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16

모두에게 줘야 공정인가… 이준석 대표에게 ‘공정’을 묻는다

[朝鮮칼럼 The Column] 이 대표, 노인 기초연금 소득 하위 70%에만 주고
상위 30%에는 안 준다며 불공정한 제도라고 지적
없는자의 몫 줄여서라도 모두에게 줘야 공정인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당 대변인 공개오디션 관련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뉴시스
 

덕담부터 건네자. 이준석 신임 국민의힘 대표의 당선과 취임을 축하한다. 이전에도 30대 당대표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신생 군소 정당이 아니다. 원내 102석을 지닌 제1 야당이다. 36세 당대표는 실로 이례적 사건이며 탁월한 성취다.

그러나 영화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명대사처럼, 위대한 힘에는 위대한 책임이 따르는 법. ‘이준석 현상’이 종전 정치 문법에 지각변동을 불러오고 있는 지금, 우리는 새로운 정치가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갈지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이준석의 정치적 관점, 특히 ‘공정’에 대한 입장을 철저히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노인 빈곤 문제를 생각해보자. 최근 들어 대한민국이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며 축포를 터뜨리고 ‘국뽕’을 즐기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노인 빈곤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은 다른 OECD 가입국과 같은 층위에서 논하기 민망한 수준이다.

보건복지부가 펴낸 ’2019 자살 예방 백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2015년 기준 10만명당 58.6명이었다. OECD 평균인 18.8명을 훌쩍 뛰어넘고, 38.7명으로 2위인 슬로베니아와도 격차가 크다.

왜 그럴까?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다. 자살을 생각해본 적 있는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27.7%가 생활비 문제를 꼽았다. 가난은 사람을 병들게 하고 움츠러들게 만든다. 말 그대로 돈이 없어서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노인이 OECD 평균의 약 세 배에 가까운 나라인 것이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노년층 내 빈부 격차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중위 소득을 100으로 봤을 때 소득이 50%에 미치지 못하는 상태를 ‘상대적 빈곤’이라 한다. 2014년 현재 우리나라 노인들의 상대 빈곤율은 48.8%에 달한다. 절반에 가까운 노인들이 통계적으로 빈곤층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개인주의와 경쟁의 나라인 미국조차 노인 상대 빈곤율은 같은 해 기준 21%에 불과하다. 12.1%인 OECD 평균과는 비교하는 것 자체가 민망한 수준이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노령연금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이명박 정부는 기초노령연금을 도입했고, 박근혜 정부는 ‘기초연금’이라 이름을 바꾼 후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금액을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올렸다.

이쯤에서 이준석 대표가 2019년 펴낸 ‘공정한 경쟁’을 펼쳐 볼 필요가 있다. 이준석 대표는 현재 기초연금에 대해 부정적 입장이다. 소득 하위 70%만을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책을 직접 인용해본다.

“그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노령연금의 경우 소득 상위 30퍼센트는 연금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불만을 토로합니다. 저는 그들의 불만이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노령연금의 경우 지급하는 금액을 낮추더라도 노인 인구 전체에 지급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이 원래 연금의 취지에도 맞습니다.”

‘공정’한 논의를 위해 밝히자면, 기초연금 제도에는 결함이 있다. 기초연금 수급액을 소득으로 파악하기 때문이다. 기초생활수급 노인 40만명은 기초연금을 받으면 그만큼 생계 급여가 깎인다. 생계 급여를 산정하는 가구의 소득 인정액에서 기초연금액을 빼는 것이 근본적 해법이지만, 그 경우 연 1조6000억원가량 추가 재원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준석 대표가 기초연금을 ‘불공정’하다 말하는 것은 하위 70% 중에서도 가장 힘든 이에게 더 많은 지원이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기초연금이 없어도 생활과 생존에 지장을 받으리라 보기 어려운 상위 30%가 돈을 못 받기 때문에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노인 인구 10만명당 58.6명이 자살하는 나라에서, 하위 70%에게 돌아갈 몫을 깎아서라도, 상위 30%의 불만을 달래야 한다는 소리다. 이준석 대표가 말하는 ‘공정’은 누구를 위한 어떤 공정일까.

나는 이준석 대표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세대의 일원이다. 위 세대가 하듯이 ‘이준석 현상’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볼 수만은 없다. 그런 시각이야말로 그를 한 사람의 ‘청년’이나 ‘유망주’로 묶어두고 무시하는 처사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진지한 태도로 토론을 시작해보자. 없는 자의 몫을 빼앗아 있는 자에게 주는 것을 ‘공정’이라고 할 수 있는가?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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