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11

'음서제 대 과거제'라는 가짜 논쟁

이준석 당선과 그에 뒤따르는 논의에 끼어들면서 느끼는 게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 '실력 안 되는데 빽/연줄/기타등등으로 끼어드는 놈들'에 대한 분노가 정말 크다는 것입니다. 저 또한 그런 감정에는 공감합니다.

하지만 논의가 '음서제 대 과거제' 수준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둘 다 결국에는 '윗분'과 '아랫것'들을 구분하는 걸 전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역동적이면서도 약자를 포용하고 받아들이는 자본주의 사회를 원합니다. 그것은 음서냐 과거냐를 넘어서, 일단 모든 사람은 기본적으로 평등하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음서제로 '양반'되냐 과거제로 '양반'되냐, 이 갈등은 '양반과 노비의 구분'이라는, 전근대적 세계관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근대적인 세계를 원합니다. 매 순간 모든 이들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하지만 낙오자를 버리지는 않는, 그런 세상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2021년. 우리 모두 근대인이 됩시다.

댓글 5개:

  1. 그나마 옛날의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고 평등한 기회'라는 레토릭은 나이브할지언정 이미 기저에 공정과 평등이란 개념에 대한 신뢰가 엿보였는데
    말씀하신 음서제 과거제 떡밥은 '정량적인 기준에 따라 그 사람의 향후 삶의 질과 지위가 고정된다면 순응하지 뭐'라는 체념이 느껴지더라고요.

    시험 봐서 사람의 '끕'이 나뉘는 게 시장주의고 자본주의라 막연히 생각하는 조선시대 농노가 근대적 개인주의를 몸에 익히려면 마음 속에서 세계관이 한 번 이상 전복되는 수준의 임팩트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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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음서제가 아니라 과거제를 원한다'는 목소리는 '공정'과 아무 상관 없습니다. 다만 자기가 이길 수 있는 룰로 불공정한 세상이 돌아가주기를, 그래서 본인이 그 불공정의 혜택을 받기를 바라는 소리일 뿐이죠. 저런 소리를 '젊은이들의 함성' 같은 식으로 쉴드쳐주면 안 된다고 봅니다. 청년층을 인격체로 대우한다면, 제대로 비판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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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그들에겐 그런 '자기가 이길 수 있는 룰'의 정량성이 그들이 상정하는 '공정'이 아닌가, 라는 취지에서 쓴 댓글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제 댓글에서도 이미 냉소와 조소뿐 인격적인 대우가 없군요. 반성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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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필기 100%로 운영하면 너무 여자 비율이 높아지기 때문에 면접 등의 정성평가를 통해 남자 비율을 맞추는 일이, 사실 지금도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죠. 얼마 전 뉴스가 됐던 하나은행 사태도 그랬고요. 사회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공정'을 앞세워 반 여성주의를 밀어붙일 이준석이 이렇게 확 떠버렸으니, 갈 길이 먼 것 같습니다. 그래도 글 쓰는 사람은 자기 할 일을 해야죠.

      Erasmut님이 늘 좋은 의견을 주고 계셔서 큰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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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매 순간 모든 이들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되는이랑 하지만 낙오자를 버리지는 않는은 아예 다른 두 문제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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