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12

'시험'을 줄이고 '테스트'를 늘리자

일본어를 공부하며 알게 된 사실. 외래어를 있는 그대로 갖다 쓰는 일본어에서 '시험'[試験(しけん)]과 '테스트'는 다른 단어입니다.

'시험'은 대학교 입학을 결정한다거나, 뭐 그런 것들. '사회적 관문'의 기능을 하는 제도를 '시험'이라고 합니다.

반면 '테스트'는 좀 더 가볍고 자주 보는 것들. 공부를 잘 했는지, 진도를 따라오고 있는지, 등을 평가하기 위해 보는 것들이 '테스트'입니다.

일본어에서 '시험'과 '테스트'의 관계는 뭐랄까, '문'[門(もん)]과 '도아'의 관계와 유사하다고 할 수도 있겠죠. 우리는 서양식 주택에 달린 문도 모두 '문'이라고 부르지만, 일본인들에게 '문'이란 전통가옥에 붙어있는 것들이고, 대부분의 서구식 건물의 출입구를 막아주는 판자 같은 건 '도아'라고 부르니까요.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무엇이냐. Meritocracy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험'이라는 단어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누군가의 실력을 키우고, 공정하게 평가하며, 학습효과를 높이는 방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테스트'입니다. 테스트를 자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제 실력을 가늠할 수 있고, 평가도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공부도 잘 됩니다.

반면 '시험' 한 방으로 인생을 좌우하는 시스템은 어떻습니까. 물론 음서제에 비하면야 '공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험을 준비하고, 시행하고, 실패에 대응하는 등 모든 방향에서 결국 가진 자에게 유리하게 흘러갑니다. 시행횟수가 반복될수록 그렇죠.

'시험'이 그렇게나 공정한 제도라면, 멸망하기 전까지 과거제도를 굴렸던 조선이 왜 그런 나라가 되었는지 설명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다시 '시험'과 '테스트'의 구분으로 돌아와봅니다. 한국은 예나 지금이나 시험 중심의 나라입니다. 이건 더 설명할 필요가 없겠죠.

문제는 오늘날 '능력주의' 내지는 '공정에의 요구'라는 이름 하에, '시험주의'를 강화하자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헌대 시험주의는 그 성격상 테스트, 특히 많은 테스트와 공존하기 어렵습니다. 잦은 테스트를 통해 계속 스트레스를 받고 본래의 밑천이 다 드러나는 것은 '능력주의' 혹은 '시험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미래가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이 잘 보았던, 혹은 잘 볼 가능성이 있다고 여기는 '시험'을 통과한 후, 그 성적에 따라 본인이 불공정한 제도의 수혜자가 되기를 바랄 뿐이죠.

'테스트' 중심의 사회는 단지 자본가나 세습 자산가 뿐 아니라 대기업 정규직에게도 그다지 유리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가진 안정적 직장과 연봉에 걸맞는 생산성을 내고 있는지 계속 평가받고 수시로 위치가 변경된다는 뜻이니까요.

하지만 이제 한국은 고도성장기를 지난지 오래이므로, 유연안정성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유연안정성의 길이란 곧 '시험주의'에서 벗어나 '테스트주의'로 나간다는 말과 같습니다.

몇 번을 반복해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능력주의'라는 말에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막연한 환상을 끼얹는 일을 그만두세요. '능력주의'는 엄연히 정의와 용례가 있는 단어입니다. 그것은 '시험주의'입니다.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테스트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테스트주의'입니다.

댓글 4개:

  1. '시험'이라는 한자어 자체의 의미가 test와 유사하죠. 한번 보는 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번 보는 거.

    "말장난일 뿐이다. 우리가 살면서 시시때때로 얼마나 다양한 형태의 시험과 마주하나?"고 반박할 수도 있는데, 그러기엔 한국인은 제도권 교육 단계에서부터 '평가하는 과정'의 취지보단 '보상의 격차'로서의 시험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런 경험이 누적되면 자연스레 두 가지 착각을 합니다. '내가 시험을 잘 봐 보상을 많이 받는 것은 검증되고 합의된 차등대우(차별)이다', '나보다 못 받는 사람은 그만한 실력도 없고, 노력도 안 한 거다'

    요즘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이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딱 지금 상황에 맞는 대중서이긴 한데, 전 그걸 이해하는 것보다 몇갑절 어려운 과제가 '자기 입장에서 혹시라도 있는 우월감이나 열등감의 근원을 성찰하는' 거라고 봅니다. 그래야 일회성 힐링이 아닌 본인 지성으로 직결되겠죠.

    답글삭제
    답글
    1. 그렇습니다. 살펴보더라도 보상이 동일하거나 오히려 저성과자를 보호하는 차원으로 가는 그런 '시험'을, 대다수의 한국인은 낯설어하죠. 실제로는 그런 류의 수행평가 같은 게 많아질수록 학력 격차도 줄어들고 전반적인 성취도 높아지는데 말입니다.

      어떤 식으로건 차별을 정당화하는 사회적 기제가 자리를 잡으면 사회의 효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걸 막는 게, 자기 손으로 뭘 생산하지 않는, 저같은 지식분자가 할 일이겠죠.

      삭제
  2. 메트로 말고 전철을 애용하자!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