지만 별도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 그러면서도 제대로 된 복지 프로그램을 필요로 하는 실수요자에게 월 30만 원 내지 50만 원은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2021년 현재 24시간 입주간병인을 고용하는 비용은 최소 300만 원에서 500만 원 사이를 오간다. A씨와 아버지 두 사람이 기본소득을 받는다 해도 100만 원으로는 어림도 없다. 현재 국가 예산의 절반 이상을 퍼부어도 A씨와 아버지의 비극을 막을 수는 없다. 대신 굳이 '복지'의 대상이 되지 않아도 될 수많은 이들이 매달 공짜 용돈을 받아 즐거운 소비를 한다. 이를 올바른 정책 방향이라 이야기할 사람은 상식적으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복지는 '국가가 주도하는 공동구매'다. 가장 큰 경제 주체인 국가가 세금을 통해 마련한 재원으로, 소외 계층 및 복지 수요자에게 필요한 시설, 장비, 인력, 서비스 등을 구입하고 제공하는 셈이니 말이다. 물론 통상적인 공동구매와 달리 어떤 사람은 평생 돈을 내면서도 그 혜택을 받지 못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은 자신이 낸 돈보다 훨씬 많은 혜택을 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그와 같은 부의 재분배는 당연히 이루어져야 한다. 부자는 더 내고 가난한 사람은 더 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재명이 좋아하는 구호인 '억강부약'(抑强扶弱·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도와줌)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에겐 재미, 누군가에겐 무의미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액수의 돈을 현금으로 나눠준다. 복지의 가장 기본적인 요건을 달성하지 못한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고 건강한 사람일수록 기본소득을 통해 쏠쏠한 재미를 맛볼 수 있는 반면, A씨와 아버지처럼 한계에 몰려 있는 이들에게는 실질적 도움이 되기 어렵다. A씨의 비극 앞에서 해야 할 일은 현존하는 직간접적 복지 체계를 점검하고 맹점을 찾아 보완하는 것이지, 기본소득 타령을 하는 게 아니다.

A씨 아버지가 퇴원하던 날 A씨의 삼촌은 생계 지원과 장애 지원을 받으라고 권했다. 그러나 A씨는 그런 신청을 한 바 없다. 이렇듯 복지 혜택을 거부하며 자신과 주변인을 더 어려운 상황으로 만드는 경우, 어떻게 찾아내고 적절한 도움을 제공할 수 있을까? 고령화 시대에 발맞춰 요양병원 시스템은 어떻게 개편 증보돼야 할까? 대선을 넉 달 앞둔 지금,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숙제다.

#간병살인 #복지사각지대 #이재명 #기본소득 #신동아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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