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당선과 그에 뒤따르는 논의에 끼어들면서 느끼는 게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 '실력 안 되는데 빽/연줄/기타등등으로 끼어드는 놈들'에 대한 분노가 정말 크다는 것입니다. 저 또한 그런 감정에는 공감합니다.
하지만 논의가 '음서제 대 과거제' 수준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둘 다 결국에는 '윗분'과 '아랫것'들을 구분하는 걸 전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역동적이면서도 약자를 포용하고 받아들이는 자본주의 사회를 원합니다. 그것은 음서냐 과거냐를 넘어서, 일단 모든 사람은 기본적으로 평등하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음서제로 '양반'되냐 과거제로 '양반'되냐, 이 갈등은 '양반과 노비의 구분'이라는, 전근대적 세계관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근대적인 세계를 원합니다. 매 순간 모든 이들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하지만 낙오자를 버리지는 않는, 그런 세상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2021년. 우리 모두 근대인이 됩시다.
그나마 옛날의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고 평등한 기회'라는 레토릭은 나이브할지언정 이미 기저에 공정과 평등이란 개념에 대한 신뢰가 엿보였는데
답글삭제말씀하신 음서제 과거제 떡밥은 '정량적인 기준에 따라 그 사람의 향후 삶의 질과 지위가 고정된다면 순응하지 뭐'라는 체념이 느껴지더라고요.
시험 봐서 사람의 '끕'이 나뉘는 게 시장주의고 자본주의라 막연히 생각하는 조선시대 농노가 근대적 개인주의를 몸에 익히려면 마음 속에서 세계관이 한 번 이상 전복되는 수준의 임팩트가 필요합니다.
'음서제가 아니라 과거제를 원한다'는 목소리는 '공정'과 아무 상관 없습니다. 다만 자기가 이길 수 있는 룰로 불공정한 세상이 돌아가주기를, 그래서 본인이 그 불공정의 혜택을 받기를 바라는 소리일 뿐이죠. 저런 소리를 '젊은이들의 함성' 같은 식으로 쉴드쳐주면 안 된다고 봅니다. 청년층을 인격체로 대우한다면, 제대로 비판해야죠.
삭제그들에겐 그런 '자기가 이길 수 있는 룰'의 정량성이 그들이 상정하는 '공정'이 아닌가, 라는 취지에서 쓴 댓글이었습니다.
삭제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제 댓글에서도 이미 냉소와 조소뿐 인격적인 대우가 없군요. 반성해야겠습니다.
필기 100%로 운영하면 너무 여자 비율이 높아지기 때문에 면접 등의 정성평가를 통해 남자 비율을 맞추는 일이, 사실 지금도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죠. 얼마 전 뉴스가 됐던 하나은행 사태도 그랬고요. 사회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공정'을 앞세워 반 여성주의를 밀어붙일 이준석이 이렇게 확 떠버렸으니, 갈 길이 먼 것 같습니다. 그래도 글 쓰는 사람은 자기 할 일을 해야죠.
삭제Erasmut님이 늘 좋은 의견을 주고 계셔서 큰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매 순간 모든 이들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되는이랑 하지만 낙오자를 버리지는 않는은 아예 다른 두 문제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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